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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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양의 신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서양의 꽃에 관련된 전설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전설, 설화들은 그리 잘 알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바리데기'라는 설화를 알고 있는가?

이 설화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황석영'의 <바리데기/ 황석영 ㅣ 창비 ㅣ 2007>를 통해서 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바리'는 탈북소녀인데, 보통의 소녀가 아닌 영혼이나 짐승과도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소녀이다. 중국을 거쳐 런던으로 밀항을 하고, 여러 차례의 어려움 끝에 파키스탄 청년과 결혼을 하게 되지만, 행복은 잠깐 그녀는 미국의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설화 속의 '바리'처럼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용서와 구원의 생명수를 찾아 다닌다는 이야기이다.

황석영 작가의 뛰어난 소설적 감각으로 설화와 초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인종, 종교, 문화, 이데올로기를 넘어 전쟁과 테러가 없는 인류를 만들어 나간다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번에 읽게 된 '박정윤' 작가의 <프린세스 바리>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황석영의 <바리데기>와는 또다른 느낌의 설화 '바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 옛날 옛적에 불나국이라는 나라에 외귀 대왕님이 있었어. (...) 그개 일곱 번째 아기를 잉태했지. 길대 부인 마마는 사내아이를 얻은 꿈을 꾸었다고 오귀대왕께 말했는데, 낳고 보니 일곱째도 공주였던거야 (...)" (p. 169)

그래서?

이 설화에서 처럼, 연탄공장 사장 부인은 딸을 줄줄이 여섯을 낳고, 아들 낳기를 고대한다.

산파가 받는 아이는 아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산파에게 애를 받도록 하지만, 그것도 효험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낳게 된 일곱 번째 아이는 어미에게 버림받고 산파의 손에 들려서 그 도시를 떠나게 된다.

산파와 그녀의 어릴적부터의 라이벌 관계였던 토끼에 의해서 키워진 바리의 파란 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프린세스 바리>에 등장하는 배경은 수인선이 지나가는 잘 나가던 도시.

공단지역이 있고, 차이나 타운이 있고, 양키 시장이 있는 곳.

그러나 지금은 수인선이 폐쇄됨에 따라 낙후하고 몰락한 도시. 그 도시에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도시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리고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

그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어릴적부터 성장기에 보아 왔던 곳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설 속의 '바리'처럼 아들을 낳기를 원했던 집안의 아홉 딸 중의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바리'처럼 죽음으로 가는 길로 안내하는 능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독초를 다룰 줄은 모르지만, '바리'가 느꼈을 생각들의 일부분을 공유하기도 했던 것이다.

" 그들은 아무도 아프지 않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나는 토끼 할머니가 읽어준 이야기처럼 내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거칠고 험한 길을 떠나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곳에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그들의 고요한 생활을 휘젓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는 평범하고 반듯한 그들의 삶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 (p. 114)

설화 속의 '바리'의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서, 구술자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와 '프린세스 바리'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암울하고 칙칙하고 읽은 후에 느낌이 멍멍하다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두 이야기가 추구하는 바는 다른 것이다.

<프린세스 바리>의 바리는 가장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잠시 출생의 비밀을 더듬어서 자신의 가족을 찾아가지만, 그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기 싫어서 말없이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잘 사는 것에 욕심도 없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녀를 가만 놓아 두지를 않는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이용하려는 자들도 있는 것이고, 그녀의 행복을 짓밟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는 자살 안내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서슴없이 고통받는 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도와주기도 한다.

<바리데기>를 읽은 후에도 마음에 개운한 느낌보다는 무언지 모를 앙금들이 가라 앉았는데, <프린세스 바리>도 역시 읽은 후의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다.

이 소설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제 2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데, 제 1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 최문희 ㅣ 다산책방 ㅣ 2011>때도 그런 생각들이 들기도 했었다.

소설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개운함이나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여운보다는 암울한 삶의 여인들의 모습이 칙칙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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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차동엽 지음 / 위즈앤비즈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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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영하의 추운 날씨에 명동 거리는 온통 사람들로 북적였다.

우리의 큰 어르신인 김수환 추기경이 선종을 하셨기에 그의 마지막 모습을 마음에 담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명동성당에 이르기는 길은 바로 눈 앞에 있었지만, 사람들은 골목 골목을 돌고 돌아서 먼 길을 추위에 떨면서 한 걸음 한 걸음 옮겨 가고 있었다.

벌써 세월을 흘러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 곁을 떠난 지도 2년이 훌쩍 넘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니어도 가끔은 그 분의 말씀이, 그분의 모습이 그리워진다.

(내 앨범 속에 간직된 사진 중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은 김수환 추기경이 50 여년 전에,

" 아빠는 집을 나갔고요, 엄마는 병으로 누워 있어요. 제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동생 뒷바라지를 하고 있지만,... 하루 하루가 정말 힘들어요. 추기경님이 저를 위해서 좋은 말씀 하나만 적어 주세요"라는 어떤 여학생에게 적어 주었던 메모에서부터 나라에 힘들 일이 있을 때마다 음성으로 들려주셨던 육성을 이 한 권의 책에 담았다.

이 책은 <무지개 원리>로 잘 아려진 '차동엽'신부에 의해서 엮어졌다.

" 독자는 글로 읽을지 모르지만 나는 육성으로 듣는다. 이 '친전'을 읽기 위해 수집한 김 추기경의 원고뭉치들은 읽을수록 글이 아니었다. 살아서 메아리치는 목소리였다. 왜? 글은 멀리서도 간접적으로 읽지만, 육성은 가까이서 직접적으로 들려오기 때문이다. 그만큼 김 추기경의 '친전'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수신인으로 향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 아닌 육성은 바로 당신을 위한 격려이다. " (p.p. 76~77)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서 김수환 추기경이 우리에게 전하는 '친전'으로 생각하면 좋을 듯하다.

그는 힘들고 지친 사람들, 병든 사람들, 어두운 곳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하여 그 누구라도 마다 하지 않고 만나서 대화를 나누셨던 분이다.

사람들이 만나지 말기를 권하는 마이클 잭슨도, 쉼터의 여인들도, 에이즈 환자도, 그 분에게는 만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김수환 추기경은 훗날, 자신이 광주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던 그곳에 함께 있지 못함을 힘들어 하시기도 했고, 6.10 항쟁 당시에는 명동 성당에 들어온 경찰들에게 시민들의 앞에 자신이 서겠다고 하실 정도로 국가와 민족을 두루 생각하신 분이다.

"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슬퍼 우는 사람들을 수없이 찾아 다녔지만 그들과 삶을 나누지는 못했음을 부끄러이 고백한다. " (p. 205)

그런 분이 남기신 글과 육성은 우리들에게 삶의 지혜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기도 한다.

언젠가도 읽었던 그분의 말씀 중에서 가장 마음 속에 크게 자리잡는 건,

"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 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p. 237)는 말씀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칠십 년 걸린 가슴으로 내려온 그 '사랑'.

그러니 우리에게 가슴으로 내려온 '사랑'을 행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닐까.

그래도, 그 말씀에 힘입어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내려온 '사랑'을 실천하고 싶은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수환 추기경이 시종일관 강조하고, 가르치고, 퍼트린 세가지인 "진리, 정의, 사람!"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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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1-02 18: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
라일락님, 성당에 신실하게 다니는 제 친구와 노문우에게 이 책을 선물해야겠어요.
담아갑니다^^

라일락 2012-11-02 21:04   좋아요 0 | URL
네, 아마도 좋아하실 것 같네요. 차동엽 신부님이 엮으신거라서 더 의미가 있네요.
 
사랑으로 변한다
밥 고프 지음, 최요한 옮김 / 아드폰테스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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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으로 변한다>의 저자인 '밥 고프'에게 '하고 싶은 일 중에서 안 되는 일이 있을까?'하는 의문이 든다.

그는 하고자 하는 일은 꼭 하고야 만 그런 사람이다. 우리의 상식선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그에게는 기적처럼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은 기적이 아닌, 그의 도전이었고, 그의 열정이었고, 그의 성취였던 것이다.

다만 그에게 하고 싶었지만, 안 된 일이라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요세미티로 혼자 떠나서 그곳에서 직장을 얻겠다는 바람이었는데, 그 일은 이루어지지를 않았다.

그 사건을 계기로 그가 새롭게 변하게 되는 전환점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사건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의 첫 이야기로 등장한다.

어느날 '밥 고프'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직장을 얻기 위해서 요세미티로 떠나기로 결심한다. 떠나기 직전에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랜디를 찾아 가는데, 랜디는 선잠에서 깨어난 모습으로 밥 고프의 말을 듣더니, 그와 같이 가겠다고 한다.

함께 떠난 요세미티에서 밥 고프는 직장을 얻지를 못하고 돌아 오는데, 랜디의 집에 도착해서야 랜디가 신혼초 였는데도 밥 고프를 따라 나섰던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무 말없이 밥 고프가 그곳에서 직장을 얻을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응원해 주었던 랜디,

랜디를 통해서 '사랑은 생각에 머물지 않고, 계획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후에도 밥 고프는 1년간 식당 종업원 보조로 일하다가 드디어 웨이터가 된 첫 날, 스테이크를 서빙하던 중에 엄청난 소리와 냄새의 방귀가 나와서 손님들이 경악하게 되고,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는 이런 실패에서도 배움을 가지게 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그는 성적이 형편 없어서 로스쿨에 들어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는 꼭 로스쿨에 들어가서 변호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어 세상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그의 꿈은 집념으로 바뀌게 되고, 공부를 열심히 하기는 하지만, 성적은 그에 못 미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로스쿨의 학장실 앞에서 며칠을 버틴 끝에 입학 허가를 받아내고, 드디어 변호사가 되는 것이다.

그는 결혼 후에 아이들과 함께 세계의 모든 지도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게 되는데, 의외로 세계적인 지도자들 중에는 그와 아이들을 초대하는 편지를 보내는 사람들도 있게 되고, 이것을 계기로 세계여행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이외에도 이 책 속에는 밥 고프가 행한 모험의 이야기들이 다양하게 펼쳐진다.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들인데, 그는 이런 일들을 꿈꾸고 달성하였던 것이다.

그가 겪은 크고 작은 모험담, 그것을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가 말하는 사랑이란 머릿 속에 갇혀 있는 사랑잉 아니, 행동으로 보여주는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 그의 인생 스토리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행복으로 실천하였다'는 것이다.

그가 만난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고 '행동하는 하나님'이신 것이다.

그의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하나님과의 연관.

" 아낌없이 사랑하는 것과 아낌없이 사는 것은 뜻이 같을 뿐 아니라 예수가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삶이기도 하다. " (p. 36)

이 책은 분명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데,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해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고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다른 책에서 말하는 하나님과는 다른 시각으로 글을 풀어 나간다.

"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우리가 어울리는 사랑을 닮는다. 그리고 결국 우리는 그들이 가는 곳으로 간다. 내가 오를 차에는 내 인생을 믿고 맡길 만한 사람이 운전대를 잡아야 한다. 내 인생을 통재할 수 있는 상당한 힘을 그들에게 주는 셈이니까. " (p. 154)

"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점도 주시고 단점도 주셨다. 좋아하는 것도 주시고 싫어하는 것도 주셨다. 무엇보다 하나님은 꿈을 주셨다. 우리는 꿈을 꾸는 존재다. (...) 우리는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큰 계획의 일부이다. " (p. 273)

밥 고프가 겪은 크고 작은 모험담을 통해서 우린 사랑이란 행동하는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의 변호사 사무실도 디즈니랜드의 톰소여의 섬에 있다고 하니, 그 역시도 흥미롭지 않은가....

그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서, 나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면,

그리고 나의 삶 속에서 사랑을 행할 수 있다면 그 보다 더 좋은 일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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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 Sentimental Travel
최갑수 지음 / 예담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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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텐데 / 최갑수 ㅣ 달 ㅣ2010>를 통해서 알게 된 시인 '최갑수'

그 책 속에는 나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떠 올리게 하는 장소가 소개되었다. '서울 청파동 만리시장길'

청파동은 내가 한 살 때에 이사를 한 곳이다. 높은 축대가 있는 집이었는데, 이 집은 아버지가 땅을 사서 지으신 집이다.

아버지가 소유하셨던 최초의 집인데, 그 집을 지을 당시에 집을 짓고 아직 축대를 쌓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그 높은 언덕 위에 예쁜 꽃이 피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린 나는 아장 아장 걸어가서 그 꽃을 만지려고 하다가 아래로 떨어지고 만 것이다.

놀란 엄마가 뛰어 왔을 때는 이미 나는 그 아래로 떨어지고...

그런데 운명처럼 살아날 수 있었던 것은 아래에 계시던 아저씨가 나를 받으셨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아주 높은 곳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는데, 그 높이는 아마도 4~5 미터는 되지 않을까 싶다.

이곳에서는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해 5월까지 살았으니, 나의 성장기를 보낸 곳이기도 하다.

그런 곳을 책에서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었다.

최갑수의 <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텐데 >에서는 청파동에서 만리 시장길에 이르는 길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곳은 엄마따라서 가끔씩 가던 곳이기도 했고, 그 길의 갈림길에 효창공원이 있어서 여름날에는 가족들이 산책을 가던 길이기도 하다.

지금은 낙후한 청파동, 효창동이지만,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많이 살아서 일본식 가옥과 정원이 딸린 운치있는 집들이 많은 동네이기도 하다.

 

< 이 길 끝에 네가 서 있다면 좋을텐데 >에 실린 사진 중에서

 

나의 독서편력은 이 책을 계기로 '최갑수'의 글들에 꽂혀 버리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 나도 시인처럼 지독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은 착각.

그러나 그 외로움이 싫다기 보다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고독인 것같은 그런 느낌.

그 고독 속에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 놓은 것만 같은 생각.

미움도, 불만도, 불행도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감정들일 것같은 그런 느낌.

그래서 난, 그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읽어가게 되는 것이다.

< 사랑을 알 때까지 걸어가라>를 읽었고, 이번에 <당분간 나를 위해서만>을 읽었고....

또 < 당신에게, 여행을>을 읽으려고 한다.

 

 

 

 

이 책들은 모두 최갑수 시인 (1997년 문학동네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의 포토 에세이이자 감성 에세이들이다.

그렇다면 시인은 원래 사진찍기를 좋아했을까?

'인생이란 한 치 앞도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간지와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는데, 우연한 기회에 여행전문기자가 된다. 그리고 지금은 프리랜서 여행작가이다.

카메라라고는 만져 보지도 않은 그가,

여행이라고는 떠나 본 적도 없는 시골 촌놈이,

여행전문기자가 된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우연이었던 것이다.

" 내 손에 카메라가 쥐어진 것은,

내가 길 위에 서게 된 것은,

내가 그 음악을 듣게 된 것은,

내가 너를 만나게 된 것은....." ( 작가 소개글 중에서)

 

시인의 글은 시인다운 감성이 뚝뚝 떨어진다. 사진은 눈에 확 들어오는 사진이라기 보다는 초점이 맞지 않은 듯, 아니면 비에 적은 듯, 은근하게 다가오는 그런 사진들이다.

그래서 그의 책을 한 권만 읽었어도, 그가 무슨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언젠가 이 책을 읽지 않았던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책의 내용도, 구성도 비슷비슷하다.

그래도 독자들은 그런 그의 책에 중독이 된 듯하다.

<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은 2007년 3.30에 초판 1쇄에 들어갔는데, 2012년 8.17일에 벌써 초판 25쇄이다.

책제목부터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 잡은 것은 아닐까?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우리에게 이 말은 ' 천부당 만부당'한 말이 아닌가.

내가 지금 당장 '나를 위해서만' 이란 생각을 행동에 옮긴다면, 우리집은, 내 직장에서의 업무는...

당장 지구가 'all stop' 할 것같은 이 불안감.

그러나 그건 기우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역시 나도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살 수는 없을 것이다.

 

 

" 아직도 그날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날 우리 모두는 정말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오히려 다가올 불행한 날들이 두려워졌을 정도니까

그런 날들이 우리 기억 속에 분명 하루쯤은 존재하고 있다.

그 하루의 향기가 불행한 날을 잊게 만든다. " (p. 47)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가오는 지독한 외로움.

마음이 푹 꺼질 것만 같은 슬픔.

사랑하던 사람과 헤어져야만 했던 아픔.

 

 

"목련이 피고 짐은사랑과 꼭 닮았더라.

툭툭 꽃망울 터트리며 환하게 피다가

검은 꽃잎 낭자하게 뿌려놓고 지듯

사랑도 그러하더라.

필 때는 담장 너머 아득한 거리에서 피다가

질 때는 발에 질끈 밟히며 걸음을 서성이게 하더라." (p. 137)

 

시인의 사진처럼 흔들리면서도 외롭지만 외롭지 않고, 슬프지만 슬프지 않은 그런 감정.

그래서 이 책은 읽으면서 '생각에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센티멘탈해지는 책이라고 표현하면 적확할까?

" 맛있는 음식을 혼자 먹어야 하는 것만큼 센티멘탈한 일은 없어," (p.27)

그리고 더 확실한 것은 저자 자신은 '여행중독자'인 것이다.

" 여행은 아스피린처럼, 파스처럼, 잘 만든 문장처럼, 불후의 재즈처럼, 연애의 입술처럼 그의 상처를 치료했다. 덜컹거리는 열차에 앉아 잡지를 뒤적이든, 버스 안에서 졸든, 비행기 창문으로 뭉게구름을 바라보든, 낯선 도시의 여관방에 홀로 남겨져 빗소리를 듣든, 바닷가를 헤매든, 깊은 산속에 버려졌든, 다만 이곳에 있지 않음이 그에게는 곧 여행이었고 행복이었다. 여행은 삶의 진짜 속살을 보여주었다. " (p. 196)

 

" 당신은 왜 여행을 떠나나요?

누군가는 사랑을 버릭 위해

누군가는 남루한 삶을 견디기 위해

누군가는 깨달음을 위해

누군가는 밥벌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또 누군가는 지구의 사랑과 평화를 위해

그러니까 이 세상의 여행자가 모두 100 명이라면

여행을 떠나는 데는 100 가지 이유가 있는거야.

그런 질문은 참아주길 부탁해. " (p. 265)

시인은 말한다.

이 책에 '실린 것들은 시도 아니고, 산문도 아니고, 사진도 아니'라고.

독자들에게 이 책에 실린 것들이 아주 사소한 우연이었으면 좋겠다고, 음악이었으면 좋겠다고, 아니면 행복이었으면 좋겠다고...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아무리 큰 슬픔도, 큰 아픔도 모두 내려 놓을 수 있을 것같으니, 독자들에게는 행복한 독서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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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2-10-29 20: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참 좋아요, 라일락님^^ 어린시절 얘기는 한편의 영화장면 같네요. 최갑수 시인이 여행전문기자군요. 전 한권도 읽어보진 못한 시인이에요. 당분간은 나를 위해서만, 왠지 그말만으로도 위안이 돼요. 저 이번엔 서평단 신청 안 했어요. 다음번에나 해볼까하구요. 라일락님은 계속 멋진 활약 보여주시기 바랍니다.^^

라일락 2012-10-30 00:2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아쉽네요.
저도 선정이 되면 좋기는 하겠지만, 어떻게 될 지는 잘 모르겠네요.
가끔씩 프레이야님의 서재에 들릴께요. 신간평가단을 통해서 프레이야님을 알게 된 것은 좋은 인연이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서 좋은 일도 하시는 것 같은데, 언제나 행복한 모습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도심의 절간
데이비드 매캔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2년 9월
평점 :
절판


도심의 절간>은 한영대역 시조집이다.

가끔 매스컴을 통해서 우리나라 사람보다 더 우리 문화에 심취한 외국인을 만나게 된다.

판소리를 배우는 사람, 가야금을 타는 사람, 난을 치는 사람....

그런 외국인을 볼 때는 우린 한국인이지만, 그들보다 더 우리의 것을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매캔'은 오래전에 평화봉사단으로 우리나라에 와서 안동의 시골 마을에서 고등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고 한다.

그러던 중에 우리의 시조를 처음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머물고 있던 집에는 돼지가 있었는데, 어느날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해서 돌아 왔는데, 돼지들의 우는 소리를 들곤 처음으로 한국어 시조를 지었다고 한다.

그후에도 한국 문학, 한국 문화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는 김소월을 주제로 학위 논물을 쓰기도 하였다.

그의 한국 문학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는 시문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일 등을 하게 되고, 시조, 가사, 잡가 등까지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동안 저자가 영어로 쓴 시조들을 한국어로 번역을 하고, 그 원문을 함께 실어서 한 권의 책으로 담아 놓은 것이 바로 <도심의 절간>이다.

저자는 말하기를, 시조는 문학적이고 회화적이라고 말한다.

첫 행은 붓으로 큰 획을 긋는 것과 같고,

둘째 행은 다시 붓에 잉크를 찍어 그림의 세부를 채워 나가는 것이고,

셋째 행에서는 마지막 화려한 붓질로 반전을 그린 뒤 마무리를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 실린 그가 쓴 시조들을 보면 소재가 우리나라와 관련된 것들이 다수 있다.

문무왕 수중능, 백담사 만해 기념관, 설악산 만해 마을, 독립선언문, 수묵화, 미당의 집, 경주, 도자기 가마 등을 들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저자는 우리의 역사, 문학, 문화에 대해서 한국인 이상의 애정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우리말로 처음 썼다는 시조는 아래와 같다.

" 하룻밤 안동 시내

하룻밤 안동 시내 골목 술집 구경하고

머리가 삥삥 돌아 밭둑길을거닐 적에

도야지 꿀꿀 노래, " 너 인제 왔나" 하더라."

그런데, 우리들이 흔히 알고 있는 시조의 운율인 3 4 3 4, 3 4 3 4, 3 5 3 4 는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가 지은 시조는 '평시조' 라기 보다는 '엇시조', '사설시조' '연시조'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형식만은 초장, 중장, 종장의 형식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자식이라면 그 누구나 '어머니'에 대한 애잔한 마음이 있는데, 그에게도 '어머니'에 대한 소재로 쓴 시조가 몇 편 보인다.

" 어머니 가시던 날

아버지와 얘기를 끝으로 너무 아파 입 못 때셨네,

그 마지막 날 - 난 이튿날 아침 다시 뵙기로 했다.

전화벨 - 당신은 떠나시고 우리만 남았다.

작년 구월, 내가 휴가도 해변도 갔다 오고

한국 여행도 다녀온 뒤 - 그 시월의 날벼락 !

당신은 영원히 가고 침묵만 남았다.

얻는 게 중하다는 긴 과장된 말. 잃음이야말로 전부다.

체중이든 높이든 잃는 것은 원점으로 되돌아 가는 것.

어머니 쓰러지신 작년 그날은 내가 모든 걸 잃은 날."

" 당신의 손

미소로 내미실 때

내 가슴은 찢어질 듯.

슬픔일랑 거두라며

눈길 주고 돌아서실 때

생전엔 들어본 적 없던 노랫소리

꿈길 따라 들려 왔네 "

어떻게 보면 '시조'라기 보다는 '시'처럼 다가오기도 하지만, 외국인이 영어로 쓴 시조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의 '시조 사랑에 더 큰 의미를 두는 것이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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