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흉가 스토리콜렉터 40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양 고딕 호러물을 읽을 때 좀 부러운 부분은 역시 그 음산한 고가의 분위기다. 전쟁에 털린 지 백 년도 지나지 않았고 국토 곳곳에 재개발의 바람이 휘몰아친 한국에는 유명한 고가라고 해봤자 어느 종가집, 어느 양반 별장이나 정원, 그런 차원이니까. 하지만 <흉가>를 읽다 보니 한국의 고딕 호려물은 풍수지리물과 대응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기가 세기로 유명한 어느 마을, 풍수를 다스리기 위해 치수치산 공사를 한 관리들이 죽어나간 전설, 도끼를 대자 피를 흘리는 당산나무 같은 요소들이 엮이면 제법 그럴듯한 한국형 고딕 호러가 되겠구나 싶다. 


<흉가>에서 좋았던 점은 주인공 가족이 사는 '외딴 집' 자체는 새 집이라는 설정이다. 화를 부르는 집이지만, 사실은 집이 아니라 집을 짓누른 산이 요기의 본산이다. 산에 대해서는 자세히 묘사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산에서 집으로 뻗어오는 음산한 분위기가 더 살아난다.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과 분량 차이는 그리 나지 않는 것 같은데, 어린이의 시점에서 사건을 풀어가서 그런지 플롯 자체가 단순해서 그런지 이쪽이 훨씬 읽기 편한 소품처럼 느껴진다. 맺는 부분은 살짝 싱거웠지만, 괴담 좋아하는 사람에겐 딱이라고 추천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4
미쓰다 신조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쓰다 신조 작품은 이걸 처음 읽었는데, 딱 내가 좋아하는 속도로 진행되는 민속학 호러다 싶었다. 교고쿠 나쓰히코는 장광설이 많은 만큼 속도가 느리고, 민속학 지식들과 사건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 나중에 속은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일쑤였는데,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은 배경지식과 사건의 밀접성도 좋았고, 사건 진행 속도도 아주 좋았다. 내 취향에 맞는 작가다. 


도서관에서 읽은 책이라 정확히 인용할 수는 없는데, '액을 떼는 법' 중 하나로 "돈을 싸서 길거리에 던져놓는다. 그 돈을 주운 사람이 액도 가져간다."는 전승을 설명하는 방법이 재미있었다. 주인공이 "그건 너무 쉽잖습니까." 하니까 설명하던 승려가 "그런데 거기서 '돈'이란 전재산이란 말이지." 하고 가르쳐준다. 여기서 왠지 깔깔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신기 세계신화총서 11
기리노 나쓰오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 그대로 일본 창세신화인 이자나기-이자나미 부부의 이야기를 척박한 섬의 무녀 이야기와 겹쳐 재해석한 소설이다. 이자나기는 영생을 살면서 '하루에 천 오백 명씩 생명을 생산하는' 삶에 질려 인간이 되지만, 이자나미는 '하루에 천 명씩 죽이는' 여신으로 남는다. 화자는 나마미라는 섬의 무녀지만, 진짜 주인공은 이자나미라고 생각한다. '여성성'도 '신성'도 버릴 수 없는 존재. 끔찍하게 무자비하고 비인간적이고, 신의 숙명에 지친 이자나기를 비웃으며 끝까지 신으로 남는 여신. 


기리노 나쓰오는 좋은 쪽으로나 나쁜 쪽으로나 이렇게 비인간적인 존재를 그릴 때 참 돋보인다. 그런 면에서 상대적으로 인간적이고 다정한 '미로 형사 시리즈'는 내 취향엔 좀 약하다. 역시 아직까지 기리노의 대표작은 <그로테스크>와 <아웃>이 아닐까. 소품이지만 <여신기>도 그 계열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르노 보는 남자, 로맨스 읽는 여자 - 이성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성적 신호의 비밀
오기 오가스 & 사이 가담 지음, 왕수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0월
평점 :
절판


상당히 기대를 하면서 샀기에 오히려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책이었다. 인터넷 검색 엔진을 이용해 데이터를 모았다는 것은 기발하고 신뢰도 가는 방법이지만, 큰 방향은 '남자는 하룻밤, 여자는 평생을 노린다'는 전통적인 고정관념과 그다지 떨어져 있는 것 같지 않다. 


하지만 MILF(35~50세 여성)에 대한 남자들의 선호는 흥미로웠다. 미디어건 성매매건 거의 다 페도파일들의 취향에 맞추어졌고, 35~50세 여성은 육아나 직장(때로는 둘 다) 때문에 20대처럼 자유분방한 연애가 힘든 나라에 살고 있으면 35~50세 여성을 남자들이 여성으로 본다는 사실 자체를 잊어버리고 있을 때가 많다. 심지어 '할머니 포르노'를 검색하는 남자들이 많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었다. 


한편 '부녀자, 후죠시' 등의 말을 들어는 보았지만 슬래시 픽션(책에서는 '게이 에로 로맨스 소설'이라고 설명한다)이 그토록 인기라는 것도 신기했다. <트와일라잇>은 예상했는데 <해리 포터>가 슬래시 픽션의 원본이 되는 경우가 가장 많다는 것도. 


'킨제이 보고서'가 사회에 던졌던 엄청난 충격 같은 것을 기대하고 보면 실망하겠지만, 남녀 욕망의 차이와 소소한 변천사를 보고 싶으면 딱인 것 같다. 

우리 모두는 각자 자신만의 독특한 성적 신호 패턴에 반응한다. 그중 어떤 것은 남성적이고, 어떤 것은 여성적이며, 어떤 것은 고정되어 있고, 어떤 것은 융통성이 있다. 신호는 얼마든지 뒤집어질 수 있고, 또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끝없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성 정체성에 딱히 이름을 붙이기는 곤란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그 모든 성적 쾌감을 안겨주는 것이 바로 우리가 지닌 성적 신호인 것만은 분명하며, 이 생물학적 신호는 한정되어 있고 파악이 가능하다. 우리를 속박하면서도, 또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줄 수도 있는 것이 우리의 신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eBook] 친밀한 범죄자
웬디 L. 패트릭 지음, 김경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5월
평점 :
판매중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성범죄/인신매매 부서 검사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좋은 사람 같아 보이는 범죄자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하지만 다 읽고 나면 역설적으로 "속이려고 마음 먹고 덤비는 놈한테 안 속을 사람 없다"는 무력감을 느끼게 만드는 책이다. 일단 첫 부분, 독자의 관찰력을 시험하는 질문부터 허들이 너무 높다. 여기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아이의 어린이집 교사 : 교사의 자녀가 몇 명이며, 아이들의 성별과 나이는 어떻게 되는가?

애인 또는 남편 : 그 사람이 차에서 즐겨 듣는 라디오 방송은 무엇인가?

옆집 사람 : 정기 구독하는 신문이나 잡지가 있다면 무엇인가?

옆 사무실 직원 : 그 직원의 책장에 꽂힌 책 중 다섯 권의 제목을 댈 수 있는가?

십 대 딸 : 딸이 가입한 SNS 사이트는?

동네 수영장의 안전요원 : 하루 평균 수면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정기적으로 복용하는 약물이나 의약품은 없는가?

담당의사 : 무슨 과인가? 전공이 있다면 경력은 얼마나 되는가?

교회 목사 : 즐겨 시청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회사 상사 : 점심시간에는 누구와 무엇을 하는가?

요즘 연락하는 온라인 썸남 : 퇴근 후 어디에 가고, 주말에는 무엇을 하는가?

회사 건물 경비 : 근무시간에 페이스북을 보는 시간은 어느 정도 되는가?

담당 회계사 : 도박을 하는가? 그렇다면 어떤 도박을 얼마나 자주 하는가?

자주 가는 카센터 정비사 : 무슨 차를 모는가? 결혼은 했고, 아이는 있는가?

아파트 단지의 옆자리 주차자 : 어떤 일을 하는가? 누구와 함께 사는가?


위 질문에 5개 이상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확실히 이런 사람들은 일상생활에서 우리가 무심코 우리의 약점을, 스케줄을 내보이기 쉬운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렇게 사람들에게 의심을 품고 산다면 돌아버리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지만 험한 세상에서 아이 키우는 부모로서 무시할 수도 없는 경고. 그래서 이 책은 읽을수록 무섭고 무력해진다. 사춘기 초입의 아이들을 두고 있는 부모라면 꼭 한 번 읽어보고, 아이들에게도 읽혀야 할 책이다. 책 한 권으로 아이들에게 없던 경각심이 생기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내게 호의적이지 않고, 잘생기고 친절한 사람이라도 나를 비참하게 속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들 것이다. 

늘어진 옷을 입고 공중 화장실 근처를 어슬렁대는 부랑자를 조심한다고 해서 새로운 직장 상사나 아들이 다니는 유치원의 다정한 교사가 무슨 속셈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또 골목길에서 수상한 눈빛으로 진땀을 흘리는 사람을 만났을 때 피하는 요령을 안다고 해서 온라인으로 연락 중인 상대의 속마음을 알 도리는 없다. 지금까지 그 사람이 공개한 건 기본 정보와 잘생긴 프로필 사진뿐이지 않은가(정말 자기 사진이기라도 하다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