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천 저수지> 

고인 물이 무겁다. 산그늘 물에 잠겨 고요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산들은 늙은 몸 안에서 끝없이 꽃들을 토해내고 꽃들이 떨어져 시간이 곪는다. 손가락에 든 가시는 아프지만 곪은 시간은 아프지 않아, 하늘을 헤아리지 않아도 나이 사십의 밤하늘에 별이 뜨고 더러 눈도 내리고 곪은 상처가 터져 꽃이 피더니 임종하는 법도 알 것 같다. 바람이 스쳐가는 인연도 알 것 같아, 마지막 생의 끝 시간, 그 끝에 앰블런스가 와 멎고 아직은 빈 채인 무덤 가에 개나리 피어 호남탄좌 가는 길가에 한순간 세상이 밝았다. 

 

오래도록 '시'를 들여다본다. 인근의 저수지에서 봤던 깊고 캄캄한 어둠같던 저수지를 떠올린다. 근처만 가도 빨려들어갈 것만 같애 늘 멀찍이서만 봤다. 겨울에 저수지 물이 꽝꽝 얼 때에도 시퍼런 물 색깔이 보이는 듯해 역시나 가만가만 구경만 했다. 저수지둑 위에 올라서면 자칫 미끄러져 저수지에 빠지기라도 할까봐 둑 위에 올라갈 맘도 먹지 않았다. 좀더 어렸을 적 강물에 빠져서 허우적대며 고생했던 기억이 남아서였을까. 그래서 고인 물이 무겁다, 를 이해했을까. 

대학 1학년 때는 매주 고향집을 내려왔었다. 매번 멀미에 고생하면서도 내려왔던 이유는 단 하나, 용돈 때문이었다. 아빠는 매일 내려오든, 매주 내려오든, 한 달에 한 번 내려오든 상관없이 내려오기만 하면 5만원을 주셨다. 지금이야 얼마 안되는 돈이지만 그 시절엔 꽤 큰 돈이었다. 공부 때문에 멀리 떼어놓은 자식을 그렇게 해서라도 보고파하시는 그 마음을  강산이 바뀌고나서도 한참인 지금에서야 알았고, 그 5만원 때문에 내려오는 욕심많은 자식을 짝사랑하듯 좋아하시던 아빠의 마음 역시 이제는 안다. 버스를 타자마자 시작되던 멀미가 가셔진 건 어느정도 도시 생활에 익숙해지고 버스에도 이력이 난 1년 쯤 지났을 때였다. 그때부터는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4월이면 나를 방황하게 하는 도로가의 손짓하듯 흐드러진 개나리도 보였고,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자갈이 넓게 깔린 야트막한 강줄기도 보였고, 보기만 해도 깊은 심연 속에 빠질 것 같은 무서운 저수지도 보였다. 그 저수지에는 항상 그늘이 드리워져있었다. 해의 길이가 달라진 시각이었을까. 어느날엔가 그늘이 어떤 형상을 하고 있었다. 갸웃거리며 고개를 들어보니 저수지 주위로 산이 우뚝 솟아있었고, 그 산 모양이 저수지에 정확히 복사가 되었다. 저수지에 잠긴 산의 모습이 신기했던 나는 그때부터 오가는 시간대에는 항상 그 저수지와 산을 보고나서야 잠을 청하곤 했다. 

'산들은 늙은 몸 안에서 끝없이 꽃들을 토해내고 꽃들이 떨어져 시간이 곪는다.' 

저수지를 품고 있는 산은 나름 울창했고, 예쁜 색깔 꽃들이 멀리에서도 보일 정도로 꽤 피어 있었다. 어쩔땐 버스에서 내려 꽃과 같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픈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저수지는 산 밑 시작점부터 꽤 깊어서 내 능력으로는 버스를 내린다해도 저수지를 건너 맞은편 산에 다다를 방도가 없었다. 시퍼런 저수지와 산이 맞닿는 부분엔 역시나 시퍼런 이끼가 잔뜩 끼어서 나를 주눅들게 했다. 나는 닿지 못하는 이상향을 보는 심정으로 저수지와 산을 내도록 보았다. 저수지 그늘에 내려앉은 산을 보고 있으면 세월을 낚는 강태공이 된 심정이기도 했고, 몇 천 년을 건너간 오랜 과거 속에서도 존재했을 늙은 산의 심정을 이해할 듯도 했다. 그렇게 늙어가는 산의 품에서 해마다 아기가 태어나듯 세상에 존재를 보여주는 꽃들을 볼 때면 참 묘했다. 오랜 세월을 견디며 살아가는 늙은 산과 달리 잠깐 폈다가 지고마는 꽃의 존재는 매혹적인 향기와 화려한 외양에 빠져들다가도, 생의 허무함이 동시에 느껴져서 점점 진해져오는 슬픔의 무게를 느껴야만 했다. 나는 이제 피어나는 몽오리인 것인가. 나는 조만간 시들어가는 꽃이 될테지. 아무도 봐주지 않는 채로 땅에 떨어질테지. 다시금 자연으로 복귀할테지만 거기까지는 너무나 멀고 아득한데, 나는 아둔하기만 해서 진한 슬픔을 느끼는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래서였을까.

'곪은 상처가 터져 꽃이 피더니 임종하는 법도 알 것 같다. 바람이 스쳐가는 인연도 알 것 같아,'

이 시집을 소개받고나서도 한참이 지나서야 책을 손에 넣었다. 첫 페이지를 폈을 때, 순간 숨을 멈췄던 것 같다. 어머. 이런 시를.. 사람들이 시를 읽을 때는 자신의 과거, 현재, 그리고 시대와 연관지어 읽는다. 이영진 시인은 고 문익환 목사의 경우처럼 아버지가 만주에서 생활을 하셨다. 해방이 되면서 떨어지는 꽃의 씨앗마냥 남한에 떨궈진 아버지는 뿌리뽑힌 식물처럼 남한에서 그리움으로 평생을 보내셨다. 이를 고스란히 지켜봐야했던 시인은 그 한을 유산처럼 물려받고서, 어디에 뿌리를 내려야할지 방황하는 시간을 보내야했다. 5월 광주를 겪으면서 그는 비로소 '중력'의 존재를 시인했고, 자신이 뿌리내릴 곳을 감잡았다. 시집의 뒷부분 곳곳에는 5월 광주가 고스란히 보이고, 실향민들의 모습이 보이고, 그 속에서 여전히 방황하지만 뿌리를 내리고자 하는 시인의 모습이 보인다. <한천 저수지>는 그의 이런 마음 속 이야기들이 담겨있기도 하고, 벗어나 있기도 하다. 자연은 인간의 나이를 넘어서는 천년의 세월을 견디는 존재이므로 양가적인 생각이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시인은 <한천 저수지>에서 어떤 위안을 받았을까. 사십의 나이를 견디며 살아온 자신의 삶을 자연물인 저수지에 투영하면서, 저수지에 불어오는 자연의 바람에 토닥임을 느꼈을까. 그때 느꼈던 시인의 마음이 '시'를 건너와 토닥토닥 위로해준다. 시인처럼 그런 아픈 과거가 없음에도 잃어버린 유목민적 기억이 피를 타고 흘러 나에게 부평초같은 떠돌이의 감정을 '중력'으로 남기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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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6 2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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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7 19:0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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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7 0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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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07 1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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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1 03: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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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20: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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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브 키터리지>에 나오는 약사 헨리 키터리지에게는 아침마다 출근하는 아름다운 길이 있다. 매일 같은 코스인데도 길 옆에 늘어선 무성한 나무들에 행복해하며 운전하는 헨리의 모습에 나도 따라 벙긋거렸다. 나도 내 출근길에서 그런 코스를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시골소도시에 사는데다 집과 직장의 거리가 너무나도 가깝다. 걸어서 십여 분, 차를 타면 고작 몇 분. 신호등도 많이 걸려봐야 두 번이다. 헨리의 출근길 느낌이 살짝 나는 코스가 그나마 있는 곳은 집에서 강다리를 건너 강변길을 따라 달리는 1여분이다. 그 1분 정도의 시간에 아침햇살에 반짝이는 강물을 바라보며 강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며 잠시 행복해하다보면 어느새 꺽는 길이 나온다. 꺽는 길에서는 저 멀리 분홍 간판의 약국이 보이는데 그럴때면 괜한 두근거림이 생긴다.  

그 꺽어지는 길 모퉁이에 이층집이 있었다. 작년 봄까지 있었던 이층집은 주인이 바뀌자마자 헐렸다. 멀쩡하던 집이 하루아침에 헐려서 허허벌판이 되어 버렸고, 이내 잡초들이 무성해졌다. 그 집의 뒷집과 옆집들은 헐린 집 때문에 그동안 보이지 않던 속살을 보이게 되었는데 한동안 애인이 찾아오지 않아 관리를 하지 않았던 여인네 마냥 여기저기 흐트러진 데가 곳곳에 보였다. 담 곳곳에는 페인트가 벗겨졌고, 앞집에 가려 그늘에서만 존재하던 공간들에 피던 곰팡이들은 햇볕에 바스라져 여기저기 흔적만을 남기고 있었다. 매일 출근길에 빈 모퉁이를 힐긋 쳐다보곤 했는데, 어느 날엔가부터 빈 공간에 아주머니들이 햇볕가리개 모자를 쓰고 옹기종기 앉아있는게 보였다. 아주머니들이 저기서 뭐하시지? 궁금함이 점점 커져가던 어느날, 약국 단골이신 서씨할머니가 마침 그곳에 계신게 아닌가. 

"어머니~거기서 뭐하세요?" 
 창문을 살짝 내려 인사를 드리며 내다보았다.
"아, 약사. 이제 출근하는가. 나는 여기서 농사를 짓는다아이가. 상추도 심고, 고추도 심고, 옥수수도 심고, 감자도 심었다야." 
햇볕에 그을린 얼굴에, 목에는 수건까지 둘러 제법 농사꾼 티가 나는 서씨할머니가 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허리를 한 번 펴고, 손으로 허리를 툭툭 치신다.
마침 그날 오후에 서씨할머니가 약을 타기 위해 약국을 들렀다. 잔뜩 호기심이 생긴 나는 토끼처럼 귀를 열어두고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새로 바뀐 주인이 집터를 싸게 사긴 했는데, 흉가같은 집이어서 험악한 집기운을 상쇄시키려고 한 삼년간 토지를 묵힌다는 것과, 주인이 어차피 빈 공간이니 동네 사람들에게 공짜로 빌려주어 농사를 짓게 해줬다는 것과, 여러 명이 공간을 같이 나누어서 모종을 사서 재미나게 심고 있는 중이라는 것까지 들었다.
"그런데 집기운은 왜 그렇게 안좋대요? 출근길에 보니까 그쪽만 어두침침한 것이 좀 그렇긴 했어요. 이번에 건물을 싹 들어내니 해가 쨍하니 들어오니 참 좋더라구요."
"그럼~ 그 집이 왜 흉가냐하면 말이지. 전전주인도 그 집에서 자살했어요. 전주인도 그 집에서 또 자살했다 아이가. 한동안 그 집에는 아무도 안 살았제. 그런 집을 내놔도 누가 사나. 계약성사단계까지 갔다가도 내막을 알고는 다들 취소한다아이가. 이번에 집 산 주인은 엄청나게 싸게 샀제. 대신에 한 삼년정도 묵힐 생각을 하구 말이지."
서씨할머니는 비밀이야기라도 하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손으로는 연신 쉿! 흉내를 내며 목소리를 작게하며 소곤소곤 말씀하신다.
"아. 네. 농사를 지어서 그 기운으로 흉가의 기운을 없애는 의미군요. 덕분에 어머니가 신났네요? 농사도 다 지으시구 말이죠. 근데 허리도 안 좋으신데 무리하게 농사 짓지는 마시고, 좀 느긋하게 하셔요. 수확철 되면 저희도 조금 나눠주시구요." 
취미삼아 작게 농사를 지으면 주위 사람들이 더 군침을 흘린다더니, 내가 딱 그짝이다.
"하모하모. 내가 약사는 꼭 나눠줘야제. 감자 몇 알이 나올란고. 하하하" 

서로 안면으로 물건들을 팔아주는 시골의 경우, 자식의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부모들이 나서는 경우가 종종 있다. 우리 아들이 이번에 안경점을 개업했는데 약사가 안경을 쓰니 다음 번에 바꿀 때는 우리 아들에게 좀 가서 팔아줘 등에서 업종만 바뀐 말을 종종 듣는데 서씨할머니의 아들은 정수기사업을 했다. 서씨할머니가 약국의 고객으로 오면서 몇 번이나 정수기를 갈아달라는 말을 해서 일 년쯤 지났을 때 한 번 갈아주었다. 집까지 합해서 무려 세 개나 바꿔주었다. 서씨할머니는 무척 고마워했고 나는 서로서로 도움 주고받는 시골상거래의 법칙을 깨달은 듯했다. 한 달 정도가 지났을 때 서씨할머니는 다시 고객의 위치로 온전히 돌아가서 이것저것 요구를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정수기를 언급하면서 서씨할머니의 요구를 물리칠 수 있었다. 서로의 요구에 대해 밀고당기기를 하던 우리는 대화 말미쯤에는 그런 일이 없었다는듯 화제를 돌려 세상사는 이야기들을 두루 훑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서씨할머니는 항상 웃고 다니시는 스마일할머니신데 관절이 많이 상하셔서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신다. 날이 궂은 날에는  날궂이를 해서 여기저기 빠짐없이 쑤셨고, 집 밖이라도 나올라치면 지팡이를 짚고서 겨우겨우 한 발씩 떼서 나와야했다. 그러다 날이 풀리고 몸이 조금 회복된다 싶으면 강을 따라 조성된 강변길을 운동하신다. 모자를 쓰시고, 다리가 흔들려 휘적거리면서도 친구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며 운동하시는 모습을 오가는 운동길에 나도 몇 번 봤다. 아픈 와중에도 자식 정수기사업홍보까지 하던 서씨할머니는 올해 몸이 점점 안 좋아져 작년처럼 농사를 짓지 못했다. 다행히 수술을 해주겠다는 곳이 나타났다면서 도시로 수술을 하러 떠난 서씨할머니는 떠나기 전, 빨리 몸이 좋아져서 작년처럼 농사를 조금이라도 지어봤으면 하는 작은 바램을 말했다. 수술을 무사히 마쳤지만 아직 집안에서 자리보전 중인 서씨할머니가 빨리 쾌유해서 길모퉁이집터였던 곳에서 미니농사를 짓는 모습을 다시 봤으면 좋겠다. 아, 작년에 농사는 잘 지었냐고? 할머니 예언대로 감자 몇 알을 건지는게 고작이어서 한 번 삶아먹고나니 남는게 없더라는 말을 작년 가을쯤에 넌지시 들었다. 나는 요근래 이사를 해서 출근길이 바뀌어 한동안 길모퉁이 작은 밭을 구경하지 못했다. 그러다 엊그제 볼 일이 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잠시 봤는데 작은 밭에는 고랑이 이쁘게 파어져 있었고, 모종들이 쑥쑥 자라고 있었다. 고추 모종도 보였고, 상추도 보였고, 쑥쑥 자라나는 옥수수 줄기도 보였고, 기타 이름모를 것들이 새파랗게 하늘을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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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15: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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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20: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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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 계지는 읽지 않은 소설의 대담? 평론? 대화? 아하, 좌담! 등을 읽는 재미를 주기도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책을 사서 보게 꼬드기기도 한다. 나는 포커스라고 적힌 꼭지에 나오는 소설의 좌담을 읽다가 결국 두 소설 다 질러버렸다.  

편혜영, 천운영. 둘은 책을 낸 시기도 비슷하지만 연보도 비슷한 점이 꽤 있다. 태어난 년도부터 비슷하고, 서울 출생에다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다녔고, 2000년에 같이 등단했다. 서울예대라..나도 한때 서울예대를 가려고 준비했던 적이 있었다. 문예창작과 같은 데는 있는 줄도 몰랐고, 실용음악과를 가려고 준비를 하다가 실기시험 전전날에 손을 다치는 참극을 겪는 바람에(?) 다행히! 가지 못하고 약대를 갔던 과거가 있다. 서울예대는 그래서 내게는 가지 못한, 가보고 싶었던 그런 동경의 학교였는데 그런 동경의 학교를 이 둘은 다녔다. 80년대의 치열했던 선배들의 역사와는 달리 90년대의 학교는 치열이 그림자를 남기고 떠나는 시점이었고, 치열에 느끼는 죄의식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계절이었다. 유독 예민한 문학도 및 예술가들은 그러나 그 시절에도 죄의식을 여전히 느끼면서 또한 예술과 죄의식의 분리를 꿈꾸는, 양가적인 생각에 빠져들기도 했다. 그 시절에 문창과를 다녔던 이들은 다른 공간과는 달리 문학만 꿈꾸어도 되는 공간인 서울예대가 좋을 수 밖에 없었겠다. 아니, 그런 멋진 공간이 있었다니.. 

'문예창작과 스타일'이라는게 있나부다. 어떤걸 의미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지만 거기를 나오면 거기 특유의 글쓰기가 글에서 느껴지나보다. '문학'이란 걸로 강의를 하기도 한다는 걸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천상 이과 출신인 나는 '문학'으로 토론을 하는 것도 아직까지 신기하기만 하다. 저런데서는 어떤 식으로 대화를 할까..좀 궁금하다. 좌담의 사회를 보신 류보선씨는 이 두 작가의 한때 선생님이셨다고 한다. 학부때의 사제간이 이렇게 시간이 흘러 작가와 사회자로 만나다니. 이것도 재미있는 관계들로 보인다.  

나는 좌담 중 편혜영에 해당되는 것만 우선 읽었다. 좌담을 읽다가 재미있어서 책을 질러놨으나 책이 도착하는 시간까지 기다리기가 지루해서 좌담을 읽었는데 읽지 않은 소설, 모르는 작가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문득 좌담이란게, 멋진 테이블 위에 셋팅된 정갈한 접시들 위에 놓인 맛깔나는 요리의 실물을 찍은 '사진'같은 것일까란 생각을 했다. 이제 나는 편혜영의 소설이 도착하면, '사진'과 실지 요리의 차이가 어느정도인지 알게 되겠다. 

좌담 뒤에는 평론가의 평론이 붙어있다. 평론가 양윤의는 편혜영을 이해하는 힌트를 살짝 준다. '부췌' 부록과 군더더기를 합친 말이지만, 부록과 군더더기 의미를 고스란히 실지로 활용한 탓인지 부췌란 단어는 그 용례까지도 군더더기가 되어버렸다. 편혜영의 이번 작품 <저녁의 구애>에서 숨어있는 부췌를 찾아내봐야겠다. 부췌같은 인물들이 유독 많이 나오는 이 소설은 어쩜 현대인의 자화상 같겠다. 지금 당장 나 하나 빠져도, 고스란히 돌아갈 것만 같은 이 세상. 어마어마한 이 세상의 하나의 부속물 같은 나.  거대한 비행기에서조차 부속물 하나의 '부재'로 비행을 중단하는 사태가 생기기도 하는데 어마어마한 이 세상은 얼마나 완벽한지 '나'란 존재같은 부속물은 얼마든지 없어도 잘 돌아갈 터이다. 그런 희미한, 그러나 저변에 늘 깔리는 불안을 항시 가지고 있는 현대인의 일상을 반복되는 변주로 그려냈다는 작품. 왠지 기대가 된다. 소설은 작가가 세상을 해석하는 나름의 답안을 내어놓는 것일수도 있겠다. <저녁의 구애>는 그런 느낌이 물씬 난다.  

천운영의 소설 <생강> 역시 주문을 해놓긴 했으나, 이 사람의 소설은 읽고나서 좌담을 나중에 읽어볼 생각이다. 그렇게 방향을 달리해서 소설을 읽으면 어떤 차이가 날까. 뭐가 더 재미있게 소설이 읽힐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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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15: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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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20: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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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1 03: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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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2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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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때부터 화학이 제일 어려웠다. 수능에서도 화학 때문에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이것과 저것이 반응을 해서 새로운 물질이 생긴다는 원리 말고는 도통 이해가 안되었다. 1mol(몰)과 1mol(몰)이 반응해서 어쩌고 하는 부분은 그야말로 별세계의 이야기들이었는데 다행히 위안인 것은, 화학을 잘 하는 동기 중 수학을 못하는 아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수학에는 자신있었기에 화학에 심하게 젬병인 나를 조금은 위안삼을 수 있었을까. 대학 4년동안 화학은 내게 골치거리였는데 다행히 졸업하고 나온 약국가에서는 실지로 쓰이는게 별로 없었다. 통으로 된 시럽을 소분해서 조제해야하는 경우, 역가계산을 해서 전자저울로 잴 때 말고는 화학이 거의 쓰이질 않았다. 역가계산은 이런거다. 15그람짜리 가루약으로 30그람(cc)짜리 물약을 만드는 경우, 역가는 15 나누기 30으로 해서 0.5라고 보면 된다. 만약 내가 10cc짜리 물약을 원할 경우 역가를 곱하면, 5그람이 나오고 나는 가루약을 5그람만 재어서 물을 붓고 10cc짜리 시럽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니까 약국가에선 아이들 약에나 화학이 필요하고 어른들 약에는 필요하다는 생각을 못했더랬다. 나이든 어르신들은 이빨도 시원찮아지고, 위장기능도 떨어지면서 어느순간 알약을 드시는 것도 힘에 부치신다. 청년, 장년의 과정을 거치면서 노년에 접어들면 기저귀도 새로 차고, 말도 어눌해지듯, 알약도 이제 못 드시고 가루약으로 만들어드셔야한다. 식도로 음식을 아예 못 삼키시는 어른들의 경우 목에 관을 삽입해서 그곳으로 유동식도 주입하고, 약도 넣어주기때문에 가루약으로 지어달라는 노인의 경우 그냥 입으로 드실건지 관으로 주입해서 드실건지 물어봐야한다. 관으로 주입하는 경우는 그냥 먹을 때보다는 아무래도 좀더 부드럽게 갈아야되기 때문이다.

어제 오신 순자할머니는 사지 멀쩡하신 젊은 할머니시다. 다만 얼마전 사고로 팔에 깁스를 하셔서 양팔을 다 못쓰시는 것 뿐인데, 매번 드시는 당뇨약을 드시기가 힘이 드신다고 걱정하신다. 사고로 병원에 입원해있을 당시 병원에서 처방 나오는 약을 가루약으로 한번 드셨더니 그렇게 좋을수가 없다면서 다른 종류의 약이긴 하지만 당뇨, 혈압약 등도 가루로 갈아주면 안 되겠냐고 상담을 하신다. 조금 번거로운거 말고는 딱히 안 될 이유가 없어서 알약을 종류별로 세어서 믹서기에 넣었다. 윙윙. 믹서기가 약을 분쇄하는 걸 지켜보고 있는데 갑자기 돌다가 멈춘다? 어. 이거 왜이래? 급히 믹서기 뚜껑을 열고 봤더니 약이 서로 뭉쳐서 초록색의 쑥떡 가루처럼 덩어리져 있었다. 날이 흐려서 그런가. 약수저로 믹서기에 붙은 덩어리를 떼어내서 새로 돌렸다. 윙윙. 또 돌다가 멈춘다. 이거이거..약효에는 별 이상이 없으니 가루약을 약포지에 모두 넣어서 지어준 다음,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렇게 된 연유가 무엇일까. 게다가 믹서기 뚜껑 칼날에 붙은 가루약은 마치 껌처럼 들러붙어 칼로 긁어도 긁히지 않고, 몇시간이고 물에 담궈놔도 떨어지지 않는다. 당뇨가 생기면 보통 합병증으로 신경통이 같이 오는데 이 신경통약으로 주로 쓰는 약 중에 치옥트산이라는 게 있다. 다른 당뇨약이나 혈압약, 위장약 등은 기존에 갈았을 때 별 이상이 없었고, 유일하게 의심가는 한 가지가 바로 이 녀석이어서 치옥트산에 대한 자료를 찾아봤다.
  

   
  α- lipoic acid(치옥트산, 상품명으로 치옥타시드 등이 있다)는 금속화합물(철&마그네슘을 포함하는 제제, 우유(칼슘함유)등)과 동시에 복용했을 때 체내에서 불용성 착체를 형성하므로 동시 복용하지 않는다. 만약, 이약을 아침식사 30분 전에 복용하였다면, 철과 마그네슘제제는 점심이나 저녁에 복용한다. 
 
   

헉..치옥트산이 복용시에만 마그네슘이나 칼슘같은 금속화합물과 동시복용을 주의해야 하는게 아니고, 실지 금속과도 킬레이트(불용성 착체, 녹지 않는 착화합물)를 형성하는 거였구나. 킬레이트는 녹지 않고 단단하게 이빨에 붙어 있는 치석과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된다. 그렇지만 어떻게 칼날에 닿았다고 킬레이트가 되는거지? 아..그러고보니 닿기만 한게 아니고 알약을 갈면서 고열이 생겼을테고 그 고열 때문에 치옥트산이 금속 칼날과 반응을 한거로구나. 위 속에서 소화되면서 반응하는 것과 같은 원리로구나. 아하.

여기까지 생각한 나는 내 결론을 믿지 못했기에 예전에 같은 직장동료였던 똑순이 윤약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똑순이 윤약사는 치옥트산을 갈아본 경험도 없지만, 영민한 두뇌로 내 말을 잘 이해해서 요점정리를 딱딱 해주었다. 그리고 칼날에 붙은 치옥트산 가루는 이미 킬레이트를 형성했기에 떨어지지도 않고 먹을 수도 없지만, 다른 부분은 좀 덩어리가 져도 먹어도 될 거 같다고 말을 해준다. 여기서 나의 소심증 발동!  실은, 나는 이미  순자할머니네 댁에 전화를 넣었다. 처방받은 병원에 전화를 걸어 순자할머니 보호자 격인 남친할아버지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냈고, 다시 순자할머니의 집 전화번호를 알아내서 덩어리진 약은 아무래도 찝찝하니 드시지 마시고 새로 약을 지어드린다고 전화를 넣었더랬다.

나는 치옥트산만 빼고는 죄다 다시 갈아서 가루약으로 만든 다음, 약포지에 하나하나 나눠 담았다. 치옥트산은 이제 믹서기를 사용할 수 없으므로 절단기로 잘게 잘라서 따로 약포지에 나눠 담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그러니까 오늘 아침에 순자할머니와 남친할아버지가 내방하셨고, 당신 때문에 거듭 약을 짓게 된 것을 무척이나 미안해하셨다. 당신께서도 비싼 약인줄 아셨기에 아까워서 어쩌누, 하시면서 연신 고개를 숙이고 죄송해하셔서 무척 민망했다. 나는 순자할머니에게 받은 십만원어치의 덩어리진 약을 과감히! 약 수거함에 넣었다. 나의 경험 미숙으로 환자가 덩어리진 약을 먹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면서, 다음 번에는 치옥트산을 절대 갈지 않으리라는 비싼 경험에 만족하면서. 그리고 칼날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놀라면서, 킬레이트 착화합물을 약국 안에서 접하게 된 신기한 경험에 키득거리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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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1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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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2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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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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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을 알게 된건, 문동 계지 올 봄호에서다. 얼마전 작고하신 고 박완서 님의 추모글을 썼는데 글이 음악처럼 부드럽게 다가왔다. 평소 친하게 지내시던 선배작가였던 박완서님을 보내면서 보내기 싫어하는 마음과 먹먹함을 적어놓은 글은 읽는 독자에게 그대로 다가와 애도의 공감이 형성되었다. 올려진 사진들 중, 남편과 아들이 식탁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고 박완서님이 중간에서 그들에게 음식을 권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행복한 가족사진이 있다. 사고로 그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사진은 남아 박완서를 오래도록 위로했고, 이제 그 위로의 사진이 다시 남아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한다. 

그렇게 가슴을 아리는 듯한 사연이 담뿍 담겨진 사진을 이병률은 찍는다. 그는 직업이 여행가인듯, 사진작가인듯, 시인인듯, 라디오작가인듯 애매하다. 그는 매번 어디론가 떠나고 또 돌아와서는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듯하다. 톱카프궁전처럼 보이는 바다가 면한 궁전 맞은 편 도시 연안에 정박된 작은 배들이 나란히 있는 사진이 있다. 이 사진이 이병률을 가장 잘 나타내주는 사진이 아닐까 생각해봤다. 작은 배들은 기름칠도 잘 되어 있고, 햇볕에 반짝거리며 바람을 타고, 파도를 가르고 갈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는 듯 보인다. 배는 항상 떠나고자 하지만 떠나는 순간, 한동안은 정처없이 떠돌기도 하겠지만, 언젠가는 목적지를 찾아간다. 떠나온 그곳으로 가든 새로운 세상으로 가든. 이병률의 마음엔 늘 떠남을 부추기는 바람이 머물고있어 그의 허파에 시동을 거는 듯하다. 여행지에서 본 풍경들, 만난 사람들은 어디에 새겨야할까. 지나가는 바람에 새겨놓으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들를 때쯤 새겨진 기억들을 돌이킬 수 있을까. 그 숱한 여정들이 쌓였을 때, 그 바람이 잠시 멈추어 여정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는 그가 바람결에 새겨놓은 미지의 것에 대한 냄새를 이렇게 책으로나마 맡을 수 있는걸까.

그가 찍은 사진들은 무척 따뜻하다. 사진의 렌즈는 찍는 이의 마음을 담기도 하나보다. 따뜻한 사진들은 보는 것만으로 따뜻함이 흘러넘쳐 가보지 않은 미지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느끼게 해준다. 그의 사진은 보는 사람들에게 너도 여행을 떠나봐라, 너도 이런 멋진 장소에 있어봐라, 요구하지 않는다. 그곳이 어디인지는 그에게도, 읽는 이에게도 중요하지 않다. 다만 현재 있는 곳이 아닌 또다른 장소에서도 사람들은 살고 있고, 사람들 사이의 오가는 따뜻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의 사진은 그래서 보면 볼수록 편하다. 

집에 가기 싫어 여관에 간다.
집을 1백미터 앞두고 무슨 일인지 나는 발길을 돌려
1백미터를 걸어내려와 여관에 든다.
집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집에 없어 쓸쓸한 것도 아닌데
오늘도 난 여관 신세를 지기로 한다.
(중략)
그 낯선 곳에서 나는 잠시 어딘가로부터
멀리 떠나온 기분에 젖어보는 것이다. 사치하는 것이다.
<아줌마, 저 있던 방, 1박 더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는 내게
어딜 나갔다 오겠냐고 묻는다.
<네, 집에 좀 다녀오려구요.> 


그의 여행은 이처럼 집 근처에서 집을 들르지 않고, 혹은 조금더 멀리, 어쩔땐 아주 많이 멀리, 떠났다가 잠시 집에 다니러 가는 것과 같으리. 우리네 삶도 또한 이처럼 여행같으리. 나는 왠지 이병률의 이런 행동이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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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6-29 15: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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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6 20: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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