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후 미장원에 머리를 하러 갔다. 염색이 덜 되어 한달만에 다시 갔는데 역시나 미장원은 지루함으로 단연 1위에 오를만큼 주리가 틀리는 곳이었다. 텔레비젼도 봤다가, 수다도 떨었다가, 주인언니의 저녁인 주먹밥도 뺏어먹었다가, 요리조리 시간을 보내고 보내도 또 시간이 남아있었다. 드디어 지친 나는 옆 가게에 놀러갔다. 미장원 옆 가게는 친구네 신발가게다. 가게 안엔 친구 마누라와 아이들이 있었다. 그런데, 친구 마누라가 책을! 읽고 있는게 아닌가? 어므나..3년을 알고 지낸 사이였는데 책 읽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어머~ 책 읽으시네요? 아는 체를 하고 엉덩이를 디밀었더니 친구 마누라가 반가워죽는다. 책을 너무나 좋아한다면서 책 이야기 해주는 사람이 너무 반갑단다. 대뜸 책을 빌려주겠다면서 가게 장식장 하단 선반의 문을 열었더니 책으로 가득 차있다. 가방과 신발이 들어있어야 할 선반에 책이 들어찼음에 깜짝 놀랐더니, 다 선물받은 책들이라한다. 어디어디 출판사에서 줬고, 또 어느 곳에서는 열 권씩도 줬다고 한다. 그래서 리뷰를 써야 한다고 밀린 숙제가 많다고 엄살을 피운다. 인터넷 서점 어디어디에 블로그 있어요? 알라딘 빼고 다 있어요~ 언니는 어디에 블로그 있어요? 아..저는 그냥 뭐..
친구 마누라가 블로그 구경을 시켜준다. 리뷰가 꽤 많다. 아이들 사진도 올려놨고, 아기자기한 성품답게 블로그도 아기자기하다. 내 블로그를 소개해주고 싶었지만, 메인화면에 사진 올려주는 센스도 없는 이 삭막한 블로그를 소개하기가 조금 머뭇거려졌다. 게다가 이곳은 내 일기장 같은 곳이 아니던가! 친구 마누라처럼 책 읽고 리뷰를 성실히 올리는 성실블로거는 커녕 한 달에 한 번의 리뷰도 겨우 올리며, 출판사에서 나 같은 게으름쟁이에게 책을 줄리도 없겠기에..그저..친구 마누라에게 책만 빌리기로 마음먹었다.
친구 마누라는 이 책, 저 책 꺼내놓으며 내 취향을 물어본다. 내 취향..이 뭐더라..
소설류..겠지요? 아마? 여류소설가들의 책을 주욱 꺼내놓는다. 아..저분은 내가 별로...아 이분..도 내가 별로.. 시집..류는 좋아하는데요. 시집..은 없나요? 아..네..없군요.. 성공기..요? 아..그런 것도 별로..여행관련 책? 아..그것도..겨우 눈에 하나 들어온게 최신작인 칭기스칸..의 칼..인가 뭔가 하는 책이었다. 이거 빌려주세요! 자신있게 이야기했더니, 그건 리뷰를 써줘야해서 안돼요. 그건 내가 읽고나서 빌려줄께요. 아..네...리뷰를 써줘야하는구나...
책을 5권이나 빌렸다. 언제 다 읽을지 모르겠기에 시한을 정하진 않았고, 책 읽고나서 나중에 같이 책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가까운 곳에 의외의 책친구가 생긴 느낌이랄까. 미장원에서 드라이까지 하고 이쁘게 머리를 하고 나섰는데 갑자기 부슬비가 장대비로 바뀌었다. 한 손엔 우산을 들고, 다른 손으론 책이 든 가방을 안고, 출근가방은 뒤에 메고 택시를 기다리는데 빗방울이 책에 몇 방울 떨어졌다. 아....빌린 책에 빗방울이...ㅠ.ㅠ 비 오는 날엔 책을 빌리면 안 되는데, 빌려주고 싶은 욕심과 빌리고 싶은 욕심이 만나서 애꿎은 책에 빗방울이 튀어서 책이 젖었다. 마음이 아프다.
책을 돌려줄 때 미안함의 표시로 맛있는 아이스크림을 선물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