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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이 서린 말 욜로욜로 시리즈
마이테 카란사 지음, 권미선 옮김 / 사계절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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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소녀를 납치 감금하고 자기만의 것으로 만들려는 남자의 욕망을 그린 소설 중 아직 존 파울즈의 <콜렉터>를 능가할 만한 섬뜩한 작품은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거기에 '가스라이팅'이라는 요소를 덧붙여 독자의 전율을 만들어낸다. 


몇 년 동안 단 한 사람만을 만날 수 있고, 그 사람의 평가에 자신의 생사와 학대 여부가 달려 있을 때, 그 사람이 아무리 나쁜 놈이라고 해도 그의 영향을 받지 않고 온전히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남기는 힘들 것이다. 이 소설은 범죄라는 극단적 설정을 택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 부부 사이에서, 혹은 부모가 자녀에게 가하는 가스라이팅은 수도 없이 많을 테다. 사실 이 소설에 나오는 가스라이팅은 꽤 약한 축에 속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방향을 잘못 잡거나 망설이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이 소설의 제목이 '사라진 소녀' 류가 아니라 '독이 서린 말'인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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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읽는 심리학 - 그리스부터 북유럽 신화까지
리스 그린.줄리엔 샤만버크 지음, 서경의 옮김 / 유아이북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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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로 우리의 심리를(반대로 심리로 신화를) 해설하는 책은 많이 나와 있고, 이 책은 그 중에서 별달리 눈에 띌 만한 수준은 아니다. 그러나 대부분 그리스-로마신화 속에서 자료를 찾는 책들에 비해 여러 가지 신화를 포괄하려고 한 점이 눈에 띈다. 성경, 아서 왕 전설, 이집트 신화, 파우스트 전설에 인도 신화까지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삶의 교훈'을 따온다. 신화 다이제스트를 구경하는 기분으로 훑어보기엔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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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죽이기 죽이기 시리즈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김은모 옮김 / 검은숲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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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추리소설이라기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패러디라고 생각하고 읽었다. 추리소설을 읽을 때에는 아무래도 죽는 사람과 죽이는 사람의 심정에 나 자신을 대입하며 읽는 편이라, '이상한 나라'와 이 세계의 연결을 상정한 이 소설은 그런 몰입을 방해했다. 하지만 지적 유희로 추리소설을 즐기거나, 앨리스 패러디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좋아할 만한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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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좀비를 만났다 - TED 과학자의 800일 추적기 지식여행자 시리즈 2
웨이드 데이비스 지음, 김학영 옮김 / 메디치미디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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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반까지는 '그것이 알고 싶다' 좀비편을 보는 느낌으로 읽어내려갔다. 좀비를 만들 수 있는 심리적, 약리적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이야기는 흥미롭긴 했지만, 기존에 부두교에 대해서 갖고 있던 이미지와 그렇게 다르지 않았다. 사람을 마비시켰다가 일으킬 수 있는 사악한 주술사, 마녀의 스프에 들어갈 법한 이상한 재료들, 전설을 채록하듯 알음알음 더듬은 연줄로만 접근할 수 있는 비밀 종교 같은 거?


그런데 중반 넘어가면서, 부두교와 좀비, 좀비 만들기가 아이티에서 갖고 있는 사회적 관계망과 의미를 파헤치는 부분부터는 모든 게 새로웠다. 좀비의 이런 측면을 다룬 소설이 없다니, 그게 더 희한할 지경이었다. 서브컬처에서 한때 좀비 붐이 일었지만 그런 소설/영화/만화의 창작자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사실 조지 로메로와 리처드 매드슨의 좀비뿐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좀비를 만드는 건 약이나 주술이 아니라 아이티의 역사와 사회, 지역공동체였다.


판타지/호러/스릴러 작가들이 좀비를 소재로 쓰고 싶다면 꼭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좀비라는 '현상'이 아니라 좀비가 나타나고 이용되는 세계관을 잘 담은 소설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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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고바야시 미키 지음, 박재영 옮김 / 북폴리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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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중독, 도박, 외도가 아니면 이혼하면 안 되는 줄 알고 자랐다. 집 분위기가 그랬고, 시절도 별다르지 않았다. 전 남편은 내게 물리적 폭력을 휘두른 적은 없었지만 가스라이팅을 엄청나게 해댔고, 주변인들도 '그래도 네가 선택한 거잖아'라며 어쩔 수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정말? 00오빠가 남한테는 00언니 얼마나 많이 칭찬하는데요." 하는 소리로 입을 막아버리기도 했다. 그때 바로 그랬다. 내가 죽일 용기나 수단은 없고, 이혼은 말도 안 된다는 태도인 전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뒷모습을 보며 '저거 오늘 사고나서 죽어서 통지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며칠 울어주고 49재까지만 지내주고 자유의 몸이 된다고. 정말 미워서 내가 손대기도 싫고 그냥 급사로 죽어 주었으면 싶은 사람의 49재까지 지내줄 생각을 했다니 지금 생각하면 완전 스톡홀름 신드롬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십 년 전 그 시절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렸다. 이혼녀에 대한 사회적 시선이 가혹할수록, 이혼 후 재산분할이 남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을수록 '남편이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염원하는 아내들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 이전에 야근과 철야와 독박육아를 강요하는 노동환경, 남편보다 아내가 출산휴가를 하거나 퇴직하도록 요구하는 임금차별은 남편이 죽어버리기를 바라는 아내를 늘릴 수밖에 없다. 누군가를 끊임없이 미워하며 사는 것은 피곤한 생활이다. 하지만 사회가 강요하고 남편이 외도, 육아 이탈, 인격 무시 등으로 부채질한다면 남편이 죽기를 바라는 아내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그 전에 '결혼 안하는 여성'이 더 늘어날 테고. 


여성혐오로 멸망하는 사회란 비극이지만 웃기겠지. 

"당신은 집에서 뭘 한 거야? 직장에 안 다니니까 아이를 가르칠 시간이 있잖아."라며 나무랐다. 그러다 "당신이 전문대밖에 안 나왔으니까 애도 머리가 나쁜 거 아냐?"라는 말까지 했고, 아스카는 "미안해요. 더 노력할게요."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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