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선물을 주고받는가 - 선물의 문화사회학 SERI 연구에세이 53
김정주 지음 / 삼성경제연구소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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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물, 받는 것도 주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기념일과 설과 추석, 졸업, 생일 등 특별한 날이 돌아오면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많이 고민하게 된다. 둘 사이의 관계에 따라, 그가 좋아하는 선호에 따라 선물의 내용이 결정이 되는데, 관계라는 게 둘 사이에서 정의되는 것이라서 내 생각과 달리 상대가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이 높아 늘 고민하게 된다. 보이지 않는 감사와 축하의 의사를 보이는 물건을 통해 전하는 선물! 선물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던 중에, 이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선물의 문화 사회학이라는 부제와 영국과 한국의 사례를 비교하는 듯한 목차에 마음에 끌렸다. 

  선물은 관계의 친밀도를 정의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말과 제 3자에 의해 선물의 성격이 결정되기도 한다는 저자의 글에 동의한다. '접대'가 필요한 비즈니스 현실과 '뇌물'과 '선물' 의 미묘한 경계는 명확하게 하나의 선으로 나누기 어렵다. 개인과의 관계에 적절한 선물을 하고 싶은 방법을 알고 싶은 기대에 책의 내용은 일치하지 않았지만, 선물과 뇌물의 미묘한 경계에 대한 논의에 호기심이 일었다. 

 
# 3가지 연구를 통해 '선물'의 본질적 의미에 대해 고찰하다. 


  유교문화와 집합주의 문화가 강한 한국의 선물교환 형태의 집중 조명, 개인주의, 권력거리, 유교의 영향유무로 살펴본 각 나라별 선물 문화의 특색,  공기업과 사기업으로 나뉘는 직업의 형태와 고위직과 하위직으로 나뉘는 직급의 차이를 두고 국가 내에서 선물에 대한 입장의 차이를 연구하였다. 첫번째 한국의 선물문화에 대한 연구에서는 결혼식, 돌, 장례식 등 행사에 '현금'을 선물하는 건 당연하다 생각했는데, 문화에 따라 다른 차이를 보낸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차이가 유교와 집합주의 문화의 영향이라는 특색을 두 번째 세계의 선물 문화의 연구를 통해 볼 수 있었다.  

  가장 흥미로웠던 연구는 세 번째 영국과 한국, 공기업과 사기업, 고위직과 하위직 4개의 그룹간의 토론연구 결과였다. 현직 상사, 전직 상사, 직장내 이성간 선물로 살펴보는 각 포커스 그룹간 토론은 현재 기업 내에서 '선물'과 '뇌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똑같은 선물도 고위직과 하위직이 생각하는 방향이 다른 점이 인상적이었다. 고위직은 받는 기회가 많고, 그런 고가의 선물을 했다는 것 자체가 자신에 대한 영향력과 존중의 의미로 해석한다는 의견과 하위직에서는 '동질성'을 중시하는 문화가 있다는 의견이 기억에 남았다. 선물을 주고 받는 일이 많은 영업직에서 좀더 유연한 생각을, 공기업에서는 조직전체의 입장에서 더욱 엄격하게 '선물'에 접근하는 점도 알 수 있었다. 또한 선물을 공개적으로 건네는 것과 전하는 이의 태도에 따라 선물과 뇌물의 경계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점에서는 선물과 뇌물의 미묘한 차이의 규정이 힘들다는 사실을 생각할 수 있었다.  

  '선물' 자체에 사회적 의미를 지닌 요소가 많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직급에 따라, 조직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끼는 행위, 바꿔말하면 자신이 부탁을 들어 줄 수 있는 범위내에서는 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뇌물과 선물의 미묘한 차이의 구분의 어려움을 더욱 느낄 수 있다고 할까.  

 
# 더 많은 연구를 기대하게 하는 책.

 
  저자는 서양위주로 진행되는 '선물'에 대한 연구에 '동양'의 연구를 포함한 점을 책의 특징으로 꼽았다. 개인주의와 집합주의, 권력거리, 유교의 영향으로 살핀 저자의 연구는 상식으로 생각되는 결과와 비슷한 결과를 도출하였다. 뻔해보이는 결과지만, 그 자료를 기초로 다른 후속연구들을 기대하게 하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생각한다. 저자가 이야기 하였듯이 도시와 농촌의 선물에 대한 생각의 차이, 좀 더 풍부한 표본집단, 자국과 1.5세대, 이민 2세대가 생각하는 문화적 차이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다면 '선물'에 대한 의미를 좀 더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연구들이 기업의 지원을 받아 진행되어 개인의 '선물'에 대한 연구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기업내 '선물'의 적정성 논의도 연구하고, 개인간의 부담없는 선물의 경계에 대한 연구도 많이 진행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탈리아에서는 하얀 국화가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어, 애정을 고백할 때 선물을 하기가 곤란하듯, 외국인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문화를 고려한 후 선물을 한다. 같은 문화권 같은 지역에 살더라도, 개개인의 가정환경과 가치과 선호 대상에 따라 같은 '선물'도 사람들마다 다양한 의미로 전달된다고 할까. 그 사람에 대해 많이 알려는 노력과, 자신의 의도를 글이나 다른 방법으로 전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면, '선물'의 효과가 더욱 높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선물'의 의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좋은 의도로 받고, 마음이 불편할 때는 상대가 불편하지 않게 거절하는 방법은 알아두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내 마음과 같은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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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 어린이가 어른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열가지 - 어른들이 알아야 할 자폐에 대한 오해와 진실
엘런 노트봄 지음, 신홍민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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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촌동생과 '말아톤'의 초원이가 생각나서 고른 책.
 
 
  '세상사람과 다른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초원이가 어머니의 권유에서, 스스로 마라톤의 매력에 빠져 달리는 감동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말아톤'은 자극적이지 않지만, 가슴 뭉클한 잔잔한 이야기들로 눈가를 촉촉하게 했던 영화였다. '말아톤' 의 실제 주인공인 배형진군은 그후 철인3종경기까지 완주하였지만 지금은 달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는 뉴스를 보았다. 정부의 지원을 받는 장애인 고용사업장에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적응에 실패하여 회사를 그만두고, 어머니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 적고 배려가 깊은 일본으로 귀화하려 일본어 공부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마음이 아팠다. 옛날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의 '편견'의 틀은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거니까.  

  영화 '말아톤'에 나오는 '형진'이의 일상과 사는 세상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에 책을 골랐다. 무엇보다 아동전문가가 아닌, '아이'의 시각에서 보는 관점을 깊이 이해하고 응원해주는 현명한 '어머니'가 이야기하는 사랑이 담긴 이야기이기에 더욱 관심이 끌렸다. 사촌동생 중 하나가 주의력결핍 과잉행동(ADHD)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ADHD를 겪은 첫 아이와 두 번째 아이는 자폐증 진단을 받은 브라이스의 어머니인 저자는 브라이스와 함께 보낸 시간이 축복된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힘겨운 고통, 많은 한계와 이루지 못하는 제약, 그리고 많은 헌신을 필요로 하는 보호자로서의 삶을 딛고, 그녀가 이야기하는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에게 드리워진 편견과 의도하지 않는 고정관념을 벗기기 위해, 그녀와 같은 처지의 부모들에게 힘을 주기 위해 그녀는 아이의 시각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에게 씌워진 편견을 벗겨주는 책. 

    
  저자는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세태에 대해 경고한다. '뚱뚱한 사람'을 처음 보았을 때, '이 사람은 자기관리를 못하는구나'라는 편견을 가져서는 안되는 것처럼, 소아자폐증 아이에 대해서도 그래서는 안된다고 이야기한다. 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가능성에 주목해서, 사회적으로, 신경정상인, 보통 아이에 비해 특수하고 예측불가능한 행동을 하는 아이의 행동을 부정적으로만 바라보지 말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생각해 주기를 권한다. 바이올린 4대를 했던 집안의 아이가 바이올린에는 재능이 없지만 야구에는 소질을 보일 수 있다면, 야구와 더 함께 하고 싶은 아이의 욕구를 존중해야 하듯이, 긍정적, 잘하는 방향으로 격려해야 한다는 말은, 모든 아이에게 다 해당하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폐증 진단을 받지 않았더라도 저자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과 세심한 관찰과 원인분석, 긍정적 행동으로 유도하기 위해 노력했던 끊임없는 인내의 힘이 있었기에 저자의 아들인 브라이스는 남들과는 다른 발달관계를 밟았지만 어머니의 기다림의 힘에 힘입어, 보통아이가 하는 많은 행동들과 사회적 활동에 어려워하지 않고 해내게 되는 결과를 빚어냈다. 저자의 실제 육아경험담이 생생히 10가지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어 매우 설득력이 강하다.

  자폐진단을 받은 아이들은 감각인지에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감과 전정감각(균형), 자기수용감각에 장애가 있기에,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일상생활을 해내기 힘든 것처럼, 아이는 우리가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롤러코스터를 탄 환경으로 인식된다는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아이에게 너무 지나치거나 둔감한 자극이 오게 되면 아이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데, 어휘력이 부족하기에 적확하게 자기의 의사를 표현하기 보다는 자기통제를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난폭해지거나, 상식에 어긋나는 행동 뒤에는 아이를 자극하는 여러가지 환경적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할까. 아이가 일부러 그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되는 것만으로도 자폐진단을 받은 아이의 이상행동에 대해 우리가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부모의 조건부 기대와 희망이 아이를 망친다는 점도 알 수 있었다. ...하게 해 준다면, 내 아이는 .. 할 수 있을거야 라는 헛된 믿음이 아이를 얼마나 망치는지, 아이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긍정적인 마음과 끝없는 인내로 아이가 사회생활에 할 수 있는 긴 여유를 주어야 한다는 말을 책을 통해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 세상과 다른 자기만의 세계를 가진 아이에게는, 

  사회로 안내하는 인내심 많은, 사랑이 넘치는 부모가 필요하다. 
 
   
  자폐진단을 가진 아이는 일부러 부모를 속상하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을 부모는 꼭 알아야 한다 생각한다. 모든 행동은 의사소통이다.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다라는 사실을 인지하고, 끊임없는 관찰과 원인분석을 통해, 아이의 행동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유도하는 일이 부모에게 필요하다. 사랑하는 마음을 적확하게 표현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할까. 어린아이, 특히 자폐아 진단을 받은 아이는 더 의사소통 능력이 부족하고 시각에 많이 의지하기에, 그에 맞는 시각행동표와 아이의 특성에 맞는 맞춤식 학습, 그리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인내, 인내, 또 인내가 필요하다. 자폐진단을 받은 아이 뿐 아니라, 어린 자식을 둔 부모, 성인들 모두가 한 번은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글 첫머리에 언급했던 초원이는 지금은 엄홍길 대장과 함께 히말라야 등반에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는 칼럼을 보았다. 칼럼에서는 그의 새로운 도전을 칭찬하면서도, 안쓰러운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했다. 무감각한 이웃과 사회의 시선을 끌어내기 위해 그에게 힘든 도전과 극복을 강요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일상속에 충분한 배려를 받으며 살아가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돋움공동체 대표의 칼럼에 공감한다. 저자의 아이 브라이스가 이뤄낸 성과는 '조기개입' 프로그램이라는 미국정부의 지원과 학교에서의 많은 배려와 지원이 뒷받침되어 있었다. 많은 지도와 배려가 있음에도, 자폐진단을 받은 아이는 사회생활을 할 때, 일반적 아이와 어울리는 일에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지원조차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자폐진단을 받은 아이와 함께 생활하는 부모는 얼마나 더 많은 스트레스와 힘겨움을 겪고 있는지 마음이 아팠다. 

  제도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그에 선행되어 사회에서 자폐진단을 받은 아이,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지원과 배려에 대한 인식이 필요함을 느꼈다. 부끄럽게도 사촌동생이 ADHD를 겪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면, 이 책을 읽은 기회는 더 나중으로 미뤄졌을 것이다. 작은 관심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희망도 함께 사라진다고 할까. 책을 읽기 전에는, 버스에서 사람들에게 불편한 행동을 하는 아이와 그 옆에 있는 부모를 보게 되면, '가정교육이 문제야'라고 생각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걸까? 라는 생각이 먼저 들게 되었다.   

  불편한 마음은 아이와 부모 잘못이야로 책임을 돌리면 마음이 편해지지만, '그 아이가 왜 그런 행동을 하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은 좀 더 사회적 관심을 낫는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그  작은 관심들이 모여서, 작은 지원이 되고, 사회적 연대가 모아지면, 좋은 제도로 정비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제도정비와 함께 사회적 공감이 필요하다고 했을 때, 공감을 쉽게 할 수 있는 작은 열쇠와 같은 책이었다. 내 아이가 매우 소중한 부모가 타인의 아이와 그 부모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가질 수 있게 꼭 읽었으면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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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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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특한 기벽의 소유자인 쥐스킨트 씨와의 즐거운 만남.
  
  
  문학상을 받았지만,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은둔생활을 하는 작가. 대중의 관심을 거부함으로써, 도리어 더욱 주목받는 그의 독특한 행동에 끌려, '좀머씨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독일인이었던 그의 이력을 좀더 세심히 알았더라면, '아유슈비츠'의 상처와 연관지어 생각했겠지만,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학창시절 감수성에 가득 찬 마음들이, '진정한 소통'과 '소외'라는 생각의 집으로 안내했다. 10년 후 다시 읽었던 그의 소설은 그때와는 또다른 '일러스트' 를 그린 '상뻬'에 주목하게 했고,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도 살필 수 있는 생각의 거리가 남아있었다.  

  짧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의 글은 쉽게 읽어지지만, 깊은 사유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많이들 사용하고 있지만, 하나라고 적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깊이'라는 제목이 담겨있는 그의 책을 다시 만나게 됐다. 쥐스킨트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작품 뿐이다. 맛이 좋은 차로 유명한 카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 그의 글은, 쉽게 지나치기 쉬운 삶은 문제들을 다시 곱씹게 만든다.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여인의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는 악의적인 의도 없이, 그녀를 복돋아 줄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처음에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는 신문에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평론의 글을 인용해서  '깊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듣게되자, '깊이' 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다른 작가의 작품과 책, 여러가지 방면으로 노력하지만, '깊이'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깊이'라는 말에 천착하다 결국 삶도 작품도 망가뜨리고 고층의 방송탑에서 뛰어내린 그녀는 대중지의 큰 조명을 받게 되고, 평론가는 당혹감을 표현하는 단평을 신문에 기고한다. 

 " ......  그러나 결국 비극적인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총체적인 분열을 나타내고 있지 않는가?  ......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영화, 책, 예술작품 등에서 보이는 평론에서 평론가의 말 한마디에 '권력'의 속성이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평론가의 말 한마디가 대중매체에 의해 유통되면서, 작품의 평가를 결정짓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풍경이 눈에 보인다고 할까. '평론가'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속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잣대, 또는 사회적 잣대를 통해 평가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 제작사의 '누리꾼의 댓글 알바' 논란과 '악플'에 대한 논란, 자신의 작품이 나오게 되면, 온라인 서점에 나오는 독자들의 리뷰들을 꼭 챙겨서 읽는 작가의 행동들이, 함께 떠올랐다. 살아가며 크게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문제들이 그의 글을 읽으면 좀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평론'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못한 양질의 작품을 주목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동시에, 사람들이 작품의 평가에 매달리게 하는 속성이 있다는 점도 함께 볼 수 있게 한다고 할까. 살짝 입에 대어도 깊고 진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카카오 성분이 많은 초콜렛을 먹는 느낌이다.
 

  <승부>에서는 늘 연전연승을 하며, 게임에 임하지만, 늘 멋진 상대에게 멋지게 패하고 싶은 욕망도 함께 지니고 있는 체스 고수가 그 이미지에 휘둘려, 무력하게 화려한 외모와 냉정한 분위기의 청년에게 자신감을 잃어 내내 비굴하고 자신감없이 게임에 임한다. 결국 게임에서는 이겼지만 승부에서는 패한 모습을 보여준다.  

  승리와 패배와 결정되고, 정해진 규칙속에서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체스게임에서도, 경기장의 분위기, 미묘한 심리게임, 늘 승리하는 자가 지니는 패배할 수 있다는 불안과 멋지게 패배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비굴한 굴욕감 등 경기와 상관없는 승부외적인 요소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체스를 모르더라도 책의 내용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매일 경쟁사회에 살아야 하는 현대사회의 승자가 가지는 불안감이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에서는 많은 책과 대화를 통해 특별한 생각에 깊이 함몰되어 "세계는 무자비하게 닫히는 조개이다"라는 명제를 많은 서적과 지식들을 통해 뒷받침하는, 자기만의 신념이 강했던 한 노인의 유언을 볼 수 있었고, <문학적 건망증>에서는 며칠만 지나도, 책의 내용의 텍스트들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행위를 하는 이유를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작가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각양각색의 소재를 다루지만, 각 단편을 읽을 때마다, 삶에서 지나치기 쉬운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에 그의 글을 시간을 두고 곱씹으면서 읽고 싶어진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가가 표현한 글 속에서 생각의 작은 씨앗을 발견해서, 물을 주면서 생각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철학책들은 어려운 개념들을 사용해서 쉽게 다가서기 힘들게 하지만, 그의 책은 쉽게 읽히지만,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고 할까. 소장해서, 틈이 나는대로 글을 읽고 내 생각을 키우고 싶게 만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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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의 재발견 - 원숙한 삶을 위한 친구의 심리학
가와이 하야오 지음, 박지현 옮김 / 동아시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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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정'이 있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있는 학창시절. 정말 '우정'이었을까?
 
 
 
  굳이 친해지려 애쓰지 않아도 쉽게 농담을 건낼 수 있고, 편안한 마음을 가진 친구는 고등학교 때 가장 많이 기억에 남는다. '우정'이 있기에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는 것일까? 정말 그 마음과 기분이 '우정'이었을까? 그렇다면 '우정'은 특별한 시기, 특별한 관계 속에서만 만들어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이 생겨났다.  나중에 배우자를 만나더라도 친구처럼 깊어지는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연인을 만나고 싶은데, '우정'에 대해 도통 가늠을 잡을 수 가 없었다. 『읽기의 힘, 듣기의 힘』이라는 책으로 저자를 만난 기억이 있다. 그때의 좋았던 느낌을 믿고, 선택한 책이다.
 
   
# 새로운 생각이 아닌, '재발견'에 무게를 두고 읽으면 좋은 책.
 
   
   제목과 목차에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드러내는 저자의 특색에 걸맞게, 목차만 훑어 보다라도 책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다. 친구에 대한 일반적인 생각부터, 친구와 선물, 성이 들어갔을 때의 남녀간의 우정, 결혼을 한 이들의 우정, 배신, 동성애, 경쟁심, 친구의 죽음까지 우정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을법한 이야기들이 큰 독창적인 생각 없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우정에 대한 일반인들과 다른 특별한 생각이나, 가슴을 경탄하게 하는 특별한 논의를 원하는 독자에게는 기대에 미치지 않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에서 의미하는 '재발견'에 무게를 둔다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세심한 부분에 대한 저자의 독창적인 작은 생각들을 들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을 상담하는 자신의 경험과 책에서 등장하는 이야기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저자의 설득하는 방법은 저자가 이야기하는 내용에 충분히 공감하는 좋은 지지선이 된다.  무엇보다 남녀간의 우정이 존재하기 힘든 이유를 호리병 주둥이에 올려놓은 엽전에 술을 붓는 명인의 재주가 필요하다고 비유한 점이라든가, '동일시'에 의해 상대의 연인을 사랑하는 경우, 그리고 우정은 높은 이상이 아닌, 밤하늘에 놓인 '별'처럼 함께 방향성을 바라보는 관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소하지만 곱씹어 볼만한 내용이 많아 좋았다.
 
 
     
# 불안전하고 어두운 면도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우정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든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고매하고 인격이 높은 사람에게도, 마음 속 깊은 곳에 깊은 어둠의 그림자는 인간이기에 가지고 있다 생각한다. 불안전하고, 배신할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그래도 역시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게 깊은 우정이 아닐까하는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때론 '이성의 강한 열정'에 의해 깨어질 수 있는 유리와도 같기도 하고, '결혼'이라는 틀로 인해 '우정'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많지만, 우정은 모든 인간관계의 기반이 되며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 동감한다. 

  좋은 인연은 '우리 서로 죽을 때까지 우정을 지키기로 해'라는 맹세나 고집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음먹고, 존중하면서 지켜가는 함께 만드는 이인 삼각게임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내 욕심에 너무 서둘지도, 그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내 생각'으로 속도를 늦춰서도 안된다. 많이 대화하고, 조금씩 발을 맞춰가다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서로의 호흡과 걸음을 알게되는 관계, 그것이 우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의 첫머리에 이야기했던, '우정'에 대한 해답을 책을 통해 얻지 못했다. 살아가면서, 많이 고민하고 몸으로 공감해야 하는 주제라는 생각이 들 뿐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때 만났던 '우정'이 소중한 추억이 담긴,  좋은 '인연'에 감사하게 되었다. '우정'은 짧은 시간이 아닌, 오랜 시간 만들어지는 아름다운 보석이라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우정의 결과를 따질때가 아니라, 내게 스쳐가는 인연들을 오래오래 길고 깊은 관계로 만들어가는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임을 알게 되었다. '내 욕심'에 '동일시'라는 착각으로 상대에게 굴레를 씌우지 말고, 내 '욕심'에 상대에게 크게 기대하고, 크게 '실망'하는 일을 줄이는 일, 상대가 설사 배신하더라도,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며 그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일 등의 과제를 책을 통해 많이 받았다. 얼마나 많이 해낼지는 모르지만, 즐겁게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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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영어문장 강화 프로젝트 1 : 간결하고 힘찬 영어 쓰기 - 소통과 글쓰기 4 아로리총서 10
안수진 지음 /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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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짧고 간결한 문장이 대세다.
  
 
    김훈의 문장을 좋아한다. 수사가 거의 없는 그의 문장은 최소의 문장들의 나열로, 최대의 효과를 끌어낸다. 많은 양념과 장식물로 꾸며진 식사가 아닌, 간소하지만, 맛과 향을 사로잡는 음식을 만나는 느낌이랄까. 기자생활을 한 그의 이력탓이겠지만, 사실과 의견을 구별해서 말할 줄 아는 그의 능력의 대단하다 생각한다. 영어는 복문을 사용하고 싶지만, 단문도 힘이 부친다고 할까. 단문에 대한 자신감이 없기에, 복문은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아로리 총서로 나온 이 책은 간결하고 힘찬 영어 쓰기를 권하고 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가 아니라 '사랑해', '넌 널 완벽하게 만들어 줘' 등의 간명한 표현으로 자신을 드러내자고 권하고 있다.  

  학창시절부터 문법은 많이 배우지만, 정작 작문교육은 그리 잘 배우지 못한다. 요새 회화에 대한 중요성으로 회화에 관한 책은 많이 나오는 편이지만, 구어체와 문어체는 역시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을 잘한다고 해서, 실제 글을 잘 쓸 수는 없는 법이니까. 좀 더 영어 문장을 잘 쓰고 싶은 욕심이 이 책을 선택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휴대하기 편한 판형에, 짧은 분량이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  당신의 장황한 문장 나열에 다이어트와 적절한 운동법을 알려주는 책. 

 
  축쳐진 배, 늘어난 몸무게에 필요한 대책은 군살을 빼는 식이요법과 적절한 운동법이다. 단어도 알고, 문법도 대충 아는 한국인에게, 자신의 말을 짧고 간결하게 표현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는 문장의 살을 빼는 다이어트와 적절하게 힘을 주는 운동법이 필요하다. 책에서는 불필요한 요소를 과감히 빼자는 1장과 전달력 강한 어휘를 120% 활용하자라는 2장을 통해, 체중조절을 위한 다이어트와 운동법처럼, 문장의 체질개선을 위한 비법을 소개한다. 중복된 내용을 빼고, 불필요한 전치사, 동사를 빼자고 권하는 이런 방법들은 숨겨진 비법이 아니라 작문을 하다가 쉽게 놓치기 쉬운 방법들이다. 이를테면 기초로 돌아가야 한다고 할까. 한 단어가 전체 문장을 아우르는 동사의 사용과 의미중복, 구체적인 서술이 되는 표현보다 짧게 표현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라고 저자는 권하고 있다.  

 
# 영어만이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을 통해, 좀 더 힘이 있는 영어문장으로 표현하기. 

 
  3장에서는 다양한 단문 활용법을 익히자라는 주제로 한국어 표현과 다른 영어만의 표현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사람가 아닌 사물이 쉽게 주어로 오는 경향과 부사구, 동격구, 전치사구, 콜론, 대시, 세미콜론의 사용법의 소개는 조금 더 세세한 영어표현을 사용할 수 있게 도와준다. 그리고 언어는 단시간에 내에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될수록 그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믿는 독자를 위해, 간결한 표현을 4장을 통해 정리해 준다.

   많지 않지만, 내가 어디에서 많이 문장을 표현할 때 실수가 많았는지 점검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의미만 통하면 되지, 뭐'라고 생각했는데, 간결하고 힘차게 문장을 꾸미면, 읽기에도 편하고, 내가 표현하려는 내용에 더 힘이 생기고 설득력이 넘치게 되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두 페이지에 걸쳐 소개된 내용은 연습문제를 통해 바로 테스트 할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반복되는 훈련과 저자가 말하는 흐름을 파악하다 보면, 어제보다 더 간결한 나의 문장 표현 방법이 생겼음을 알 수 있었다.


# 20대 이상의 성인이 영작문을 시작하려 할 때 익히면 좋은 책.

   
  학창시절 주입식 영어를 많이 했던 20대 이상의 성인이 영작문을 공부하려 할 때, 시작의 책으로 익히면 좋은 책이라 생각한다. 170페이지와 작은 판형은, 오랜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 내에, 한 번 끝낼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31개의 핵심내용이 들어있으니, 하루에 한시간씩 한 개의 내용을 공부하면 1달이면 끝낼 수 있다. 이 시작을 기본으로 해서, 독서와 끊임없는 연습을 통해서, 자기만의 효과적인 표현어휘를 많이 수집하고 관심을 기울인다면, 나날이 발전하는 자신을 만날 수 있을거라 생각한다.

    모든 일들이 하기 전에는 어려워 보인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는 일도, 운동을 하는 일도, 관심이 있더라도, 아무리 좋은 교재와 코치가 있더라도, 결국 자신이 꾸준히 노력해야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교재탓을 많이 했었는데, 이제 시작을 도와주는 책이 나와서 핑계도 대지 못하겠다. 없는 시간을 쪼개서, 내 자신의 발전을 위해, 하루에 30-60분 정도 투자한다면, 그 흐름을 유지한다면, 조금 더 세련된 영작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장과 2장에 나온 저자의 주장은 한국어 작문에도 도움이 됨을 알 수 있었다. 말하는 내용이 분명하지 않고 장황한 어휘보다는, 짧지만 힘찬 단어가 잘 어우러진 문장이 더 큰 힘을 낸다고 믿는다. 고민고민하던 영어 작문에 작은 힘을 보태준 책이다. 시리즈가 4권이라고 하던데, 다음 시리즈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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