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로즈라는 이름과 번역한 박병철이라는 이름으로만 구입한 책,  과연 내가 이책을 얼마나 이해할수 있을까? 보통 내가 책을 구입했을 때는 그래도 자신읶게 주문을 하지만 이책은 그냥 며칠 출퇴근하면서 뒤적거리다가 결국 책장으로 갈 확률이 거의 100%다. 하지만 도저히 구입하지 않을 수 없다. 읽을수 있느냐가 아니라 이 책을 물리적으로 소유하는 것이 내가 할수 있는 일이다.  

이런 책을 볼때마다 고등학교때 왜 수학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만약 시간이 있다면 인문학적인 수학을 다시 과외받고 싶은 심정이다. 수학을 잘하는 이들이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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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에 한번정도 교회에서 구역예배라고 집에서 장로님과 권사님 2분이 오셔서 같이 예배를 드렸다. 집사람이 교회에 상당히 열심히 하는 편이고 구역장이기도 했지만 괜히 도망갈 핑게가 없어 같이 했다. 장로님은 예전에 대학교 서양사학과 교수이셨고 지금은 퇴직하셔서 정신지체아 학교에서 봉사하신 정말 점잖하시고 말씀도 없으신 고지식한 분이시다. 또 사모님이신 권사님도 대학교 영문과 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정신지체아 학교을 만드시고 평생을 교회와 선교단체 정신지체아 학교에 당신들의 물질의 거의 전부를 헌신하시는 분들이시다. 내 대학생활의 큰 본을 보이신 분들 이시었다.

물론 정신지체아학교을 만드신 이유가 당신들의 자식이 그런 장애를 가져서이기도 하시겠지만 평생 이런 보이지 않는 헌신을 하시는 분들이 내주위에는 꽤 있다. 평생을 하나님이란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알고 있기에 그 분들 앞에서 나는 작은 알량한 지식을 이야기 할수 없다. 그분들의 평생 삷의 족적 앞에서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하지만 나는 장로님께서 아마 하루종일 준비하신 하이델베르크라는 교리공부를 열심히 설명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느낀 바를 적어놔야 할것 같다.  

인간은 여러가지 유형이 있겠지만 이렇게 평생을 진리가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치열하게 살아가는 분들이 있다. 진리, 진짜 이치, 세상 살아가는데 결코 변하지 않는 이치가 무엇인지 묻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내가 책을 읽고 고민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그런데 어제 장로님을 보면서 느낀 내 생각은 진리를 찾는 인간의 모습은  우리 사회에서의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가는데 한치 앞이 어떻게 될지 불안한 현실에서 인간의 삶에서 모든것이 통하는 무엇인가를 찾아 해멜수 밖에 없는게 바로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진리를 찾아가는 모습에서 인간은 이 허허벌판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방법의 탐색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이 된다. 

아직까지 결론은 없다. 하지만 그것이 하나의 사건이던지, 사람이던지, 우리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는 살아남아야 한다는 이유 한가지에 귀착이 되는게 아닐까 싶다. 글이 상당히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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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의식은 주위의 물체(이해할수 없는 현상 등등)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습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의식은 욕망하는 기계이며 우리가 생각하는 합리성보다는 자신의 이기적인 속성에 따라 사고하며, 자기가 좋아하는 지식만을 고집하는 편집증 기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하기사 그래야 우리 의식이 존재할 수 있는 필연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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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개인이 ‘인격체(person)’이며 우리의 행동은 저마다 스스로 내린 선택의 결과라고 믿는다. ‘의식’과 ‘자아’와 ‘자유의지’에 대한 믿음을 견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믿음은 과학적으로 지지되지 않는 기만일 뿐이다. 가령, 신경과학에선 ‘0.5초 지연’ 현상이라는 걸 말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의 행동을 유발하는 내부의 충동은 의식적인 결정을 내리기 0.5초 전에 일어난다. 즉 의식적으로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먼저 행동할 준비를 갖춘 다음에 우리는 그 행동을 경험한다. 이런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의식의 대역폭이 적기 때문인데, 일상생활에서 초당 1,400만 비트 정도의 정보를 처리한다면 의식에 감지되는 것은 그 백만 분의 1에 불과한 18비트 정도다 

우리는 자신을 통합적이고 의식적인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최근의 인지과학은 통상적인 자아 개념이 환상이라고 일러준다. 우리의 자아도 ‘생명 조직상의 패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발견은 우리가 ‘인간 종 중심주의’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다는 걸 말해준다. 더불어,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도 다른 동물의 욕구가 추상적인 모습을 취한 것일 뿐이란 사실을 직시하도록 해준다. 시인 브로드스키를 인용하여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대한 진리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진리가 아니어야 한다.” 그러한 관점에서 좋은 삶이란 진보를 꿈꾸는 삶이 아니라 삶의 비극적 우연성을 헤쳐 나가는 삶이다. 그것은 목적 없는 삶, “어떠한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 사실들”을 그저 바라보는 삶이다.  

로쟈의 페이퍼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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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딸래미와 아들래미책들을 주문하면서 그전에 주문취소했던 책 3권을 한꺼번에 받았다. 지난 추석연휴에 이탁오평전을 읽을려다 알라딘에서 마음대로 택배기일을 바꾸는 만행을 저질러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제서야 책을 받았다. 분서를 읽을려면 아무래도 이탁오을 알아야 하겠기에 평전부터 시작했는데 읽기가 쉽지는 않다. 추석연휴부터 감기기운에 몸컨디션이 말이 아니고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4분의 1정도는 읽었는데 그다지 큰 감흥은 없다. 아마 그 다음은 뭔가는 읽겠지 하며 같이 받았던 책을 읽을 자유, 깐깐한 독서본능을 뒤적거려 본다. 읽고는 싶은데 양도 상당한데다 시간을 갖고 일어야 한다는 부담감에 선뜻 책장을 넘기기가 어렵다. 오늘 오전에 교회에 갔다와 집에서 책을 읽을 자유의 첫장 느낌이 있어 적어 놓는다. 

나의 목을 단 일초의 간격도 두지 않고 내려칠수 있는 

튼튼한 단두대의 칼날을 얻기위해 

여기까지 오다. 

책을 읽는 이유가 내인생의 책을 한권 꼽으라면...하며 그 말에 혹해 나는 책을 산경우가 많이 있다. 분서도 파란여우님 덕택에 살려고 이탁오를 읽기 시작했고....하지만 인생에 책 한권으로 인행이 바뀌는 경우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그 책에 대한 과한 칭찬이 그늘이 되는 경우를 내자신도 많이 경헝해 보았다. 하지만 그 유혹은 항상 거절하기가 어렵다. 

책 한권의 인생이 바뀌는 게 아니라, 자신의 목을 단 일초의 간격도 두지 않고 내려 칠수 있는 튼튼한 단두대의 칼날, 바로 자신의 비수를 갖기위해 여태까지 책을 읽고 있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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