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신채호는 훗날 묘청의 난을 1천 년 내 제1대 사건‘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것은 고구려 계승 세력 대 신라 계승 세력, 자주당 대 사 대당, 진취적 개혁론 대 기득권 옹호론의 최후 결전이었다. 

 개경의 권문세족부터 지방의 향리들까지, 신라에서 고려로 이어진오랜 지배층은 조선이 건국되자 양반 사대부로 변신한다. 세상은 바뀌었지만 행세하는 가문들은 그대로였다. 그들은 더욱 엄격하고 정교해진 유교 통치를 들고 나왔다. 이전 시대와 도덕적으로 차별화하면서도항구적인 지배를 그럴싸하게 옹호할 길을 성리학에서 찾은 것이다. 그것은 정욕을 억누르고 절의를 좇는다는 미명 아래 남녀의 진실한 사랑을 음란한 풍속으로 낙인찍고, 여성에게 정절이라는 족쇄를 채워 구속하는 통치 체제이기도 했다.

남편에 대한 복수심 때문이었을까? 박씨는 어우동으로 흑화하기 시작했다. ‘어우동(於于同)‘이라는 이름은 ‘어울려서 통한다‘ 또는 함께 어울린다‘로 풀이할 수 있다

 실록에는 어을우동(於乙于同)‘ 이라고 표기하기도 한다. 이 이름은 그녀가 사용한 별명이었다. 어우동은 ‘이혼녀 아닌 이혼녀‘가 된 뒤 기생, 내금위 무관의 첩, 과부로 행세하며 남자들과 만났다고 한다. 법적으로 여전히 종친의 아내인 자기 신분을숨긴 것이다. 간통죄에 걸리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으리라.

어우동의 처형(1480)은 성종이 부부 싸움 끝에 폐비 윤씨를 쫓아내고(1479) 사약을 내려 죽이는(1482) 와중에 벌어졌다. 이것이 바로 내가주목하는 포인트다. 우연 치고는 너무 의미심장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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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군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군대는 농민의 군대입니다. 여러분과 같이 오줌통도 지고 김도 매고 씨도 뿌리겠습니다.˝ 151945년 12월 전국농민조합총연맹 결성식에서 약산이 한 말이다. 김원봉은 민중 속으로 들어가고자 했다. 그들과 함께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고 싶었다.

 성종은 유교 정치 실현을 위해 여동생들을 모질게 대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그 성현의 가르침에 따라 집안부터 손본 것이다. 그러나 헌애왕후는 유교 정치의 억압과 구속을 독하게 버텨냈다. 고려 창업자 왕건의 손녀답게!!

서희의 담판으로 거란군을 물리친 성종은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통치 체제를 정비하고 사회 질서를 다잡는 일도 중요하지만, 고려의진정한 힘은 고구려의 후예라는 정체성에서 나온다는 점이었다. 이는국난을 극복하면서 국가적인 공감대가 형성된 인식이었다. 중국식 유교 정치에 치우쳐 있던 성종은 이후 헌애왕후와 화해하고 패서 호족들을 예우했다. 또 송나라와 국교를 단절하고 서희의 강동 6주 개척에 힘을 실어줬다.

왕건은 지역마다 군림하는 호족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본관과 성씨를 배정하고 나라의 근간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고을별로 힘 있는 일족들이 성씨를받고 향리가 되었다. 성씨의 기준은 아버지의 핏줄이었다. 이제 이 땅에서 행세하려면 부계 혈연관계로 결집한 가문‘이라는 게 필요했다. 

 세상에 순수한 혈통은 없다.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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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해지고자 하는 집요한욕망이라기보다는 행복해질 수 있다는 간절한 믿음에 가까울것이다

내가 행복해지면 당신이 그만큼 불행해지는 그런 행복을 도대체 행복이라 할수 있을까. 그런 소원이라면 어떤 간절함을 가질 수 있을까. 달빛이 넌지시 되물을 것 같다.

우리는 어딘가에 숨어 있는, 아니 숨어 있을지도 모를, 없는지도 모르겠으나 그래도 반드시 있어야 할, 사랑이나 우정을,
혹은 그것을 대신할 무엇인가를 찾으려 애썼다. 취한 말들은 하면할수록 닳아버렸다. 진심을 말하고자 술을 마셨지만, 술을 마시자진심은 사라져버렸다. 누군가 억울하다 해도 내 것을 내던지며 싸울 것도 아니면서, 누군가 배고프다 해도 내 것을 내주며 도울 것도 아니면서, 우리는 잠시 의기투합하여 생을 긍정해 보려 했고,
센티멘털리즘이 뿌려진 달달한 위로를 맛보려 했다. 네 말대로 우리는 그냥 그렇게 견디고 있었다. 취해서 눈밭에 쓰러진 노새처럼, 뭘 견뎌야 하는지도 왜 견뎌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2016))

물리학과는 거리가 먼 전혀 엉뚱한 생각이지만, 지진을리큐느 순간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된 느낌이었다. 거리에 나가 눈앞에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자 비로소 내가 죽지 않고이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살아 있었다. 하지만 거리로떠쳐나갔을 때 그곳에 아무도 없었다면 나는 정말로 살아 있다.
고 느낄 수 있었을까? 이성복 시인의 시구를 빌리자면, ˝당신이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지 않았을까. 그저 존재할 가능성에 불과한 나를 정말로 존재하게 만드는 조건은 무엇일까. 눈에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나와 함께 이세상에 존재하는 다른 사람들이 아닐까. 세상은 나를 존재하게하는 그들과 그들을 존재하게 하는 나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닐까. (2015) -

 북극에 사는 이누이트들은 화가 나면 마을저 멀리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을 향해 하염없이 걷는다고 한다그러다가 마음이 풀어지는 순간 걸음을 멈추고, 그 자리에 막대기 하나를 박아 놓고 돌아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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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저 눈앞을 가로막는 어둠을 막막하게 바라보고 있었을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집을 팔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건당연한 일이었어요. 당신과 나는 무엇이든 팔아야 먹고살 수 있는 시간 속에서 떠밀려가는 존재들이었으니까요. (2017) 

 무엇인가를 파는 곳에는 무엇인가를 사려는 사람들만 오기 마련이에요. 그리고 사람들이 돈을 내고 사는 것은 대개는 자기에게 없는 것들이죠. 충분히 있는 것들을 굳이 돈을 내고 사려 하지는 않더라고요.

너무 많은 말과 너무 많은 얼굴에 휘둘리다 보면 머무를자리 없이 허우적거리게 된다. 원하지 않는 곳으로, 빠져나올 수없는 진창 속으로 떠내려갈 것만 같다. 다가오는 호의도 힘들고보여줘야 할 호의도 힘들고 떠나보내야 할 호의도 힘들다. 

추한 것을, 무례한 것을, 염치없는 것을 매력으로 삼는일들이 너무 많아졌거든요. 매력은 작은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대놓고 욕을 퍼붓고, 눈앞에서 혐오를 드러내고, 뻔뻔스럽게 욕심을 부리는 것으로 차이를 만들려고 애써요.
그러다 보니 잘 드러나지 않는 곱고 순한 것들이 자꾸 사라져요.
자극적인 매력 하나가 나타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매력 하나가사라지고, 반짝이는 예쁨 하나를 얻을 때마다 묻혀 있는 예쁨 하나를 잃어요. 매력은 발굴하는 사람의 몫이어야 하거든요. 강요하고 발산하는 매력은 오염되고 말아요. 대가를 요구하고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아니, 그런 대가가 아니고요, 모두 망가져 버리는 거 말이에요.

그 순간 너는 아름다움의 비밀을 풀었다. 천국에는 왜
‘만지지 마시오‘ ‘눈으로만 보시오‘ 같은 푯말들이 군데군데 붙어있는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름다움은 손에 닿지 않아야 완성되는 것이었다. 너는 천국을 손에 닿지 않는 곳에 두기로 했다. 손으로 만지고 혀로 맛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싶어요동치는 마음을 싼값으로 달래는 법을 배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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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지 않은 말 - 시인의 일상어사전
권혁웅 지음, 김수옥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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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는 아직 언어를 배우지 않았다. 이것은 아기가 세사이분절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기 자신이 언어에 의해분절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기는 언어 이전의 살肉)우리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지만 거기에 어떤 설명도 덧붙일 수 없는 그런 살이다. 우리가 예쁘다, 매끄럽다, 부드럽다.
와 같은 말로 설명하려고 했던 원래의 그 살결 그대로 아기는있다. 하지만 어떤 언어도 아기의 그 예쁘고 매끄럽고 부드러운 살결을 형용할 수가 없다.

법이 허용하는 어른의 한도는 19세다. ‘17대1‘이 그 자신이 허물을 벗는 경계를 표현하는 말이라면 19금‘은 외부에서 부과한 사춘기의경계를 표현하는 말이다. 왜? 19도 소수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는 18이 있다. 온갖 수가 합성된 수다. 이미 17을 넘었는데 다시 19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저 말이 욕이 될밖에 특툭 튀어나올밖에.

 이모는 정반대다. 삼촌이 부계라면 이모는 모계다. 삼촌이아버지나 장자와 권력 승계를 두고 다툰다면 이모는 어머니와 함께 소외된 이들의 연합을 이룬다. 어머니가 시어머니가되면 이모는 소외된 이들에게서도 다시 한 번 소외된다. 이모에게는 어떤 권력도 주어지지 않으며, 다만 자애로운 어머니의 역할만이 주어진다. 그녀는 그림자 어머니‘가 된다. 우리가 식당에서 이것 좀 치워달라고, 주문 좀 받으라고, 계산서가져오라고 이모를 부를 때마다, 우리는 칭얼대는 것이다. 엄마, 밥 줘. 엄마, 방 좀 치워줘.

 그런데 사실 본다는것은 보는 사람에게 속한 능력이 아니라 보이는 사람에게 속한 능력이다. 내가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상을 보는 것이아니라 대상이 내 시선을 갈취해 가는 것이다. 그이가 나를끌고 간 게 아닌데도 나는 그이에게 끌린다. 누군가 그립다고할 때 쓰는 말 ‘눈에 밟힌다‘가 수동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별을 통보받은 연인이 그래도 수긍하지 않으면 이런 말이 이어진다. ˝나는 부족한 사람이야. 더 좋은 사람 만나.‘ 자기와 상대를 저울에 올려놓고 쟀다는 얘기다. 그는 근수로 상대를 평가했다. ˝널 구속하고 싶지 않아. 욕심 부리지 않고 널놓아줄게.˝ 그동안 상대를 우리에 가둬놓고 키웠다는 말이다.
이제는 방목하겠다는 거다. 만에 하나, 다시 찾아올 수도 있다는 보험까지 들어두고, ˝널 오래 기억할게.˝ 상대를 내 컬렉년에 추가하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해서 3차원의 사람이 2차원의 감옥에 갇힌다. 상대는 비교되고 추방되고 정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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