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의 거리 - 1980년대 2 생생 현대사 동화
남찬숙 지음, 김선배 그림 / 별숲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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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이 선포되고 반년만에 새 정부를 기다린다.
6월은 어쩐지 뜨겁게 느껴진다. 4월 5월의 핏빛 죽음의 시간을 지나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울다 잠시 숨을 고를 때 수많은 생각이 스친다. 나는 왜 울어야하나. 또는 나를 울게 한 슬픔의 정체를 마주한다. 유월은 내게 그런 텀처럼 느껴진다.

80년대 중반의 모습이 저절로 떠오르는 글이다. 아시안게임도 KK항쟁이라 불렸던 건국대투쟁도, 박종철의 죽음과 전두환의 호헌선언, 6.10 민주항쟁. 6.29선언.
이 모든 일들이 저절로 벌어지거나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란걸 안다. 그럼에도 활자가 되어 눈으로 읽힐 때, 그 일들은 단순한 역사적 '사건'으로만 읽힌다. 매 순간에 숨이 되고 피가 되는 '사람'은 텍스트 밖으로 밀려나기 십상이다.
가르치는 아이들이 역사 시험을 볼 때, 근현대사가 범위이면 곧잘 정리를 해주곤 했다, 한국전쟁 이후의 사회변화와 정치적 격랑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4.19를 시작으로 5.16군사정변과 12.12 군사쿠테타를 이야기 하게 된다. 더불어 광주민중항쟁을 이야기하게 된다. 군부의 자국민에 대한 학살을 이야기하며 독재체제의 잔혹함과 무자비함을 한껏(?) 정제해서 말하면서도 소위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느낌을 받는다. 어째서인가. 4.19 민주항쟁으로 이승만을 끌어내렸지만 군부에게 빼앗긴 시간은 두려움과 열패감에 떨게 했다. 승리의 경험. 싸워서 이기는 경험이 필요했다. 목숨을 내놓고 싸우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 어떤 저항을 하든 구속될 것을, 오래도록 사회와 격리되어 붉은 글씨를 새긴 삶을 살게 될 것을 각오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그럼에도 불씨는 살아남았다고 생각했다. 6월의 이야기를 하면 듣는 아이들이 집중했다. 내가 겪은 일들과 내가 본 일들과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였기에 그것은 텍스트에 갇힌 하나의 사건이 아니었다. 1987이라는 영화가 나왔을 때 아이들이 그랬다. 쌤! 쌤이 말한거 다 진짜였어요. 영화에 다 나오던데요. 라고..
박근혜의 국정농단으로 탄핵투쟁을 주말마다 이어갈 때 시위에 다녀온 아이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저희가 자라서 어른되고 아이를 낳고 하면 그 애가 배울 역사에 이 이야기도 나오겠죠? 시험문제로 출제되겠죠? 라고..
개개의 삶 속에 갇힌 것은 역사가 아니다. 경순(고졸 취업)과 미숙(대학생)의 사회적 지위는 달랐지만 그들은 이웃이라는 고리를 통해 서로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정'이라고도 한다. 이익이 되는 관계인가 아닌가 하는 계산은 필요하지 않다. 믿고 지지해주는 힘. 그것은 나와 너를 가르지 않는 것에서부터 시작될 일이다. 미경이네와 경미네는 그런 관계였다. 그 관계의 확장이 그 해 6월 거리에서 명동에서 보여진 모습이다.
2024년 12월 얼토당토 않은 계엄이 발표되던 순간. 곧이곧대로 믿은 이들은 어쩌면 계엄을 선포한 일당들 뿐이었을거다.
믿을 수 없었고 믿어지지 않았다. 계엄은 곧 해제되었다.
그 후 수많은 시위와 투쟁이 뒤를 이었고 내란우두머리를 대통령 자리에서 끌어냈다.
아직 마무리 짓지 못한 내란 청산. 나는 승리의 기억을 조금씩 품은 국민들이 이길거라는 기대를 해 본다.
모든 역사는 과거를 그림자처럼 드리운 채 이어진다.
두려움이 깊고 슬픔과 고통이 깊을수록 그림자는 더 짙고 무겁다. 그림자는 나의 위치를 확인하는 기준이 된다.
해가 어디쯤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준도 된다. 즉 나의 위치와 나갈 방향에 대한 지침이 되는 것이다. 나라가 알아서 해주는 것은 없다. 누구도 정치와 무관할 수 없다. 그림자가 없는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든 역사와 유관하며 정치와 유관하며 모순과 맞설 책임과 권리가 주어진다. 그것을 제대로 행사하는 이를 주인이라고 그것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사회를 민주주의라 한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과정은 지난한 역사의 결과일 수 밖에 없고 수없는 싸움의 결과일 수 밖에 없다. 점점 승리의 경험을 축적해가는 국민들은 이제 반동의 움직임에 덜 밀릴 힘을 갖게 된다.
유월의 거리. 그 거리를 지나 온 사람들의 맥에 함께 뛰고 있을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의 공기는 아직도 뜨겁다.

울컥거리는 대목이 좀 있었다. 어차피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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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의 시간 창비시선 494
김해자 지음 / 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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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들이 뭘까? 너희들? 혹은 바늘? 이런 세속적인 생각에 잡혀있다가 드디어 표제작에서 '니'의 의미를 발견한다.

1
연해주에 사는 우데게족은
사람 동물 귀신 구분하지 않고 모두 '니'라 부른다는군요
과거와 현재와 미래 안에 깃든 모든 영혼을 니로 섬긴대요
(후략)

우데게족은 원래 연해주 원주민이다. 퉁구스계이며 흑수말갈의 후손이다. 이들은 발해를 영광스럽게 기억한다. 발해가 부족연합국가였기에 그들의 역사이기도 하며 우리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러시아로 편입되고 러시아의 지배가 시작되자 그들은 더더 먼 곳으로 이주를 한다.
어로문화를 가지고 있어서 연어가죽 옷을 입기도 한다.
우데게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들은 바다를 건너 숲으로 온 사람들이라는 뜻이다. 인디언의 집과 비슷한 '춤'이라는 것을 짓고 산다. 그 안에는 세벤(가신)을 둔다. 그들에게 집은 일상의 공간이자 신의 깃들어 사는 성소인셈이다.
신과 함께 사는 그들은 두려움이 없다. 하지만 세상 모든 것들, 호흡하거나 호흡하지 않는 것들에까지 깃들어있는 '니'. 경외함을 품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이 그들의 몫이다.
딱 기억이 나지 않는데 어디선가 우데게이 족의 한 풍습을 들었다. 필요한만큼만 가지고 가서 사용하는것. 그것을 어겼을 시에는 부족에서 추방당하는 것까지 감수해야한다고..
죽은자의 세상 부니를 연 사람들. 산 사람으로 죽은 사람까지 들여다보는 사람들 .

우데게의 '니'와 '너희'라는 '니'가 함께 뛰어다니는 시는 잠깐 생각을 다잡게 한다.
시 하나를 앞에두고 오래 전 읽었던 신화와 소설과 기타등등 떠오르는 것들이 난삽하게 뒤섞이고 있다.
우데게이를 이렇게 볼 것이라고는, 시 속에서 우데게이를 숨겨 둔 신탁처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었으니까..

494번째 창비 시선.
494는 대칭수다 2와 13과 19.의 곱으로 구성된..대부분의 수가 그렇지만 약수의 합이 494의 두배보다 작은 부족수다.
우데게의 샤머니즘에 젖어든 탓인지 아무 하잘것 없는 것에도 자꾸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부족수인데 어쩌라고..

자연과 사람과 오염과 파괴와 미래와 연대 기억과 현실을 시 속에서 감각한다. 김해자의 시가 늘 그렇듯 찌르르 짜르르 혹은 훅 내려앉음 같은 느낌으로 감각된다. 무어라 설명하거나 어떤 것이라 말하기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한다. 김해자의 시집마다 나는 '영험한 당골네의 비나리 같다'고 했다.
이번도 다르지 않다.
더 영험해졌다. 더 깊어졌고 더 넓어진 눈으로 더 멀리 본다.
더 큰 신이 왔나보다..

하..시 하나를 옮겨 적어볼라다 관둔다.
공수는 부정타지 않게 직접 받는게 맞으니까..

간만에 진득하게 시를 담았다. 잘 두었다 다시 읽으면 또 다른 맛일게 분명한 김해자의 시집 '니들의 시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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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노동 선언 - 우리는 글 쓰는 노동자다
작가노조 준비위원회 지음 / 오월의봄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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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책의 날이라 불리던 날 sns에 잠깐의 소란이 있었다. 피드를 넘기며 보다가 이게 사실이라고?를 몇번쯤 소리내어 말했던 것 같다.
예판이 되는 책이었고(그러니까 아직 실물은 없는) 그 중 500권인가를 작가가 팔아야 한다는? 그런 이야기였다. 선인세와 인세의 이야기가 나왔고, 출판사의 입장과 작가의 입장이 서로 부딪히며 조각조각 이야기들이 날아다녔다.
불공정한 계약이며 자비출판에 가까운 상황인데 중간에 끼인 출판사?의 이익이 우선되었음이 읽혔다.
알고리즘의 힘인지 글쓰는 사람들, 책 내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그래서 직업이 뭡니까? 라고 물으면 시인이요. 소설가요. 르포작가요..이렇게 대답할 수 있나? 베셀작가가 아닌 다음엔 작가라는 이름은 보통 서브네임일 확률이 높다. 책을 내고 북토크며 작가와의 만남 이런행사에 일하느라 갈 수 없는 '글쓴이'도 적지 않음을 안다.
개인의 희생과 노력과 안간힘의 결과로 나오는 책 한 권이 가격으로 평가되는것이 현실이다. 작가는 노동자인가? 아닌가? 그 모호함이 가져오는 불이익. 그런것과 마주 설 작가를 위한 책이다.
아, 그 sns를 달군 작가는 새 계약을 했다는 후문이다.
집단지성이라 일컬어지는 사람들의 방대하고 세세한 조언이 있었던 이유일지도..
펜이 일군 결실을 가로채는건 자본주의 사회에선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 작가에 대한 지위의 확보와 동등한 위치에서의 계약이 필요하다.
프리랜서로 분류되는 작가는 어떤 법적,제도적 보호를 받을 수 있나.
또는 개별 개체가 아닌 연대의 모습은 가능한가.
작가의 창작은 어째서 노동이나 말하지 않는가.
그런 작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한 탐구이자 지향에 대한 이야기다.
모든 노동은 정당한 댓가를 받을 권리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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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는 목소리
한정선 지음 / 불란서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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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미는 목소리 -한정선 산문집

양극성 장애와 불안장애, 수면장애와 메니에르등등을 앓고 있는 저자. 사실 이런 복합적인 증상들이 발현하게 되면 삶은 피폐해지고 희망이나 의지는 절망, 좌절과 치환되기 시작한다. 절망과 좌절의 양적 팽창이 희망과 의지를 넘어서는 건 일도 아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죽음과 코를 맞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죽을 각오로 살면 되지. 라고 누군가는 말하고 '선택'이라는 말도 종종 들려오지만 선택의 순간이나 선택의 기준은 없이 무의식, 무의지적으로 극단적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산 자들의 온갖 소리는 사실 무의미한 일이다. 스스로를 지켜나가는 것. 그 시작은 매우 어렵다. 마치 얇고 얇은 잠자리 비늘 같은 터널을 단 하나의 손상도 없이 지나가야 하는 일을 앞에 둔 사람처럼 머뭇대게 된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적어도 잠자리날개같은 터널을 지나보기로 결심을 한 것이다. 훌륭하고 대단하다.

고통 속에서 겸허해진다고 작가는 말한다. 감각이 있는 상태다. 매우 좋은 상태. 고통조차 감각되지 않는 우울의 상태에서는 겸허해지거나 자극이 되는 일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살아내야 하는 당위는 꿈쩍도 않는 등을 자꾸만 밀어댄다.
사람의 소리, 그 소리들이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할 때 감각은 깨어나기 시작한다. 들리고, 보고, 만지고, 쓰다듬고..
책을 읽는 내내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타인에게도 중요하겠지만 스스로에게 다정해지고 싶다는..
자신에게 엄격한 삶은 고단하고 서럽다. 한계치까지 자신을 몰아붙여야 뭔가 증명이 되는 삶은 피로하다.
나를 돌보는 일.
그것은 생존의 문제다. 수많은 우울과 양극장애 호소글(?)들을 봤지만..이 저자가 찐이다. 아직은..

[흔들림 없는 삶이 가능한가 하는 것은 여전히 내겐 주요한 질문거리이다. 가만히 서서 걸어온 길을 돌아보듯 지난 세월을 상기하면, 평생을 흔들리고 흔들리면서 살아온 시간만 떠올라서 묵직하고 깊은 중심을 갖는다는 게 애초에 내게는 불허된 것 같았다. (...) 산은 못돼도 바위 비슷한 것은 되고 싶었는데, 큰 나무는 못돼도 갈대처럼은 되고 싶지 않았는데 나는 작은 돌멩이고 강아지풀이었다. (..) 자신을 감당하기도 힘들어하면서 어떻게 타인을 감당해 내겠는가.(247쪽)]

다정해지자. 다정하다는 말이 몹시 좋아진 5월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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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 - 낯선 경험으로 힘차게 향하는 지금 이 순간
조승리 지음 / 세미콜론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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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력을 점점 잃어가다 이제는 전혀 보이지 않게 된 작가 조승리의 세상을 읽는 법. 작가가 감각하는 세상은 직관의 결과보다 풍성하고 입체적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이건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남긴다. 그 순간을 기록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기록을 넘어서는 건 '감각'의 힘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그 순간을 온전히 온 몸 구석구석에 새겨두면 내 감각 하나가 사라진대도 그 감각은 고스란히 남을거니까.
작가의 일상과 여행을 담은 글이다. 전작(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이 워낙 화제였어서 사실 조금 김이 빠지긴 했다. 뭐랄까..김동식 작가에 대한 초반 화제성이 너무나 대단했던 것처럼. 누구든 그럴거다. 반감기의 기간이 얼마나 긴가의 문제일 뿐이다. 그래도 작가의 '보이지 않아 보이는' 것은 다채롭고 따끈하다. 우리나라에서 장애는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거절 당하는 일'이라고 인터뷰했던 내용도 생각났다
매립되는 동물들을 보았던 기억은 너무나 선명했고 구체적이었다. 시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자각하고 읽어대던 책들, 그 마음도 짚어진다. 최근 읽었던 베토벤을 읽다에서도 결핍과 그 결핍 건너의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어쩌면 작가는 어머니의 호쾌함과 당당함, 부지런한 책임감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것도 같다.
어쩌면 작가는 이 더러운 세상 굳이 봐서 눈 고생시키지 말고 보이는 것 뒤의 의미와 삶의 근거를 감각하라는 축복을 받은것일지도..
우리나라에서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절박하다. 마사지숍에서 마사지를 하는,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당연시여겨지는 일을 하며 글을 쓰고 세상을 읽는다.
나는 못한다...마음 한 켠이 무너질 때 멍하게 읽기 좋다. 읽다보면 시선이 돌아오고 감각이 깨어난다. 좋다.

[ 학살은 붉은 생채기처럼 부르튼 흔적을 남기고 종결됐다. 산 자의 긴 그림자가 도망치듯 일제히 빠져나갔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방금 만들어진 거대한 무덤으로 천천히 향했다. 단단하게 다져진 흙더미 위로 중장비의 바퀴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밭에서는 석유냄새가 강하게 났다. 그 냄새 사이로 숨어 있었던 듯 돼지 분뇨 냄새가 산발적으로 새어 나왔다. 가을 바람이 잠자리 떼처럼 하늘 위로 날아올랐다. 나는 생목숨이 묻힌 둔덕으로 걸어 올라가 바닥에 손을 대보았다. 차가울 거라 생각했는데 손바닥 밑에서 미열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흙바닥에 한쪽 귀를 댔다. 땅속에서는 죽어가는 비명 대신 바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책 속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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