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쌀쌀하지만 낮 동안은 무척 더워 옷 입기가 애매한 5월이다. 아이고 어른이고간에 다들 황사바람으로 비염을 앓고, 알러지성 결막염을 앓으며, 환절기로 감기를 앓는다. 계절이 바뀌는 시절에는 몸이 적응을 하느라 잡다하게 여기저기 잔고장이 나는데 김씨아주머니도 그러한지 간만에 약국을 들렀다. 이분은 작년 추석 즈음에 대상포진으로 인해 처음으로 내방을 하신 분인데 그때 고생을 참 많이 하셔서 유독 기억에 남는다. 대상포진을 일으키는 헤르페스 바이러스란 녀석은 평소엔 신경절에 숨어서 조용히 사람과 공생하지만, 사람이 심적이나 육체적으로 무척 고된 상태가 되면 그 즉시 발동을 해서 피부 밖으로 발현된다. '당신 몸이 더 이상 지탱하기 힘든 상황이니 이제 그만 쉬어라!' 라고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주는 경고와 같다고나 할까.  
 

"아이고~ 어머니~ 왜 또 아프시대요. 대상포진 한 번 걸린 사람들은 무리하면 안된다니까. 이번에는 또 무슨 일을 그리 무리하게 하셨대요. 좀 쉬시라니까요." 
김씨아주머니 얼굴이 잔뜩 찌푸려져 있는 걸로 봐서 또 집안일이며 등으로 무리를 하신 게 분명하다.
"으응. 오늘은 산부인과 다녀왔어. 자꾸 소변 보기 불편해서 말야."
"방광염 걸리셨어요? 그것도 마찬가지로 여자들이 피곤하면 생기는 질환 중의 하나니까 푸욱 쉬셔야 되셔요. 아셨죠?"
김씨아주머니는 물론 푹 쉬지 못하실거다. 성격 깔끔한 사람은 당신 몸이 부서지더라도 하던 일은 하니까 말이다. 실지로 저번에 대상포진 진단 받기 전 몸이 많이 아프셨을 때, 당신은 신변정리를 한답시고 집에 있는 세간살이를 죄다 꺼내어 대청소를 하셨더랬다. 그때문에 대상포진이 더 심해졌다고 내가 잔소리를 많이 했음에도 여전히 집안 일을 하시는 눈치다. 아주머니는 약만 타고 가려다 뭐가 떠올랐는지 약국 의자에 털썩 앉으시고선 신발까지 벗으신다.
"그런데 말이지. 실은 내가 얼마 전에 부산 딸네 집에 볼 일이 있어서 내려갔는데 말이지. 그전부터 귀가 좀 안 좋아서 여기서 이비인후과를 조금 다녔거든? 근데 부산서도 계속 귀가 안 좋아서 부산서 병원을 가얄지, 아니면 좀 참았다가 시골서 다니던 데 다녀도 될지 의사선상님한테 물어볼라고 내가 전화를 넣었다 아이가. 근데 의사놈 그기 참말루 못됐는기라. 내가 말도 다 안 끝났는데 말이지. 말하는 중에 말을 딱 짜르더니, 못된 사람이야. 그냥 근처 병원 아무데나 가세요!!  하면서 아주 퉁명하게 말하고 내가 말도 다 안했는데 끊는기라."
조용히 이야기를 꺼내시던 아주머니는 말을 하다보니 새삼 화가 나시는지 이야기가 길어지신다.
"그래서 부산서 병원을 갔는데 온갖 검사를 다하데? 근데 의사가 좀 상태가 심각하다고 치료를 오래 받아야 된다는거야. 나는 고향에 다시 내려와야되는데..할 수 없어서 의사에게 소견서를 써달라고해서 들고 왔다가, 이번에 이비인후과를 다시 갔는데 의사놈이 역시나 못됐게 말을 하는거야. '내가 부산에 병원을 갔더니 의사가 세반고리관이 어쩌고,라고 하던데.'라고 말을 시작하고 있는데 의사놈이 또, 내 말을 사정없이 짜르는거야. "됐구요. 귀 봤구요. 이제 약국 가셔서 약 타시면 됩니다."  소견서는 내보이지도 못했어."
속사포같이 말을 내뱉던 아주머니는 이렇게나 말을 많이 쏟아내고나서야 그제서야 숨을 마신다.
"어머어머...소견서를 보였으면 오히려 의사샘이 더 잘 봐줬을건데요.."
"아니야. 소견서는 아마 쳐다도 안봤을 걸? 그저 지네 병원 안 오고 딴 데 갔다고 삐져서 저리 말을 하는게야. 게다가 내가 부산에 병원서 들은 말로 뭐라고 뭐라고 주죽으니까(지껄이니까) 듣기 싫었던게지. 지가 의사인데 지 앞에서 잘난 척 하지 마라는 거지..이제 그 병원은 내가 다시 가나봐라. 저리 못된 의사가 어딨어."
멀리서 병원 다닌 걸로 삐지는 의사는 없다고, 의사가 말을 자른 건 손님이 너무 많아서 피곤해셔였을 거라고, 말을 드리고 싶었지만 그래봤자 아주머니에게 별 도움이 안 될 거 같애서 다른 이비인후과에 대한 정보를 말씀드리는 걸로 말을 맺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노랗게 물들던 은행잎들이 하나 둘 떨어지던 작년 늦가을, 나는 정확한 병명도 모르게 일주일 이상을 앓았다. 설사나 장염도 아니고 위염증상마저 아니기에 병원을 가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시간을 계속 보내다 어느날은 아침 출근 길에 병원을 잠시 들렀다. 종합병원인지라 아침부터 환자들로 꽉 차 있었고, 대부분은 시골에서 아침 일찍 나오신 어르신들이었다. 나는 서 있기도 힘들어 빈 의자가 생기면 눕고 싶었지만, 어르신들 틈바구니에서 누울 염치가 없어 벽에 기대어 진료 시간을 기다렸다. 한참을 기다려 내 이름이 불렸고, 의사는 나를 눕게 한 뒤 복진을 했다. 의사의 얼굴을 힐끗 보니 병명을 못 찾는 눈치다. 나는 치료에 도움이 되었음 하는 바램으로 내 상태에 대해 내가 지켜본 과정을 의사에게 이야기했다. 
"제가 특별히 음식을 잘 못 먹은 것도 없고, 음식으로 인한 설사도 없어요. 다만 일주일 전에 마사지 샾에서 복부마사지를 받았는데 그 후부터 배가 이렇게 자꾸 불러오네요. 뭘 조금만 먹어도 복수찬 사람처럼 배가 불러오면서 호흡이 곤란해져 서 있기가 힘이 들 정도입니다."   
내 말에 의사는 피식 웃더니 한 번 힐끗 쳐다본다.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닌데요. 혈압을 재어보니 혈압이 너무 높아요" 
"제가 몇 일째 잠을 제대로 못자서 그럴 거에요. 평소에 제가 혈압을 측정할 때는 정상이었구요. 오늘 높은 건, 어제 밤을 꼴딱 새어서 조금 높게 나왔을 겁니다." 
의사는 다시 한 번 더 피식 웃더니 정색을 하고 말을 한다.
"그렇게 잘 아시면, 당신이 의사하던지요." 
"...................." 
"선생님, 그럼 제 배는 왜 이렇게 자꾸 불러오는 건가요? 마사지가 원인인 듯 싶은데요." 
의사가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래도 나는 나아야겠기에 내가 생각하는 원인을 다시 한 번 더 말해보았다.
"아. 자꾸 그렇게 본인이 진단하지 마시구요. 본인이 지금 의사 아니지 않습니까? 마사지로는 그렇게 절대로 배가 불러올 수가 없어요. 그깟 마사지가 뭐라고. 아, 그리고 지금 외관상으로는 정확한 병명을 알 수 없으니 가스검사부터 해보고 다시 이야기합시다." 
"....................." 
가스 때문에 배가 아픈지 아닌지를 본인이 모를까. 영 의사가 미덥지 않던 나는 검사를 준비하는 간호사에게 지금은 바쁘니 다음에 오겠다고 말을 하고 병원을 나왔고 약국으로 출근을 했다. 의사의 빈정대는 말투에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는 의사가 병명을 못 잡아내는 데 더 놀랬다. 만약 자기가 모르는 질환이라면 다른 내과에 트랜스를 해서라도 환자의 상태를 호전시키는데 집중을 해야될텐데, 환자의 말을 저렇게 무시부터하면 어느 환자가 병원에서 주눅들지 않을까. 병원을 갔는데 의사가 병명을 모르면 환자는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지? 혹시 내 질환이 심각한 질환인가? 온갖 걱정을 하면서 저녁 늦은 시간까지 쫄쫄 굶고 근무를 마친 나는 퇴근하고 기절하듯 엎어졌다.


아침에 눈을 뜨니 엄마가 조심스레 다른 병원을 가보자 하신다. 큰 병원서도 못 알아냈지만, 작은 내과라도 오랜 경험이 있는 사람이 오히려 더 잘 볼 수 있으니 한 번 가보기라도 하자, 시며 병원가기를 보채신다. 죽 한 입 떠먹고나면 두 시간 가량 배에서 불이 나며 심장이 팔랑거리고 배가 남산만해지는 상황을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나는 엄마의 손을 잡고 엄마의 단골내과를 들렀다. 엄마에게 미리 상황을 전해들은 병원 원장님은 무척 푸근한 인상의 중년이셨고 말조차 따뜻했다.
"그래요. 충분히 그럴 수 있어요. 복부마사지는 함부로 하면 안돼요. 배는 사람의 장기가 모두 있는 곳인데 거기를 마구 휘저어서 건드리면 멀쩡한 사람도 앓게 되어요. 물론 평소에 그런 마사지를 자주 받던 사람은 장기가 익숙해져서 괜찮지만, 처음 받는 사람이 센 강도로 받게 되면 위험해질 수도 있어요."
나는 나를 알아봐주는 사람에게 충성하는 사내의 그것처럼, 내 질환의 정체를 알아봐준 원장님에게 너무나 감동을 받아서 눈물이 주룩 나왔다. 세상엔 의사가 아직까지 밝히지 못하는 그런 미지의 질환이 얼마나 많은가. 우연히 마사지를 통해서 미지의 질환이 발현되었다고 생각한 나는, 내 질환을 불치병 수준까지 가면 어떡하나 걱정이 많았던 것이다.
"아..원장님. 그렇군요. 원장님이 제 상태를 알아봐주시는군요. 어제 갔던 병원에서는 저를 무슨 나이롱환자 취급하고, 혈압 이야기만 자꾸 하구요.."
내 질환의 정체를 알아냈다는 생각에 흥분한 나는 말조차 버벅거리며 원장님에게 투정을 부리듯 말을 했다. 이런 나를 이해하듯 원장님은 다독거리는 말투로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신다.
"아무래도 의사라도 경험이 없으면 그런 질환은 모를 수도 있지요. 지금 무얼 약간만 먹어도 심장이 팔랑거리지요? 배 근육이 놀라서 굳어서 그래요. 음식을 먹으면 위장은 평소처럼 연동운동을 해서 음식을 내려보내야되는데 그렇게 위장이 운동을 하면 굳은 배 근육과 자꾸 부딪치니까 자꾸 아프게 되고, 배가 붓는 것처럼 보이는거지요. 그러면서 심장 역시 빨리 뛰게 되니까 혈압도 올라갈 수밖에 없구요. 다 정상이니 걱정마시구, 앞으로는 그런 마사지는 가급적이면 받지 마시거나 부드러운 걸로 해달라 하세요."
인체에서 일어나는 과정까지 훤히 들여다보듯 이야기해주시는 원장님 설명에 나는 아픔도 잊고 의학적 지식을 습득하는 재미가 생겨 이것저것 궁금한 것들을 많이 물어보았다. 나의 모든 질문에 원장님은 해박한 지식으로 설명을 해주셨으며, 원장님의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내 아픔이 절반쯤 가신 걸 느꼈다.
"참, 그리고 처방약은 근이완제가 들어갑니다. 지금 문제는 놀래서 긴장된 근육 때문에 생긴 거니까, 근육이 풀어지면 나을거에요."
일주일 이상을 죽 한 술 못 뜨던 나는 흔하디흔한 근이완제를 먹고부터 조금씩 호전되었다. 그리고 그 뒤에도 몇 번이나 병원을 다니면서 원장님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나는 의사의 멋진 표본을 한 분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많은 질환이 존재하며 그것들은 사람과 무관하게 외따로 존재하는게 아니라 사람의 행태에 따라 질환이 생기고, 그래서 그 질환을 이해하려할 때는 사람을 같이 봐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아픈 사람에게 한 마디 건네주는 말이 뭐냐에 따라 듣는 사람에게 큰 위안이 될 수도, 절망이 될 수도 있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원장님처럼 그렇게 따뜻한 말을 건네기 위해서는 타인의 말을 듣는 자세부터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나는 그간 외계어처럼 들렸던 알쏭달쏭했던 손님들의 언어에 귀를 귀울였으며, 손님들의 원하는 바를 이전보다는 조금 더 알 수 있었다. 귀가 두 개인 이유는 타인의 말을 거듭 듣기 위해서가 아닐까. 한번 귀에 들어온 말을 혹시나 잘못 이해했을까봐 다른쪽 귀로 한번 더 들어보라고 두 개인 건 아닐까. 오늘 김씨아주머니 덕에 잊었던 옛기억을 더듬어보면서 새삼 그때 그 원장님의 고마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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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2: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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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1: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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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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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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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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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0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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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7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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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0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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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11: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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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18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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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0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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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0 14: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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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3 2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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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6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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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6 18: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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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6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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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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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5-27 14: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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