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일드 44 - 1 - 차일드 44
톰 롭 스미스 지음, 박산호 옮김 / 노블마인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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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까지 내리 쭉 읽었다. 13.67이 아기자기 잘 만들어진 분재 정원이라면 이쪽은 그야말로 폭풍우처럼 몰아치는 산세 속에서 한바탕 휘둘리다 나온 느낌. 마지막 장을 덮을 때는 이게 정말 끝인가 싶어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처음에는 냉전 속에서, 적어도 자기에게 주어진 한계 속에서는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첩보부대원이 함정에 빠지고 곤란을 겪는 내용이구나 했다. 사실 그런 내용이 맞기도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주인공의 흔들림과 곤경, 추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일을 하려는 의지, 시작부터 깨져 있던 아내와 아이들과의 관계를 복원하려는 노력을 수십 년에 걸쳐 끈질기게 추적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우리가 뻔히 알고 있는 삶의 비루함이 숨어 있다. 무능하고 경직된 상사, 질투하는 동료와 부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아내, 자신을 증오하는 양딸, 악전고투와 생명의 위협 끝에 겨우 밝혀내도 덮여버리는 진실...1권의 커다란 스케일에 비해 2권, 3권에서 레오의 세계는 점점 좁아지고 외로워진다. 


거창한 대의명분이나 논리적 뒷받침에 기대지 않고 '양심에 어긋나는 짓을 하지 않으려는' 레오는 휴머니즘 소설들의 맥을 잇는 주인공이다. 작가는 그런 주인공의 세상을 빛나거나 아름답게 그리지 않는다. 혹은 빛나거나 아름다운 순간들 뒤의 시간까지 그려버린다. 그리고 다 읽고 나면 레오에게 공감하게 된다. 왜 그러고 사는지 몰라도 순간순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를 위로하게 된다. 이 작가 책이 더 많이 나오면 좋겠다. 

그녀가 이반을 좋아했던 이유는 그가 레오와 크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런 차이점은 위장에 불과했다. 반혁명 분자가 사실은 경찰이었고, 경찰은 반혁명분자가 됐다. 반혁명 분자가 그녀를 배신했고, 경찰이 그녀를 구했다. (이 부분에서 그 유명한,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는 기형도의 구절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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