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역사를 끝내고 아쉬운 마음에 지금까지 그 책 주변에서 어슬렁 거리며 있다. 살아가면서 이런 책들을 만난다는 것이 꽤나 즐거운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런 편집증같은 애착이 어쩌면 내게 병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끔씩은 다른 종류의 책들 소설 자기개발같은 책들도 읽어야 되는데 한장도 넘길수 없다. 도저히 읽을 수 없다.  오늘 교회같다와서도 결국은 생각의 역사1.의 결론부분을 읽으며 오후를 보낸다.  

언제까지 이 책주변에서 벗어날지는 모르지만 될수 있으면 빨리 벗어나고도 싶다. 

해럴드 블룸의 이야기 

정전을 깊이 읽는 다고 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거나 더 나쁜사람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쓸모있거나 더 해로운 시민이 되지도 않을 것이다. 정신이 자신과 대화를 나눈다고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성격의 행위가 아니다. 서구의 정전이 선사할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자신의 고독을 적절히 사용하는 정도이다. 그런 고독의 최종형태는 자신의 도덕성과 허심탄회하게 대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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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은 쉽게 잡히지 않는다. 요즘 사고싶은 책은 소로우의 주석이 달인 월든인데 바구니에다만 넣어 놓고 생각의 역사2만 계속 읽어 대고 있다. 책을 읽는 재미란게 이런건가 보구나 하며 주말 내내 시간나는 되로 교회가서도 예배를 보면서도 이 책을 도저히 읽지 않을 수 없다. 주위에서 아무리 눈치를 해도 읽는게 좋다. 

아마 난 올해 이 책에서 벗어나긴 힘들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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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이 아닌  현대차 아닐까 생각된다  하루에도 수없이 투하되는 신차광고 비슷한 찌끼레기들, 얼마전 유성기업사태를 보면 더욱 더 확신으로 다가온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그 댓가는 상당히 오래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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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온통 요즘 우리 주위에 횡행하는 이야기의 관심사는 티비든 인터넷에서든 온통 돈에 미치고, 보이는 것에 미쳐서 산다. 마치 오늘 하지 않으면 끝이라도 날 것처럼 제 정신을 차리기가 힘들다.  

아침마다 일어나면 미국에서 주가가 올랐네 부터 시작하여 달러가 어쩌고 기름값이 어쩌고 마치 유럽의 어느나라가 구제금융을 신청했느니, 현대에서 새로운 차가 나왔느니, 나같은 서민들은 그저 침흘리며 부러움의 염을 올릴뿐 ...... 

이 사회는 정말 미쳐가고 있는 가보다. 정말 우리에게 미래는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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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주의, 프레그머티즘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가볍고 경박스럽다는 느낌이 전부터 있었다. 실용주의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존 듀이정도랄까? 하지만 이책의 마지막 부분 34장 미국적정신과 현대의 대학에서 나온 실용주의는 이전에 대한 선입관과 편견을 완전히 무너뜨려 버렸다. 

어쩌면 현재의 의식에 대한 정의를 19세기 말에 살았던, 그리고 사상의 변방에서 살았던 미국에서 찾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물론 저자가 미국인인 부분도 없지 않아 있겠지만 전에 읽었던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경험의 다양성에서 만났던 종교와 의식에 대한 부분들이 내가슴을 벅차게 만들었다. 의식에 대한 부분을 이야기하는 책들을 읽을 때마다 만났던 윌리엄 제임스. 그는 과연 누구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다. 하지만 그양반책을 일반인에게 소개된 책들은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밖에 없었다. 그양반의 의식에 대한 생각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미국적전통과 현대사상에서 주목해야할 사람중 책을 읽으면서 내마음을 두근거리게 했던 인물은 2명 올리버 웬들 홈스와 윌리엄 제임스. 

이 사상가들의 공통점은 여러가지 생각의 집합에 있지 않고 단하나의 생각, 즉 생각들에 대한 생각에 있다. 그들은 모두 생각이란 `저기 바깐`에서 발견되기를 기다리고 있는게 아니라 포크나 나이프, 마이크로칩처럼 세계에 나름대로 대처하기 위해 고안하는 도구라고 보았다.....그들은 생각이란 다시 재현될 수 없는 특별한 상황에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는 것이기 때문에 생각의 존속여부는 불변성이 아니라 적응성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그들이 가르린 일종의 회의론은 이질적이고 산업화된 대량시장사회, 인간적유대가 갈수록 약화되는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큰힘을 주었다. 

올리버 웬들 홈스 2세는 1861년에 터진 남북전쟁에 도덕덕의무감에서 임관하여 참천했지만 가슴부근에 총을 맞고 그 뒤 두차레 전장에서 부상을 당했지만 이 학살극에서 그는 평생토록 남을 만한 깨달음을 얻었다.   

"절대적이고 확실한 것은 일체 믿지 말라"는 신념이었다. " 확신은 폭력을 낳는다." 그는 수많은 경험을 하면서 "삶에 일방적인 길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구절은 몇번을 줄쳐가면 생각하고 계속 내 머릿가를 떠나지 않았다. 인간이라는 의식체계는 기본적으로 닫힌 체계다. 지극히 주관적이며 그안에서 자기 충족적이 습성을 가지고 있다.이것이 우리가 갖고 있는 한계이자 무기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을 깨닫기에는 나는 너무도 많은 길들을 돌아서 왔다. 

웬들 홈스처럼 윌리엄 제임스도 소신을 가진 회의론자였다. 그는 평소에도 빌어먹을 절대성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그는 정규교육을 받은 대신 가족과 함께 유럽을 돌아 다녔다. 

그가 보기에 자연선택은 단순하고 구체적이기에 아름다운 관념이었다. 적응의 개념은 어디서든 일어날 수있는 현실적 문제들을 설명하는데 적합했다. 제임스는 결과에 의해서 생명을 판단해야 한다고 하였다.  또한 정신물리학의 기본전제는 모든 정신과정이 두뇌의 과정과 연결되면 모든 의식적 사유나 활동에 유기적 물리적 토대가 있다는 것이다. 감정과 사고를 두뇌의 분비작용으로 보았다 

제임스는 사유를 진정으로 이해하려면 사유와 행동의 관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레스토랑에서 바닷가재를 주문하겠다는 것은 바닷가재를 좋아한다는 결정인 셈이며 법정에서 피고가 유죄라고 판결하는 것은 그 사안에 적용되는 정의의 기준을 수림한 셈이다. 즉 자아는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지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제임스는 진리를 순환적으로 본다'. '특정한 믿음이 참인지 아는기준은 항상 순환적이다. 즉 그 믿음에 이르는 과정의 바깥 기준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사고 자체가 순환적이다. 

진리는 사물이나 사태의 참된 모습과 지극히 무관하다. 제임스는 정신도 진리와 무관하다고 말한다. 정신은 다윈주의적의미에서 적응할 뿐이다. 즉 정신은 살아가는데 도움을 주며 사고와 행동을 일관적이도록 해준다.  

어쩌면 제임스가 말한 의식에 대한 정의가 지금도 그대로 간다. 

1권을 2독하면서  2권도 2독을 해야할지 고민된다....지금 주문에 구해 놓은 책만 5권인데...모비딕 휴먼브레인, 세포의반란, 에덴의강,자연의패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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