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이에의 강요
파트리크 쥐스킨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 독특한 기벽의 소유자인 쥐스킨트 씨와의 즐거운 만남.
  
  
  문학상을 받았지만, 인터뷰와 사진 촬영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은둔생활을 하는 작가. 대중의 관심을 거부함으로써, 도리어 더욱 주목받는 그의 독특한 행동에 끌려, '좀머씨 이야기'를 읽게 되었다. 독일인이었던 그의 이력을 좀더 세심히 알았더라면, '아유슈비츠'의 상처와 연관지어 생각했겠지만,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학창시절 감수성에 가득 찬 마음들이, '진정한 소통'과 '소외'라는 생각의 집으로 안내했다. 10년 후 다시 읽었던 그의 소설은 그때와는 또다른 '일러스트' 를 그린 '상뻬'에 주목하게 했고,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도 살필 수 있는 생각의 거리가 남아있었다.  

  짧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그의 글은 쉽게 읽어지지만, 깊은 사유에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한다. 많이들 사용하고 있지만, 하나라고 적확하게 표현하기 힘든 '깊이'라는 제목이 담겨있는 그의 책을 다시 만나게 됐다. 쥐스킨트에 대해 알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작품 뿐이다. 맛이 좋은 차로 유명한 카페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는 마음으로, 작품을 읽기 시작했다.
 

# 그의 글은, 쉽게 지나치기 쉬운 삶은 문제들을 다시 곱씹게 만든다.


  소묘를 뛰어나게 잘 그리는 젊은 여인의 초대 전시회에서 어느 평론가는 악의적인 의도 없이, 그녀를 복돋아 줄 생각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 작품은 재능이 있고 마음에 와 닿습니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아직 깊이가 부족합니다."

   처음에는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는 신문에서, 그녀의 주변 사람들이 평론의 글을 인용해서  '깊이'라는 말을 계속해서 듣게되자, '깊이' 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고, 다른 작가의 작품과 책, 여러가지 방면으로 노력하지만, '깊이'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깊이'라는 말에 천착하다 결국 삶도 작품도 망가뜨리고 고층의 방송탑에서 뛰어내린 그녀는 대중지의 큰 조명을 받게 되고, 평론가는 당혹감을 표현하는 단평을 신문에 기고한다. 

 " ......  그러나 결국 비극적인 종말의 씨앗은 개인적인 것에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소박하게 보이는 그녀의 초기 작품들에서 이미 총체적인 분열을 나타내고 있지 않는가?  ...... 숙명적인, 아니 무자비하다고 말하고 싶은 그 깊이에의 강요를?"

    
  영화, 책, 예술작품 등에서 보이는 평론에서 평론가의 말 한마디에 '권력'의 속성이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된다. 평론가의 말 한마디가 대중매체에 의해 유통되면서, 작품의 평가를 결정짓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의 풍경이 눈에 보인다고 할까. '평론가'가 아니더라도, 일상생활속에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 대해 자신의 잣대, 또는 사회적 잣대를 통해 평가하고, 말하는 것을 좋아한다.  

  영화 제작사의 '누리꾼의 댓글 알바' 논란과 '악플'에 대한 논란, 자신의 작품이 나오게 되면, 온라인 서점에 나오는 독자들의 리뷰들을 꼭 챙겨서 읽는 작가의 행동들이, 함께 떠올랐다. 살아가며 크게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문제들이 그의 글을 읽으면 좀더 구체적으로 고민하게 된다. '평론'이 사람들의 눈에 띄지 못한 양질의 작품을 주목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 동시에, 사람들이 작품의 평가에 매달리게 하는 속성이 있다는 점도 함께 볼 수 있게 한다고 할까. 살짝 입에 대어도 깊고 진한 향과 맛을 느낄 수 있는 카카오 성분이 많은 초콜렛을 먹는 느낌이다.
 

  <승부>에서는 늘 연전연승을 하며, 게임에 임하지만, 늘 멋진 상대에게 멋지게 패하고 싶은 욕망도 함께 지니고 있는 체스 고수가 그 이미지에 휘둘려, 무력하게 화려한 외모와 냉정한 분위기의 청년에게 자신감을 잃어 내내 비굴하고 자신감없이 게임에 임한다. 결국 게임에서는 이겼지만 승부에서는 패한 모습을 보여준다.  

  승리와 패배와 결정되고, 정해진 규칙속에서 철저하게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체스게임에서도, 경기장의 분위기, 미묘한 심리게임, 늘 승리하는 자가 지니는 패배할 수 있다는 불안과 멋지게 패배하고 싶은 욕망, 그리고 비굴한 굴욕감 등 경기와 상관없는 승부외적인 요소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체스를 모르더라도 책의 내용에 공감할 수 있었던 건, 매일 경쟁사회에 살아야 하는 현대사회의 승자가 가지는 불안감이 잘 드러나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인 뮈사르의 유언>에서는 많은 책과 대화를 통해 특별한 생각에 깊이 함몰되어 "세계는 무자비하게 닫히는 조개이다"라는 명제를 많은 서적과 지식들을 통해 뒷받침하는, 자기만의 신념이 강했던 한 노인의 유언을 볼 수 있었고, <문학적 건망증>에서는 며칠만 지나도, 책의 내용의 텍스트들은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행위를 하는 이유를 독서를 통해 변화하면서도 독서하는 동안 자신이 변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수 있는 두뇌의 비판중추가 함께 변하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다는 작가의 에세이가 실려있다.
  

  각양각색의 소재를 다루지만, 각 단편을 읽을 때마다, 삶에서 지나치기 쉬운 풍경들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기에 그의 글을 시간을 두고 곱씹으면서 읽고 싶어진다.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작가가 표현한 글 속에서 생각의 작은 씨앗을 발견해서, 물을 주면서 생각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한다. 철학책들은 어려운 개념들을 사용해서 쉽게 다가서기 힘들게 하지만, 그의 책은 쉽게 읽히지만, 자꾸 생각하게 만든다고 할까. 소장해서, 틈이 나는대로 글을 읽고 내 생각을 키우고 싶게 만다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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