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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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화목한 가정은 이처럼 구성원 개개인의 자그마한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 P123

큰일이었다. 세상은 이미 프로였고, 프로의 꼴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 원년의 종합 팀 순위로는 그것을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6위 삼미 슈퍼스타즈: 평범한 삶
5위 롯데 자이언츠: 꽤 노력한 삶
4위 해태 타이거즈: 무진장 노력한 삶
3위 MBC 청룡: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2위 삼성 라이온즈: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한 삶
1위 OB 베어즈: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 - P126

나는 교육의 목표 역시 ‘소속‘을 가리는 데 있었다는 중요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또배짱이 아닌 이상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했다간 큰일이 나는 것이다. 눈치를 깠다면 당연히 타고난 저마다의 ‘소속‘부터 개발해야 한다. - P139

‘소속‘의 슬픔이란 그런 것이다. 이른바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집단에서도 이 ‘소속‘의 콤플렉스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사실 그래서, 인간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 P144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야 할 회사가 없었던 그해의 여름은--그과정을 충분히 마무리지을 수 있을 만큼이나 길고 긴 것이다. - P242

조표도, 그 어떤 지명과 소속도 표시되지 않은 칙칙한 지구였지만, 그 전체가 완벽한 ‘나‘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세계였다. 아주 오래전, 나는 좌표와 지명이 분명한 비싸고 화려한 지구 위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지구다.
때로 이 모든 생활이 현실 도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P258

자식, 잘 나간다 싶었더니 삼천포로 빠졌구나.
라는 말을, 들었다. 엘리트들 중에는 간혹 남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을 예사롭게 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엘리트 학생복을 입은 채 명문고를 나오고, 역시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의 요직에라도 앉으면 그럴 위험성은 상당히 높다. 게다가 ROTC라도 했다간 끝장이다. 최악의 경우는 게다가 어릴 때 줄반장과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겸한 것이고, 게다가 교회의 집사라도 된다면 더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 P259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도, 실은 국수의 가락처럼 끊기 쉬운 것이었다. 빙하기가 왔다는 그 말도 실은 모두가 거짓이었다.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 P262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안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 P264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 P279

무렵의 나는 겨울잠을 준비하는 오소리처럼--내 인생의 일, 내 인생에 대한 생각들을 잔뜩 끌어 모아, 도토리의 산을 쌓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토리의 산을 남겨둔 채 이제 더는 남의 일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면 할 만큼 했다. - P284

여러 번 취직을 했다가, 여러 번 퇴사를 했고, 그랫다가 얼마 전 다시 취직을 했다. 생각이 바뀌고 나자 마치 물과 뭍을 자유롭게 오가는 양서류처럼 취직 자리가 많아졌고, 그러면서도 물과 뭍이 동시에 공존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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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지음, 김해용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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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없어? 그럼 그만둬. 안전하지만 시시한 일이거나 위험하지만 재미있는 일, 둘 중에 하나를 해야지. 위험하면서 재미도 없는 일을 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야." - P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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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마르셀 에메 지음, 이세욱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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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이 특혜자들 역시 우리를 시샘하고 있다. 우리가 신비와 미지의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 은근히 부러운 모양이다. 정작 우리는 우리와 그들을 갈라놓는 무의 장벽을 지각하지 못하는데, 우리가 없는 동안에도 삶을 계속 영위하는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민감하게 느끼기 때문에 더욱 샘이 나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적인 죽음을 마치 후가처럼 여기먼서 자그들은 사슬에 매여 있다고 느낀다. 대체로 그들은 염세주의에 잘 빠지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서 나와 같은 범주의 속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시간이 빨리 흐른다고 느끼면서 더욱 빠른 생활 리듬을 따르다 보니 명랑한 기분으로 사는 경우가 많다. - P59

고백할 만한 속내 이야기가 없어서 그저 남의 얘기를 듣기만 해야 하는 신세만큼 처량한 것도 없다. 누구나 알다시피, 고전 비극에서 우리를 진자 슬프게 하는 것은 주인공의 비밀 이야기를 들어주는 자의 비극이다. 평생 특별한 일이라곤 겪어본 적이 없는 순진한 사람들이 자기 모험을 자랑스러워하는 주인공의 장황한 이야기를 체념한 채 다소곳하게 듣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은 슬픈 일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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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목 박완서 소설전집 결정판 1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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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는 내가 전에 애송한 시의 구절을 생각해내려고 골몰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남의 흉내, 빌려온 느낌은 그것을 깨닫자 흥을 잃고 싱거워졌다. 그리고 가식없는 나의 것만의 남았다. - P37

"엄마. 우린 아직은 살아 있어요. 살아 있는 건 변화하게 마련 아녜요. 우리도 최ㅗ한 살아 있다는 증거로라도 무슨 변화가 좀 있어얄 게 아녜요?"
"왜? 이대로도 우린 살아 있는데."
"변화는 생기를 줘요. 엄마, 난 생기에 굶주리고 있어요. 엄마가 밥을 만두로 바꿔만 줬더라도....... 그건 엄마가 할 수 있는 아주 쉬운 일이잖아요. 그런 쉽고 작은 일이 딸에게 싱싱한 생기를 불어넣을 수도 있다는 걸 엄만 왜 몰라요?" - P127

조상들의 꿈을 아무리 공들여 닦아도 내 꿈이 달래지지는 않았다. - P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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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앞의 생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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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자 아줌마는 아무것도 아닌 일로 호들갑을 떨고 나서 나한테 괜히 미안해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제 목숨은 그녀에게 남아 있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목숨을 소중히 생각한다. 하지만 세상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볼 때 그건 참으로 우스운 일이다. - P66

그제서야 나는 아줌마의 머리가 약간 이상해졌다는 것을 알았다. 불행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제 그 결과가 나타날 때도 된 것이었다. 사는 동안 겪는 모든 일에는 결과가 따르기 마련이니까. - P81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부분은 심장과 머리이며, 그래서 그것들은 아주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심장이 멎으면 사람은 더이상 살 수 없게 되고, 뇌가 풀려서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사람은 더이상 제힘으로 살 수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서는 아주 일찍부터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이 지나 능력이 떨어지면 아무도 도와줄 사람이 없게 된다. - P101

나는 마약에 대해서는 침을 뱉어주고 싶을 정도로 경멀한다. 마약 주사를 맞은 녀석들은 모두 행복에 익숙해지게 되는대, 그렇게 되면 끝장이다. 행복란 것은 그것이 부족할 때 더 간절해지는 법이니까. - P103

마약을 얻어내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마약 주사를 맞아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면 녀석들은 단박에 공짜로 주사를 놓아준다. 자기 혼자 불행해지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내게 첫 주사를 놔주고 싶어하는 녀석들은 숱하게 많았지만, 내가 뭐 남 좋자고 사는 것도 아니고, 내겐 로자 아줌마만으로도 벅찼다. 나는 나쁜 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해 모든 것들 다해본 다음에나 그 행복이란 놈을 만나볼 생각이다. - P104

"두려워할 거 없어."
그걸 말이라고 하나. 사실 말이지 ‘두려워할 거 없다‘라는 말처럼 얄퍅한 속임수도 없다. 하밀 할아버지는 두려움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믿을 만한 동맹군이며 두려움이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고 하면서 자기의 오랜 경험을 믿으라고 했다. 하밀 할아버지는 너무 두려운 나머지 메카에까지 다녀왔다. - P112

하밀 할아버지가 없었다면 나는 뭐가 됐을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다 하밀 할아버지가 가르쳐준 것이다. 할아버지는 어렸을 때 삼천을 따라 프랑스에 왔는데, 할아버지가 아직 어릴 때 삼촌이 돌아가셨지만 스스로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요사이에야 점점 바보가 되어가고 있지만, 그것은 자신이 그렇게 오래 살게 되리라는 것을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P126

나는 아주 먼 곳, 전혀 새롭고 다른 것들로 가득찬 곳에 가보고 싶은데, 그런 곳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공연히 그곳을 망칠 것 같아서이다. 그곳에 태양과 광대와 개들은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그것들은 그대로도 아주 좋으니까. 그러나 나머지는 모두 우리가 알아볼 수 없도록 그곳에 맞게 다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래봤자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 같다. 사물들이 얼마나 자기 모습을 끈덕지게 고집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참 우습기까지 하다. - P127

할아버지도 이제 너무 늙어서, 알라신을 생각해줄 처지가 아니잖아요. 알라신이 할아버지를 생각해줘야 해요. - P158

시간은 천천히 흘러갔고, 그것은 프랑스의 것이 아니었다. 하밀 할아버지가 종종 말하기를, 시간은 낙타 대상들과 함께 사막에서부터 느리게 오는 것이며, 영원을 운반하고 있기 때문에 바쁠 일이 없다고 했다. 매일 조금씩 시간을 도둑질당하고 있는 노파의 얼굴에서 시간을 발견하는 것보다는 이런 이야기 속에서 시간을 말하는 것이 훨씬 아름다웠다. 시간에 관해 내 생각을 굳이 말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찾으려면 시간을 도둑맞은 쪽이 아니라 도둑질한 쪽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 P178

"선생님, 내 오랜 겅험에 비춰보건대 사람이 무얼 하기에 너무 어린 경우는 절대 없어요." - P271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라리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 P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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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20-04-0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기 앞의 생』은 저도 감명깊게 읽은 소설입니다.
이 소설을 쓴 작가 로맹 가리에 얽힌 이야기도 아주 흥미롭습니다.
제가 직접 만든 영상도 있으니, 재미삼아 한번 구경해 보세요~
https://youtu.be/vKy0n0XDJM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