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로 받아보는 문동계지다. 펴내는 글을 읽고, 주욱 넘기다가 문동작가상 발표를 보았다. 어머. 문동에도 작가상이 있구나? 당선작은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다. 궁금해져서 자세히 보았다. 황현진. 이쁘장한 여자분이다. 심사를 보신 분들의 후보작들에 대한 심사평이 있었고, 당선작에 대한 조금 더 자세한 심사평이 있었다. 심사평을 읽고나니 작품에 관심이 생겼다. 좀더 읽다보면 작품이 나오겠지. 그러나 인터뷰가 다음 순서다. 어..뭔가 좀 이상하다. 인터뷰를 건너뛰어서 계지를 다 뒤져도 작품이 없다...작품이 왜 없는거야..앗. 혹시 장편?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작가의 프로필을 보던 중, 어느 한 구석에서 단행본 출간 후..란 글자를 봤다. 아하~당선작은 다음에 책 나오면 사서 봐야되는구나...그렇구나..10%의 인세,라는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슬몃 나왔다. 히히. 인세가 정가의 10%라는건 나도 얼마전에 들어서 안다구. 하하. 출판업계의 시스템을 조금 이해한 나는 황현진 작가의 작품이 괜히 기다려진다. 내가 심사에 하등 관여를 하지 않았음에도, 숱한 후보작들 중에서 탄탄한 스토리텔링으로 뽑혔다는 심사평을 읽고선, 내가 그 작품의 탄생에 일조를 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작품을, 알맹이가 아닌 작품평으로 먼저 읽는다는 것은 작품에 왠지 모를 애정이 생기게 해주나보다. 

다시 인터뷰를 읽는다. 당선발표날 황현진은 문창과 친구들과 술을 먹고 있었단다. 건배를 하면서도 모르는 번호가 찍혀라, 찍혀라, 마음 속으로 빌었고 거짓말처럼 모르는 번호가 찍혔다. 당선소식을 들었을 때, 황현진은 "꺄악" 소리를 내질렀단다. 정말 최고로 솔직한 당선소감이 아닐 수 없다. 황현진의 작품 속에는 그  '꺄악'이 담겨있을 것 같다. 작가의 날 것이 그대로 생생하게 있을 것 같다. 용화공고 3학년에 다니는 주인공 태만생 군에게 작가의 날 것이 어떻게 입혀져서 보여지고, 들려지고, 맛이 날지, 무척 궁금하다. 황현진은 글을 쓰다 어느 시점에서 문장들이 굴러가는 소리, 이야기가 굴러가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황현진은 또한 주인공이 문장 밖으로 걸어나오는 것을 봤다고 한다. 주인공은 작가 옆에 앉아 작가의 하는 짓을 보기도 했을 것이고, 작가에게 좀더 잘 쓰라고 잔소리도 늘어놓았을 것이고, 작가가 심심하면 친구가 되어주기도 했을 것이다. 나로선 상상이 가지 않는 일 같은데 그 느낌만은 알 듯도 싶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유독 애정이 가는  책 속의 주인공이 있기 마련이고, 그 주인공의 생각을 따라가다보면 어쩔때는 주인공이 세상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만히 글을 쓰는 작가들에 대해 생각을 해보았다. 세상에 많은 작가가 있고, 더 많은 작가희망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처럼 관심있게 그런 작가의 책을 야금야금 읽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작가의 분신과도 같은 주인공은 수많은 독자에게로 가서 읽힐 것이고, 느껴질 것이고, 만져질 것이고, 교감이 될 것이다. 작가의 글이 미지의 독자들과 만나 숱한 접점을 만들 걸 상상하는 일은 작가에게 짜릿한 쾌감일까. 두근두근 전율일까. 살짝 겁이 나고 도망가고 싶은 순간일까. 그것이 어떤 느낌일지라도 작가에겐 행복 그 자체일 것 같다. 작가의 마음을 산실로 해서 태어난 주인공과 교감한다는 건, 작가와 교감한다는 것과 같은 일일테니까. 아...난, 왠지 작가에게 사랑받는 독자가 될 듯도 싶다.  

문동계지에서 만나는 많은 작가들. 아직까지 이름만 겨우 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글로 교감할 수 있는 미래의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괜히 친근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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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1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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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2 1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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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낮 동안은 무척 더워 옷 입기가 애매한 5월이다. 아이고 어른이고간에 다들 황사바람으로 비염을 앓고, 알러지성 결막염을 앓으며, 환절기로 감기를 앓는다. 계절이 바뀌는 시절에는 몸이 적응을 하느라 잡다하게 여기저기 잔고장이 나는데 김씨아주머니도 그러한지 간만에 약국을 들렀다. 이분은 작년 추석 즈음에 대상포진으로 인해 처음으로 내방을 하신 분인데 그때 고생을 참 많이 하셔서 유독 기억에 남는다.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란 녀석은 평소엔 신경절에 숨어서 조용히 사람과 공생하지만, 사람이 심적이나 육체적으로 무척 고된 상태가 되면 그 즉시 발동을 해서 피부 밖으로 발현된다. '당신 몸이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든 상황이니 이제 그만 쉬어라!' 라고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주는 경고와 같다고나 할까.  
 

"아이고~ 어머니~ 왜 또 아프시대요. 대상포진 한 번 걸린 사람들은 무리하면 안된다니까.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그리 무리하게 하셨대요. 좀 쉬시라니까요." 
김씨아주머니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는 걸로 봐서 또 집안일이며 등으로 무리를 하신 게 분명하다.
"으응. 오늘은 산부인과 다녀왔어. 자꾸 소변 보기 불편해서 말야."
"방광염 걸리셨어요? 그것도 마찬가지로 여자들이 피곤하면 생기는 질환 중의 하나니까 푸욱 쉬셔야 되셔요. 아셨죠?"
김씨아주머니는 물론 푹 쉬지 못하실거다. 성격 깔끔한 사람은 당신 몸이 부서지더라도 하던 일은 하니까 말이다. 실지로 저번에 대상포진 진단 받기 전 몸이 많이 아프셨을 때, 당신은 신변정리를 한답시고 집에 있는 세간살이를 죄다 꺼내어 대청소를 하셨더랬다. 그때문에 대상포진이 더 심해졌다고 내가 잔소리를 많이 했음에도 여전히 집안 일을 하시는 눈치다. 아주머니는 약만 타고 가려다 뭐가 떠올랐는지 약국 의자에 털썩 앉으시고선 신발까지 벗으신다.
"그런데 말이지. 실은 내가 얼마 전에 부산 딸네 집에 볼 일이 있어서 내려갔는데 말이지. 그전부터 귀가 좀 안 좋아서 여기서 이비인후과를 조금 다녔거든? 근데 부산서도 계속 귀가 안 좋아서 부산서 병원을 가얄지, 아니면 좀 참았다가 시골서 다니던 데 다녀도 될지 의사선상님한테 물어볼라고 내가 전화를 넣었다 아이가. 근데 의사놈 그기 참말루 못됐는기라. 내가 말도 다 안 끝났는데 말이지. 말하는 중에 말을 딱 짜르더니, 못된 사람이야. 그냥 근처 병원 아무데나 가세요!!  하면서 아주 퉁명하게 말하고 내가 말도 다 안했는데 끊는기라."
조용히 이야기를 꺼내시던 아주머니는 말을 하다보니 새삼 화가 나시는지 이야기가 길어지신다.
"그래서 부산서 병원을 갔는데 온갖 검사를 다하데? 근데 의사가 좀 상태가 심각하다고 치료를 오래 받아야 된다는거야. 나는 고향에 다시 내려와야되는데..할 수 없어서 의사에게 소견서를 써달라고해서 들고 왔다가, 이번에 이비인후과를 다시 갔는데 의사놈이 역시나 못됐게 말을 하는거야. '내가 부산에 병원을 갔더니 의사가 세반고리관이 어쩌고,라고 하던데.'라고 말을 시작하고 있는데 의사놈이 또, 내 말을 사정없이 짜르는거야. "됐구요. 귀 봤구요. 이제 약국 가셔서 약 타시면 됩니다."  소견서는 내보이지도 못했어."
속사포같이 말을 내뱉던 아주머니는 이렇게나 말을 많이 쏟아내고나서야 그제서야 숨을 마신다.
"어머어머...소견서를 보였으면 오히려 의사샘이 더 잘 봐줬을건데요.."
"아니야. 소견서는 아마 쳐다도 안봤을 걸? 그저 지네 병원 안 오고 딴 데 갔다고 삐져서 저리 말을 하는게야. 게다가 내가 부산에 병원서 들은 말로 뭐라고 뭐라고 주죽으니까(지껄이니까) 듣기 싫었던게지. 지가 의사인데 지 앞에서 잘난 척 하지 마라는 거지..이제 그 병원은 내가 다시 가나봐라. 저리 못된 의사가 어딨어."
멀리서 병원 다닌 걸로 삐지는 의사는 없다고, 의사가 말을 자른 건 손님이 너무 많아서 피곤해셔였을 거라고, 말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아주머니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거 같애서 다른 이비인후과에 대한 정보를 말씀드리는 걸로 말을 맺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노랗게 물들던 은행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던 작년 늦가을, 나는 정확한 병명도 모르게 일주일 이상을 앓았다. 설사나 장염도 아니고 위염증상마저 아니기에 병원을 가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시간을 계속 보내다 어느날은 아침 출근 길에 병원을 잠시 들렀다. 종합병원인지라 아침부터 환자들로 꽉 차 있었고, 대부분은 시골에서 아침 일찍 나오신 어르신들이었다. 나는 서 있기도 힘들어 빈 의자가 생기면 눕고 싶었지만, 어르신들 틈바구니에서 누울 염치가 없어 벽에 기대어 진료 시간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 내 이름이 불렸고, 의사는 나를 눕게 한 뒤 복진을 했다. 의사의 얼굴을 힐끗 보니 병명을 못 찾는 눈치다. 나는 치료에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램으로 내 상태에 대해 내가 지켜본 과정을 의사에게 이야기했다. 
"제가 특별히 음식을 잘 못 먹은 것도 없고, 음식으로 인한 설사도 없어요. 다만 일주일 전에 마사지 샾에서 복부마사지를 받았는데 그 후부터 배가 이렇게 자꾸 불러오네요. 뭘 조금만 먹어도 복수찬 사람처럼 배가 불러오면서 호흡이 곤란해져 서 있기가 힘이 들 정도입니다."   
내 말에 의사는 피식 웃더니 한 번 힐끗 쳐다본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닌데요. 혈압을 재어보니 혈압이 너무 높아요" 
"제가 몇 일째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럴 거에요. 평소에 제가 혈압을 측정할 때는 정상이었구요. 오늘 높은 건, 어제 밤을 꼴딱 새어서 조금 높게 나왔을 겁니다." 
의사는 다시 한 번 더 피식 웃더니 정색을 하고 말을 한다.
"그렇게 잘 아시면, 당신이 의사하던지요." 
"...................." 
"선생님, 그럼 제 배는 왜 이렇게 자꾸 불러오는 건가요? 마사지가 원인인 듯 싶은데요." 
의사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아야겠기에 내가 생각하는 원인을 다시 한 번 더 말해보았다.
"아. 자꾸 그렇게 본인이 진단하지 마시구요. 본인이 지금 의사 아니지 않습니까? 마사지로는 그렇게 절대로 배가 불러올 수가 없어요. 그깟 마사지가 뭐라고. 아, 그리고 지금 외관상으로는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으니 가스검사부터 해보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 
가스 때문에 배가 아픈지 아닌지를 본인이 모를까. 영 의사가 미덥지 않던 나는 검사를 준비하는 간호사에게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오겠다고 말을 하고 병원을 나왔고 약국으로 출근을 했다. 의사의 빈정대는 말투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의사가 병명을 못 잡아내는 데 더 놀랬다. 만약 자기가 모르는 질환이라면 다른 내과에 트랜스를 해서라도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는데 집중을 해야될텐데, 환자의 말을 저렇게 무시부터하면 어느 환자가 병원에서 주눅들지 않을까. 병원을 갔는데 의사가 병명을 모르면 환자는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지? 혹시 내 질환이 심각한 질환인가? 온갖 걱정을 하면서 저녁 늦은 시간까지 쫄쫄 굶고 근무를 마친 나는 퇴근하고 기절하듯 엎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가 조심스레 다른 병원을 가보자 하신다. 큰 병원서도 못 알아냈지만, 작은 내과라도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으니 한 번 가보기라도 하자, 시며 병원가기를 보채신다. 죽 한 입 떠먹고나면 두 시간 가량 배에서 불이 나며 심장이 팔랑거리고 배가 남산만해지는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단골내과를 들렀다. 엄마에게 미리 상황을 전해들은 병원 원장님은 무척 푸근한 인상의 중년이셨고 말조차 따뜻했다.
"그래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복부마사지는 함부로 하면 안돼요. 배는 사람의 장기가 모두 있는 곳인데 거기를 마구 휘저어서 건드리면 멀쩡한 사람도 앓게 되어요. 물론 평소에 그런 마사지를 자주 받던 사람은 장기가 익숙해져서 괜찮지만, 처음 받는 사람이 센 강도로 받게 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나는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사내의 그것처럼, 내 질환의 정체를 알아봐준 원장님에게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주룩 나왔다. 세상엔 의사가 아직까지 밝히지 못하는 그런 미지의 질환이 얼마나 많은가. 우연히 마사지를 통해서 미지의 질환이 발현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내 질환을 불치병 수준까지 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던 것이다.
"아..원장님. 그렇군요. 원장님이 제 상태를 알아봐주시는군요. 어제 갔던 병원에서는 저를 무슨 나이롱환자 취급하고, 혈압 이야기만 자꾸 하구요.."
내 질환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생각에 흥분한 나는 말조차 버벅거리며 원장님에게 투정을 부리듯 말을 했다. 이런 나를 이해하듯 원장님은 다독거리는 말투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아무래도 의사라도 경험이 없으면 그런 질환은 모를 수도 있지요. 지금 무얼 약간만 먹어도 심장이 팔랑거리지요? 배 근육이 놀라서 굳어서 그래요. 음식을 먹으면 위장은 평소처럼 연동운동을 해서 음식을 내려보내야되는데 그렇게 위장이 운동을 하면 굳은 배 근육과 자꾸 부딪치니까 자꾸 아프게 되고, 배가 붓는 것처럼 보이는거지요. 그러면서 심장 역시 빨리 뛰게 되니까 혈압도 올라갈 수밖에 없구요. 다 정상이니 걱정마시구, 앞으로는 그런 마사지는 가급적이면 받지 마시거나 부드러운 걸로 해달라 하세요."
인체에서 일어나는 과정까지 훤히 들여다보듯 이야기해주시는 원장님 설명에 나는 아픔도 잊고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재미가 생겨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많이 물어보았다. 나의 모든 질문에 원장님은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며, 원장님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내 아픔이 절반쯤 가신 걸 느꼈다.
"참, 그리고 처방약은 근이완제가 들어갑니다. 지금 문제는 놀래서 긴장된 근육 때문에 생긴 거니까, 근육이 풀어지면 나을거에요."
일주일 이상을 죽 한 술 못 뜨던 나는 흔하디흔한 근이완제를 먹고부터 조금씩 호전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몇 번이나 병원을 다니면서 원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의사의 멋진 표본을 한 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질환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사람과 무관하게 외따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사람의 행태에 따라 질환이 생기고, 그래서 그 질환을 이해하려할 때는 사람을 같이 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아픈 사람에게 한 마디 건네주는 말이 뭐냐에 따라 듣는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될 수도, 절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원장님처럼 그렇게 따뜻한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타인의 말을 듣는 자세부터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간 외계어처럼 들렸던 알쏭달쏭했던 손님들의 언어에 귀를 귀울였으며, 손님들의 원하는 바를 이전보다는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는 타인의 말을 거듭 듣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번 귀에 들어온 말을 혹시나 잘못 이해했을까봐 다른쪽 귀로 한번 더 들어보라고 두 개인 건 아닐까. 오늘 김씨아주머니 덕에 잊었던 옛기억을 더듬어보면서 새삼 그때 그 원장님의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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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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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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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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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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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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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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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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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0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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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1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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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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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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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14: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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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2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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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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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4: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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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의 꽃
조현예 지음, 박태희 사진 / 안목 / 2011년 2월
평점 :
절판


서로 다른 두 사람의 마음이 동일한 하나를 바라본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내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켰는데 상대방이 달의 그늘까지 알아봐주는 것은 또 어떤 느낌일까. 내 속에 걸어들어온 듯한 벗과 더불어 하나의 완성된 작품을 만든다는 건 무척 짜릿할 것이다. 사진가 박태희와 작가 조현예. 둘의 만남은 머나먼 타국에서 우연히 이루어졌다. 둘은 이내 서로의 마음을 맞췄고, 하나의 약속을 했다. 강산이 변할 만큼에서 약간 모자란 세월이 흘렀을 때, 그들 중한 명은 한 줌의 재로 세상과 작별을 했고 남은 한 명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세상에 인사를 했다. 여기 이 책은 그들의 약속에 대한 징표의 다른 이름이다.

책 제목, 사막의 꽃. 만지면 모래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흐를듯한 질감의 책 표지에, 앞면 중앙엔 꿈인듯 새 한 마리 날아가고 뒷면엔 바다의 색인듯 파란 나무 한 그루 머물고 있다. 사막을 걷다 보면 새나 파란 나무가 어쩌면 있을 것이며, 어딘가쯤엔 붉은 꽃도 보일 것이다. 사막은 한때 바다였던 기억을 품고 있는 공간이다. 다시 바다로 돌아감을 꿈꾸고도 있는 공간이다. 사막에서 발견되는 심해의 조가비는 사막이 바다를 잊지 않고 있다는 약속이다. 그래서 물 없는 사막에서 피어나는 꽃은, 물 있는 공간을 씨앗 시절부터 잊지 않고 다시 돌아가기를 꿈꾼다. 그곳은 바다일 수도, 물이 가득한 수영장일 수도 있다. 잃어버린 사랑의 꿈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도 이와 같을까. 사막처럼 황량해 보이지만 가슴 속 깊이 타고 남은 불씨의 잔해를 소중히 간직했기에, 그래서 실연을 견딜 수 있는 것일까. 조현예의 글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잃어버린 사랑의 간절함도 느껴지지만, 그래서 더욱 소중한 그 무언가를 간직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사진가가 찍은 숱한 사진들을 넘기다 어느 한 지점에서 우연히, 이 세상인듯 저 세상인듯 혼몽스러운 사진들 너머로 수줍게 고개를 내미는 붉은 빛깔의 꽃을 발견했다. 그 꽃은 물로 가득한 실외 수영장 구석 한 켠에서 아치를 그리며 서 있었고, 따뜻한 햇살 속에서 수영장 속 물을 흠모하는 듯 보였다. 물이 가득한 수영장을 넘어다보는 붉은 꽃은 혹시, 잃어버린 바다를 추억하는 사막과 같은 의미일까. 박태희는 이 장면을 멕시코에서 찍었다. 붉은 꽃은 또한 가도가도 물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사막에서 보는 신기루다. 물로 가득찬 수영장에 뛰어들고픈 마음이 사막에서 가지게 되는 간절한 바램이듯, 인간은 삶에서 간절한 신기루를 누구나 하나쯤 품고 산다. 그래서 사막의 꽃은 환상의 꽃이기도 하다. 인생은 어쩜 그 하나의 꽃을 보기 위해 지난한 무채색의 과정들을 견디는 일과 같을까.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떠올리게 하는 붉은 꽃의 사진을 지나치고도 무채색의 사진들은 계속 나타난다. 얼마간 사진과 글들을 계속 보다가 문득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의미를 발견했다. 말이 없는 사진은 말이 없다는 이유로 되려 더 많은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줄 수 있다. 유일한 붉은 꽃 사진과 대비되는 숱한 무채색의 사진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건넨다.  일견 화려해 보이는 그 순간은 너무나 찰나적이어서 차라리 숱한 무채색의 나날만 못하다는 걸. 우리는 정점의 순간을, 사막의 꽃을, 신기루를, 쫓는 부나비와 같지만 정작 인생은 무채색의 나날들에서 향기를 뿜는다는 것을. 십 몇 년동안 찍은 사진들을 모아 처음으로 사진집을 낸 박태희에게서도 무채색의 시간들은 그런 의미가 아닐까.

20년동안 꾸준히 일기를 쓴 조현예 역시 마찬가지다. 조현예의 그런 무채색의 시간들을 알았기에 박태희는 그녀의 사후 8년을 견딜 수 있었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사후 그녀의 일기장에서 발췌했다는 조현예의 글은 한 곳만을 쳐다보는 해바라기같은 글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이 아려온다. 그녀의 글은 사진에 질감을 느끼게도 해주고, 사진에 햇볕을 쬐여주기도 하며, 또 어쩔 땐 사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사진과 글은 둘인듯 하나이고, 하나인듯 둘이다. 서로 각자의 마음과 눈에서 나온 글과 사진이 이토록 잘 어울려서, 그래서 더 눈물겹고 안타까운 책이다.  
 


이런 날, 이렇게 고요한 날,
이런 시간, 이렇게 깊은 시간,

한 사천 밤쯤 되었을까
너를 그려본 시간,

혼자서 꿈을 꾼다
나는 현실이고, 너는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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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4 18: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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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09: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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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8: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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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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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5 2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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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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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2: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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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14: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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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14: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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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0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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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15: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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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19 04: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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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4: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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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1 14: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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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에 내려온지 벌써 수 년이 흘렀다. 도시생활에서 제일 갑갑한 건 역시나 마당이 없는, 방과 부엌과 화장실만 있는 네모난 감옥같은 공간의 집이었다. 원룸이 고작인 자취생의 처지에 무얼 더 바랄까마는 나는 오가는 길에 마당 있는 집을 지나칠 때면 한참을 서서 지켜보다 다시 길을 걷곤 했다. 고향집을 그릴 때면 늘 고향집 마당의 장독대가 떠올랐고, 엄마가 정성스레 심어놓은 마당의 더덕꽃, 상치, 돈나물, 화초 들이 눈에 그려졌다. 다시 내려온 고향에서 나는 수시로 마당에 나가 한참을 볕 좋은 곳에 앉아 시간을 즐겼다. 겨울이면 소복소복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한 발씩 밟아나가 장독대까지 일렬로 발자국을 찍는 놀이를 했으며, 장독 위에 수북한 눈을 조금 떼어 맛을 보기도 했다. 마당 빨래줄에는 참새와 이름모를 새들이 아침마다 찾아와 우리를 깨웠으며, 햇살은 집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우리를 따뜻하게 데웠다. 그러던 어느날 밤,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깔짝깔짝. 쏘스락쏘스락. 탁탁탁. 후다닥. 잠결에도 나는 자동으로 소리의 성격을 분석했고, 잠에서 깰 즈음 소리의 정체를 알아챘다. 쥐다!

어린 시절 천장은  쥐오줌으로 인해 늘 세계지도가 어지러이 펼쳐졌다. 깔끔한 엄마는 철마다 벽지를 갈았지만 이내 나타나는 세계지도에 간간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밤에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축구를 하는 천장 위의 쥐새끼들 때문에 잠을 청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깔끔하지도 않은 주제에 피부가 연약해 방구석에 몰래 싸놓은 쥐똥이라도 접하는 날엔 온 몸에 넙적한 두드러기가 나서 며칠을 고생해야 했다. 그러던 언젠가 낮에 혼자 낮잠을 자다가 눈이 깼을 때 내 눈 앞에서 놀고 있는 흰 아기쥐를 발견했다. 흰 쥐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도망가지 않았고, 나도 조용히 흰 쥐의 하는 짓을 보고 있었다. 흰 쥐는 작고 앙증맞은 이빨로 펼쳐놓은 내 노트와 책을 갉고 있었다. 나는 책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굳이 흰 쥐의 하던 일을 방해하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놀던 흰 쥐는 쪼르르 쥐구멍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몇 번 더 나와 흰 쥐는 비밀스레 만남을 가졌다. 신기하게도 흰 쥐는 인간으로서의 내 객체를 인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본 그 흰 쥐를 봤다는 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흰 쥐는 오직 내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내서 나무로 된 집 기둥을 갈거나 벽지를 뜯거나 내가 던져주는 책을 가는 등 한참을 놀다가 쥐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그 만남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신비한 두근거림의 그림자를 내게 남겼다. 자라면서 한동안 쥐를 보지 못하던 내가 다시 만나게 된 건 두번째 대학을 다니며 잠시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첫번째 대학 동기 여자애와 처음으로 가는 지리산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풍물반이었던 친구는 전공과도 무관하고 동아리와도 무관한 '만화'에 어느 순간 꽂혔고, 나에게만 그 비밀을 알려준 채 매일매일 습작의 나날을 보냈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친구는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수능준비를 했는데 의외로 언어영역에 약점을 보여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미 새로이 두번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머리를 식히고 싶다며 여행을 제안했다. 그러나 엄마는 여자끼리 가는 지리산 여행에 대해 심한 반대를 했고, 나는 엄마에게 밥을 굶으면서까지 항의를 표시하고 있었다. 전날까지 포기를 못하고 나를 설득시키던 엄마와 잠시 휴전을 하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대왕쥐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내 발을 콱 깨물어버리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만화같은 상황에 엄마는 쾌재를 불렀고 나는 퉁퉁 부은 발로 절뚝거리며 친구에게 전화로 상황을 이야기했으나 친구는 이해하질 못했다.  "도대체 쥐가 어떻게 사람을 물 수 있느냐. 차라리 가기 싫으면 싫다고 사실대로 말을 해라. 너의 핑계는 너무 구차하다." 만화를 사랑하지만, 만화같은 현실을 믿진 못하는 친구의 격한 반응 덕분에 우리는  여행을 뒤로 미루지도 못했다. 결국 여행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너는 새로이 학교에 들어가 새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니 더이상 나 같은 친구는 필요없겠지. 그러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거겠지."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친구는 나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오해라는 내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서. 나중에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여자라서 여행을 못가게 한 게 아니라 꿈자리가 사나워서 못 가게 했다고. 그렇지만 너가 너무 강경해서 말리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대왕쥐가 너를 못가게 하려고 일부러 문 것 같다고. 엄마 생각엔 내 여행이 못내 불안했나보다. 꿈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대왕쥐가 순식간에 나타나 아무 이유도 없이 내 발가락을 물고 간 것이 조금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3학년이 되면서 학교 실험실에서 또다시 쥐를 만났다. 그것도 어린시절 같이 놀았던 추억 속의 흰 새앙쥐를. 3학년때 학생회 일을 하면서 교수실, 실험실 등을 들락거렸는데 그중 한 실험실에는 아주 많은 새앙쥐가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에게서 날 수 밖에 없는 갖가지 배설물 냄새와 온갖 약품 냄새, 소독약 냄새 등이 섞여서 실험실을 열고 들어가면 늘 나는 긴장이 되었다. 닭장 같은 갇힌 공간 속에 들어있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나는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리고 새앙쥐를 사용하는 실험시간을 결국 난 선택하지 않았다. 바로 전 해의 선배들만 해도 전공필수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 실험을 선택해야 했으나 내가 실험을 들어야하는 해부터 다행히 전공선택으로 바뀌어 그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동기들로부터 실험에 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들어야했는데. 쥐가 아주 작고 하얀 녀석인데 쥐의 모가지를 가위로 뎅강 잘라서 어째저째 실험을 한다는 둥, 쥐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들어내고 어쩌구 한다는 둥. 쥐에게 인위적으로 주사를 놔서 암을 유발시킨다는 둥. 쥐에게 스트레스를 줘서 병을 유발시킨다는 둥. 갖가지 무시무시한 말들을 들었다. 난 지구상의 한 존재로서의 동물적 권리를 그들에게 주장하게 할 수 없었고, 비윤리적으로 쥐에게 갖가지 실험을 하며 괴롭히는 행태가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대의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에 반기를 들 수도 없었다. 그저 소심하게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거나, 그들을 분해하는 실험을 회피하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같이 놀았던 새앙쥐와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흰 쥐처럼, 대왕쥐처럼, 실험실의 새앙쥐처럼, 같은 이빨과 같은 꼬리를 가진 쥐새끼의 깔짝대는 소리를 최근에 나는 내 방에서 다시 접했다. 몇 년만에 나타난 쥐의 출몰에 식구들은 대부분 신기해했고, 오직 엄마만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쥐의 퇴치에 신경을 썼다. 해서 엄마는 약국에 파는 쥐찐드기를 갖고 오라고 했고, 며칠이나 미적이다가 나는 찐드기를 주섬주섬 챙겨서 아빠 편에 맡겼는데 정작 아빠는 한 귀로 들으시고는 당신네 가게에 거주하는 쥐 퇴치용으로 홀랑 써버렸다. 다시 쥐찐드기를 가져와야 되는 나는 이래저래 차일피일 미뤘는데 그사이 쥐새끼는 이 방 저 방 방구경을 신나게 했다. 욕실에 샤워하러 들어갔다가 스치는 쥐 그림자에 깜짝 놀라 돌아보면 이미 지나간 바람만을 코 끝에 느낄 정도로 약삭빠른 녀석이었다. 쥐새끼는 어느 날인가 며칠 동안이나 언니네 방에서 깔짝깔짝 소리를 내더니 낮에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전화기 선을 점심으로 해치워 먹었다. 경악을 하던 언니는 못 견디겠다며, 집을 새로 짓는다고 선언을 했다. 아랫채에 세 살던 사람들이 도로공사편입으로 인해 이사 나간 후, 우리 역시 집을 팔고 아파트로 갈지 집을 새로 지을지 아니면 그대로 살지를 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던 시점에서, 쥐새끼의 소행은 언니의 결심을 굳힌 것이다. 우리가 새로 집을 짓게 된 건, 그러니까 쥐새끼 덕분인 것이다! 쥐새끼로 인해 경악한 건 언니 뿐이 아니었다. 나 역시 내 방에서 쥐똥 몇 알을 발견했는데, 소스라치게 놀라며 생전 안 하던 내 방 청소를 시작했다. 평소에 엄마에게 방 청소를 맡기며 한껏 게으름을 부리던 나는 청소하는 김에 책장 먼지까지 하나하나 닦아내는 대청소를 했다. 벌써 여기저기 넙적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있다. 완벽하게 대청소를 마친 나는 아침에 출근 전에는 꼭 방문을 닫고 갔다. 내 방에 혹여나 쥐가 들어올까봐. 그랬는데...

어느날 저녁, 야식 먹자고 꼬드기는 언니의 꼬드김에 밤 11시 넘어서 분식집에 들렀더랬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돌아와 책 한 줄 읽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쏘스락거리는 쥐소리가 들리는 거다. 순간 방문을 쳐다보니, 으악..내가 야식에 정신이 팔려 방문을 열어놓은 채로 집을 나섰던 게다. 그 짧은 틈을 타서 쥐새끼가 내 방에 들어오다니. 놀래서 정신없이 방을 뛰쳐나가며 "엄마, 쥐새끼 내 방에 들어왔어" 고함을 질렀다. 내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쌀독 뒤에 배고픈 쥐새끼가 숨어든 것이다. 방 밖으로 쫓아내려고 쑤시개를 찾아 뒤지던 중에 잠자리에 들었던 엄마가 잠옷 바람으로 뛰쳐 나오며, "쥐 내쫓지 마!" 라고 고함을 치신다. ??? 엄마는 신이 났다. 그동안 쥐가 내 방을 들어가기를 은근히 바라셨단다. 내가 출근할 때까지 기다린 뒤 일부러 닫혀진 내 방문을 살짝 열어놓기까지 하셨다고 이실직고하신다. 어이없어진 나는 어디서 잠을 청할까 고민을 잠시 하다가 포기를 했다. 쥐를 방에 가둬놓고 찐드기로 유혹을 하는 것이 정답이리. 결국 나는 쥐와 동침을 결정했다. 쥐가 찐드기 위에 놓인 멸치 부스러기의 유혹에 넘어갈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결에 쥐의 단말마를 듣는 일만은 피해달라고 빌었다. 다음날 아침 단말마는 없었다. 쥐는 내가 깰새라 소리도 내지 않고 혼자 힘으로 찐드기에서 벗어나려고 파드득거리고 있었다. "엄마 쥐 잡혔어." 힘없는 나와 달리 신이 난 엄마는 쥐가 붙어 있는 찐드기를 훌쩍 들어서 마당에 내 놓으셨다. 마당 전기줄에는 새들이 한 줄로 앉아서 지지배배 경쾌한 아침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찐드기에 붙은 쥐는 그제서야 간간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파드득거렸다. 나는 왠지 울고 싶어졌다. 한동안 마당을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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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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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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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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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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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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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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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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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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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 2011-05-3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입니다.

달사르 2011-05-31 00:49   좋아요 0 | URL
제가 읽어봐도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만화가가 꿈이었던 친구가 내게 보여줬던 자기의 꿈과 같다고 말해준 작품이 바로 아트 슈피겔만의 '쥐'였답니다. ^^
 

그대에게 여동생이 그리움의 또다른 이름이듯, 나에겐 '당신'이 그리움의 또다른 이름이랍니다.

딱히 의도치 않았지만 이상하게 애인들에게조차 '당신'이란 말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어요. 입 밖에 내지도 않았고, 애인들을 생각하면서 떠올리지도 않았어요. 그저 알 수 없는 그 누군가를 향해 끄적이는 일기와 시 속에서만 '당신'은 존재했었죠. 이별의 아픔이 드릴처럼 내 심장에 구멍을 뚫을 때에도, 덧게처럼 그 상처가 아물어갈 때도 애인들은 내게 '당신'이 아니었어요. 내게 당신은..

누구일까요..

학교때 친했던 남자동생이 있었어요. 1년 선배인 1살 아래 동생이었는데, 무척 친했어요. 내 룸메이트를 마음에 들어해서 내가 다리도 놔주고, 둘이 사귀는 것도 지켜봐주고, 둘이 싸우는 것도, 둘이 이별하는 것도 죄다 지켜봐줬구요. 그 애는 내가 술 먹고 헛짓하는 거, 사람들 때문에 힘겨워하는 거, 죄다 지켜봤죠. 그러면서 우리 둘 사이에는 어떤 신뢰같은 게 생겼어요. 그 애 때문에 어쩜 학교 졸업 후 진로를 그 애가 있는 곳으로 택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첫 직장을 사회에 봉사하는 그런 곳으로 가고팠는데 일 년 먼저 그곳을 정한 그 애의 선택을 믿은 거지요. 그곳은 선배들이 여럿이서 몇 개의 사업장을 공유했어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그런 취지였죠. 그 지역에서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은 우리 부류와 잘 어울리질 못했어요. 그 사람 때문에 갖가지 사건들이 터졌고 그속에서 나는 우리 팀과 조금씩 멀어졌어요. 나는 양쪽에서 서로 잡아당기는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했구요. 결국 그사람을 택했고, 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던 그 동생은 처음엔 안타까움을 느끼더군요. 그러다 말을 해도해도 내가 못 알아먹으니까 나중엔 분노로 바뀌었나봐요. 어느날 술좌석에서 나는 그 동생에게 "당신이란 사람은.." 이란 말을 들었어요. 이 말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연쇄폭발이 일어나는 큰 사건이 터져버렸구요. 많은 오해들을 풀지 못한 채 나는 그 팀을 이탈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있어서 고마워요" 의 당신만을 상상하던 나에게
"당신이 그 따위로 행동하니까.." 의 당신을 듣고만 나는

동생이 나에게 건네주는 비수에 그만 찔리고 말았답니다. 그 동생이 하는 아무리 모진 말도 견딜 수 있었는데, 친동생처럼 여겼던 동생이었는데,그런 동생이 처음으로 나에게 '당신'이란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은 '비수의 당신'이었어요.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내가 가지던 '당신'이란 단어의 순결성이 훼손되었기도 했지만, 믿었던 동생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거죠. 난 정말로 그때는 동생의 표현처럼 '그 따위로 행동하고'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걸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그런 '지옥에서의 한 철'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철없이 믿었나봐요. 하..지금은 과거 속으로 넘어간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동생을 떠올리면 문득 미안함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 동생과는 그 뒤로 딱 한 번 만났더랬어요. 또다른 동생이었던 진이의 장례식장에서요. 내가 그렇게 떠나고 난 뒤, 여러 사람들이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고 했어요. 그 중에 진이도 있었다구. 술만 먹으면 진이는 내 이야기를 많이 했고,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무척 건네고 싶어했다고 했어요. 소중한 추억이 많은만큼 미안함도 어느새 커져 있었다고. 영정 사진 속의 진이의 얼굴은 너무나 화사해서, 눈물로 흐려지는 시야 틈으로 나는 진이의 사과를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말로 꺼내놓지는 못하지만, 건네는 눈빛으로 읽히는 '누나, 미안해'라고 하는 동생의 사과 역시. 이제 더이상 함께 가는 사이가 아니기에 그 자리를 금방 떴지만, 나는 북적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외롭지 않았어요. 눈으로 받는 사과가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동생의 아픈 당신이 촉촉한 물기가 담긴 당신으로 바뀌어 있는 걸 느꼈거든요.

나는 지금도 일기 속에서만, 시 속에서만 '당신'을 부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다정한 느낌을 담아서 글이든 말이든 '당신'이라 불러 주는 걸 무척 좋아해요. 음..내가 그런 말을 누구에게 들어봤을까요? 아..기억이 안 나요. 아마, 없었겠지요? 그래서일까요. 근래 그대가 나에게 '당신'이라고 불러줬을 때 너무 좋았어요. 글로 불러줘서 더 좋았나봐요. '당신'이란 말 속에 담뿍 담겨 있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일까요. 그대의 여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덧붙이는 작은 바램이 있다면 일기 속의, 시 속의 '당신'이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실체화되어 내 곁에 있어주지 않더라도 그 공간에서 자라난 많은 '당신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리움의 또다른 이름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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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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