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쏴라>를 리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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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평점 :
# 피할 수 없는 운명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살다보면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많다.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병도 인간의 힘으로 어찌 할 수 없고,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과, 사랑에 빠지는 일, 사랑하던 이와 이별하는 일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내 실수로 생긴 나쁜 결과는 죄책감이나 미안함으로 가슴에 남는다. 자신의 실수를 부정하며 현실을 견디기도 하고, 유사한 상황과 대면하게 되면 어찌할 바를 모르는 공황상태로 무력해지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운명에 저항하는 방법으로 어떤 이는 종교를 찾아 구원을 꿈꾸고, 또 다른 이는 자신을 파괴하거나, 도피로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항거하는 생의 의지를 통해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보다.
가위를 보면 극도의 불안증세를 보이는 수명은 매일 집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아버지의 타박으로 거리를 헤매다 길을 잃어버린다. 거지보다 초라한 행색으로 길을 걷는 여인에게 더듬거리는 말로 길을 묻다가, 여인의 과도한 놀람에 자신도 모르게 손을 잡는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그는 경찰서에 끌려가고, 매번 사고를 치는 그를 견디다 못한 아버지는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낸다.
수명과 같은 날 입소한 명진은 재벌 2세의 삼남이라는 소외된 삶과 움직이는 물체를 잘 인식하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강아지 꼬리를 태우는 불놀이에서 시작해서 별장을 태우는 방화로 어린시절 운명에 맞서왔다. 그를 아끼던 비서실장의 선택으로 외국으로 도피한 그는 비서실장과 행글라이더 비행을 배우며 앞이 잘 보이지 않는 한계를 극복하고 행글라이더 대회 세계 최연소 우승자가 된다. 기쁨도 잠시, 다음 경기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겪고, 그 후유증으로 망막색소변성증이 더욱 심해졌다는 선고를 받게 된다. 더 이상 행글라이더를 탈 수 없는 상황은 그를 절망의 늪으로 빠뜨린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막대한 유산이 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하루만 귀국했다 떠나려다, 장남과 차남사이의 권력다툼에 휘말려 정신병원에 갇히게 된다. 점점 증상이 심해져 앞을 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듬을 깨닫는 그는 한 번이라도 더 행글라이더를 타기 위해, 탈주를 꿈꾼다. 무모한 그의 도전은 더욱 심한 교정과 처분으로 돌아온다. 끝없이 자신의 운명에 항거하는 그와 생활하며 수명은 도망치기만 하던 자신의 운명과 다시 대면하게 되는데..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항거하는 다양한 대응방식을 정신병원에서 생활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바라볼 수 있었다. 말과 함께 곡예를 통해 기립박수를 받았던 삶을 잊지않고, 다른 환자의 등에 늘 업혀있는 만식씨, 사랑하는 지은의 고통스러운 위기를 구해주지 못한 자책감으로 자신의 이를 뽑는 한이, 자신의 피할 수 없는 선택의 결과를 인정하지 못하고, 늘 세상에서 자신에게서 도망치기만 하는 수명을 통해, 무기력함과 절망이라는 감정이 가슴에 생생히 전해졌다. 정신병을 가진 예쁜 아이를 성폭행하는 작업반과 보호사가 결탁한 패거리 짓과 권력을 이용하여 타인을 짓밟지만, 오너의 친척이라는 이유로 큰 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에 알려질까봐 쉬쉬하는 병원 원장의 행동은 문제가 있으면 이를 외면하거나 축소시키려 하는 사회의 풍조를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안타까워 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기에 계속 이런 일들이 반복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진다.
정신병원에는 미쳐서 갇힌자와 갇혀서 미친자라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는 수명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리얼한 다양한 정신병원의 삶을 엿보는 호기심의 충족과 함께, 절망의 나락이라는 순간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의 인생을 상대하는 승민의 몸부림을 통해, 생의 의지와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그의 열정은, 피하지 못한 우울한 결과로부터 늘 도망치려 하는 수명의 삶에 대한 태도를 변화시키고, 수명의 인생을 바꾸었다.
운명과 불편한 현실을 도피처로 삶아 삶에서 도망치지 말고, 살아있는 순간순간 '나'답게 살아가라는 권유가 정신병원이라는 한정된 공간의 탈주를 꿈꾸는 탈옥기를 통해 전해진다. 정신병동이라는 독특한 상황이 불편해서 책을 읽는 일이 쉽지 않았다. 1부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었더니, 승민과 명진의 좌충우돌의 생활에 끌려 마지막장까지 멈추지 않고 한 호흡에 읽게 되었다. 실제 정신병원을 관찰하는 듯한 세세함에서 작가의 취재의 꼼꼼함과 우리 사회의 어두운 그림자를 볼 수 있었다.
엉뚱한 행동의 명진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수명, 수명이 왜 가위에 두려움을 갖는지 독자가 이해하게 되는 과정들을 지켜보며, 소설은 타인의 삶을 이해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문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정신병원의 환자로 이해하게 만드는 힘, 결국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생을 무력하게 만드는 운명조차도 생의 의지와 수용의 마음으로 이겨낼 수 있다고 할까. 윤리교과서에 나올법한 교훈의 메시지를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자연스레 고민하게 만드는 점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한다. 나쁘지 않았던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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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도서의 좋은(추천할 만한) 점
무기력한 삶을 다시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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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학상을 좋아하는 이.
- 마음에 남는 '책속에서' 한 구절
"와, 다 와. 날 죽여보라고, 자식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