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내려온지 벌써 수 년이 흘렀다. 도시생활에서 제일 갑갑한 건 역시나 마당이 없는, 방과 부엌과 화장실만 있는 네모난 감옥같은 공간의 집이었다. 원룸이 고작인 자취생의 처지에 무얼 더 바랄까마는 나는 오가는 길에 마당 있는 집을 지나칠 때면 한참을 서서 지켜보다 다시 길을 걷곤 했다. 고향집을 그릴 때면 늘 고향집 마당의 장독대가 떠올랐고, 엄마가 정성스레 심어놓은 마당의 더덕꽃, 상치, 돈나물, 화초 들이 눈에 그려졌다. 다시 내려온 고향에서 나는 수시로 마당에 나가 한참을 볕 좋은 곳에 앉아 시간을 즐겼다. 겨울이면 소복소복 쌓인,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한 발씩 밟아나가 장독대까지 일렬로 발자국을 찍는 놀이를 했으며, 장독 위에 수북한 눈을 조금 떼어 맛을 보기도 했다. 마당 빨래줄에는 참새와 이름모를 새들이 아침마다 찾아와 우리를 깨웠으며, 햇살은 집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우리를 따뜻하게 데웠다. 그러던 어느날 밤, 잠결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깔짝깔짝. 쏘스락쏘스락. 탁탁탁. 후다닥. 잠결에도 나는 자동으로 소리의 성격을 분석했고, 잠에서 깰 즈음 소리의 정체를 알아챘다. 쥐다!

어린 시절 천장은  쥐오줌으로 인해 늘 세계지도가 어지러이 펼쳐졌다. 깔끔한 엄마는 철마다 벽지를 갈았지만 이내 나타나는 세계지도에 간간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밤에 자려고 불을 끄고 누우면 이리 우르르, 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며 축구를 하는 천장 위의 쥐새끼들 때문에 잠을 청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깔끔하지도 않은 주제에 피부가 연약해 방구석에 몰래 싸놓은 쥐똥이라도 접하는 날엔 온 몸에 넙적한 두드러기가 나서 며칠을 고생해야 했다. 그러던 언젠가 낮에 혼자 낮잠을 자다가 눈이 깼을 때 내 눈 앞에서 놀고 있는 흰 아기쥐를 발견했다. 흰 쥐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도 도망가지 않았고, 나도 조용히 흰 쥐의 하는 짓을 보고 있었다. 흰 쥐는 작고 앙증맞은 이빨로 펼쳐놓은 내 노트와 책을 갉고 있었다. 나는 책에 집착하는 성격이 아니었기에 굳이 흰 쥐의 하던 일을 방해하진 않았다. 그렇게 한참을 놀던 흰 쥐는 쪼르르 쥐구멍으로 들어갔고, 그 뒤로 몇 번 더 나와 흰 쥐는 비밀스레 만남을 가졌다. 신기하게도 흰 쥐는 인간으로서의 내 객체를 인식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내가 본 그 흰 쥐를 봤다는 식구는 아무도 없었다. 흰 쥐는 오직 내 앞에서만 모습을 드러내서 나무로 된 집 기둥을 갈거나 벽지를 뜯거나 내가 던져주는 책을 가는 등 한참을 놀다가 쥐구멍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그 만남은 내가 어른이 되어서까지 신비한 두근거림의 그림자를 내게 남겼다. 자라면서 한동안 쥐를 보지 못하던 내가 다시 만나게 된 건 두번째 대학을 다니며 잠시 고향에 내려와 있을 때의 일이었다. 

나는 첫번째 대학 동기 여자애와 처음으로 가는 지리산 여행을 준비하고 있었다. 풍물반이었던 친구는 전공과도 무관하고 동아리와도 무관한 '만화'에 어느 순간 꽂혔고, 나에게만 그 비밀을 알려준 채 매일매일 습작의 나날을 보냈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친구는 '만화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수능준비를 했는데 의외로 언어영역에 약점을 보여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미 새로이 두번째 학교를 다니고 있는 나에게 친구는 머리를 식히고 싶다며 여행을 제안했다. 그러나 엄마는 여자끼리 가는 지리산 여행에 대해 심한 반대를 했고, 나는 엄마에게 밥을 굶으면서까지 항의를 표시하고 있었다. 전날까지 포기를 못하고 나를 설득시키던 엄마와 잠시 휴전을 하던 중, 갑자기 어디선가 대왕쥐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내 발을 콱 깨물어버리더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 만화같은 상황에 엄마는 쾌재를 불렀고 나는 퉁퉁 부은 발로 절뚝거리며 친구에게 전화로 상황을 이야기했으나 친구는 이해하질 못했다.  "도대체 쥐가 어떻게 사람을 물 수 있느냐. 차라리 가기 싫으면 싫다고 사실대로 말을 해라. 너의 핑계는 너무 구차하다." 만화를 사랑하지만, 만화같은 현실을 믿진 못하는 친구의 격한 반응 덕분에 우리는  여행을 뒤로 미루지도 못했다. 결국 여행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너는 새로이 학교에 들어가 새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니 더이상 나 같은 친구는 필요없겠지. 그러니 그런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는 거겠지." 라는 말을 마지막으로 친구는 나와의 연락을 끊어버렸다. 오해라는 내 말은 들어주지도 않고서. 나중에 엄마는 나에게 이런 말을 해줬다. 여자라서 여행을 못가게 한 게 아니라 꿈자리가 사나워서 못 가게 했다고. 그렇지만 너가 너무 강경해서 말리지 못해 안타까웠는데, 대왕쥐가 너를 못가게 하려고 일부러 문 것 같다고. 엄마 생각엔 내 여행이 못내 불안했나보다. 꿈 이야기까지 듣고 나니, 대왕쥐가 순식간에 나타나 아무 이유도 없이 내 발가락을 물고 간 것이 조금 신기하게 생각되었다.

3학년이 되면서 학교 실험실에서 또다시 쥐를 만났다. 그것도 어린시절 같이 놀았던 추억 속의 흰 새앙쥐를. 3학년때 학생회 일을 하면서 교수실, 실험실 등을 들락거렸는데 그중 한 실험실에는 아주 많은 새앙쥐가 있었다. 살아있는 생명에게서 날 수 밖에 없는 갖가지 배설물 냄새와 온갖 약품 냄새, 소독약 냄새 등이 섞여서 실험실을 열고 들어가면 늘 나는 긴장이 되었다. 닭장 같은 갇힌 공간 속에 들어있는 그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나는 무던히도 노력했다. 그리고 새앙쥐를 사용하는 실험시간을 결국 난 선택하지 않았다. 바로 전 해의 선배들만 해도 전공필수이기 때문에 무조건 그 실험을 선택해야 했으나 내가 실험을 들어야하는 해부터 다행히 전공선택으로 바뀌어 그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동기들로부터 실험에 관한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들어야했는데. 쥐가 아주 작고 하얀 녀석인데 쥐의 모가지를 가위로 뎅강 잘라서 어째저째 실험을 한다는 둥, 쥐의 배를 갈라서 내장을 들어내고 어쩌구 한다는 둥. 쥐에게 인위적으로 주사를 놔서 암을 유발시킨다는 둥. 쥐에게 스트레스를 줘서 병을 유발시킨다는 둥. 갖가지 무시무시한 말들을 들었다. 난 지구상의 한 존재로서의 동물적 권리를 그들에게 주장하게 할 수 없었고, 비윤리적으로 쥐에게 갖가지 실험을 하며 괴롭히는 행태가 인류의 건강을 위해서라는 대의적 이유 때문이라는 것에 반기를 들 수도 없었다. 그저 소심하게 그들과 눈이 마주치지 않거나, 그들을 분해하는 실험을 회피하는 것 정도밖에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같이 놀았던 새앙쥐와의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할 수 없었다.  

어린 시절 흰 쥐처럼, 대왕쥐처럼, 실험실의 새앙쥐처럼, 같은 이빨과 같은 꼬리를 가진 쥐새끼의 깔짝대는 소리를 최근에 나는 내 방에서 다시 접했다. 몇 년만에 나타난 쥐의 출몰에 식구들은 대부분 신기해했고, 오직 엄마만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쥐의 퇴치에 신경을 썼다. 해서 엄마는 약국에 파는 쥐찐드기를 갖고 오라고 했고, 며칠이나 미적이다가 나는 찐드기를 주섬주섬 챙겨서 아빠 편에 맡겼는데 정작 아빠는 한 귀로 들으시고는 당신네 가게에 거주하는 쥐 퇴치용으로 홀랑 써버렸다. 다시 쥐찐드기를 가져와야 되는 나는 이래저래 차일피일 미뤘는데 그사이 쥐새끼는 이 방 저 방 방구경을 신나게 했다. 욕실에 샤워하러 들어갔다가 스치는 쥐 그림자에 깜짝 놀라 돌아보면 이미 지나간 바람만을 코 끝에 느낄 정도로 약삭빠른 녀석이었다. 쥐새끼는 어느 날인가 며칠 동안이나 언니네 방에서 깔짝깔짝 소리를 내더니 낮에 집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전화기 선을 점심으로 해치워 먹었다. 경악을 하던 언니는 못 견디겠다며, 집을 새로 짓는다고 선언을 했다. 아랫채에 세 살던 사람들이 도로공사편입으로 인해 이사 나간 후, 우리 역시 집을 팔고 아파트로 갈지 집을 새로 지을지 아니면 그대로 살지를 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하던 시점에서, 쥐새끼의 소행은 언니의 결심을 굳힌 것이다. 우리가 새로 집을 짓게 된 건, 그러니까 쥐새끼 덕분인 것이다! 쥐새끼로 인해 경악한 건 언니 뿐이 아니었다. 나 역시 내 방에서 쥐똥 몇 알을 발견했는데, 소스라치게 놀라며 생전 안 하던 내 방 청소를 시작했다. 평소에 엄마에게 방 청소를 맡기며 한껏 게으름을 부리던 나는 청소하는 김에 책장 먼지까지 하나하나 닦아내는 대청소를 했다. 벌써 여기저기 넙적한 두드러기가 올라오고 있다. 완벽하게 대청소를 마친 나는 아침에 출근 전에는 꼭 방문을 닫고 갔다. 내 방에 혹여나 쥐가 들어올까봐. 그랬는데...

어느날 저녁, 야식 먹자고 꼬드기는 언니의 꼬드김에 밤 11시 넘어서 분식집에 들렀더랬다. 배를 든든하게 채우고 돌아와 책 한 줄 읽으려는 찰나, 어디선가 쏘스락거리는 쥐소리가 들리는 거다. 순간 방문을 쳐다보니, 으악..내가 야식에 정신이 팔려 방문을 열어놓은 채로 집을 나섰던 게다. 그 짧은 틈을 타서 쥐새끼가 내 방에 들어오다니. 놀래서 정신없이 방을 뛰쳐나가며 "엄마, 쥐새끼 내 방에 들어왔어" 고함을 질렀다. 내 방 한구석에 놓여 있는 쌀독 뒤에 배고픈 쥐새끼가 숨어든 것이다. 방 밖으로 쫓아내려고 쑤시개를 찾아 뒤지던 중에 잠자리에 들었던 엄마가 잠옷 바람으로 뛰쳐 나오며, "쥐 내쫓지 마!" 라고 고함을 치신다. ??? 엄마는 신이 났다. 그동안 쥐가 내 방을 들어가기를 은근히 바라셨단다. 내가 출근할 때까지 기다린 뒤 일부러 닫혀진 내 방문을 살짝 열어놓기까지 하셨다고 이실직고하신다. 어이없어진 나는 어디서 잠을 청할까 고민을 잠시 하다가 포기를 했다. 쥐를 방에 가둬놓고 찐드기로 유혹을 하는 것이 정답이리. 결국 나는 쥐와 동침을 결정했다. 쥐가 찐드기 위에 놓인 멸치 부스러기의 유혹에 넘어갈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잠결에 쥐의 단말마를 듣는 일만은 피해달라고 빌었다. 다음날 아침 단말마는 없었다. 쥐는 내가 깰새라 소리도 내지 않고 혼자 힘으로 찐드기에서 벗어나려고 파드득거리고 있었다. "엄마 쥐 잡혔어." 힘없는 나와 달리 신이 난 엄마는 쥐가 붙어 있는 찐드기를 훌쩍 들어서 마당에 내 놓으셨다. 마당 전기줄에는 새들이 한 줄로 앉아서 지지배배 경쾌한 아침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찐드기에 붙은 쥐는 그제서야 간간이 단말마를 내지르며 파드득거렸다. 나는 왠지 울고 싶어졌다. 한동안 마당을 나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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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3: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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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1: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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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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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4 03: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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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6 11: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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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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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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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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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0: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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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4: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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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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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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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8: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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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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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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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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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8: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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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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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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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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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8: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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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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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3: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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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5: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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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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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2: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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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14: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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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 2011-05-30 1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설 한 편을 읽은 기분입니다.

달사르 2011-05-31 00:49   좋아요 0 | URL
제가 읽어봐도 소설같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만 더 추가하자면, 만화가가 꿈이었던 친구가 내게 보여줬던 자기의 꿈과 같다고 말해준 작품이 바로 아트 슈피겔만의 '쥐'였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