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목한 가정은 이처럼 구성원 개개인의 자그마한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다. - P123
큰일이었다. 세상은 이미 프로였고, 프로의 꼴찌는 확실히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프로야구 원년의 종합 팀 순위로는 그것을 표현하자면 다음과 같다.
6위 삼미 슈퍼스타즈: 평범한 삶 5위 롯데 자이언츠: 꽤 노력한 삶 4위 해태 타이거즈: 무진장 노력한 삶 3위 MBC 청룡: 눈코 뜰 새 없이 노력한 삶 2위 삼성 라이온즈: 지랄에 가까울 정도로 노력한 삶 1위 OB 베어즈: 결국 허리가 부러져 못 일어날 만큼 노력한 삶 - P126
나는 교육의 목표 역시 ‘소속‘을 가리는 데 있었다는 중요한 비밀을 알게 되었다. 또배짱이 아닌 이상은,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개발했다간 큰일이 나는 것이다. 눈치를 깠다면 당연히 타고난 저마다의 ‘소속‘부터 개발해야 한다. - P139
‘소속‘의 슬픔이란 그런 것이다. 이른바 가장 우수하다는 평을 듣는 집단에서도 이 ‘소속‘의 콤플렉스 앞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사실,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사실 그래서, 인간은 절대 평등할 수 없다. - P144
세계는 구성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구성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가야 할 회사가 없었던 그해의 여름은--그과정을 충분히 마무리지을 수 있을 만큼이나 길고 긴 것이다. - P242
조표도, 그 어떤 지명과 소속도 표시되지 않은 칙칙한 지구였지만, 그 전체가 완벽한 ‘나‘로 이루어진 보기 드문 세계였다. 아주 오래전, 나는 좌표와 지명이 분명한 비싸고 화려한 지구 위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하나의 지구다. 때로 이 모든 생활이 현실 도피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이렇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나에게,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P258
자식, 잘 나간다 싶었더니 삼천포로 빠졌구나. 라는 말을, 들었다. 엘리트들 중에는 간혹 남의 자존심에 상처를 주는 말을 예사롭게 하는 부류가 있는데, 그가 그런 사람이었다. 엘리트 학생복을 입은 채 명문고를 나오고, 역시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의 요직에라도 앉으면 그럴 위험성은 상당히 높다. 게다가 ROTC라도 했다간 끝장이다. 최악의 경우는 게다가 어릴 때 줄반장과 보이스카우트 활동을 겸한 것이고, 게다가 교회의 집사라도 된다면 더이상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 P259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그 시절도, 실은 국수의 가락처럼 끊기 쉬운 것이었다. 빙하기가 왔다는 그 말도 실은 모두가 거짓이었다. 실은 아무도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회사를 그만두면 죽을 줄 알았던 과거의 나뿐이다. - P262
시간은 원래 넘쳐흐르는 것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정말이지 그 무렵의 시간은 말 그대로 철철 흘러넘치는 것이어서, 나는 언제나 새 치약의 퉁퉁한 몸통을 힘주어 누르는 기분으로 나의 시간을 향유했다. 신은 사실 안간이 감당키 어려울 만큼이나 긴 시간을 누구에게나 주고 있었다. 즉 누구에게라도, 새로 사온 치약만큼이나 완벽하고 풍부한 시간이 주어져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없다는 것은, 시간에 쫓긴다는 것은--돈을 대가로 누군가에게 자신의 시간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 보니 지난 5년간 내가 팔았던 것은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시간, 나의 삶이었던 것이다. - P264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 P279
무렵의 나는 겨울잠을 준비하는 오소리처럼--내 인생의 일, 내 인생에 대한 생각들을 잔뜩 끌어 모아, 도토리의 산을 쌓아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도토리의 산을 남겨둔 채 이제 더는 남의 일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남의 일‘이라면 할 만큼 했다. - P284
여러 번 취직을 했다가, 여러 번 퇴사를 했고, 그랫다가 얼마 전 다시 취직을 했다. 생각이 바뀌고 나자 마치 물과 뭍을 자유롭게 오가는 양서류처럼 취직 자리가 많아졌고, 그러면서도 물과 뭍이 동시에 공존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생겼기 때문이다. - P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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