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우울증 - 죽을 만큼 힘든데 난 오늘도 웃고 있었다
훙페이윈 지음, 강초아 옮김 / 더퀘스트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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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책이다. 제목만으로 어느 정도의 수긍과 동의가 이루어진다는 건 양면성을 갖는다. 그만큼 공감할 준비가 된 독자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과 수많은 미디어의 정보와 넓고 얕은 지식들을 기반으로 속칭 '뻔 한' 이야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 대신 미리 형광처리 된 밑줄을 그어 놓은 편집은 내 경우는 달갑지 않았다. 독자들의 처지나 취향이나 시각에 따라 밑줄은 다르게 그어질 수 있을테니 말이다. 조금 성가셨다.


미소우울증을 정의하길 '우울증 문제가 있으나 이를 성공적으로 감추고 있는 사람의 심리'라고 한다.

사회와 가정과 자신이 속한 모든 공동체에서 원하는 모습.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편적'이라고 배우며 살았다. 배려와 감사가 넘치는..아주 어릴 때 형제끼리 싸워도 엄마는 상황이야 어찌되었든 둘의 손을 꼭 잡고 마주 쥐어주며 언니한테 잘못했다고 해. 동생한테 미안하다고 해. 사이좋게 지내자 악수 하고. 사랑해 안아줘야지. 를 주문했다. 내 안에 나의 주장과 요구 그리고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에 대한 납득 없이 내가 아닌 상대에게 너그럽고 친절해야 한다고 우격다짐으로 배워왔던 것이다.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고 개천에서 용은 더이상 나오지 못하고 한 번 쯤 실패할 수도 없는 시간을 사는 사람들에게 '안정'과 평안'은 화두가 아닐 수 없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기반. 좋은 직장에 취업하는 것. 좋지 않은 직장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것.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가능성을 제시해야 살아남는 직장에서 기꺼이 해내야 하는 역할은 힘겹기만 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은 없다. 세상은 '나'를 제외하고 화려하고 신나게 돌아가고 있다. 여유로운 삶, 즐거운 삶, 그런 삶의 표정들이 온갖 매체 속에서 보여진다. 나의 서러움과 불안함이 세상에게 들켜서는 안된다는 강박은 방어기제처럼 저절로 작동하기 시작한다.


누군가 세상을 떠나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럴리가 없어.' '그렇게 밝은 사람이?'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해'..

떠난 이는 누구에게도 우울증을 들키지 않았다. 애도하는 이들은 떠난 이의 우울을 들으며 자신의 우울이 아직 들키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이제 너무나 흔하게 말해지는 우울, 마음의 감기라고 친근한 표현도 있는 우울. 하지만 자신의 우울만큼은 들켜서는 안된다.


가르치는 아이 중에 '해피 바이러스'라고 불리웠던 아이가 있다. 아버지와 자매가 산다. 어머니는 아이가 꼬마였을 때 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고 아이는 저보다 더 어린 동생과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버지를 돌보며 자랐다.

아이는 늘 웃었고 아이의 가방엔 늘 과자며 젤리가 그득했다.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으러 가도 1/n 보다 조금 더 내는 아량도 보였고 수업시간에도 열심이었다. 학급 임원도 했고 댄스동아리도 했고 한국사연구동아리도 했고 캘리그라피를 배워 엽서를 만들기도 했고 쿠키를 구워오기도 했다. 매 순간 열심인 아이가 신기했다. 사춘기도 없나? 저 아이 정말 대단해. 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그 아이를 좋아했다. 늘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었고, 나 역시 칭찬을 이어갔다. 어느 날 그 아이가 종일토록 엎드려 울기 전까지 말이다. 아이가 스스로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렸다. 힘들었던 거다. 아무리 괜찮다고 다짐을 해도 더이상은 감출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어떻게 다 잘하고 사니? 여태까지 잘 해왔는데 그것만으로도 대단해' '때때로 울어, 울어야 사람이지 울어봐야 우는 사람 마음도 헤아릴 줄 알게 되는거지' '다 잘하려고 하지만 젤 잘하는 거 하나만 잘 해도 돼.' 따위의 말을 늘어놓았고 안정을 찾기 까지 1년도 넘게 걸렸던 것 같다. 아버지와 상담을 다녔다고 했다. 

따지고 보면 나의 옆지기는 공황장애 3년차이다. 딸아이의 친구는 항우울제를 먹고 있다고 했다.

우울은 더이상 특정 계층이나 특정 직업의 문제가 아니라 모두의 문제가 되었다.

코로나 시국이 길어지며 자포자기의 심정들도 늘어가고 있다. 

책에서는 행복을 부르는 열가지 생각을 말한다.

사실 모두가 알고 있는 우울증 처방을 말해보라고 하고 하나씩 적으면 이 열가지 방법을 다 적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당연하기도 하고 별것 아닌 것 같기도 한 방법. 

하지만 잘 안된다. 그만큼 우리는 우울과 가까이 서 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덮으며 뚱딴지 같은 생각을 했다. 

우울이 바이러스로 전염되지 않아서 다행이야. 호흡기 정도야 참아줄 수 있는데 우울이 창궐하면 방도가 없을텐데? 

마스크에 스마일을 그리고 다닐까?


오랫동안 웃는 법을 잊은 것 같다. 소소한 행복. 너무나 소소해서 있었는지도 모를 만족과 어려운 현실에 우리는 조금씩 미소우울증을 앓고 있는지도 모를일이다. 어쩌면 미소우울증을 앓지 않는 사람을 찾는 것이 더 어려울지도 모를일이다.

나는 약한 사람입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다면..

그래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라고 요구할 수 있다면..

당신도 내게 기대시겠습니까? 라고 제안할 수 있다면..

우울증은 조금 더 쉽게 걷혀질 수 있을까? 를 생각한다.

" 우울증을 증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다만 이런 노력이 전부 사후에 이뤄진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사람들은 선택적으로 증거를 수집한다. 예를 들면 자살한 사람의 가까운 친구를 만나서 그가 우울증을 앓았던 흔적을 찾아보려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달라질 것이 있을까?" - P28

"세상 사람들은 미소를 ‘힘들지 않다‘, ‘나는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가다‘, ‘걱정할 일은 하나도 없다‘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미소를 전부 이렇게 이해하면 그 사람의 진짜 모습과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다. 더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미소우울증을 앓는 사람은 마음 속 고통을 완벽하게 감추지 못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한 표정을 들켰을 때, 연약함과 우울함이 밖으로 드러났다는 사실에 좌절하고 슬퍼한다.



- P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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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봉 - 장정희 장편소설, 2020년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장정희 지음 / 강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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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해마다 책을 받은지가 꽤 되었다. 잊지 않고 챙겨주는 친구 덕에 호사를 누린다.

이번 생일에도 읽고 싶은 책 목록을 달라며 메시지를 보냈지만 딱히 읽고 싶은 게 없다고 했다. 그러다 몇 권의 책 목록을 주었고, 거기 옥봉이 있었다.

새빨간 표지, 문득 펑지차이의 '전족'이 생각났다. 어떤 프레임 때문일 것이다. 여성, 억압, 차별, 기타 등등의 억울함과 불공평함을 호소하는 프레임.

사실, 이옥봉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허난설헌일지 이매창일지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살아가며 이렇게 저렇게 듣고 읽은 탓에 아는 것일 뿐, 관심 있게 들여다보진 않았던 게 사실이니까. 그럼에도 궁금하고 호기심이 동한 건 사실 어이없다 싶은 계기가 있었다.

티브이 프로그램 중, 천일 야사(?)라는 것이 있다. 사흐라자드의 천일야화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말 그대로 옛날이야기이다. 서프라이즈 국내판 같은 느낌?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르거나 익히 아는 이야기들이 자주 편성되는 데다 너무 가볍게 다루고 넘어가는 내용들이 많지만 굳이 채널을 돌리거나 하지는 않는다. 무심히 그냥 본다. 어쩌다 얻어걸리는 소재들이 있어서다.

여하튼 어느 날엔가 이옥봉의 이야기를 했다. 온몸에 종이를 휘감은 여인이 절벽 위에 서 있는 장면이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다. 그녀는 어떤 글을 썼을까? 쓰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천형 같은 재능의 결과물은 어디서 볼 수 있을까? 궁금했다. 몇 개의 시들을 찾아 읽고 낮은 탄성을 내놓긴 했지만 이내 잊었다. 그 후 일요일의 루틴처럼 보게 되는 서프라이즈에서도 이옥봉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러다 옥봉(장정희 장편소설)을 알게 되고 급기야 단숨에 읽어냈다.

이물감이 없는 이야기.

이야기에 이물감이 없다는 건, 억지스러움이 없다는 말이다. 개연성 없이 감정을 충동질하는 글들이 없다는 말이다. 때때로 역사 속 여성들에 관련된 도서들을 읽다 보면 그 억울함과 참담함을 드러내기 위해 과하게 감정을 찔러대는 서사들을 만나곤 한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데.

차라리 더 냉정하게 썼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래 준비하고 써냈음이 분명한 글. 이렇게 자분자분하게 써내리기까지 작가는 얼마나 오래 옥봉을 앓았을까? 싶다. 서두름 없이 담담하게 내어놓는 이야기가 때로는 더 수긍이 되고 더 저릿하게 공명된다는 걸 다시 확인한다.

자신의 이름도, 사랑도, 죽음까지도 스스로 선택한 옥봉은 시대의 희생양(?)이 아닌 시대를 뚫고 나온 오롯한 봉우리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서녀였던 옥봉은 의붓어머니 장 씨의 타박을 견뎠다. 아버지의 자애로움과 시에 기대어. 어찌 되었든 출가를 시켜 집에서 내보내려 하자 스스로 선택한 사람의 첩실이 되기로 한다. 그곳에서도 정처 이 씨의 질투와 견제를 피할 수 없었다. 그래도 자신을 아껴주는 남편에 기대어 버텨낸다. 시는 남편이 원할 때, 허락할 때만 가능하다. 시를 반쯤 빼앗기고 얻은 사랑일지도 모를 일이다.

당파의 정쟁이 치열했던 시기, 외직으로만 돌다 결국 멈춰버린 사내는 언제 어떻게 누명이 씌워진 채 처참한 말로를 맞이할지 전전긍긍했고 뾰족해질 대로 뾰족해진, 더는 여유도 낙관도 없는 두려움만 남은 사내에게서 옥봉은 내쳐진다.

이 대목에서 나는 혼자 울컥했다. 기구한 삶의 여인이어서일지도 모르지만 팍팍한 삶에 가슴 한편 연필 한 자루 꽂을 여유도 없던 시절의 내가 생각났다. 제일 먼저 책 읽기를 놓았다. 시를 놓았고, 소설을 놓았다. 내 조금만 상황이 나아지면 원 없이 읽을 거야!라고 다짐은 했지만 그 다짐을 실행할 수 있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버려진 옥봉을 부축한 이들은 천민들이었다. 부월이, 두만이, 두만 엄마 그리고 맹아. 옥봉의 시를 읽을 수 있는 이들은 옥봉을 내쳤지만, 그 시를 읽을 수 없었던 이들은 옥봉의 곁에 머물렀다. 고통 속에서 고통을 뚫고 맑게 솟는 휘파람 소리 같은 것이 시의 처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시는 고관대작들의 술놀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처절하게 바스러지는 뼈 마디마디를 모아 글자를 짓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서녀로 태어나 첩실로 살다 마지막 숨까지 시로 적어 온몸을 휘감은 채, 삶의 마지막 결정을 내린 옥봉. 스스로 시에게 몸을 내어주는 것으로, 자신의 소멸로 시를 지켜낸 건가? 모진 처지를 타고 났고 처절하게 살았기에 옥봉의 시는 애절한 사랑의 노래마저 생기가 있다. 마치 장애가 있는 여성비정규직노동자의 순한 미소조차 강단이 있어보이는 것처럼.

나는 옥봉을 읽으며 어떤 인물에 집중하기 보다 옥봉이라는 이름 대신 '시' 혹은 '문학'등을 대치시키며 읽었다. 비슷비슷한 구조 속에 담아두고 애닲아만 하는 건 어쩐지 무례일것 같아서. .

살기 위해 시를 쓴다는 사람들이 적잖이 있는 요즘, 죽음으로 시를 지켜내고 살려내려는 숭고함은 좀체로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시기에 읽은 '옥봉'

이제 한 물 가고 있는 밈으로 이 느낌을 치환해본다면.

진심으로 가슴이 웅장해진다고...말할 수 있겠다.

애당초 생에 만약, 은 없을 터였다. 그러니 너도, 나도, 아무도 생의 뒷모습을 모르는 것 아닌가. 너와 나의 생이

그런것 처럼 우리에게 주어진 각자의 굴레에 머리끄덩이를 잡힌 채 살아가는 것, 그게 생(生)인 것이다.

옥봉 307쪽

당신들은 내게 시를 '재앙'이라 말하지만, 그건 틀린 말입니다. 내게 시는 오로지 나의 존재 증명이자 여자로서, 서녀로서, 소실로서 살아야 했던 내 생의 전부를 내건 발언이고 항변이고 싸움이었던 거지요. 하지만 나는 누구에게도 이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내가 그저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사람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지요.

옥봉 2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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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론강
이인휘 지음 / 목선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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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의 적들을 읽었을 때, 작가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살폈다. 이인휘. 하지만 이내 잊었다. 

늘 그렇듯 작가의 이름은 작품의 잔상과 여운, 야박하게 남는 의미들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서 파란 표지의 폐허를 보다를 읽었다. 그 때 이런 감상을 적었었다.

< 누가 그랬다. 더이상 '노동문학은 없다. 문학노동만이 남았다'라고 말이다. 현장으로 들어간 작가보다 작가의 책상으로 올라간 노동이 더 많았다. 현실이 아닌 환상, 꿈, 막연함. 이런 것들이 담아내는 노동의 의미는 뒷맛이 썼다. 어쨌든 가검을 들고 설치는 사람들 사이에 제대로 벼린 날 선 진검을 든 검객이 나타났다> 라고.

그리고 작가의 이름을 살폈다. 이인휘. 

작가의 이름을 검색했지만 당시 세간에서는 어떤 연예인의 부인이었던 이인휘라는 사람의 프로필이 뜨고 그 사람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김남주를 검색했더니 연예인과 화장품 목록이 좌르륵 떴던..

작가는 내 생의 적들 이후 오랜만에(내 생각일 뿐이지만..) 작품을 세상에 내놓았고 그 후로 착실하게(?) 작품이 나왔다.

노동자의 이름으로. 건너간다.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 줘 . 그리고 부론강. 

폐허를 보다와 노동자의 이름으로 건너간다를 나는 노동3부작이라고 칭한다. 

노동운동의 역사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이야기들을 샅샅이 파헤치며 적어낸 글은 때론 당혹스러우리만치 솔직했다.

2016년 폐허를 보다 부터 2020년 현재까지 다섯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는다.

자본과 싸우는 처절함. 나의 청년기와 맞물리는 투쟁의 역사는 생각보다 생생하게 파고들었다. 작중 인물이 아니라 내가 아는 선배, 후배, 전해들었던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생생했다. 조금씩 타협해가는 지도부들의 이야기, 동지들을 두고 뒤돌아서야 했던 사람의 심정, 그러나 끝내 놓을 수 없는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요구는 너무나 아팠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둘째치고 사람으로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전제되야 사람답게 살아내려는 의지와 요구가 나올테니 말이다. 자본의 세계에서 사람으로 산다는 건 그저 소모품으로 산다는 것은 아닐까. 소모품이 아닌 주체로 살아내려는 의지는 언제쯤 강건하게 나를 뚫고 나올까를 수없이 되묻는다.

책 세 권을 읽고 나는 많이 물었다. 내 삶을 관통하는 '정의'는, '노동'의 가치는 '사람'의 의미는 얼마나 단단한가하고 말이다.


그 후 만난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는 사실 의외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인휘는 노동자의 이야기만 쓸 것 같아서..

산하와 정서의 이야기는 표지만큼 푸르렀다. 환경의 문제와 자본들이 자연을 어떻게 잠식해들어오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발랄(?)하게 써내려갔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이 험한 길을 기꺼이 디뎌온 사람들의 상처를 하나씩 짚어갔던 이야기라면 우리의 여름을 기억해줘는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것인가에 대한, 아니 어떻게해야 상처를 줄일까에 대한 고민이보였다. 단지 노동의 문제뿐 아니라 각계층별 지역별로 연대하고 함께 지켜내야 할 가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출간된 작가 이인휘의 부론강.

두 남녀가 마주한 표지가 낯설지만 궁금했다. 부론에 산다는 작가는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찬미와 원우를 중심으로 부론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정겹다.

상처를 지닌, 그것이 사람에 대한 상처이건 시대의 상처이건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이들이 서로의 삶에 스며드는 이야기다.

남녀의 사랑이야기라고 읽을 수도 있고, 그들이 건너 온 시대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읽을 수도 있다. 박상화 시인의 시집 '동태'를 비롯해 사이사이에 적힌 시들과 재주 많은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들이 강물에 뛰어든 달빛처럼 일렁거리는 것이 나름 이쁘다.

386이라고 불렸었고, 486이라고 칭해지다 586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살아 온 시간들과 많이 겹친다.

주변에서 원우처럼 찬미처럼 차라리 떠나거나 차라리 숨어버리는 사람들을 적잖이 보았고 그들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끌어않은 채 평생을 자책과 회한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을 종종 보았다. 

유명짜한 지도부(?)는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진심으로 연대하고 용맹하게 싸우고 헌신적으로 투신했던 사람들이 실망하고 때론 내쳐지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누군가 386이 어쨌고 저쨌다며 욕을 할 때는 마치 자신이 잘못인양 고개를 숙인 채 술을 들이붓는 이들도 많았다. 누가 저들을 욕할것인가. 

어디에서도 속시원하게 터놓지 못할 이야기들, 어디에도 쉽게 정착하지 못하는 마음들, 어떻게 해도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

그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고, 들어주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 되돌아가고 싶은 곳이 생기고 그냥 아픈대로 내버려두겠다던 상처가 나아가고 다른 사람의 상처가 보이고 ..그렇게 서로에게 기대 살아가는 이야기가 '부론강'이다.

구태의연한 표현이지만 사람 인(人)자는 서로에게 기대어 완성되는 글자라고 했다. 이제야 저들은 '사람으로 사는 법'을 깨우친 것일지도 모른다. 

책 속에서 기술되는 부론의 사적들과 문화재, 나무이야기 또한 흥미롭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는 우리 동네를 잘 아나? 라고 혼자 생각하고 웃었다. 뭐 별로 아는게 없다. 있다고 해도 검색해서 나오는 결과 이상의 것은 아니다. 작가를 통해 듣는 부론의 풍경은 단아하고 묵직하다. '부론'이라는 지명마저 생소한 사람조차도 한 번 가볼까? 싶게 만든다. 

부론강은 작가의 이전 저적들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힘이 빠졌다기보다 눈이 깊어졌다는 표현이 맞을것 같다. 


'강물은 빗방울 하나하나의 여정을 개의치 않고 무심하게 흘러갔다. 인간의 생이 빗방울 같았다. 한 시대의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자신의 생이 떠밀려 온 것처럼 강물은 하나의 빗방울이 어디서 와서 어떻게 흘러가는지 관심조차 없었다.(p150)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강물도 알고 있을거다. 그 거대한 흐름을 만든 건 빗방울이었다는 걸..

빗방울이었음을 기꺼이 인정하고 싶게 만드는 소설. 부론강이다. 


내게는 파란만장했던 2020년.

부론강을 읽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도닥여주는 듬직한 손길을 만난것 같다.

조심성 없이 강물에 떨어진 잎새처럼 일렁이며 떠내려가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꼭 부론강이 아니어도.


사람들 사이엔 날마다 깊어지는 강이 흐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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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의 궤적
리베카 로언호스 지음, 황소연 옮김 / 황금가지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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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을 무렵 라디오에서 바그다드 카페의 ost 인 calling you 가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책을 읽고 난 후의 매캐한 바람의 냄새와 서걱이는 모래가 입 속을 구르는 느낌이었다.

인간의 욕심이 독점을 낳고 재앙을 불러온 후 살아남은 이들의 이야기. 출몰하는 괴물과 괴물사냥꾼으로 자란 여자와 여자의 주변인물들이 관계를 맺고 풀어나가는 이야기라고 하면 좋을까? 인디언들의 문화와 언어, 그리고 그들의 정신세계, 그들의 뿌리가 되어주며 때론 해결의 지혜가 되기도 하는 인디언 신화들이 구석구석 포진된 이야기이다.

어쩌면 너무 많은 영화나 이야기들을 접했던 탓일까? 이야기는 인디언이라는 정체성을 이야기하지만 자꾸 매드맥스나 그와 비슷했던 대재앙 이후 인간의 삶과 그것을 극복해가는 영웅들의 이야기들과 오버랩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뒷부분에 나오는 모지의 이미지에서는 영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하트여왕이 그려지기도 했다.

나는 어쩌면 더 독특한 이야기나 흐름을 기대했는지도 모르겠다.

 

1.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특별한 태생과 성장배경때문인지 ( 아메리카 원주민 어머니와 아프리카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이후 백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다는) 이질감 없이 서술되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디테일이 살아있다 라고 이야기한다는 건 이런걸까? 싶은 생생한 묘사는 화약냄새와 피비린내를 이내 불러왔고 생고기를 씹는, 정확히는 사람의 팔뚝이나 목을 물어뜯는다는 건 이런 질감일까? 싶은 감각의 자극을 이어간다.

새로 시작한 일들로 집중력은 수시로 흩어짐에도 불구하고 책 한권을 붙들고 후루룩 읽어낼 수 있었다는 건 흔히 이야기하는 가독성이 좋다.라는 반증일 것이다.

섬세한 묘사와 개연성이 납득되는 만남과 복선은 영리하다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

 

2. 누구를 믿을 것인가?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군가를 믿어야 한다면, 아니 믿게 된다면 그만큼 위험한 도박은 없을 것이다. 매기가 카이를 믿기 시작하는 순간, 위험은 한 발 더 다가와 있게 된것이다.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사랑 혹은 우정이라 불리우는 것을 믿기 시작하는 것은 큰 용기다. 자신을 믿을 수 없을 때 믿고 싶어지는 누군가. 의심이 되기도 하지만 믿고 싶다는 갈망이 생기게 되는 건 지쳤다는 의미이다. 클랜 파워가 저주인지 축복인지 알 수 없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선 차라리 불행속에 주저앉고 싶어지기도 한다는 데 공감이 되기도 했다. 읽는 내내 매기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녀의 선택은 그녀의 몫일 뿐이지만..

불사신인 네이즈가니. 그녀의 사랑이자 증오의 대상. 내내 그가 궁금했다.

서사로는 선뜻 그려지지 않는 그. 잘 읽어내지 못한 탓인지 나는 아직도 네이즈가니를 잘 모르겠다.

 

3. 선과 악의 구분은..

주술사에 의해 재창조된 괴물들이 살아남은 인간들을 공격하고 그 괴물을 처단하는 역할을 하는 괴물사냥꾼 네이즈가니와 매기. 괴물을 사냥하며 극도의 잔혹함을 보이지만 그것이 정말 악을 응징하는 선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슬러 올라가 그 악의 발생의 빌미가 되었을지도 모른다면 그 악의 근원은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또 소위 응징이라고 하는 것에 사사로운 적개심이 보태지지는 않는가에 대한 의문. 괴물을 사냥하면서 점점 복잡해지는 심리는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의심은 아닐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절대적이라는 것은 없다고 누군가 말했다. 그렇다면 상대적이라는 건 과연 용인될 수 있는 적절한 변명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한다. 선과 악을 구분짓는 것은 누구의 몫인가. 그 판단을 하게 된 주체는 과연 믿을 수 있는가. 아니 그 판단에 책임을 질 수 있는가 하는 생각이 꼬리를 문다.

 

4. 호불호가 충분히 갈릴

그런 이야기다. 잘 읽힌다는 건 휘발되기 쉽다는 소리이기도 하다(내 경우엔) 속도감과 감각에 이끌려 읽게 되는 글은 어느 순간 꿈처럼 묘연해지곤 한다.

더 많은 인디언 신화들이 끼어들 자리는 없었을까? 라는 아쉬움. 신화를 좋아하는 개인의 취향이겠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야만적이다. 왜냐하면 사랑은 다른 것들에 대한 소모(희생)으로 행해지기 때문이다. 신에 대한 사랑도 마찬가지다." 라고 했던 니체의 말이 떠올랐다.

 

네이즈가니의 표식인 천둥검에 찔린 상처를 갖게 된 매기.

천둥의 궤적이라는 제목은 네이즈가니로부터 촉발된 이야기가 그가 남긴 상처로 마무리 되는 까닭이었을까?

객관적으로 재미있는 책이다. 여러가지 생각들이 밀려들 공간이 많다.

큰 물과 같은 재앙은 아니지만 세계적인 재앙이 창궐하고 있는 때, 잠깐이라도 살아있다는 심장의 박동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클랜 파워가 용솟음치며 나이프를 손에 쥐고 화살처럼 괴물의 숨통을 끊어내는 간접경험을 즐기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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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감기 소설, 향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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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윤이형을 처음 읽은 건 2014년 이었다. 쿤의 여행. 글을 읽으며 내내 흥분했다. 같은 단어를 다르게 조합하고 있다는 느낌. 단순한 나열이 아니라 촘촘하게 의미를 박아넣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것이다. 그 후 기회가 될 때마다 윤이형의 작품을 읽었다.

우퍼스피커 같은 작가라고 나는 평가했다. 묵직하게 소리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듣는 존재까지 공명하게 하는 힘이 있는 작가라고..차이라면 우웅~울림 뒤에 오는 날카로움일거다.

이 책을 읽어야지 하고 꺼낸 날. 이상문학상에 관련된 이야기가 세간에 회자되고 급기야 작가의 절필선언(?)을 듣게 되었다. 그렇다면 현재까지는 마지막 작품인셈인가?

오늘, 문학사상사측에서 올린 사과문을 읽었다.

다만 문학사상사의 문제일까? 라고 의문을 품다 그만두기로 했다. 그런 의문은 늘 뒷맛이 썼다.

어쨌든 붕대감기를 읽었다. 작가가 세영이처럼 한바퀴 더 돌리는 바람에 '악' 비명을 지르진 않았지만 심한 압박감을 받으면서..

그러나 뿌리치진 못했다.

 

2. 헤어디자이너 해미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는 기가막힌다고 밖에 설명할 방도가 없다.

율아와 서균이, 두 꼬맹이를 빼고, 성추행 가해자인 천을 빼고 모두 열세명의 이야기가 레고조각처럼 맞물리며 쌓여간다,

책을 덮으며 아라크네를 생각했다

위대하고 영광스러운 신들을 그려낸 아테나와 붙어서(?)도 조금도 꿀리지 않았던 아라크네. 그녀의 천 위에 그려진 인간의 세밀한 삶의 모습은 신들의 권능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이었다. 결국 거미가 되고 말았지만 그 패기.

속속들이 파헤쳐 들어간 이야기와 이야기 속 사람들을 이렇게 펼쳐놓다니..근래들어 읽은 책 중에 가장 진솔하고 가장 영민하며 가장 치밀하다고 생각했다. 아라크네는 거미줄을 내려왔지만 결국 다시 거미줄을 짜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3.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뻔한 이야기라서 소름돋게 이해가 되고 저절로 그려지는 단점(?)이 있었다. 등장인물들이 대상화되지 않는다. 나는 진경이며 세연이고 지현이며 바람이고 해미면서 윤슬이거나 명옥과 효령같은 사람인 것이다. 어떤식으로든 교집합이 성립되는 이야기 속에서 투영되는 '나'를 보게 만드는 글의 힘이 대단했다.

단언컨대 이 이야기는 줄거리라고 장황하게 적어내리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한 사람을 빼도 안되니말이다. 물론 진경과 세연을 중심으로 큰 조각을 이야기하려 한다면 가능하겠지만..

 

4. 아군도 적군도 모호해지는 페미니즘, 혹은 여성운동의 허와 실을 담담하게 써내려간 부분이 좋았다. 전선이 수시로 바뀌고 신념과 아집사이를 넘나드는 그 위태로운 발걸음이 미덥지 못하다기보다 단단히 연대해 주어야 할 이유가 되어준다.

사람으로 시작해서 우정을 매개로 그려내는 상처와 상처를 딛고 일어서려는 몸짓, 그리고 서로에게 어깨를 대어주고 연습으로라도 서로의 상처에 붕대를 감아 줄 친구가 되어주는 것의 의미를 본다.

그러고보니..나도 세연이 같은 친구가 있었네.

 

5. 책장을 덮으며 전화번호를 뒤적여본다.

문득..친구에게 전화를 하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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