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너무 많은 여성이 다쳤고, 숨졌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여러 방안에 무책임하게 고개를 젓는 모습도 빈번히 마주했다. 그러나 지치지 않을 것이고 낙담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날카롭게 비판하고, 토론하고, 글 쓰고,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들을 지속하면서 주어졌던 삶을 미처 살아내지 못한, 마땅히 살아 있어야 했던 그 여성들의 소중한 삶의 의미를 이어나갈 것이다.

방어폭력이란 친밀한 관계 폭력 피해자가 자신을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정폭력인 경우에는 함께 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걷어차여 넘어진 상황에서 마지막 힘을 내 가해자의 다리를 힘겹게 물거나, 고통에 못 이겨 손톱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는 것, 공격을 막으려고 상대의 팔을 강하게 붙잡는 행동 등이 해당될 수 있다.

피해자들의 방어행위는 생존 본능에 가깝지만, 경찰 수사에서 이들은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 즉 서로 싸운 동등한 당사자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들이 맞대응, 즉 방어폭력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 폭력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경찰은 이러한 상황을 쌍방폭행으로 판단하기 쉽고, "둘이 알아서 하라"라거나 "서로 처벌 의사가 없으니 이쯤에서 정리하라"라고 조언하며 사건을 종결한다. 11번의 신고에도 피해자를 구하지 못한 데는 ‘방어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전문적 수사기관의 책임이 크다. ‘폭력을 사용한 건 모두 잘못’이라는 경찰의 협소하고 무지한 판단은, 피해자에게 맞아 죽을 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반복되는 신고는 피해자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찰은 이러한 반복 신고를 위험 신호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단순히 피해자가 습관적으로 신고하는 것으로 치부하며 사안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동일한 주소지와 전화번호에서 반복적으로 신고가 접수될 때, 경찰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기보다는 번거로운 일로 여기며 소홀히 대응했다. 마치 별것 아닌 문제로 공권력을 낭비한다는 인식이 내재된 행동 반응이다.
이처럼 반복된 경찰 신고가 아무런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할 때, 이는 단순히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는 점점 더 절망에 빠지고, 가해자는 오히려 자신감과 대담함을 얻는 왜곡된 상황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 교제폭력을 규율할 수 있는 법률이 없지는 않다.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통상적인 폭행 및 협박죄로 가해자를 신고하고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피해자가 과연 사건을 ‘접수할지’ 경찰이 궁금해하는 이유는 〈형법〉의 폭행 및 협박죄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할 의사가 없다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가해자가 분명히 범죄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 가해자 모두 피해자의 입을 바라보면서 피해자의 결정을 기다린다.
친밀한 관계의 그 ‘친밀성’이 피해자를 얼마나 취약하게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이러한 규율은 피해자를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

가해자 처벌 여부가 가해자의 범죄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달려 있다는 것은 가해자를 의기양양하게 만든다. 자신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은근한 경고를 주어 사건을 무마하는 일 따위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신고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 의사를 묻는 관행의 문제점은 오랫동안 지적되어왔다.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처벌 의사를 쉽게 밝히기 어렵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모든 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되어 있어 신고 이후에도 안전을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정폭력과 교제폭력의 높은 현장종결률은 가해자 처벌에 대한 피해자의 상당한 부담감을 방증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한마디에 따라 경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황이 정리될 수도 있다.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가해자의 처벌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피해자가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제도는 피해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경찰이 "가해자 처벌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네, 엄하게 처벌해주세요. 제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정말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피해자는 많지 않다. 이는 가해자를 여전히 사랑해서도, 피해가 가벼워서도, 연인과의 관계가 어색해질까 걱정해서도 아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무섭다. 처벌을 원한다고 답하면 "네가 나 전과자 만들고서 무사할 것 같아?" "내가 널 가만둘 것 같아?"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도 다 죽여버릴 거야. 너 이거 거짓말 같지?"와 같은 가해자의 협박을 마주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을 통해 가해자가 실제로 잔인한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가해자는 내가 사는 집, 친구들의 집, 부모님의 집, 학교, 직장 등 내가 다니는 동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 조항은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개인 간의 경미한 다툼을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사소한 시비나 분쟁이 있었다가 화해하고 합의할 의사가 있는 경우 법정까지 가지 않고 개인 간 해결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은 서로 모르는 타인 사이에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에서는 피해자를 취약하게만 한다. 보복폭행의 두려움으로 피해자가 진정한 의사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백히 시스템의 문제다. 미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주별로 현장 조치의 수위가 다를 수 있으나, 최소 23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의무체포 제도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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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대부분 문제를 지나치게 확대해서 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의 결과를 바꾸고 싶다면 먼저 자신의 마음부터 손을 대야 한다. 인생의 길이는 결정할 수 없어도 폭은 자신의 의지로 얼마든지 넓힐 수 있고, 타고난 생김새나 체격은 바꿀 수 없어도 마음은 얼마든지 아름답게 바꿀 수 있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른 시작이다.

목표는 ‘미래’라는 사진을 위한 원판이다. 오늘의 모습은 3년 전에 세웠던 목표의 결과이며, 오늘 세운 목표가 3년 뒤 자신의 모습을 결정한다. 그러니 쓸데없는 잔가지와 불필요한 욕심을 과감히 잘라내고, 명확하고 현실적이며 자신이 가장 열중할 수 있는 한 가지 목표를 세워라. 그리고 그 목표에 힘과 노력을 온전히 집중하라. 이것이 바로 자신의 손으로 미래를 만드는 비결이다.

자신의 운명을 주관하는 법은 어렵지 않다. 자신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으면 된다. 어떤 일을 ‘재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그 일은 정말로 ‘재수 없는 일’이 된다. 그러나 ‘이만하면 괜찮다’ 혹은 ‘이만하길 정말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 정말로 다행한 일, 아무것도 아닌 일로 변한다. 인생의 희비극이 모두 자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한 걸음은 얼핏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꾸준히 내딛다 보면 결국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반면 멈춰 서 있으면 영원히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지금 그 한 걸음을 내디뎌라!

사람은 누구나 태어난 이유가 있으며, 쓸모없이 태어난 생명은 없다. 그렇기에 맹목적으로 자신을 불신하고 부인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비록 지금 당장은 자신이 아무것도 아닌 존재처럼 보여도 속지 말라. 당신은 흙 속에 묻힌 금덩어리다. 금은 어디에 있어도 금이다. 흙 속에 묻혀 있다고 해서 그 빛까지 바래지는 않는다.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자신의 능력치를 넘어서는 인생 목표를 세우지 말고, 적절한 지점에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누구나 다 장군이 될 수는 없다. 대부분은 일개 사병에 머문다. 그렇다고 사병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저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가 다를 뿐이다.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고려해서 인생 목표를 세우라. 남과 자신을 비교해가며 허황되고 그럴싸한 목표를 세우지 말라. 헛된 꿈을 좇는 것만큼 인생을 낭비하는 일도 없다.

인생에서도 한 가지 일에 집중할 때 비로소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이 일, 저 일에 손을 대거나 목표를 여러 개 세우면 온종일 바쁘게 눈만 희번덕거리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만다.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쫓다가 결국 모두 놓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자신감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순간에 어떠한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바뀐다. 이렇듯 자신감은 잠재력을 이끌어내는 열쇠이며, 때로 상상하지도 못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엄청난 힘이다. 남이 자신을 믿어주기를 바라기 전에 먼저 스스로 자신을 믿어주자.

언제부턴가 우리가 사는 세상은 돈과 욕망이 지배하는 곳이 되어버렸다. 이 속에서 우리는 날마다 좀 더 많은 재물, 좀 더 높은 지위, 좀 더 강한 권력을 추구하며 정신없이 살아간다.

믿음은 무적이다. 스스로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어떠한 고난과 어려움 앞에서도 정신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한다. 생각이 행동과 결과를 만들어낸다.

나는 이 세상에 유일무이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거나 남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 자기비하감에 빠져 스스로 행복을 걷어차지 말라. 자기 파괴적인 자기비하에서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참된 행복을 붙잡을 수 있다.

자기비하란 자존감이 심각하게 떨어진 상태로, 자기 자신에 대해 뿌리 깊은 의구심을 품고 있는 것을 말한다. 대개 큰 어려움이나 좌절을 겪은 사람일수록 자기비하에 잘 빠진다. 자기비하감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는 정도에서 마침내 능력을 전혀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로, 사람들과의 교류를 불편해하는 수준에서 스스로를 완전히 고립시키는 상태로 악화되기 쉽다. 이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운명을 바꾸는 열쇠가 바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는 사실이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바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우연히 코끝을 간질이는 꽃향기를 만났을 때의 기분 아닐까? 네온사인으로 번쩍이는 번화가를 벗어나 아늑한 자신의 방에서 은은한 조명을 켜고 좋아하는 책을 읽을 때의 고요함과 편안함 아닐까?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하고 월급을 받은 날, 그동안 수고한 자신을 위해 작은 선물 하나를 살 때의 만족감과 기쁨 아닐까? 어쩌면 행복은 생활 속의 사소한 부분에서 비롯되는지도 모른다. 지갑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이런 사소한 행복을 놓치고 산다면 그 사람은 진정한 행복을 영원히 알 수 없다.

많은 사람이 살면서 불행을 만난 이후에도 여전히 행복하게 살아간다. 언제나 행복하고 즐겁기만을 바라면 인생은 오히려 끝없는 불만족과 부정적 감정에 빠져버린다. 그래서 ‘어떻게 고통에서 벗어나느냐’보다는 ‘어떻게 고통을 대하느냐’가 중요하다.

돈이 유일한 신앙이자 목표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애초에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버는 돈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즉, 이상이 돈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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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함은 결코 돈으로 가늠할 수 없다. 가난함도, 부유함도 모두 마음먹기에 달려 있는 것이다.

긍정적인 마음가짐은 인생을 즐겁게 만드는 비결이자 최선의 해결책이다. 살다 보면 누구나 불쾌한 일을 겪는다. 일에서든 일상생활에서든 우울할 때가 온다. 하지만 부정적인 감정과 싸우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애써 그 감정을 부정하다가 오히려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왜 생겼고 어떻게 발전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담담히 받아들이는 편이 낫다. 그렇게 하고 나면 자신을 우울하게 만든 일이 실은 대수롭지 않고, 또한 금방 지나가리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분노는 독약과 같아서 한 번 작동하면 이성을 마비시켜 사람을 날뛰게 만든다. 분노를 한바탕 폭발시키면 기분이 나아질까? 그게 반드시 속이 후련해지는 것도 아니다. 결국 나도, 남도 피해자가 될 뿐이다.

사람들은 입버릇처럼 너무 바빠서 도저히 쉴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바빠도 의도적으로 쉴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생활에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면서 더 멀리, 더 높이 나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가끔은 바쁜 걸음을 멈추고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바라보자.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영원히 빈곤하지 않지만 자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영원히 부유할 수 없다.

이 세상에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다시 말해 부정적인 감정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다. 분노, 질투, 걱정, 절망, 자책, 원망 등 부정적 감정이 일어날 때 최대한 차분하게 이러한 감정이 생긴 원인을 생각해보자. 절대 다른 사람의 탓을 해서는 안 된다. 남 탓을 하지 않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아야 자기감정의 주인이 될 수 있으며, 감정을 지배할 힘을 얻는다. 다른 사람 때문에 화를 내는 것은 그 사람이 잘못한 일로 오히려 자기 자신을 벌하는 꼴이 된다.

아무리 사소한 계획이라도 일단 행동에 옮기지 않으면 실현 가능성은 제로다. 반딧불이가 날갯짓할 때만 비로소 빛을 발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보기도 전에 두려워하는 까닭은 부정적인 면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두 가지 면이 있다.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수록 두려움은 한층 가벼워진다. 또한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조금씩 습관이 되면 점차 자신감과 용기가 붙는다. 많이 행동할수록 두려움은 사라지고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행복의 열쇠’를 다른 사람의 손에 맡긴 채 살아간다. 그러나 성숙한 사람은 그 열쇠를 절대 남에게 넘기지 않는다. 행복이 바로 자신의 내면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행복의 열쇠’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그가 자신을 행복하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아무런 의지도 없는 꼭두각시로 사는 것이나 다름없다. 내가 행복하지 않으면 손해 보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나를 힘들게 하거나 괴롭게 한 사람에게는 나의 불행이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가끔 화를 내거나 불쾌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도 괜찮다. 단,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감정의 노예가 되지 않게 스스로를 제어할 줄 알아야 한다. 당신의 ‘행복의 열쇠’는 어디 있는가? 아직도 다른 사람의 손에 있는가? 속히 그 열쇠를 찾아와 당신 손으로 꼭 움켜쥐어라!

행복은 일종의 마음가짐이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길을 걸으며 마음을 단련해가다 보면 행복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행복임을 깨닫게 된다. 성공은 삶의 경유지일 뿐, 행복이야말로 진정한 목적지다.

쉴 줄 모르는 사람은 일도 못한다.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고 싶다면 적절히 쉬는 법을 배워라. 걸음을 멈추고, 숨 돌릴 여유를 가져라. 잠깐 휴식을 취하고 나면 더 멀리, 더 오래 갈 수 있는 힘이 생길 것이다.

진심으로 행복한 사람은 설령 가난해도 자신의 삶에 감사할 줄 안다. 이들은 이미 감사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기에 대통령 같은 최고 자리를 우러러보지 않는다. 또한 이미 삶을 충분히 누리고 있기에 돈으로 가득한 부자의 주머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인생은 아직 현상하지 않은 필름과 같다. 현상해보기 전까지는 그 안에 담긴 사진이 상상만큼 아름다울지, 아니면 엉망일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인생은 또한 길과 같아서 결과와 상관없이 끝까지 걸어가야 한다. 그 길이 평탄하든 험난하든, 부정적인 감정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발판 삼으며 타인에게 용서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좋은 결실을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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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나이를 먹어가고 생활이 점점 더 바빠질수록 우리는 세상의 다채로움에 점차 무뎌진다. 그러다 어느 순간, 마땅히 감동해야 할 인생살이에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자신과 마주한다. 실제로 이 시대의 많은 사람이 행복을 제대로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러니 삶은 점차 빛을 잃어간다.

인생이란 참으로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젊은 시절에는 인생을 알 수가 없고, 인생이 무엇인지 알 때쯤 되면 더 이상 젊지 않다.

사실, 행복은 하나의 감각이다. 행복을 위한 조건은 없으며, 모든 것은 마음가짐에 달려 있다. 행복하기로 마음먹는다면 길가의 허름한 포장마차에서 끼니를 해결해도 얼마든지 즐거울 수 있다. 그러나 욕심과 이해득실에 얽매여 마음의 평화를 잃으면 산해진미를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고 천하의 절경을 보아도 피곤할 뿐이다. ‘만족할 줄 알면 항상 즐겁다’라는 옛말처럼 지나친 욕심만 버린다면 행복을 얻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돈과 행복은 질 높은 삶의 필수요건이다. 물론 행복감이 물질적 수준과 반드시 정비례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먹고살기에 급급한 사람은 행복지수도 낮다. 그러나 생계 걱정 없는 부유한 이들이 꼭 행복하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이가 돈이 있어야만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럴까?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인생에 과연 행복이나 기쁨이 있을까? 이에 대해 샤하르는 말한다.
"돈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그들에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가 아니다. 물질을 행복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려놓은 그들의 결정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는 종종 세상의 화려한 외피에 매혹되고 타인의 시선에 얽매여 다른 사람의 기대를 자신의 목표로 착각 내지 혼동한다. 그러다 인생의 끝자락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자신이 여태껏 걸어온 길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웠는지를 깨닫는다.
다른 사람의 기대란 이웃집 정원에 핀 화초와 같은 것이지, 자신이 정말로 바라는 바가 아니다. 게다가 오히려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들고 행복에서 더 멀어지게 한다. 내 운명의 주인은 나 자신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기대 속에 살지 말라!

인생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지를 스스로 발견하고 결정해야 한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 혹은 아무런 흥미도 없는 길로 갈 필요는 없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남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가 결국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잃어버리고, 길지 않은 인생을 헤매며 허비한다. 이러한 인생에서 얻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진정으로 풍성한 소득을 얻고 싶다면 타인의 목소리가 아닌,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생은 짧다. 그렇기에 최선을 다해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진실한 나 자신으로 살아가야 한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 속에 사는 인생은 거울에 비친 그림자일 뿐이다. 그것은 절대로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혹은 남의 말을 따르느라 자신의 본능이 이끄는 길을 멀리한다면 이미 인생의 운전대를 스스로 놓아버린 것이나 다름없다. 자기 인생의 운전대를 남에게 맡겨버리고 정작 자신은 어디로 가는지도 알지 못한 채 그저 끌려가고만 있는 셈이다.

우리는 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해 온갖 고생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행복한 삶은 점점 멀어지기만 한다.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이다.

우리는 어리석은 오류에 빠질 때가 많다. 더 많이 벌고, 더 높은 곳에 올라가고, 더 큰 명예를 얻겠다는 욕심에 눈이 멀어 진정한 행복을 놓치고 마는 그런 오류 말이다. 어쩌면 지금도 마음으로는 고통의 눈물을 흘리면서 겉으로는 괜찮은 척 자기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는지 모른다. 혹은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자신을 만들기 위해 애써 어깨를 펴며 억지로 웃음 짓고 있는지 모른다.
행복은 다른 사람의 시선 속이 아니라 바로 나의 마음속에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뭐가 나쁜가? 좀 더 나답게, 자유롭게 살라. 그러면 갈수록 편안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용감하게 인정하고 솔직한 태도로 삶을 대할 때, 우리는 존중과 인정의 박수갈채를 받고 내면에서 우러나는 진정한 기쁨까지 얻을 수 있다. 인생에는 빛과 그림자가 끊임없이 교차한다. 그림자는 없고 빛만 있다면 빛이 아름답다는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완벽한 사람은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추구하는 마음이나 마침내 그것을 얻었을 때의 환희를 평생 알 도리가 없다. 어쩌면 부족함이 있기에 비로소 완전함을 이루어갈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절대로 완벽할 수 없다. 당연히 우리 역시 완전무결할 수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결점과 부족함을 가지고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완벽해지고자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무위로 돌아가는 것이다. 티끌 없이 완벽한 옥은 존재하지도 않고, 아름답지도 않다. 오히려 한 점의 티가 옥을 더욱 가치 있고 아름답게 만든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자신의 결점과 약점을 솔직히 인정하고 강점과 장점에 집중하라. 완벽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장점과 재능이 있다. 비록 지금 당장은 자기 자신에게 실망할 일밖에 없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해도 괜찮다. 자신에게도 남이 부러워할 만한 장점이 있다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된다. 단점 역시 무시하면 안 되지만 그럼에도 장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스스로 재능 없고 평범하다고 단정하지 말라. 자신을 비하하는 것은 더더욱 금물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자신 안의 빛이 다른 사람의 눈에도 보일 날이 온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담담히 직시하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자기 자신과 조화롭게 지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내면의 평화를 얻을 수 있고, 자신의 부족함으로 말미암아 이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달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행복의 시작점이다.

인생은 짧다. 그러니 나중에 행복해지기를 기다리지 말고 바로 지금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찾아라!

많은 사람이 신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한다. 그러나 정작 자신이 스스로를 용서하지 못하는 상황에 직면한다. 작은 잘못이나 실수 때문에 스스로를 괴롭히지 말고 자신에게 좀 더 아량을 베풀자. 잘못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거나 잘못을 고치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큰 문제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다 보면 의도치 않게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일단 잘못했다면 어느 정도는 자책도 하고 반성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 완벽해야 한다는 기준을 들이대는 것은 스스로에게 가혹한 일이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어차피 돌이킬 수도, 바꿀 수도 없다면 지난 일에 대한 후회로 자신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 스스로를 용서하고 마음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라. 자기 자신에게서 행복의 가능성을 빼앗지 말라.

자기 자신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라. 과거의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는 잊어버려라. 스스로를 자책의 감옥에 가두고 사지로 몰 필요는 없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인생이 펼쳐질 것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싶다는 욕심은 그 자체로 재앙이다. 그런 욕심에 사로잡히는 순간, 자신만의 개성과 특색을 잃고 다른 사람의 시선에 갇혀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경우는 대개 결과도 좋지 않다.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는 없다. 사람마다 기준과 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사람의 지지를 얻기 위해 최대한 그들의 요구에 맞추려 노력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럴 때조차 모두가 자신에게 만족하기를 기대하면 안 된다.

다른 사람의 말 한마디에 사사건건 휘둘리지 말고, 자신만의 길을 가는 법을 배워라. 남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고민하며 전전긍긍하는 것만큼 어리석고 무의미한 일도 없다!

완벽해지기를 포기하는 순간, 남에게 완벽하기를 강요하거나 자기 자신이 완벽해지려 애쓸 필요가 없어진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독특함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다. 이제부터 자신의 인생을 오롯이 누리는 법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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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제, 어릴 적의 자신을 사랑해 주는 방법을 배워야 하고, 그래서 마음아이가 더는 그 어둠 속에 멈춰 있지 않고 커 나갈 수 있게 해 줘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지금까지 설명했던 것처럼, 진정한 공감이 필요합니다. 마음으로부터의, 네 마음이 바로 내 마음이 되는, 내가 정말로 너의 편이 되는 진짜 ‘공명’입니다.

어쩌면, 공명을 하는 과정은 쉽고 간단하지만은 않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포기하면 안 됩니다. 세상에 유일한 한 명뿐인 당신이니까요. 당신이 가장 아끼고 누구보다 우선해야 할 당신, 받고 싶은 것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당신, 가장 잘 돕고 보듬을 수 있는 당신이니까요. 그러니 절대 손을 놓지 말고, 포기하지 말고, 닿을 때까지 손을 뻗어 주세요.

우리는 현실의 삶을 살아가는 데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보니, 감정은 번거로운 문제처럼 덮어 놓고 일단 눈앞의 일에 집중하게 되지요. 당장의 해야 할 일, 회사 문제, 가족이나 아이들 문제도 산 너머 산이었을 겁니다. 이런 식으로 일상에 치여 감정을 억지로 내리누르고 지나가다 보니, 이 감정들이 복리처럼 불어나서 점점 더 눈덩이처럼 커졌을 거예요. 그렇게 비슷한 일이 생길 때마다 쌓이고 쌓인 감정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잔을 넘치는 물이 됩니다.

상담을 오는 분들은 대다수가 오래된 상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트라우마이기도, 오래되었음에도 낫지 않고 계속 덧나고 덧난 아픔이기도 합니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증상으로 표출될 정도가 되었다면, 과거의 깊은 곳과 연결된 무언가 있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대다수의 큰 상처는 주로 어린 시절, 대부분 가족에게서 출발합니다.

모든 이에게 좋은 사람도, 모든 이에게 나쁜 사람도 없는 것처럼, 서로 얼마나 잘 맞고 소통이 잘 되느냐의 문제인 거지요.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있느냐를 떠나서, 부부나 연인 관계가 극단적으로 나빠진 경우에는 보통 특정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나쁜 쪽으로 주고받으면서 악화해 간 경우가 많습니다. 주로 그 과정에서 각자의 내면에 오래도록 자리해 온 상처들이 자극을 받고, 그걸 방어하다 보니 서로 더 공격하게 되는 흐름인 거지요. 그런 감정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면, 상대방이 원래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억하는 것이 힘들어지기까지 합니다.
그럴 때 상대를 다시 제대로 보려면, 우선 눈을 가리고 있던 것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우리의 상처는 다들 이런 식입니다. 다들 어떻게든 견디려, 지나가 보려, 억누르고 모른 척도 해 보려 애쓰지만 결국 속에 켜켜이 쌓이고 쌓여 우리가 가장 약해졌을 때, 가장 중요한 순간에 고개를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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