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에게 여동생이 그리움의 또다른 이름이듯, 나에겐 '당신'이 그리움의 또다른 이름이랍니다.

딱히 의도치 않았지만 이상하게 애인들에게조차 '당신'이란 말을 한 번도 써보지 않았어요. 입 밖에 내지도 않았고, 애인들을 생각하면서 떠올리지도 않았어요. 그저 알 수 없는 그 누군가를 향해 끄적이는 일기와 시 속에서만 '당신'은 존재했었죠. 이별의 아픔이 드릴처럼 내 심장에 구멍을 뚫을 때에도, 덧게처럼 그 상처가 아물어갈 때도 애인들은 내게 '당신'이 아니었어요. 내게 당신은..

누구일까요..

학교때 친했던 남자동생이 있었어요. 1년 선배인 1살 아래 동생이었는데, 무척 친했어요. 내 룸메이트를 마음에 들어해서 내가 다리도 놔주고, 둘이 사귀는 것도 지켜봐주고, 둘이 싸우는 것도, 둘이 이별하는 것도 죄다 지켜봐줬구요. 그 애는 내가 술 먹고 헛짓하는 거, 사람들 때문에 힘겨워하는 거, 죄다 지켜봤죠. 그러면서 우리 둘 사이에는 어떤 신뢰같은 게 생겼어요. 그 애 때문에 어쩜 학교 졸업 후 진로를 그 애가 있는 곳으로 택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첫 직장을 사회에 봉사하는 그런 곳으로 가고팠는데 일 년 먼저 그곳을 정한 그 애의 선택을 믿은 거지요. 그곳은 선배들이 여럿이서 몇 개의 사업장을 공유했어요. 이상적인 사회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그런 취지였죠. 그 지역에서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사람은 우리 부류와 잘 어울리질 못했어요. 그 사람 때문에 갖가지 사건들이 터졌고 그속에서 나는 우리 팀과 조금씩 멀어졌어요. 나는 양쪽에서 서로 잡아당기는 중간에 끼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힘들어했구요. 결국 그사람을 택했고, 멀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던 그 동생은 처음엔 안타까움을 느끼더군요. 그러다 말을 해도해도 내가 못 알아먹으니까 나중엔 분노로 바뀌었나봐요. 어느날 술좌석에서 나는 그 동생에게 "당신이란 사람은.." 이란 말을 들었어요. 이 말이 도화선이 되어 결국 연쇄폭발이 일어나는 큰 사건이 터져버렸구요. 많은 오해들을 풀지 못한 채 나는 그 팀을 이탈하게 되었어요.

"당신이 있어서 고마워요" 의 당신만을 상상하던 나에게
"당신이 그 따위로 행동하니까.." 의 당신을 듣고만 나는

동생이 나에게 건네주는 비수에 그만 찔리고 말았답니다. 그 동생이 하는 아무리 모진 말도 견딜 수 있었는데, 친동생처럼 여겼던 동생이었는데,그런 동생이 처음으로 나에게 '당신'이란 말을 건넸는데, 그 말은 '비수의 당신'이었어요. 나는 너무 부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내가 가지던 '당신'이란 단어의 순결성이 훼손되었기도 했지만, 믿었던 동생의 입에서 그 말이 나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던 거죠. 난 정말로 그때는 동생의 표현처럼 '그 따위로 행동하고' 있던 시절이었거든요. 그걸 알면서도, 고칠 수 없는 그런 '지옥에서의 한 철'이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이 나를 이해해줄 거라고 철없이 믿었나봐요. 하..지금은 과거 속으로 넘어간 일이지만, 지금도 가끔 동생을 떠올리면 문득 미안함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 동생과는 그 뒤로 딱 한 번 만났더랬어요. 또다른 동생이었던 진이의 장례식장에서요. 내가 그렇게 떠나고 난 뒤, 여러 사람들이 가슴앓이를 많이 했다고 했어요. 그 중에 진이도 있었다구. 술만 먹으면 진이는 내 이야기를 많이 했고, 나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무척 건네고 싶어했다고 했어요. 소중한 추억이 많은만큼 미안함도 어느새 커져 있었다고. 영정 사진 속의 진이의 얼굴은 너무나 화사해서, 눈물로 흐려지는 시야 틈으로 나는 진이의 사과를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말로 꺼내놓지는 못하지만, 건네는 눈빛으로 읽히는 '누나, 미안해'라고 하는 동생의 사과 역시. 이제 더이상 함께 가는 사이가 아니기에 그 자리를 금방 떴지만, 나는 북적대는 많은 사람들 속에서 그렇게 외롭지 않았어요. 눈으로 받는 사과가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동생의 아픈 당신이 촉촉한 물기가 담긴 당신으로 바뀌어 있는 걸 느꼈거든요.

나는 지금도 일기 속에서만, 시 속에서만 '당신'을 부릅니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나에게 다정한 느낌을 담아서 글이든 말이든 '당신'이라 불러 주는 걸 무척 좋아해요. 음..내가 그런 말을 누구에게 들어봤을까요? 아..기억이 안 나요. 아마, 없었겠지요? 그래서일까요. 근래 그대가 나에게 '당신'이라고 불러줬을 때 너무 좋았어요. 글로 불러줘서 더 좋았나봐요. '당신'이란 말 속에 담뿍 담겨 있는 인간의 존재에 대한 애정이 느껴졌거든요. 그래서일까요. 그대의 여동생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덧붙이는 작은 바램이 있다면 일기 속의, 시 속의 '당신'이 무럭무럭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실체화되어 내 곁에 있어주지 않더라도 그 공간에서 자라난 많은 '당신들'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리움의 또다른 이름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그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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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1: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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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0: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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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02: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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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0: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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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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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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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15: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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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0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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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0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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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1 16: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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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0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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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2 13: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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