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정육점
김도연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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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작가의 음모

 

작가는 매우 능수능란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선수다. 작가 소개로 나온 사진이나 저간의 매체들과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어딘지 어수룩하고 순박하기까지 해 보이지만..

허름한 옷을 입고 설렁 설렁 걸어다니다 누군가 시비를 걸어와도 허허 웃어주고, 정면으로 도전하는 자를 우습게 제압해버리는 무당파의 고수같은 느낌인 것이다.

몇명 아닌 작품 속 사람들을 시간과 공간을 엮듯 교묘하게 엮어내며 무언지 모를 현란한 손동작과 씨줄 날줄의 꼬임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들쑥 날쑥해 보인다.

도대체 이게 뭐야..싶어질 때, 보란듯이 펼쳐지는 진경산수화같은 커다란 그림을 어찌 이길 수 있겠는가 말이다.

키우는 개에게까지 자신의 작품을 읽어주었다는 일화를 읽었다. 이 정도면 거의 궁극의 도에 이르렀다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작가의 공력이 100 이라면 보통 그의 작품에 50을 불어넣기도 여간한 일이 아니라고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며 작품의 공력이 100은 넘어 보이는데..그렇담 작가의 공력은 어느정도란 말인가..

처음의 몇 부분은 자의로 읽어낼 수 있었다.

그 후는 작가의 음모에 휘말려, 주인공들과 공간과 시간의 결계 속을 헤매게 된다. 도무지 빠져 나올 수 없는 방진 속에 발을 넣은 셈이다.

처음 보는 초식은 아님에도, 다음 초식이 무엇일지 짐작하고 방어해보지만 고수는 그 짐작을 피해 회심의 일격을 살포시 날리곤 한다.

읽어내다 보니 화딱지가 날 지경이었다.

도대체 정체가 무엇인데..이렇게 사람을 별 힘 안들이고 돌리고 있으며 반항할 의지마저 생기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하고 말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나는 작가의 늘어진 옷깃 하나도 잡아채지 못했다. 완패인 것이다.

#2. 마지막 정육점 - 여기가 마지막인것이 분명하냐고?

도식과 옥자 우연과 종욱과 은실​

신혼여행을 떠난 그 날 사고를 당하는 도식과 옥자..그들은 시공간을 맴돈다. 생각이 머문 곳으로 생각이 멈춘 때로​ 그렇게 옮겨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는다.

옥자를 피해 달아나는데 온 정신과 힘을 쏟는 도식, 도식을 놓치지 않으려는 옥자..그들은 죽어서까지 추격전을 멈추지 않는다.

이 지긋지긋한 사랑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도식은 나이트클럽 웨이터다. 옥자는 미장원 종업원이다. 그럴 수 있겠다.

도식은 승복을 입고 ​불자의 길을 걷기로 한 사람이다. 옥자는 예쁜 친구를 이용하여 도식에게 겁탈 당할 계획을 세운다. 그럴 수 있을까?

옥자의 계획에 휘말려 하룻밤을 지낸 도식, 기억조차 없는 그 밤을 지우고 싶다. 옥자는 지우고 싶지 않다.  도식에겐 없던 일이고 싶다. 옥자는 없어질 수 없는 일이다.

이 징글맞은 사랑이 우여곡절을 겪으며 죽음을 넘어 그렇게 만나질 수 밖에 없던 사연을 찾아 떠돌게 된다.

어쩌면 업일지도, 어쩌면 풀지 못한 화두일지도 모를 이 둘의 입을 통해 눈을 통해 마음을 통해 보여지고 느껴지는 것들이 그대로 현실이거나 현실이 아니다.

사랑도, 인연도, 만남도, 시작과 끝도, 잃음과 얻음도 사실일까?

그들은 과연 죽었을까?

이야기 속은 미로처럼 꿈결처럼 펼쳐진다. 흩어진 조각들을 멀리서부터 끌어모아 하나씩 맞추어 나가야 한다.

그래야 보이게 되는 그들의 가족사진...

월정거리에서 시작해 다시 월정거리로 마무리가 되는 작품 ..

누군가 야무지게 묶어놓은 실타래 처럼..그 끝을 찾아 손끝으로 한참을 훑으며 따라왔더니 만나게 되는 처음의 그 매듭.

그 매듭이 처음의 그 매듭이 맞는걸까?

#3.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여러번 앞으로 돌아가곤 했다. 작가는 퍼즐 조각을 밖으로 던져두고 하나씩 끌어다 모으길 바란 것 같으나..나는 한자리에 모아놓고 재배치를 하고 있었다.

도무지 관계가 풀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뭐가 막힌거지? 뭐가 꼬인거지?를 몇번이고 되짚어 보았다. 사실 그럴 필요도 없었지만, 오기였고 심통이었을것이다. 첫 시작을 그렇게 고생을 시키더니 이 엄청난 책은 그 다음부터는 멀미가 나게 달리기 시작했다.

임철우의 황천기담도 슬쩍 들여다 본것 같고, ​야마시로 아사코의 엠브리오 기담도 슬쩍 지나쳐간것 같다. 심지어 닥터 후의 '타디스'의 동양판, 아니 강릉판인가? 싶기도 했다.

그러나..전혀 달랐다.

앞서 말하지 않았는가. 작가는 능수능란한 선수였던 것이다.

비슷해보이지만 실제로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이야기를 꺼내 놓는 이 오묘함은 아마도 오랜 시간을 곰삭힌 그의 펜에서 나왔으리라.

마지막 장을 덮으며 애잔했다.

애잔하다는 말 이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한껏 달아올라 절정을 지나 차분히 내쉬는 숨처럼..그리고 까마득하게 잊는 것처럼..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은 없는 그런 경험.

그 찰나를 사는 우리들의 닮은 모습들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나와 닮은 사람, 그러나 전혀 다른 사람. 어떤 인연과 시간의 터널을 되짚어 돌아가 보면 한번은 만날 법도 한 사람.

이야기가 찰지다는건 바로 이런 것이지 싶다.

찰진 이야기..이해가 안되는 척하며 자꾸 펼쳐보는 옥자와 도식의 '그'장면..나는 그렇게 오래도록 이 책을 놓지 않으려 했다.​

​오롯이 읽는 이의 삶에 투영되어 속살거릴 이야기가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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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와 무관하지 않는 일상.

숨쉬는 것조차 정치적일 수 밖에 없는 때다. 정확한 세계관과 가치기준이 모호해질 때, 위기와 혼란은 곰팡이처럼 창궐하는게 당연할 수도 있다.

따로 따로 띠엄띠엄 읽었던 책들이 시리즈였다는 걸..오늘에야 알아챈다.

참..미련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정치사상사 시리즈라고 확인하고 보니, 그제서야 아..! 하는 탄성이 나온다.

 

올 상반기.

가능할지 모르겠지만..기왕에 읽은 책들을 재독하고..빠진것들은 구입해야겠다는 욕심을 내본다.

세트지상주의는 아니지만..

이건..있어야 할 것 같다.

 

 

 

 

 

 

 

 

 

 

 

 

 

 

 

 

 

 

 

 

 

 

 

 

 

 

 

 

 

 

 

 

 

 

 

 

 

 

 

 

 

 

 

 

 

 

 

 

 

 

 

 

정치란 것이 사람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발전과 이윤이라는 틀 속에서 사람이 지워지고 있다면..이는 사람의 미련함이고 사람의 부족함일것이다. 정치력이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된다는 건, 사회운동에 뛰어든다는 의미가 아니라..사람중심의 세계관을 정확히 구현해 내려 노력하는 것일거다.

개인의 노력 따위라고 폄하할 일이 아니고..정치사 전반과 지금의 대중권력에 대해 하나 하나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근간인 민주주의의 수수께끼부터 시작해보자.

진지한 3월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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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2-27 17: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리즈인데 표지 색상을 통일했으면 좋겠어요.. ㅎㅎㅎ
 

어젯밤 어떤 유명인이 티비에서 튜링을 언급했다.

숭고한 죽음을 선택한 사람으로..자신이 존경하는 존재라고 역설했다.

의외였다. 아니 어쩌면 수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의 입에서 튜링의 이름이 나오는게 낯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미 영화화 되고, 그 유명한 셜록..베네딕트 컴버비치의 캐스팅으로 나 역시 영화를 손꼽아 기다리지 않았는가..

 

 

 

 

 

 

 

 

 

 

 

 

 

 

독일군의 암호체계를 풀어낸 수학자..천재 수학자..그리고 동성애자.

 

오늘 아침 내가 자주 들락거리는 커뮤니티에서 "영화와 책, 어느 것을 먼저 보겠는가"라는 질문을 누군가 했다.

노예 12년, 위대한 개츠비..영화를 먼저 보았다.

단언컨대..튜링은 책을 먼저 보는게 낫다.

영화를 좀 더 심도있게 이해하기 위해, 스크린 뒤에 가려진 튜링의 고뇌와 질곡을 조금 더 비근한 온도로 체감하기 위해서는 책을 먼저 보는게 낫다.

 

청산가리가 묻은 사과를 스스로 베어문 튜링.

그것이 애플사의 로고가 되었느니 어쨌는니 하는 논쟁은 관심없다.

그가..화학적 거세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자신의 삶을 스스로 마무리 지을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모순이 더 깊이 눈에 박히는 탓이다.

 

아마도 동성애 코드는..튜링 조차도 풀어낼 수 없었던가보다.

문득..콜레라가 아닌 명예자살이었다는 차이콥스키와 동성애의 굴레를 벗어내지 못했던 라벨이 생각났다.

아름다운 사람들..빛나는 사람들을 이렇게 맥없이 잃어도 좋은건가? 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사랑조차 사회적으로 허락을 받아야 하는 성소수자의 문제..존재 자체가 투쟁이라는 그들의 설움이 천재 수학자의 이야기 속에서 절절하게 느껴진다.

 

 

 

 

 

 

 

 

 

 

 

 

 

 

 

 

중요한 건..천재건 아니건, 동성애자건 아니건.."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거다. "사람"이..거기 있었다는 거다.

조금 더 시간이 걸리겠지만..나치의 애니그마보다는 좀 더 복잡하겠지만..

이 코드를 푸는 날이 꼭 오리라고..그래야 한다고..혼자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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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손 집 외며느리는 명절이 두렵다. 부엌에서 알긍달긍하는 것이 이젠 숙련이 되고 제법 노련해질만도 한데..늘 처음 하는 것처럼 버겁고 힘에 부친다. 순전히 부실한 내 탓일거다. 왜냐하면? 어머님은 늘 말씀하신다. "내가 첨 시집와서 이걸 도맡아 했다. 임신중에도 까딱없이 다 해냈다. 그때는 더 복잡하고 힘들었다..." 그러니 나는 얼마나 부실한 며느리인가.

어쨌든..그래도 짬짬이 주어지는 시간을 모아 큼직한 위로를 받고 싶어진다.

조각이불을 만들 듯, 그렇게 쪼개진 시간을 이어붙여 만족할만한 위로를 만들고 싶어지는 것이다.

 

 두께가 어마무시한 책이다. 21세기 자본을 너끈히 넘기는 두께..(비슷하지만 조금 더 두툼한..)

 미스테리의 거장들이 뽑은 미스테리..목차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가 대단하다.

 자투리 시간에 하나씩 보기 좋겠다.

 스릴 넘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어제부터 펼쳐보기 시작했다. 사드라는 이름이 주는 므흣함..그것을 넘어서는 지성. 대단한 지식과 시대를 보는 눈을 가진 사드.

그의 지성과 고뇌와 자유에 대한 열망이 고스란히 보인다.

 발칙한 상상과 대범한 호기심..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의 뒤에 흐르는 비밀스런 지식의 흐름을 본다는 건 대단히 흥미롭다.

 

 

 

 

 

 

 

학문의 진화..이미지가 안뜨네

우연찮게 신간을 선물받게 되었다. 글항아리의 신간.

한동안 인문학에 대한 광풍(?)이 몰아치고, 요즘은 학문에 대한 본질적 의문들이 스물스물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흥미로운 책이다.

 

 

 그.리.고..컴버비치가 나온다는 그 영화의 원작..

  튜링..수학자를 담은 영화들이 문득 떠오르기도 한다.

 천재..수학이란 것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천재들이나 하는 건 아닌데..이렇게 늘상 천재들의 이야기로 꾸며지다보니..평범한 사람으로선 어려운 것이라는 편견을 갖게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컴버비치다..

 

 

 

 

 

 

 

 

간단하게 죽이게 보낼 방법들과 내용을 찾아본다.

이것만..읽어내도 흥미진진한 연휴가 되겠다. 벌써부터 기름냄새가 진동하는 것 같다.

미스테리부터 시작하자.

이 냄새가 어떤 사건의 징조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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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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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학의 로망.

 

아주 어릴 때, 안경을 쓴 아이가 많지 않았던 때, 유난히 두꺼운 안경을 썼던 체구가 작은 여자애는 "안경잡이"라는 놀림이 싫어 아버지의 서재에 늘 숨어있었다.

아버지의 서재엔 어렵고 낯선 책들이 가득했고 꼬마 여자애는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책들을 꺼내들고 그 뜻을 이해하려 안간힘을 쓰곤 했다. 분명 읽을 수는 있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문장과 단어들이 만든 감옥에서 허우적대던 여자애는 '보리 피리"라고 적힌 얇은 시집 하나를 손에 넣었고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뜨끈뜨끈해지는 눈시울을 연신 훔쳐대며 한동안 울었다. 알 수 없는 파동과 그 파동에 반응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 아이는 생각했다.

글은..이런거구나. 이렇게 누군가를 흔들 수 있는 것이 글이 갖는 힘이라면 나도 "안경잡이"라는 놀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부터 꼬마 여자애는 아버지에게 얻은 두꺼운 캠퍼스노트에 무슨 소린지도 모를, 그러나 너무나 간절한 글들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기승전결이라곤 없는 동화며, 학예회때 하면 재밌겠다며 새로 손질한 '콩쥐팥쥐'의 시나리오, 키우던 개 캐리가 죽던날의 설움을 적어내린 편지..그렇게 꾸역꾸역 제 마음을, 제 생각을 써내곤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안경잡이'라고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지만 꼬마 여자애는 개의치 않았다. 더 재밌는 놀이를 발견한 까닭이다. 그렇게 글을 쓰던 아이는 여중생이 되고, 여고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끄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꼬마 여자애는 소설가도 시인도 수필가도 그 어떤 수식어도 갖지 못한 평범한 독자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온 시간을 거쳐 여전히 읽고 쓰는 것을 습관처럼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사실, 살면서 한순간쯤은 '작가'의 꿈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주변의 친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글쓰기를 즐거워하고 아파하고 천형처럼 고통스럽게 써내곤 했었다.

그 친구들 중 실제로 동화작가나 작사가가 된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더 많다.

누구나 한번쯤 품었을 꿈이지만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현실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가슴에 여전히 품은 꿈으로 남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가..

담담하게 쓰여진 김연수의 글들은 별것 아닌 듯 시작해 별 것이 되어지는 과정을 수긍이 가게 서술하고 있다.

 

#2. 소설 쓰기

 

끊임없이 깨어 시간과 감각되는 세상을 써내려 가는 것이 소설가 이리라.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할 생각조차 없이 쏟아내고 그 처음과 끝을 모조리 훑어내며 지겨울정도로 다듬고 매만져 매순간 감각한 세상을 녹여내는 일.

이 어마어마한 일을 해 낼 수 있는 내공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책을 읽어갈수록 꼬마 여자애가 소설가가 되지 못한 이유가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무던히 읽어내고 끄적여내면서도 마침표를 찍어내지 못한 이유는..애착이었으며 변명이었던 것이다.

현학적이고 화려하게 쓰여진 문장에 스스로 도취해 손대지 못하는..아마추어치고 이정도 문장이면..따위의 처절한 자기고백과 반성과 객관을 잃어버린 자세였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소설가란 얼마나 냉혹한 작업을 견뎌내야하는 일인가..

제대로 감각하기 위해 얼마나 민감하게 느껴야 할지, 얼마나 깔끔하게 자신을 관리해야할지..상상조차 어려울지경이다.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숨이 턱턱 막히는 시간을 온전히 느껴내야하는 작업이라니, 이쯤되면 소설가라는 일은 고통의 극치를 견디는 일이지 않겠는가.

 

#3.

 

소설가의 일을 읽으며 소설가의 산책,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같은 근작들을 되짚어 읽어보게 되었다.

이전에 읽을 때 막연한 감수성만을 끄집어내어 공감하던 것들 사이에 작가의 되새김과 잘라냄, 긁어냄들이 행간에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 엄중하기까지 한 자기 성찰의 과정을 견뎌내고 내 손에 들어와 읽혀지는 글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을, 읽어내며 살았다.

단 한번도 이 문장이,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이 사람은 얼마나 치열한 작업을 했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유행하는 '갑질'의 한 변양태일지도 모를 "독자질"을 해대고만 있었다.

이 작품이 갖는 모호성과 적절치 않은 개연성, 그리고 매끄럽지 못한 서사는 아직 나를 감동시킬 수 없다..따위의 혹평을 해내는 데 급급하지 않았을까?

자격지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해 내지 못한 것을 해 낸 사람들에 대한 저열한 질투같은 것.

이제는 그 수고와 치열한 작업의 결과를 겸허하게 인정해야 할 것도 같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수없이 쏟아져 나온 작가의 자세,작가의 길, 작법에 대한 책들..그 유려하고 고매한 문장들을 읽으며 느꼈던 위압감과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작업이라는 자괴감을 김연수의 글을 읽으며 일부분 해소하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심기일전해서 꿈을 이루어보자..하는 따위의 유치한 결심을 하지는 않지만, 제 속의 말들을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을 다시 읽을 용기와 손질할 배짱이 있다면, 이 생이 다하기 전 어느 한 줄을 유언처럼 내 삶의 가장 진솔한 소설처럼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소설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이런 책은 왜 읽어?"

옆지기가 물었다.

"이거 읽는다고 소설가가 되는건 아냐"

라고 답했다.

"근데 왜 읽어?"

다시 물었다.

"맛있는 과일을 먹다 보면, 누가 어떻게 키웠는지 궁금해 질 때도 있잖아? 그런거야. "

"뭔소리래?"

그냥 웃었다.

 

그런 것이었을거다. 이 책을 펼쳐든 이유는..조금 더 겸손한 독자가 되고 싶어서, 그 수고와 그 보람과 그 과정을 공유하고 지원하고 신뢰하기 위해서 말이다.

 

소설가의 일을 읽으며..독자의 일을 생각한다. 조금 더 눈이 밝은 독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뉴욕제과, 반가웠다. 빵을 좋아하던 딸래미 때문에 우리 엄마도 뉴욕제과를 하셨었다.

 

책이란 가장 단순하게 봤을 때, 빈 페이지에 글자를 인쇄한 것이다. 그 글자를 어떤 식으로 배열할지는 소설가가 지정한다. 독자는 소설가가 지정한 순서대로 글자를 읽는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소설가가 소설을 쓴다는 것, 그리고 독자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이게 전부다.
(p188)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내가 쓸 내용 같은 건 없다고, 오직 문장뿐이라고, 그것도 한 번에 하나의 문장뿐이라고. 내용이야 어떻든 쾌감을 주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을 뿐이라고. 끝내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소설가는 내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장을 고치는 사람이다 잘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충분하게 많이...,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는 사람. 그게 다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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