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세스 바리 -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박정윤 지음 / 다산책방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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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양의 신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서양의 꽃에 관련된 전설들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우리의 전설, 설화들은 그리 잘 알고 있지 않은 듯하다.

'바리데기'라는 설화를 알고 있는가?

이 설화를 처음 접하게 된 것은 '황석영'의 <바리데기/ 황석영 ㅣ 창비 ㅣ 2007>를 통해서 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바리'는 탈북소녀인데, 보통의 소녀가 아닌 영혼이나 짐승과도 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질 소녀이다. 중국을 거쳐 런던으로 밀항을 하고, 여러 차례의 어려움 끝에 파키스탄 청년과 결혼을 하게 되지만, 행복은 잠깐 그녀는 미국의 9.11 테러, 아프가니스탄의 전쟁 등으로 힘겨운 삶을 살게 된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설화 속의 '바리'처럼 이승과 저승을 넘나들면서 용서와 구원의 생명수를 찾아 다닌다는 이야기이다.

황석영 작가의 뛰어난 소설적 감각으로 설화와 초현실을 넘나드는 이야기는 흥미로우면서도 인종, 종교, 문화, 이데올로기를 넘어 전쟁과 테러가 없는 인류를 만들어 나간다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이 담겨 있는 소설이다.

그래서 이번에 읽게 된 '박정윤' 작가의 <프린세스 바리>는 그리 낯설지 않은 이야기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황석영의 <바리데기>와는 또다른 느낌의 설화 '바리'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 옛날 옛적에 불나국이라는 나라에 외귀 대왕님이 있었어. (...) 그개 일곱 번째 아기를 잉태했지. 길대 부인 마마는 사내아이를 얻은 꿈을 꾸었다고 오귀대왕께 말했는데, 낳고 보니 일곱째도 공주였던거야 (...)" (p. 169)

그래서?

이 설화에서 처럼, 연탄공장 사장 부인은 딸을 줄줄이 여섯을 낳고, 아들 낳기를 고대한다.

산파가 받는 아이는 아들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산파에게 애를 받도록 하지만, 그것도 효험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낳게 된 일곱 번째 아이는 어미에게 버림받고 산파의 손에 들려서 그 도시를 떠나게 된다.

산파와 그녀의 어릴적부터의 라이벌 관계였던 토끼에 의해서 키워진 바리의 파란 만장한 삶의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겨 있다.

<프린세스 바리>에 등장하는 배경은 수인선이 지나가는 잘 나가던 도시.

공단지역이 있고, 차이나 타운이 있고, 양키 시장이 있는 곳.

그러나 지금은 수인선이 폐쇄됨에 따라 낙후하고 몰락한 도시. 그 도시에는 밑바닥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 도시에서 일어나는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들.

그리고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

그 이야기는 작가 자신의 어릴적부터 성장기에 보아 왔던 곳의 이야기이기도 하고, 소설 속의 '바리'처럼 아들을 낳기를 원했던 집안의 아홉 딸 중의 일곱 번째 딸로 태어난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바리'처럼 죽음으로 가는 길로 안내하는 능력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독초를 다룰 줄은 모르지만, '바리'가 느꼈을 생각들의 일부분을 공유하기도 했던 것이다.

" 그들은 아무도 아프지 않았고,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 나는 토끼 할머니가 읽어준 이야기처럼 내가 아버지의 병을 고치기 위해 거칠고 험한 길을 떠나고 내가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곳에 내 자리는 없었다. 나는 그들의 고요한 생활을 휘젓고 싶지 않았다. 아니, 나는 평범하고 반듯한 그들의 삶에 끼어들 자신이 없었다. " (p. 114)

설화 속의 '바리'의 이야기는 지역에 따라서, 구술자에 따라서 다른 이야기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황석영' 작가의 <바리데기>와 '프린세스 바리'는 또 다른 이야기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온다.

암울하고 칙칙하고 읽은 후에 느낌이 멍멍하다는 것은 같을지 몰라도 두 이야기가 추구하는 바는 다른 것이다.

<프린세스 바리>의 바리는 가장 본능적인 인간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잠시 출생의 비밀을 더듬어서 자신의 가족을 찾아가지만, 그 가정의 평화를 깨뜨리기 싫어서 말없이 돌아서야 하는 것이다.

학교 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잘 사는 것에 욕심도 없고, 자신의 본능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삶.

그러나, 세상은 그런 그녀를 가만 놓아 두지를 않는다.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이용하려는 자들도 있는 것이고, 그녀의 행복을 짓밟는 자들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행하는 자살 안내자의 역할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면서 서슴없이 고통받는 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도와주기도 한다.

<바리데기>를 읽은 후에도 마음에 개운한 느낌보다는 무언지 모를 앙금들이 가라 앉았는데, <프린세스 바리>도 역시 읽은 후의 느낌이 그리 좋지는 않다.

이 소설을 통해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이 책은 제 2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데, 제 1회 '혼불 문학상 수상작'인 <난설헌/ 최문희 ㅣ 다산책방 ㅣ 2011>때도 그런 생각들이 들기도 했었다.

소설의 마지막 책장을 덮을 때의 개운함이나 가슴에 깊이 새겨지는 여운보다는 암울한 삶의 여인들의 모습이 칙칙하게 남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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