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합본] 비정규직 황후 (전3권/완결)
한민트 / 퀸즈셀렉션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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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난 주인공들이 좀 괴로워해야 몰입하는 경향이 있다. 그 점에서 이 책은 내 취향이 아니라서 일단 별 하나 빼고. 글은 상당히 좋다. 특히 두 가지가 좋았는데.


(스포일러 있음)



서브남주가 여주를 십몇 년 동안 못 잊고 있는 심리 묘사가 좋았다. 그렇지. 자기가 평생을 건 일에서 천재를 만나버렸는데 그 상대가 연애가능성별연령이야. 게다가 첫사랑이야. 십몇 년 아니라 평생 가도 안 잊고 집착에 시달릴 만하지. 살리에리가 한참 성가 날리고 있는데 19세 미소녀 모짜르트를 만났다면 느낄 만한 감정? 


그 다음에는 콘스탄체가 여성 혁명(?)을 저지하는 부분. 거기서 나와 (내게 이 책을 소개한) M은 결국 참지 못하고 "으...역시 멘셰비키가 문제야 제일 나빠나빠." 하고 내뱉었으며, M은 "게다가 그 다음이 분리주의라니, 이건 마치 세계혁명을 포기하고 일국사회주의로 전환한 쏘-련의 노선과 같지 않습니까!"하고 분통을 터뜨렸던 것이다. 아...정말 말 그대로 '한마음 한뜻'의 세계혁명(?)을 볼 수 있었는데 아쉬웠다. 


하여간 재미있고 치밀한 복안, 잘 쓴 글이었다. 

무슨 수단으로 숲을 엘첸 안에 출현시켰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숲이 섞이고 여자가 나무로 변했다. 마녀의 지배력이 어디까지 미치는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지각변동은 계속되고 있었고, 몬스터가 나왔다.
게다가 가용 병력의 수는 적었다.

천 년의 세월은 모든 종족의 생활 방식을 바꿨다. 오크와 인어는 인간과 교역을 시작했고, 켄타우로스는 작은 씨족 단위로 분리되어 더 깊은 숲으로 숨었으며, 리자드맨과 라미아, 하피는 힘을 합쳐 인간과 비슷한 형태의 왕국을 세웠다. 더 이상 종족의 명운을 걸고 인간과 전쟁을 하려는 이들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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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북유럽 신화
닐 게이먼 지음, 박선령 옮김 / 나무의철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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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딱 그러한 느낌이었다. 


북유럽 신화 원전이 한정되어 있는데 이야기가 변해봤자 어디로 가랴마는, 닐 게이먼이라서 기대한 기괴함이나 웅대한 분위기 같은 건 별로 없었다. 그냥 '북유럽 신화를 잘 정리해 놓은 우등생의 수업노트' 같았달까. '북유럽신화에 이런 게 어디 있어' 할 부분도 없고 '북유럽 신화에 이런 것도 있었어?' 할 부분도 없다. <안인희의 북유럽 신화>와 다른 부분이 있다면 니벨룽의 반지나 로엔그린 이야기가 들어 있는 3권 부분을 다 빼버리고 천지창조부터 라그나로크까지로 깔끔하게 정리해놓았다는 것 정도. 


다른 북유럽 신화 책에 비해 딱히 추천할 만한 장점은 안 보인다. 

"들불이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면서 그 길에 있는 걸 다 태워버리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자네는 뭐든 누구보다 빨리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하지만 로기만큼 빨리 먹는 건 불가능해. 왜냐하면 로기는 불의 화신이라서 음식과 그게 담겨 있던 나무통까지 다 태워버리니까 말이야. 난 자네처럼 빨리 먹는 자를 본 적이 없어." (거인왕이 신들에게 사기치는 부분-내가 북유럽신화에서 제일 좋아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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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이는 책 -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 작가들이 꼽은 세계 최고의 미스터리들
존 코널리 외 엮음, 김용언 옮김 / 책세상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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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학을 찾아서>를 읽었을 때 그 공저자들이 소개하는 책을 읽고 싶지 않았던 건 정말 그들이 글을 못 써서였는가. <죽이는 책>에 나오는 책들 중에는 내가 읽은 책도 몇 권 되고 못 읽은 책은 훨씬 많고 그 중에서 몇 권은 영미권으로 넘어가도 구하기 힘든 책이라는 뉘앙스로 쓰여 있는 책들도 있는데, 어쩌면 이렇게 몽땅 재미있어 보일 수가 있는가. 


내가 외국 작가가 하는 말은 더 귀 기울여 듣는 사대주의자일 수도 있고, 미스터리라는 장르 특성상 소개 대상 책이 재미가 없을 수가 없지 않냐는 반론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 하여간 생각할 수 있는 여러, 모든 반론들을 감안하고 보아도 <죽이는 책> 쪽이 훨씬 재미있는 것이다. 책 소개서로도, 독립된 하나의 책으로도. 


그냥 봐도 재미있고, 미스터리 소설 팬이 본다면 백 배는 더 재미있을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괜찮은 사람들은 다들 너무 품위를 지키는 게 문제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자기 잇속만 챙기는 실용주의자들과 자기 연민에 뒤범벅이 된 괴물들이 옆에서 함께 헤엄치고 있는데, 이 상황에서 괜찮은 사람들은 쉽게 살아남지 못한다. 소설 속 악당들은 대부분 자신이 크게 비난받을 게 없는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저지른 대학살은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 어떤 사안에 대한 반응으로서의 행위이자 부수적인 결과였을 뿐이다. 그들은 나쁜 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불편한 감정을 계속 느끼기보다 제거하는 쪽을 선호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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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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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까지 내리 쭉 읽었다. 13.67이 아기자기 잘 만들어진 분재 정원이라면 이쪽은 그야말로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산세 속에서 한바탕 휘둘리다 나온 느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이게 정말 끝인가 싶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처음에는 냉전 속에서, 적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 속에서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첩보부대원이 함정에 빠지고 곤란을 겪는 내용이구나 했다. 사실 그런 내용이 맞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주인공의 흔들림과 곤경, 추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일을 하려는 의지, 시작부터 깨져 있던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수십 년에 걸쳐 끈질기게 추적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삶의 비루함이 숨어 있다. 무능하고 경직된 상사, 질투하는 동료와 부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 자신을 증오하는 양딸, 악전고투와 생명의 위협 끝에 겨우 밝혀내도 덮여버리는 진실...1권의 커다란 스케일에 비해 2권, 3권에서 레오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외로워진다.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논리적 뒷받침에 기대지 않고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으려는' 레오는 휴머니즘 소설들의 맥을 잇는 주인공이다. 작가는 그런 주인공의 세상을 빛나거나 아름답게 그리지 않는다. 혹은 빛나거나 아름다운 순간들 뒤의 시간까지 그려버린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레오에게 공감하게 된다. 왜 그러고 사는지 몰라도 순간순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를 위로하게 된다. 이 작가 책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그녀가 이반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레오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차이점은 위장에 불과했다. 반혁명 분자가 사실은 경찰이었고, 경찰은 반혁명분자가 됐다. 반혁명 분자가 그녀를 배신했고, 경찰이 그녀를 구했다. (이 부분에서 그 유명한,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는 기형도의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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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살기 온우주 단편선 2
곽재식 지음 / 온우주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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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 작가가 예전의 기이한 기록들을 모은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모살기>를 보고는 절로 캬 소리가 났다. 아깝다 곽재식 작가여, 시대와 장소를 잘못 타고났구나. 근대 초기 일본에 태어났으면 이즈미 교카와 어깨를 겨누었을 것이고, 그보다 몇백 년 전에 중국에 태어났으면 <전등신화> 같은 소설을 지어 설화-전기문학의 거장이 되었을 것인데. 


곽재식 작가의 SF도 좋아하지만 나는 옛이야기와 기이한 것 계열이 더 좋다. 특히 짧은 이야기지만 <매트릭스>를 방불케하는 김가기 이야기는 매우 짜릿했다. <역적전>도 빨리 읽어봐야겠다. 

아이는 가끔씩 이와 같이 말하였다.
"저는 죽는 것이 무섭습니다. 죽게 되면, 마치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와 같이, 내가 여기 있다는 것도 모르고 세월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다시 깨어날 것이라 하는 것조체도 모른 채 영영 그대로 있으면서, 그저 싹 없어져버리기만 하는 그런 것이라면, 이는 과연 겁이 나는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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