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의 일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품절


#1. 문학의 로망.

 

아주 어릴 때, 안경을 쓴 아이가 많지 않았던 때, 유난히 두꺼운 안경을 썼던 체구가 작은 여자애는 "안경잡이"라는 놀림이 싫어 아버지의 서재에 늘 숨어있었다.

아버지의 서재엔 어렵고 낯선 책들이 가득했고 꼬마 여자애는 아무리 읽어도 알 수 없는 책들을 꺼내들고 그 뜻을 이해하려 안간힘을 쓰곤 했다. 분명 읽을 수는 있는데 도무지 알 수 없는 말들..문장과 단어들이 만든 감옥에서 허우적대던 여자애는 '보리 피리"라고 적힌 얇은 시집 하나를 손에 넣었고 여전히 무슨 말인지 알 수 없지만 뜨끈뜨끈해지는 눈시울을 연신 훔쳐대며 한동안 울었다. 알 수 없는 파동과 그 파동에 반응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 아이는 생각했다.

글은..이런거구나. 이렇게 누군가를 흔들 수 있는 것이 글이 갖는 힘이라면 나도 "안경잡이"라는 놀림을 피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때부터 꼬마 여자애는 아버지에게 얻은 두꺼운 캠퍼스노트에 무슨 소린지도 모를, 그러나 너무나 간절한 글들을 적어내기 시작했다.

기승전결이라곤 없는 동화며, 학예회때 하면 재밌겠다며 새로 손질한 '콩쥐팥쥐'의 시나리오, 키우던 개 캐리가 죽던날의 설움을 적어내린 편지..그렇게 꾸역꾸역 제 마음을, 제 생각을 써내곤했다.

아이들은 여전히 '안경잡이'라고 놀리는 걸 멈추지 않았지만 꼬마 여자애는 개의치 않았다. 더 재밌는 놀이를 발견한 까닭이다. 그렇게 글을 쓰던 아이는 여중생이 되고, 여고생이 되고 대학생이 되어서도 여전히 끄적이고 있었다.

 

그러나 꼬마 여자애는 소설가도 시인도 수필가도 그 어떤 수식어도 갖지 못한 평범한 독자로 살아가고 있다.

다만 온 시간을 거쳐 여전히 읽고 쓰는 것을 습관처럼 끌어안고 있을 뿐이다.

 

사실, 살면서 한순간쯤은 '작가'의 꿈을 갖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싶어지기도 한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주변의 친한 친구들은 하나같이 글쓰기를 즐거워하고 아파하고 천형처럼 고통스럽게 써내곤 했었다.

그 친구들 중 실제로 동화작가나 작사가가 된 친구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친구들이 더 많다.

누구나 한번쯤 품었을 꿈이지만 그것이 어떤 이에게는 현실이 되고 어떤 이에게는 가슴에 여전히 품은 꿈으로 남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설가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가..

담담하게 쓰여진 김연수의 글들은 별것 아닌 듯 시작해 별 것이 되어지는 과정을 수긍이 가게 서술하고 있다.

 

#2. 소설 쓰기

 

끊임없이 깨어 시간과 감각되는 세상을 써내려 가는 것이 소설가 이리라.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할 생각조차 없이 쏟아내고 그 처음과 끝을 모조리 훑어내며 지겨울정도로 다듬고 매만져 매순간 감각한 세상을 녹여내는 일.

이 어마어마한 일을 해 낼 수 있는 내공은 어디에서 오는 건가.

책을 읽어갈수록 꼬마 여자애가 소설가가 되지 못한 이유가 명확해지기 시작한다.

그렇게 무던히 읽어내고 끄적여내면서도 마침표를 찍어내지 못한 이유는..애착이었으며 변명이었던 것이다.

현학적이고 화려하게 쓰여진 문장에 스스로 도취해 손대지 못하는..아마추어치고 이정도 문장이면..따위의 처절한 자기고백과 반성과 객관을 잃어버린 자세였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소설가란 얼마나 냉혹한 작업을 견뎌내야하는 일인가..

제대로 감각하기 위해 얼마나 민감하게 느껴야 할지, 얼마나 깔끔하게 자신을 관리해야할지..상상조차 어려울지경이다.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버겁고 숨이 턱턱 막히는 시간을 온전히 느껴내야하는 작업이라니, 이쯤되면 소설가라는 일은 고통의 극치를 견디는 일이지 않겠는가.

 

#3.

 

소설가의 일을 읽으며 소설가의 산책, 사월의 미 칠월의 솔 같은 근작들을 되짚어 읽어보게 되었다.

이전에 읽을 때 막연한 감수성만을 끄집어내어 공감하던 것들 사이에 작가의 되새김과 잘라냄, 긁어냄들이 행간에 보이는 것도 같았다. 이 엄중하기까지 한 자기 성찰의 과정을 견뎌내고 내 손에 들어와 읽혀지는 글들이 새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의 글을, 읽어내며 살았다.

단 한번도 이 문장이, 이 작품이 나오기까지 이 사람은 얼마나 치열한 작업을 했을까?를 생각해보지 않았다.

유행하는 '갑질'의 한 변양태일지도 모를 "독자질"을 해대고만 있었다.

이 작품이 갖는 모호성과 적절치 않은 개연성, 그리고 매끄럽지 못한 서사는 아직 나를 감동시킬 수 없다..따위의 혹평을 해내는 데 급급하지 않았을까?

자격지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해 내지 못한 것을 해 낸 사람들에 대한 저열한 질투같은 것.

이제는 그 수고와 치열한 작업의 결과를 겸허하게 인정해야 할 것도 같다.

작년과 올해에 걸쳐 수없이 쏟아져 나온 작가의 자세,작가의 길, 작법에 대한 책들..그 유려하고 고매한 문장들을 읽으며 느꼈던 위압감과 도저히 가닿을 수 없는 작업이라는 자괴감을 김연수의 글을 읽으며 일부분 해소하게 된다.

그렇다고 지금이라도 심기일전해서 꿈을 이루어보자..하는 따위의 유치한 결심을 하지는 않지만, 제 속의 말들을 풀어낼 수 있다면, 그것을 다시 읽을 용기와 손질할 배짱이 있다면, 이 생이 다하기 전 어느 한 줄을 유언처럼 내 삶의 가장 진솔한 소설처럼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소설가가 될 것도 아니면서 이런 책은 왜 읽어?"

옆지기가 물었다.

"이거 읽는다고 소설가가 되는건 아냐"

라고 답했다.

"근데 왜 읽어?"

다시 물었다.

"맛있는 과일을 먹다 보면, 누가 어떻게 키웠는지 궁금해 질 때도 있잖아? 그런거야. "

"뭔소리래?"

그냥 웃었다.

 

그런 것이었을거다. 이 책을 펼쳐든 이유는..조금 더 겸손한 독자가 되고 싶어서, 그 수고와 그 보람과 그 과정을 공유하고 지원하고 신뢰하기 위해서 말이다.

 

소설가의 일을 읽으며..독자의 일을 생각한다. 조금 더 눈이 밝은 독자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뉴욕제과, 반가웠다. 빵을 좋아하던 딸래미 때문에 우리 엄마도 뉴욕제과를 하셨었다.

 

책이란 가장 단순하게 봤을 때, 빈 페이지에 글자를 인쇄한 것이다. 그 글자를 어떤 식으로 배열할지는 소설가가 지정한다. 독자는 소설가가 지정한 순서대로 글자를 읽는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소설가가 소설을 쓴다는 것, 그리고 독자가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이게 전부다.
(p188)
소설가는 문장만을 쓴다. 글을 쓰기 위해 앉을 때마다 이렇게 생각하는 게 좋다. 거기에 내가 쓸 내용 같은 건 없다고, 오직 문장뿐이라고, 그것도 한 번에 하나의 문장뿐이라고. 내용이야 어떻든 쾌감을 주는 새로운 문장을 쓸 수 있을 뿐이라고. 끝내기 전에 다시 한번 더. 소설가는 내용을 고치는 사람이 아니다. 문장을 고치는 사람이다 잘 고치는 사람. 그러니까 본인이 만족할 정도로 충분하게 많이..., 남들보다 더 많이 고치는 사람. 그게 다다.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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