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 저수지>
고인 물이 무겁다. 산그늘 물에 잠겨 고요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산들은 늙은 몸 안에서 끝없이 꽃들을 토해내고 꽃들이 떨어져 시간이 곪는다. 손가락에 든 가시는 아프지만 곪은 시간은 아프지 않아, 하늘을 헤아리지 않아도 나이 사십의 밤하늘에 별이 뜨고 더러 눈도 내리고 곪은 상처가 터져 꽃이 피더니 임종하는 법도 알 것 같다. 바람이 스쳐가는 인연도 알 것 같아, 마지막 생의 끝 시간, 그 끝에 앰블런스가 와 멎고 아직은 빈 채인 무덤 가에 개나리 피어 호남탄좌 가는 길가에 한순간 세상이 밝았다.
오래도록 '시'를 들여다본다. 인근의 저수지에서 봤던 깊고 캄캄한 어둠같던 저수지를 떠올린다. 근처만 가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애 늘 멀찍이서만 봤다. 겨울에 저수지 물이 꽝꽝 얼 때에도 시퍼런 물 색깔이 보이는 듯해 역시나 가만가만 구경만 했다. 저수지둑 위에 올라서면 자칫 미끄러져 저수지에 빠지기라도 할까봐 둑 위에 올라갈 맘도 먹지 않았다. 좀더 어렸을 적 강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고생했던 기억이 남아서였을까. 그래서 고인 물이 무겁다, 를 이해했을까.
대학 1학년 때는 매주 고향집을 내려왔었다. 매번 멀미에 고생하면서도 내려왔던 이유는 단 하나, 용돈 때문이었다. 아빠는 매일 내려오든, 매주 내려오든, 한 달에 한 번 내려오든 상관없이 내려오기만 하면 5만원을 주셨다. 지금이야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그 시절엔 꽤 큰 돈이었다. 공부 때문에 멀리 떼어놓은 자식을 그렇게 해서라도 보고파하시는 그 마음을 강산이 바뀌고나서도 한참인 지금에서야 알았고, 그 5만원 때문에 내려오는 욕심많은 자식을 짝사랑하듯 좋아하시던 아빠의 마음 역시 이제는 안다. 버스를 타자마자 시작되던 멀미가 가셔진 건 어느정도 도시 생활에 익숙해지고 버스에도 이력이 난 1년 쯤 지났을 때였다. 그때부터는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4월이면 나를 방황하게 하는 도로가의 손짓하듯 흐드러진 개나리도 보였고,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자갈이 넓게 깔린 야트막한 강줄기도 보였고, 보기만 해도 깊은 심연 속에 빠질 것 같은 무서운 저수지도 보였다. 그 저수지에는 항상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다. 해의 길이가 달라진 시각이었을까. 어느날엔가 그늘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갸웃거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저수지 주위로 산이 우뚝 솟아있었고, 그 산 모양이 저수지에 정확히 복사가 되었다. 저수지에 잠긴 산의 모습이 신기했던 나는 그때부터 오가는 시간대에는 항상 그 저수지와 산을 보고나서야 잠을 청하곤 했다.
'산들은 늙은 몸 안에서 끝없이 꽃들을 토해내고 꽃들이 떨어져 시간이 곪는다.'
저수지를 품고 있는 산은 나름 울창했고, 예쁜 색깔 꽃들이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꽤 피어 있었다. 어쩔땐 버스에서 내려 꽃과 같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픈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저수지는 산 밑 시작점부터 꽤 깊어서 내 능력으로는 버스를 내린다해도 저수지를 건너 맞은편 산에 다다를 방도가 없었다. 시퍼런 저수지와 산이 맞닿는 부분엔 역시나 시퍼런 이끼가 잔뜩 끼어서 나를 주눅들게 했다. 나는 닿지 못하는 이상향을 보는 심정으로 저수지와 산을 내도록 보았다. 저수지 그늘에 내려앉은 산을 보고 있으면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된 심정이기도 했고, 몇 천 년을 건너간 오랜 과거 속에서도 존재했을 늙은 산의 심정을 이해할 듯도 했다. 그렇게 늙어가는 산의 품에서 해마다 아기가 태어나듯 세상에 존재를 보여주는 꽃들을 볼 때면 참 묘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가는 늙은 산과 달리 잠깐 폈다가 지고마는 꽃의 존재는 매혹적인 향기와 화려한 외양에 빠져들다가도, 생의 허무함이 동시에 느껴져서 점점 진해져오는 슬픔의 무게를 느껴야만 했다. 나는 이제 피어나는 몽오리인 것인가. 나는 조만간 시들어가는 꽃이 될테지. 아무도 봐주지 않는 채로 땅에 떨어질테지. 다시금 자연으로 복귀할테지만 거기까지는 너무나 멀고 아득한데, 나는 아둔하기만 해서 진한 슬픔을 느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곪은 상처가 터져 꽃이 피더니 임종하는 법도 알 것 같다. 바람이 스쳐가는 인연도 알 것 같아,'
이 시집을 소개받고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책을 손에 넣었다. 첫 페이지를 폈을 때, 순간 숨을 멈췄던 것 같다. 어머. 이런 시를.. 사람들이 시를 읽을 때는 자신의 과거, 현재, 그리고 시대와 연관지어 읽는다. 이영진 시인은 고 문익환 목사의 경우처럼 아버지가 만주에서 생활을 하셨다. 해방이 되면서 떨어지는 꽃의 씨앗마냥 남한에 떨궈진 아버지는 뿌리뽑힌 식물처럼 남한에서 그리움으로 평생을 보내셨다. 이를 고스란히 지켜봐야했던 시인은 그 한을 유산처럼 물려받고서,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할지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5월 광주를 겪으면서 그는 비로소 '중력'의 존재를 시인했고, 자신이 뿌리내릴 곳을 감잡았다. 시집의 뒷부분 곳곳에는 5월 광주가 고스란히 보이고, 실향민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속에서 여전히 방황하지만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한천 저수지>는 그의 이런 마음 속 이야기들이 담겨있기도 하고, 벗어나 있기도 하다. 자연은 인간의 나이를 넘어서는 천년의 세월을 견디는 존재이므로 양가적인 생각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시인은 <한천 저수지>에서 어떤 위안을 받았을까. 사십의 나이를 견디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자연물인 저수지에 투영하면서, 저수지에 불어오는 자연의 바람에 토닥임을 느꼈을까. 그때 느꼈던 시인의 마음이 '시'를 건너와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시인처럼 그런 아픈 과거가 없음에도 잃어버린 유목민적 기억이 피를 타고 흘러 나에게 부평초같은 떠돌이의 감정을 '중력'으로 남기기 때문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