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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퍼시 캉프 지음, 용경식 옮김 / 끌레마 / 2008년 11월
평점 :
절판
# 이 남자, 독특하다.
품위 있고 단정하지만, 가끔 일탈의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 엠므씨. 스탠드 칼라와 더블 커프스 소매에 빨간색과 흰색 줄무늬가 있는 면 셰츠, 면바지를 고른 후, 넥타이와 같은 색깔의 목이 긴 양말을 고른다. 세심하면서도 모자라거나 넘치지 않게 자신을 가꿀 줄 아는 엠므씨가 옷단장의 마지막으로 하는 일은 40년간 꾸준히 이용한 머스크 향수를 뿌리는 일이다. 그를 만났던 여자들이 좋아했던 그의 살냄새와 상승작용을 일으켜 자신감을 배가시켜 주는 머스크 향수는 그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병과 포장이 바뀐 새향수병을 열었던 엠므씨는 오랜 정부 이브씨가 건넨 냄새가 달라졌다는 한 마디에 깊은 충격을 받는다. 모양이 바뀌었기 때문이었을까? 그전 향수병에 새 향수병의 내용물을 옮겨담는 시도를 하면서 엠므씨는 잃어버렸던 향을 다시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기 시작한다. 향수회사의 매각으로 인한 사향노루의 천연향수에서 인공향수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엠므씨는 머스크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고군분투 끝에 얻은 향수의 양은 3년 정도의 분량뿐.. 그때부터 엠므씨의 일상은 달라지기 시작하는데..
# '구라'의 품격을 높이는 작가의 글솜씨에 흠뻑 취하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향수, 자신의 부족한 결핍을 채우기 위해 향수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엉뚱하고 말도 안되는 이야기가, 재미있고 흥미진진하게 다가온다. 작은 향수 하나로 인해, 자신의 존재감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왠지 젊음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자신에게는 소중한 무언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인간의 고투기를 보는 듯 해 안쓰럽다. 독특한 엠므씨의 개성에 흠뻑 취했다고 할까. 향수를 잃고 나서 망연자실해지는 엠므씨의 모습과 부족한 향수 대신, 남은 삶으로 바꾸어 마지막으로 소진하려 애쓰는 모습이 안쓰럽다. 외국에서는 자신의 집을 담보로, 자신이 죽은 후에 재산을 이전하는 조건으로 젊은 세대가 죽기전에 계약을 하는 일이 흔하다고 하던데, 엠므씨가 집을 내놓고 사람들을 물색하는 장면을 통해 생생하게 알 수 있었다. 나와 다른 세계에 사는 작가의 글을 읽다보면, 익숙하지 않는 문화의 차이도 배울 수 있어 즐겁다.
영국인 아버지와 레바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프랑스계 학교를 수학해서 영어, 프랑스어, 아랍어까지 능통한 저자의 삶이 이채롭다. 스타일, 멋을 강조하는 프랑스인에 대한 약간의 풍자도 느낄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내내 웃음으로 일관하지만, 세심히 들여다보면 인간 본연의 심성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작은 것 하나에 연연하는 인간의 마음, 형식과 품격에 얽매이는 마음, 변하지 않는 편견, 인간 특유의 엉뚱함까지, 합리적으로 보이면서도,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고, 때론 작은 향수 때문에 더 큰 것을 버리기도 하는 인간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한 명의 독특한 캐릭터로 긴 호흡의 글을 쓸 수 있는 건 작가의 남다른 역량이라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반전의 웃음을 주는 엠므씨, 그와 함께 한 짧은 생이였지만, 그의 독특한 행동 덕에, 즐겁게 웃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때를 잘 만났으면, 많이 팔릴 수도 있었을 텐데, 자살이 사회적 문제가 되던 시기에 재출간되어 조금 안타깝기도 하다. 소설은 현실이 아닌, 사실에 가까워 보이는 허구이니까, 가볍게 읽다보면, 고집쟁이 멋쟁이 엠므씨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말도 안되는 징크스가 인간의 삶을 많이 옥죄기도 한다. 비상식적으로 보이는 일에 자신의 마음을 쓰는 건, 합리적으로 행동하려 애쓰지만, 합리화하기 쉬운 인간의 마음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가 풍자하는 대상들을 보다보면, 우리 사회의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다국적기업, 천연동물 보호, 브랜드에 집착하는 마음, 징크스 등등 충분히 공감가능하지만, 비현실적인 엉뚱한 이야기의 향에 흠뻑 취해버렸다. 작가의 다른 책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