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후르츠 캔디
이근미 지음 / 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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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어느날 찾아온 달콤한 오해. 과연 그게 나에게 행복일까?
 
 
  크게 달라지지 않는 매일의 일상에서 간혹 행운을 기대하곤 한다. 로또에 당첨이 된다면, 확률이 낮은 경품행사에 내가 당첨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꼭 당첨되지 않더라도, 미래가 달라질 수 있다는 기대는 하루의 삶을 좀 더 다르게 살 수 있는 희망을 준다. 결국은 상처로 남는 희망이지만, 상상하는 동안은 달콤하다.
 
  사회생활에서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인연과 운에 의해 많은 일들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삼류대학에 특별한 스펙을 갖추지 못했지만, 광고에 대한 열정을 지닌, 글을 잘쓰는 조안나는 자이언트기획이라는 회사에 입사한다. 파격적인 합격에 따라붙는 회사에서의 여러가지 소문, 그를 뽑은 면접관이 대기업 회장의 아들이기에 소문은 더욱 증폭된다. 조전무에게는 조리나라는, 안나와 비슷한 외모에, 지금은 유학을 떠난 동생이 있다. 리나와 연애를 했다가 혼자가 되어 루머에 휩싸인 빈우. 재벌가 낙하산이라는 오해에 빠진 직장 동료들과 같은 팀 동료 빈우와 부딪치며, 안나는 회사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 현재의 한국사회의 풍경을 엿볼 수 있는 책.
 
 
  회사에 입사한, 성공의 가능성을 지닌 평범한 직딩녀가 공주님이라는 오해를 이겨내고, 자신을 찾는 과정을 다룬 성인판 성장소설이다. 사장의 인맥이라는 루머만으로도 달라지는 주변에서의 대접, 직장 내 존재하는 작은 편견들, 결혼에 대한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현재의 한국사회의 일반적인 정서를 가늠할 수 있다.
 
  칙릿소설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15초에 구매자의 눈을 사로잡는 광고계의 풍경과 함께, 직장생활, 사내 연애 등 회사생활을 하는 신입사원 여성이 고민할 수 있는 내용이 광고의 카피와 함께 잘 어우러져 있다. 잘 포장된 이미지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잘 포장되기 보다는, 실속을 잘 갖추는 일이 결국 멀리 보았을 때 자신에게 좋다는 내용을 교훈적이지 않게, 가볍게 전달하고 있다.
 
  직장에 올인하지도, 사랑에 올인할 수 없는, 선택에 고민하는 안나의 모습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 할까. 사랑에 올인하거나, 사랑을 외면하는 극단적이 선택이 아닌, 경계에서 조화를 꾀하는 모습에서, 하나를 정하지 못하고 서성이는 마음이 이해가 됐다. 아직 신입인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할까. 그런 선택들이 조금씩 쌓여가고, 후회하고 칭찬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과정 속에서 나라는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직업과 나이, 성별, 가족관계 등 다양하게 누군가를 정의내릴 수 있지만, 자신의 결정에 따라 인간은 매번 변화한다고 생각한다. 행운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실력과 사랑에 조금 더 용기낸 그녀를 응원할 수 있어 즐거웠다.
 
  어쩌면 사랑은 후르츠 캔디처럼, 살살 녹여 그 맛을 음미하는 동안 매우 큰 즐거움을 선사하지만, 사탕이 다 녹아진 후에는 단기운이 빠질때까지 씁쓸함을 느껴야 한다. 사탕을 녹여먹는 그 순간은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으니, 사탕 없이 지내는 일보다는 사탕을 맛보는 것이 더 좋다 생각한다. 달콤한 사과맛 사탕을 맛 본 기분을 전해주는 책이다. 사회 무대로 나설 준비를 하는 대학생 여학우에게 후르츠 캔디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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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
박찬욱 외 지음 / 그책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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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뱀파이어하면 떠오르는, 로맨스와 다르다!
 
 
  『트와일라잇』시리즈와 『댈러스의 살아있는 시체들』의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에는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지고지순한 로맨스가 등장하는 공통점이 있다. 트와일라잇은, 인간이 대상이 아닌, 동물이나 다른 대상의 피를 먹는 것으로 독자의 뱀파이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인다. 수키 스택하우스 시리즈는 일본인이 개발한 합성용액이 피를 대신한다는 방법으로 읽는데 불편함을 없앤다. 『박쥐』는 서양의 로맨스 뱀파이어 소설과 다르다.
 
  가장 인간을 아끼고 소중히 해야하는 의무를 지닌 신부가 불의의 사고로 뱀파이어가 되면서 생겨나는 고뇌와 윤리적 갈등, 사랑과 그 이후의 이야기들을 통해, 사랑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상처를 입지 않고, 괴력의 힘을 발휘하는 장점보다, 피를 구하기 위해 살인의 욕망을 괴로워해야 하는 본성과 싸워야하는 인간의 고뇌가 담겨있다. 자극적이고 상상을 넘어서는 장면에 눈살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인간이 논할 수 없는 금기의 영역에 발을 디딘 채,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모습이 좋았다. 극한의 상황에 처하면 사회속에서 감추어진 자신의 내면의 모습이 나온다. 감내할 수 있는 한계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이 좋다.
 
 
# 내가 이 지옥에서 데리고 나가줄게요.
 
 
  의남매인 태주와 강우, 신부가 된 성현은 같은 마을에서 자랐다. 고아였던 성현은 노신부의 품에서 신부의 길을 걸었고, 난치의 병인 이브 바이러스라는 수포가 발생하는 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투입해서 생존하는 실험에 자원해 50명 중 유일하게 생겨난 생존자이기도 하다. 생존의 소문은 난치병을 지닌 마을 사람들에게서 기적의 성자로 추앙받게 되고, 기적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생존의 후유증으로 흡혈귀가 된 성현은  피를 마셔야 수포가 치유되고 활력넘치고 괴력을 발휘하는 건강한 몸으로 되돌아간다.
 
  자신이 지켜온 신념과 생의 본능과 타협하는 과정으로 성현은 병원에서 위독하거나 자살을 하는 이를 도와주며 살인을 하지 않고 생존을 도모하려 노력한다. 의남매인 강우의 성적 무능력과 어머니 라여사의 핍박으로 나날이 메말라가는 어린시절 좋아했던 태주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는 신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 벗어날 수 없는 삶과 무력한 자신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태주는 매일 밤 맨발로 거리를 배회한다. 배회하는 그녀에게 구두를 신겨주면서 더욱 가까워진 두 사람, 그녀의 삶을 벗어나게 해 주겠다는 마음으로 그는 결심을 하게 되는데...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은 우리를 행동하게 한다. 사랑은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 상대의 삶도 변하게 한다. 사랑과 악행은 욕망에서 나온다는 작가의 후기의 글귀처럼, 태주를 사랑해서 행복해지게 하려던 그의 행동은 태주가 다른 모습으로 변했을 때, 그가 예측한 선택을 하지 않음으로써, 둘 모두를 파멸의 길로 걷게 한다. 길거리에 지나가던 이에게는 그가 어떤 행동을 하던지 간섭하려 애쓰지도 않고, 의식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가족, 연인에게는 많은 걸 기대하고,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는 제재 또는 실망을 하게 되는 인간의 마음이 보인다. 다른 삶을 살고 싶으면서도 자신에게 돌아오는 물질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욕망에 대해 고민거리를 던지는 소설이다.
 
 
# 나락으로 내려 갈 수는 있어도 높으 곳으로 다시 올라갈 수는 없는 것처럼.
 
 
  라여사가 강우에게 보이는 애절한 사랑의 크기만큼, 태주에게는 삶을 구속하는 폭력이 되고, 죽음에 자유로워지는 젊음으로 돌아갈 수 있는 노신부의 갈망, 성현에게 기적을 기대하는 환자들, 초경을 마친 소녀에게 행하는 성현의 행위를 통해 성현은 사회에서의 명예를 버리며 삶을 버리는 선택과 실천을 한다. 영화에서 성현 역할의 배우가 순교하는 기분으로 했다는 말을,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해할 수 있었다.
 
  영화를 현실과 동일시 하는 건전한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에게는 불편함을 가득 안겨주는 책이다. 아름다움과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무언가를 중요시 하는 이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은 책이다. 예술의 상상력에서는 금기가 없다는 점을 이해하는 이에게, 영화와 소설은 현실과 다름을 인정하는 이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사랑의 다양한 색깔에 대해, 윤리와 욕망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어떤 답을 선택하던지, 그 답을 통해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이해하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씨앗이 숨겨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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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조진국 지음 / 해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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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사랑을 놀이기구로 표현한다면 아마 롤러코스터가 아닐까?
 
 
  사랑은 롤러코스터와 닮았다. 아무런 감정이 없던 두 사람이 공통점을 발견하는 순간, 둘이 함께 탄 롤러코스터는 가속 페달을 밟으며 빠른 속도로 정상으로 올라간다. 올라갈때의 스릴과 즐거움이 큰 만큼, 딱 그 높이만큼 내려올 때의 공포를 느껴야 한다. 사랑의 크기만큼, 외로움과 두려움도 함께 커져가는 위험한 놀이이다. 설레임과 추억의 순간이 있기에, 무섭고, 처음 시작의 위치로 돌아올 수 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매일 사랑을 꿈꾼다. 『고마워요, 소울메이트』에서 만났던 공감의 글이 많았기에, 저자의 새 책을 읽기로 결심했다. 사랑에 관한 에세이를 읽으며, 사랑의 감정을 다시 느낄 수 있다면, 아직 연애세포가 죽어있는 건 아니라 생각한다. 잃어버린 연애세포를 찾는 마음으로, 저자가 들려주는 사랑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 사랑의 시작에서 헤어짐,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과정까지..
 
 
  20편의 러브레터와 이어지는 연결되는 이야기로 책의 내용이 채워진다. 빨리 뛰어가는 토끼와 토끼를 바라보며 느리지만 꾸준히 걷는 거북이의 달리기는 더 많이 사랑하는 자와 더 많이 사랑받는 자의 모습과 닮아있다. 사랑에 빠질 때 생각하게 되는 운명적인 우연의 합리화, 작은 숫자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설레임, 내가 더 사랑받았으면 하는 본심, 함께 있어도 생각까지 함께 공존할 수 없는 현실, 사랑하기에 빠져드는 오해와 갈등까지, 사랑의 순간에 느끼게 되는 질투, 행복함, 기쁨, 원망 등의 다양한 감정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 돌아본다.
 
  사랑의 목적이 행복이 아니듯이,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일은 때론 아픔과 상처를 감내하는 일을 필요로 한다. 행복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지 않기에 행복하지 않는다고 할까. 머리로 계산해서 할 수 일이 아니기에, 그 끝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확실한 둘 사이의 게임. 예측 할 수 없는 점기에 행복의 순간이 소중함과 함께 상실의 불안감이 함께 한다. 글을 따라 마음을 맡기다 보면, 사랑에 상처를 심하게 받아 사랑할 수 없는게 아니라, 더 상처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만나고 싶지 않기에 사랑에서 도망치는 이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젊었을 때는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기회가 없기에, 빠져드는 마음에 집중해, 내 기분, 내 마음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세월을 경험할 수록, 상대의 기분까지 고려하기에, 사랑에 더 조심스러워진다 생각한다. 알면 알수록 더 잘할 수 있다는 마음과 더 조바심내며 주춤거리는 마음을 안고 있기에, 사랑에 관한 글들이 독자들에게 여전히 사랑받는다 생각한다.
 
  우리는 항상 누군가를 더 사랑하게 된다는 말과 울어도 변하는 게 없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쓸쓸함이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딱 내가 좋아하는 그만큼, 상대도 나를 좋아하면 좋을텐데, 더 많이 좋아하기에 더 자신이 없어지고, 더 많이 사랑받기에 더 상대가 힘들어하는 미묘한 차이가 연애에 늘 발생한다. 사랑의 정의는 모두에게 각자의 의미로 정답이고, 사랑을 지속시키는 과정도 각자 다르다. 객관식 정답이 아닌, 서술형 답을 써야한다고 할까. 내 가치관의 정답이 아닌, 상대의 마음에 드는 정답을 쓸수록, 더 좋은 점수를, 더 오래 지속될 수 있는 시험문제를 푸는 기분이다. 정답을 알면서도 쓰기 싫어지거나 다른 답을 쓰게 되었을 때, 연애는 끝이 난다.
 
  달콤한 연애를 하는 연인보다는 외사랑을 하고 있거나, 솔로인 독자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더 연애를 잘 할 수 있는 비법을 알려주지는 못하지만, 연애의 순간들에 대해 고민하게 해주는 힘은 충분히 지니고 있다. 사회의 대인관계는 적당한 선을 지키는 일이 서로를 행복하게 해 주지만, 연애는 개인의 내밀한 컴플렉스와 사소한 일까지 부딪치기에 더욱 어렵다.
 
  사랑에 관한 글을 읽으면, 마음이 설레고, 여행에 관한 책을 보면 여행이 떠나고 싶어진다. 책을 읽고, 감정의 변화가 느껴진다면, 아직 충분히 사랑할 능력이 있다 생각한다. 책을 읽으며, 마음의 움직임이 느껴진다면, 책에 웅크려있지만 말고, 사랑을 시작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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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를 리뷰해주세요.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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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살다보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많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병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과, 사랑에 빠지는 일, 사랑하던 이와 이별하는 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실수로 생긴 나쁜 결과는 죄책감이나 미안함으로 가슴에 남는다. 자신의 실수를 부정하며 현실을 견디기도 하고, 유사한 상황과 대면하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공황상태로 무력해지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어떤 이는 종교를 찾아 구원을 꿈꾸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을 파괴하거나, 도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항거하는 생의 의지를 통해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보다.
  
 
  가위를 보면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는 수명은 매일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아버지의 타박으로 거리를 헤매다 길을 잃어버린다. 거지보다 초라한 행색으로 길을 걷는 여인에게 더듬거리는 말로 길을 묻다가, 여인의 과도한 놀람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잡는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그는 경찰서에 끌려가고, 매번 사고를 치는 그를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수명과 같은 날 입소한 명진은 재벌 2세의 삼남이라는 소외된 삶과 움직이는 물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강아지 꼬리를 태우는 불놀이에서 시작해서 별장을 태우는 방화로 어린시절 운명에 맞서왔다. 그를 아끼던 비서실장의 선택으로 외국으로 도피한 그는 비서실장과 행글라이더 비행을 배우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한계를 극복하고 행글라이더 대회 세계 최연소 우승자가 된다. 기쁨도 잠시, 다음 경기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고, 그 후유증으로 망막색소변성증이 더욱 심해졌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 더 이상 행글라이더를 탈 수 없는 상황은 그를 절망의 늪으로 빠뜨린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막대한 유산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하루만 귀국했다 떠나려다, 장남과 차남사이의 권력다툼에 휘말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점점 증상이 심해져 앞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듬을 깨닫는 그는 한 번이라도 더 행글라이더를 타기 위해, 탈주를 꿈꾼다. 무모한 그의 도전은 더욱 심한 교정과 처분으로 돌아온다. 끝없이 자신의 운명에 항거하는 그와 생활하며 수명은 도망치기만 하던 자신의 운명과 다시 대면하게 되는데..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항거하는 다양한 대응방식을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말과 함께 곡예를 통해 기립박수를 받았던 삶을 잊지않고, 다른 환자의 등에 늘 업혀있는 만식씨, 사랑하는 지은의 고통스러운 위기를 구해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자신의 이를 뽑는 한이,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늘 세상에서 자신에게서 도망치기만 하는 수명을 통해, 무기력함과 절망이라는 감정이 가슴에 생생히 전해졌다. 정신병을 가진 예쁜 아이를 성폭행하는 작업반과 보호사가 결탁한 패거리 짓과 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을 짓밟지만, 오너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큰 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에 알려질까봐 쉬쉬하는 병원 원장의 행동은  문제가 있으면 이를 외면하거나 축소시키려 하는 사회의 풍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안타까워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에 계속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정신병원에는 미쳐서 갇힌자와 갇혀서 미친자라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수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리얼한 다양한 정신병원의 삶을 엿보는 호기심의 충족과 함께, 절망의 나락이라는 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상대하는 승민의 몸부림을 통해, 생의 의지와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의 열정은, 피하지 못한 우울한 결과로부터 늘 도망치려 하는 수명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고, 수명의 인생을 바꾸었다.
 
  운명과 불편한 현실을 도피처로 삶아 삶에서 도망치지 말고, 살아있는 순간순간 '나'답게 살아가라는 권유가 정신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탈주를 꿈꾸는 탈옥기를 통해 전해진다. 정신병동이라는 독특한 상황이 불편해서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았다. 1부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더니, 승민과 명진의 좌충우돌의 생활에 끌려 마지막장까지 멈추지 않고 한 호흡에 읽게 되었다. 실제 정신병원을 관찰하는 듯한 세세함에서 작가의 취재의 꼼꼼함과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엉뚱한 행동의 명진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수명, 수명이 왜 가위에 두려움을 갖는지 독자가 이해하게 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소설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정신병원의 환자로 이해하게 만드는 힘, 결국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을 무력하게 만드는 운명조차도 생의 의지와 수용의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할까. 윤리교과서에 나올법한 교훈의 메시지를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고민하게 만드는 점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나쁘지 않았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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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무기력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세계문학상 도서 - 미실, 아내가 결혼했다, 스타일, 슬롯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세계문학상을 좋아하는 이.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와, 다 와. 날 죽여보라고, 자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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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을 리뷰해주세요.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 - 스케치북과 카메라로 기록한 드로잉 여행 1
김혜원 글.그림 / 씨네21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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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 다들 어디로 가고 있나요?  이들에게는 일상인 것이. 나에게는 여행이다.

 
  차비를 아끼기 위해 통근열차를 타고 기차여행을 한 기억이 떠오른다. 순천에서 부산쪽 방향이였는데, 새벽 첫 차에 빨간 대야에 작은 참게를 싣은 할머니들이 나누던 이야기 소리가 생생하게 느껴진다. 할머니에게 열차는 바닷가 해양시장에서 구매해서 내륙의 시장에서 파는 일을 하기 위한 매일 보는 일상의 연장선일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일상을 사는 반복의 수단이, 다른 이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선서하는 여행의 길잡이가 된다.  

  일본 JR 패스를 가지고 훗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우리나라로 생각하면 서울에서 부산, 목포까지 일정시한 무한이용권을 가지고 일본을 여행한 저자의 기록이 한 권으로 묶어 있다.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저자의 이력에 걸맞게, 여행은 일러스트와 사진, 그리고 이야기가 가득하다.
 
 
# 정보와 감성에 초점을 맞춘 기차로 떠나는 일본 여행.
 
 
  책을 읽으며,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라는 책이 생각났다. 건축 전공의 저자가 스페인에서 1년 체류하며 느낀 생각들을 일러스트와 사진, 글로 채웠다면,  『드로잉 일본 철도 여행』에서는 여행지의 정보와 여행 도중 경험하는 감정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철도 여행에 초점을 맞추어, JR로 이용할 수 있는 열차역과 주변의 관광지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일러스트를 사용하지만, 애니메이션 처럼, 감정과 동작에 대한 아기자기한 표현들이 가득하다. 『오기사 ..』에서 진지함을 더욱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면, 『드로잉 일본..』에서는 가볍지만, 감정에 충실한 내용들을 통해 여행의 다른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카페에 앉아서, 고양이와 책, 여행을 좋아하는 누이가 답사한 여행후기를 듣는 기분이다. 애니메이션과 일러스트에 익숙하지 않아, 가볍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계속 보다보니 글을 읽는것보다 더 빠르고 생생하게 글의 분위기가 마음에 전해진다. 저자의 일러스트 풍을 좋아하는 이에게는 더욱 즐겁게 여행기에 공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보통 여행정보지에서 놓치기 쉬운 100엔 버스나 운송수단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들이 잘 담겨있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의 취향에 맞게, 나쓰메 소세키와 오사이 다자무, 무라카미 하루키와 관련된 여행 이야기도 만날 수도 있다. 야구장에 대한 정보가 없는 것은 여성 저자의 취향에 맞지 않는 대상이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JR 패스는 일주일 단위로, 3주까지 있기에, 일주일 이상 일본에서 여행을 할 여유가 있는 2-30대 여성들이 읽기에 가장 좋다 생각한다. 일본을 여행할 생각이 있는 이에게는 여행지를 선택하기 위해  만나는 길잡이 책으로 권하고 싶은 책이다.
    
  일본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가깝고도 먼 나라라는 하나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23일간 저자와 여행을 떠나고 보니, 각 지방마다 독특한 특색을 가진, 개성이 강한 지방색이 강한 나라인 점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이라는 공간 역시, 하나의 이름으로 묶여 있지만, 각 지방마다 각 개인마다 다양한 색을 지니며 살아가고 있다. 카메라 분실, 낯선 곳에서의 길 잃음 등의 돌발상황도 여행의 묘미라 생각한다. 당시에 무섭고 아찔한 기억도, 긴 시간이 지난 후에는 추억의 한 장면으로 기억된다. 일상이 안전하지만 지루해 기억나는 장면이 없다면, 여행은 위험하지만 매혹적이라 떠올릴 기억이 많다고 할까. 

   저자가 도쿄에서 서울로 돌아오며 비행기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조금전까지 머무르던 곳, 내가 두고온 곳, 내가 가야할 곳, 그 모든곳에 똑같이 해가 지고 있다. 나에게 낯설지만, 누군가에게는 일상인 공간. 여행은 색다른 곳이 아닌, 내게 낯설고 매혹적인 공간을 통해, 내가 머물던 곳과 자신에 대해 다시 돌이켜보게 하는 떠나는 공간의 이동, 마음의 이동이라 생각한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아무 목적없이 한동안 오래 돌아다닌 적이 있다. 그 당시에는 무엇을 배우고 느꼈는지 알 수 없었다. 5년 이상 시간이 흐른 지금, 의미없는 장면 하나, 행동 하나가, 나라는 인간이 성장하면서 고민했던 문제를 푸는 과정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이미 푼 문제도 있고, 계속 풀어야 하는 숙제도 있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자신이 이룬 부와 명예는 큰 의미가 없다 생각한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풍경의 체험, 에피소드를 통해, 의미있는 추억을 만들었는가 그의 삶의 폭을 가늠하는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은 하얀 백설기의 일상을 무지개떡으로 만들어주는 다채로움을 선사하는 색소같다. 하얗고 고운 백설기의 삶도 좋지만, 무지개처럼 다채롭게 살고 싶다. 크루즈 여행, 도보 여행, 버스 여행 등의 하고 싶은 여행목록에, JR 패스 일본 여행을 추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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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일러스트로 가볍게, 여행정보를 느낄 수 있다.

  일본 JR 패스 여행을 통해, 기차로 떠나는 여행의 묘미를 경험할 수 있다.

- 서평 도서와 맥락을 같이 하는 '한핏줄 도서' (옵션)

  『오기사, 여행을 스케치하다』

- 서평 도서를 권하고 싶은 대상

  혀와 눈이 즐거운 특별한 여행을 떠나고 싶은 일본을 좋아하는 2,30대 여성.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내가 조금전까지 머무르던 곳, 내가 두고온 곳,
내가 가야할 곳, 그 모든곳에 똑같이 해가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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