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이 사랑한 예술
아미르 D. 악젤 지음, 이충호 옮김 / 알마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구조'에 대한 연대의 힘, 세상을 바꾸다. 그 원천은 수학자 집단 '부르바키'!

 
  수학은 명짐함을 생명으로 한다. 문화에서는 서로 다른 문화의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수학의 세계에서는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는 명제가 환영받는다. 어쩌면 세상에 유일하게 영원하다고 할 수 있는 존재라고 할까. 구조주의가 나오기 이전에는 수학에서의 증명과정이 엄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세계대전이라는 큰 전쟁이후, 수학자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쳤고, 세계 제일의 수학은 독일이 잡고 있었다. 아직 세상에 유명세를 얻지 못했던 수학 교수들은 교과과정 선택에 대한 공통점을 찾기 위한 모임을 가지게 되고, 그 모임의 이름을 '부르바키'라고 짓는다.    
 
  해석학개론 위원회라는 모임으로 시작된 그들의 모임은, 좀 더 넓고 깊게 수학과 세상 사람들에게 기여하려 하였고, 공동모임으로, 저작권을 공동의 단체에 놓고, 만장일치로 회원을 받아들이는 등, 공동의 연구를 시작한다. 앙드레 베유가 주축이 된 모임은 구조주의가 여러 학문의 분야에 전달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실존주의에서 구조주의로 변화는 과정의 가장 큰 역할은 레비-스트로스의 저작이었고, 레비-스트로스가 자신의 저술을 완성하는데 큰 도움을 앙드레 베유가 제공하였다. 세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은 수학이, 어떻게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을까. <수학이 사랑한 예술>은 이미 사라진 사조인 구조주의에 큰 역할을 한 '부르바키'의 형성과 발전, 그리고 변화의 기회와 몰락의 과정을 알려준다.

 
#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 '부르바키' 이야기

 

  알렉상드르 그로텐디크의 실종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부르바키의 한 단계 더 큰 발전을 기여할 수 있었던 그는 정치권으로 도전했다가 상처를 입은 후, 부르바키 회원들과의 대립으로, 은거를 택해버린다. 초창기 앙드레 베유의 전쟁당시의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와 함께, 각 수학자들의 간단한 일화들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수학이야기가 아닌, 수학자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일까. 어렵고 딱딱하지 않고, 그들의 부르바키 형성과 발전 과정을 재미있게 따라 읽을 수 있다. 언어학, 인류학, 심리학, 정신의학, 경제학, 문학, 예술까지 부르바키 수학자들과 그들의 사상이 어떻게 각 분야에 영향을 끼치는지 알려준다.  

  각 부족간의 결혼이 아닌, 각 개체의 관계에 주목했던 사상, 발전하던 상대성이론을 화가 등의 예술가등에게 알려준 수학자 등 타 학문과의 연계와 공동토론과 공동저술의 합의로 오랜시간 함께 공동의 실적을 낸 그들의 성과는 상상이상이었다. 고등학교 수학책의 첫번째에 나오는 공집합의 기호를 앙드레 베유가 만들었다는 사실, 그리고 베유와 그로텐디크의 서로 다른 성향과 반목이 '부르바키'의 발전에 큰 기여를 하지 못한 점은 아쉬웠다.  
 
  하나의 이익을 위해 공동의 사람들이 헌신의 마음으로 기여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그들이 무명이기 때문에 가능했을까. 보이지 않는 작은 연대의 힘은 한 시대의 조류를 변화시킨다고 할까. 어쩌면 전혀 존재하지 못하는 존재로 잊혀질 수도 있는 대상이 하나의 세상에 큰 족적을 남긴 과정이 흥미로웠다. 보이지 않는 작은 틈들이, 서로 연계되어 큰 폭발을 일으킨다고 할까. '부르바키'를 통해 한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렘브란트를 만나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 지음, 문지혁 옮김 / 가치창조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 의식을 가지고 처음 만났던 미술가, 렘브란트.

  
   사실 난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기도 했고, 선생님들의 칭찬을 받지 못하는 것이 결합되어, 그냥 미술이 싫어졌다. 어렸을 때 싫었던 것들은, 어른이 되어서 잘 친해지지 않는다. 그랬던 내가 처음 미술작품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최영미 시인이 쓴 <시대의 우울>을 통해서였다. 그림을 통해, 그림의 매력에 빠진게 아니라, 작가가 이야기 한 렘브란트를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는 그 이야기, 그리고 많은 예술가들이 남긴 렘브란트의 자화상에 대한 글귀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렇게 렘브란트를 알게 되고, 고흐를 만나고,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하나씩 빠지기 시작했다.

  그의 작품을 보면, 색이 아니라 멋진 수동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명품사진을 보는 느낌이다. 그 누구보다 빛을 잘 다룰 줄 알았던 달인이라고 할까. 똑같은 주제를 담은 동시대의 다른 화가의 작품을 보면서, 빛을 표현하는 색감의 차이만으로, 그림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빛과 어둠의 차이만큼 굴곡지었던 그의 인생까지까지 알게 되면 한 편의 인생의 격정을 겪어낸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그의 작품들에서 쉽게 눈을 뗄 수 없어진다.

  <렘브란트를 만나다>라는 제목에서, 렘브란트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평론은 아닐까 기대하고 책을 선택했다. 제목에 끌렸다고 할까. 첫 장을 넘기고, 한 편의 글과 한 편의 시를 보면서, 이전에 만난 <고흐를 만나다>가 떠올랐다. 첫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녀가 보여주는 렘브란트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찬찬히 글들을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때론 그림을 오래 쳐다보기도 하고, 되뇌이듯 그녀의 시를 반복해서 읽어보면서, 렘브란트의 그림을 그녀와 함께 같은 시간 바라보았다. 내가 느끼지 못한 많은 부분들을 들려주는 그녀의 이야기에,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 하나의 그림, 하나의 글, 그리고 한 편의 시.

 
  <고흐를 만나다>의 구성과 동일하다. 한 편의 그림에, 하나의 단상이 나오고, 저자가 본 그림에 대한 짧은 글이 드러나고, 마지막으로 한 편의 시가 등장한다. 짧은 글은 여행을 테마로, 작품에 대한 짧은 생각이 드러나고, 한 편의 글에는 그림에 대한 세세한 부분들이 저자의 느낌에 의해 글로 드러난다. 시는 저자의 생각을 시의 형식으로 담아냈다. 시를 짓는 건 특별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능력이기 때문일까. 그녀의 시보다는 글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그림이 만들어지는 장면 전과 장면 후의 느낌이 저자의 글에 자연스럽게 드러난다고 할까. 맥엔타이어, 그녀가 본 렘브란트 그림에 대한 느낌이 어떠한지 글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그림을 보고 시만 읽었을 때보다, 글을 읽고 난 후, 시를 접하니 좀 더 대하기가 편했다.

  청년 시절과 우스꽝스런 표정의 자화상, 노년의 자화상, 돌아온 탕자, 야경 등은 워낙 알려진 작품들이라, 어느 정도 짐작을 할 수 있었지만, 성경에 관련된 그림들은 많이 낯선 느낌이었다. 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와 종교를 알고 있다면, 좀 더 렘브란트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외한이 바로 접하는 것보다, 어느정도 렘브란트에 대해 책과 이야기로 만난 이가 보가 더 좋을거라 생각한다. 

 

  렘브란트는 노골적인 색감이 아니라, 빛을 통해 말하는, 그림으로 '은유'를 표현하는 시인이다.   


  렘브란트의 그림에는 진실보다 더한 아름다움이 들어왔다. 그러나 왜곡되지 않은 아름다움. 모든 것을 잃은 자의 정직한 슬픔과 주름.     


  베르메르의 빛이 여성적이라면, 렘브란트의 빛은 남성적이다. 베르메르의 빛이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감미로운 시선이라면, 렘브란트의 빛은 삶의 깊이를 아는 사람의 초월적인 시선이다. 베르메르의 빛이 화사로움과 따사로움이 내재된 고요함이라면 렘브란트의 빛은 암울함과 경건함이 감도는 따사로움과 적막감의 공존이다.  


  렘브란트에 대한 짧은 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조금 더 깊이 렘브란트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킨다고 할까. 햇살이 비치는 아침 햇살에, 그리고 석양이 지는 햇무리가 살짝 남아있는 여운에 그의 그림과 작가의 글을 읽을 계획이다. 자연의 풍광과 그림의 묘한 매력, 저자의 글을 보다보면 내 마음의 예술의 심미안의 씨앗이 뿌려질거라 생각한다. 그 작은 씨앗의 기회를 안겨준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구회 추억
신영복 지음, 조병은 영역, 김세현 그림 / 돌베개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생의 마지막 순간, 당신의 마음 속에 남은 추억은 무엇인가요? 

  
  
  1968년 이른 봄철, 숙명여대 교수였던 저자는 서울대학교 문학회의 초청을 받고, 서오릉으로 한나절의 답청놀이를 가던 중, 시골풍경과 소달구지의 바퀴자국을 닮은 여섯명의 아이들이 봄나들이에 나온 모습을 목격한다. "이 길이 서오릉 가는 길이 틀림없지?"라는 첫 마디로 시작되는 그들의 대화, 그리고 씨름과 한나절의 즐거운 추억을 남긴 채,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는 이야기를 전해듣지만 저자는 잊어버리고 만다. 15일 후, 문화동의 산기슭에서 사는 세 친구의 안부를 묻고 모임 이름을 지어줄 것을 요청하며  사진을 받았으면 한다는 편지를 받는 순간, 반성의 마음을 갖게 된 저자는 "이번 주 토요일 오후 6시, 장충체육관에서 만나자"는 엽서를 보내고, 그때부터 한 달에 한 번 저자와 여섯친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그냥 만나는 것이 좋았던 그들의 모임은 한 달에 한 번 스스로 번 10원과 저자의 40원을 보태 한 달의 백원을 저축하는 모임이 되었고, 모임 때마다 한 권의 책을 읽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 되었다. 여름에는 마라톤을 준비하고, 동네 주변을 쓸고, 동네 계단의 얼어있거나 젖어있던 부분을 걸어다니게 편하게 만든 그들의 봉사활동의 모습과 너무나 가난해서 중학교에 갈 형편이 어려웠던 그들이 고난과 그것을 지켜보는 저자의 마음, 담낭절제수술로 수도국군병원에 입원했을 때 소풍때도 가져오지 못한 삶은 달걀을 싸왔지만, 결국 돌아가야만 했던 그들의 마음들이, 저자의 추억으로 갈무리 되어 하나의 풍경으로 그려진다.

  몸이 완쾌되어 백운대로 소풍을 가게 된 그들을 위해 육군사관학교 경제학부 교수이자 이화여대에 출강중이였던 저자는 육군사관생도와 이화여대 '청맥회' 학생들을 초대하여 즐거운 소풍을 떠난다. 1968년 7월, 군사정부에 의해 구속되기까지 이어졌던 그들의 만남은 사형을 언도받은 저자로 인해 한 순간의 추억으로 갈무리 되고 만다. 정치적 권력을 위해 개인을 빨갱이로 몰아부쳤던 검찰과 정보부는 '청구회'라는 모임을 심문하고 그들이 불렀던 노래의 '주먹쥐고'라는 부분을 사회주의 혁명을 위한 폭력을 준비하는 단어가 아니냐며 저자를 몰아부친다. 군사재판에서 1심을 언도받고 사형을 선고받은 저자는 자신의 생애를 돌아보며, 이루지 못한 약속, 아쉬운 순간들을 떠올리다, 청구회의 추억을 떠올리게 된다.
   

# 옥중에서 쓴 추억의 편지. 추억으로 되살아나는 그때의 풍경들.

  

  하루에 두 장, 화장지 대용으로 나눠 준 재생종이 두 장에 쓴 청구회의 추억은, 다른 저자의 메모와 함께 공책처럼 묶여 있다가 대법원 판결에서 사형이 파기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면서 근무하는 헌병에게 전해진다. 헌병에게 집으로 보내달라는 부탁과 함께 여의치 않으면 없애도 괜찮다는 말로, 당부하며 적은 글은 오랜세월 잊혀지다가 1988년 출소즈음 집을 이사했을 때 아버지의 방에서 발견되어 1993년 영인본에 실리게 된다. 잊혀질 수도 있을 추억들이, 따스한 우연의 힘에 의해 다시 세상에 빛을 보는 순간이라고 할까. 출소 3년 후, 저자의 미술선생님이던 김영덕님의 <전장의 아이들>이란 사진을 보고 청구회의 추억을 다시 떠올린 저자는 청구회 멤버들을 수소문하고, 일부 학생을 만나기도 한다. 변해버린 시간동안 쌓여있던 그들의 삶의 무게만큼 다양한 삶들을 그들은 살고 있었고, 다시 한 편의 추억의 장면으로 남겨져 버린다.

  저자의 아름다웠던 생의 한 순간의 풍경들을 지켜보다보면, 잊고 살았던 어린 시절의 풍경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저자의 글 사이사이의 그림들은 풍경을 떠올리는 일을 도와준다. 초등학교 때 동물원에 가서, 소풍을 갔던 추억들, 그때는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되지 않아 사진기 하나 사는데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되었던 때였다. 저자의 추억은 내가 태어나기도 전의 추억이라, 그때의 실상을 떠올릴 수 없지만, 살다보면 잊어버리고 마는 추억의 순간들을 떠올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가난하지만, 서로 인정이 넘치였던 옛날은 낯선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일도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낯선 이와 대화하는 일은 서로에게 경계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저자의 추억이 현재에 되살아날 수 없는 건, 그만큼 우리의 삶도 많은 부분 변하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술이 고도화로 발달된 만큼, 사람들의 마음 씀씀이도 발달되었다고 말하기 힘들다.

  12월, 한 해를 돌아보기 좋은 시기이다. 한 해만 돌아보지 말고, 조금 더 시간의 폭을 넓혀 어린 시절의 잊어가는 추억들도 생각하는 틈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추억을 되살림으로써, 지금의 삶이 나아지는데 실질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지만, 떠올리고 싶은 추억들은 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주기도 한다. 자주 연락하지 않지만, 가늘고 길게 이어지는 지인과 어제는 오랜 통화를 했다.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에 오랜 시간의 머뭇거림은 사라지고, 바로 옆에서 소곤소곤 대화하는 느낌이었다. 우리의 가늘고 긴 추억도, 청구회의 추억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좋은 인연을 맺어야 겠다고 다짐했다. 통화를 마치고 나니, 청구회의 추억에서 추억이란 단어가 더 크고 마음에 가까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기에는, 바쁘고 고되고, 삶의 여유가 없는 팍팍한 세상이다. 그럴수록 추억이 필요하다. 바로 당신을 위해.

 

P.S  영역본도 함께 덧붙여져 있다. 영역본을 보면 저자의 문체의 아름다움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학생들에게는 영어공부에도 도움이 될거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의 현대문학 가가형사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살인이 벌어지다. 범인도 밝혀졌다. 도대체 왜???
  

  4월 16일 화요일, 히다카 구니히코는 정원수가 있는 집에서 살고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살인 사건이 벌어진 날, 그는 초등학교, 중학교 동창이자 절친한 친구인 노노구치를 만난다. 중학교 때 왕따학생을 괴롭히고, 타학교 미소녀를 성폭행한 동급생을 모델로 한 소설로 인해, 피해자 여동생으로부터 원고를 고쳐달라는 부탁을 받은 후, 마감 원고를 작성하다 살해당하고 만다. 유력한 용의자는 아동 작가인 노노구치, 가가형사는 노노구치와 예전에 두 사람 모두 중학교 선생님일때 함께 선생님으로 만난 친분이 있다. 쉽게 범인은 밝혀지지만, 그 이유에 대해서 용의자는 입을 열지 않는다. 동기를 밝히기 위한 가가형사의 노력으로 하나씩 밝혀지는, 충격적인 사건의 전황, 하지만 가가형사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떨쳐버리지 못하는데.....
   

#  Who, How 에서, Why 로 넘어가는 히가시노 추리소설의 수작.

     
  고전적 추리 소설은 범행 수법과 범행을 저지른 이가 누군지에 관해 초점이 맞추어진다. 알리바이를 어떻게 조작하였을 때, 범행의 혐의를 어떻게 피해가려고 함정을 숨겨놓았을까, 하는 함정을 명탐정이 푸는 과정에서, 스릴를 느끼게 한다. 저자는 용의자가 되고, 독자는 탐정이 되어 사건을 푸는 저자와의 추리게임이라고 할까. 트릭이 치밀하면 치밀할수록 나중에 진상이 밝혀졌을 때 얻는 스릴도 강해진다. 명탐정 홈즈와 괴도 루팡,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등에서 그런 재미를 충분히 느꼈던 기억이 있다. <악의>에서는 사건 초반에 추리소설의 큰 호기심의 동력인 두 가지를 공개해 버린다. 범인도 밝혀졌고,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도 전체 분량의 삼분의 일이 넘기도 전에 밝혀져 버린다. 하지만, 동기를 용의자가 숨기려 애쓴다. 왜 숨길까? 도대체 이유가 뭐지? 하면서 알려진 정보와 결합되어 하나씩 의도를 밝혀내기 시작한다. Why! 범행위주로 사건을 풀어가는 히가시노 게이고 추리소설의 정점에 선 작품이라 생각한다. 일본에서 이 작품이 출판된건 2000년이다. Windows 2000이 나오고 사람들이 전자메일을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를 대상으로 해서, 팩스와 컴퓨터 기능이 트릭의 한 종류로 사용된 점이 독창적이다. 무엇보다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작품의 매력이 시간에 녹슬지 않은 점이 좋았다.


# 이유와 사회현상의 결합.
   

  단지 이유만 부각되었다면 재미있는 추리소설에 그쳤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호숫가 살인사건>에서는 우리나라로 따지면 특목고에 입학하기 위해, 부정 시험문제를 유출해서 연습을 시키다 살인사건에 연루되는 사건을 통해, 일본 사회의 학업비리를 돌아보게 한다. <악의>에서도 왕따을 시켰던 가해자의 입장, 왕따를 당했던 피해자의 입장, 왕따를 지켜보는 선생님의 입장을 통해서, 학교폭력의 문제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한 점이 일반 추리소설과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추리소설의 흥미진진함과 함께 사회 현상의 문제점도 돌아볼 수 있다고 할까. 평생 그 기억이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는 학교폭력에 가담해야 하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과 죄책감, 자신의 모든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저지르는 질투와 편견, 무의식중에 남아있는 어머니의 편견이 자식에게 끼치는 영향 등 우리 사회의 현실에 대해, 다시 돌아보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처럼 그 당시 현상을 볼 수 있게 하는 묘미도 작게나마 가지고 있다는 점이 다른 소설과 다른 점이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추리소설이 지니는 가장 기초적인 호기심이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유지되는 점이 좋다. 저자의 안내에 따라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계속 걷고 있었는데, 나중에 결과를 보니, 결국 오른쪽으로 걸어서 나온 길에 같다는 점을 깨달은 느낌이라 할까. 책을 읽다보면 요시다 슈이치의 <악인>이 떠오른다. 정말 악인은 누구일까? 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었던 <악인>과 인간 내면에 스며있는 악의를 다양한 시각에서 보여주는 <악의>를 보며 진실이란 무엇인지, 사건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시간이었다. 한 가지 장면을 다각도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을 잘 캐치하는 작가의 매력이 가득한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 이 남자, 독특하다.
 
 
  품위 있고 단정하지만, 가끔 일탈의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엠므씨. 스탠드 칼라와 더블 커프스 소매에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가 있는 면 셰츠, 면바지를 고른 후, 넥타이와  같은 색깔의 목이 긴 양말을 고른다. 세심하면서도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엠므씨가 옷단장의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40년간 꾸준히 이용한 머스크 향수를 뿌리는 일이다. 그를 만났던 여자들이 좋아했던 그의 살냄새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자신감을 배가시켜 주는 머스크 향수는 그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병과 포장이 바뀐 새향수병을 열었던 엠므씨는 오랜 정부 이브씨가 건넨 냄새가 달라졌다는 한 마디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모양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전 향수병에 새 향수병의 내용물을 옮겨담는 시도를 하면서 엠므씨는 잃어버렸던 향을 다시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기 시작한다. 향수회사의 매각으로 인한 사향노루의 천연향수에서 인공향수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엠므씨는 머스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고군분투 끝에 얻은 향수의 양은 3년 정도의 분량뿐.. 그때부터 엠므씨의 일상은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 '구라'의 품격을 높이는 작가의 글솜씨에 흠뻑 취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향수, 자신의 부족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 향수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작은 향수 하나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왠지 젊음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신에게는 소중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고투기를 보는 듯 해 안쓰럽다. 독특한 엠므씨의 개성에 흠뻑 취했다고 할까. 향수를 잃고 나서 망연자실해지는 엠므씨의 모습과 부족한 향수 대신, 남은 삶으로 바꾸어 마지막으로 소진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외국에서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자신이 죽은 후에 재산을 이전하는 조건으로 젊은 세대가 죽기전에 계약을 하는 일이 흔하다고 하던데, 엠므씨가 집을 내놓고 사람들을 물색하는 장면을 통해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익숙하지 않는 문화의 차이도 배울 수 있어 즐겁다.
 
  영국인 아버지와 레바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계 학교를 수학해서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까지 능통한 저자의 삶이 이채롭다. 스타일, 멋을 강조하는 프랑스인에 대한 약간의 풍자도 느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웃음으로 일관하지만, 세심히 들여다보면 인간 본연의 심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것 하나에 연연하는 인간의 마음, 형식과 품격에 얽매이는 마음, 변하지 않는 편견, 인간 특유의 엉뚱함까지, 합리적으로 보이면서도,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때론 작은 향수 때문에 더 큰 것을 버리기도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명의 독특한 캐릭터로 긴 호흡의 글을 쓸 수 있는 건 작가의 남다른 역량이라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반전의 웃음을 주는 엠므씨, 그와 함께 한 짧은 생이였지만, 그의 독특한 행동 덕에, 즐겁게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때를 잘 만났으면, 많이 팔릴 수도 있었을 텐데, 자살이 사회적 문제가 되던 시기에 재출간되어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소설은 현실이 아닌, 사실에 가까워 보이는 허구이니까, 가볍게 읽다보면, 고집쟁이 멋쟁이 엠므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말도 안되는 징크스가 인간의 삶을 많이 옥죄기도 한다.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일에 자신의 마음을 쓰는 건,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애쓰지만, 합리화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풍자하는 대상들을 보다보면,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다국적기업, 천연동물 보호, 브랜드에 집착하는 마음, 징크스 등등 충분히 공감가능하지만, 비현실적인 엉뚱한 이야기의 향에 흠뻑 취해버렸다. 작가의 다른 책이 기다려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