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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점심은 거의 20년 동안 계속되어 내 삶의 고요하고 빛나는 지점이 되었다. 그녀가 날짜를 제안하면 나는 늘 그 시간을 비우곤 했다.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 아, 우리 둘 다 나이가 들면서 ― 흔한 병과 작은 사고에 시달렸으나 늘 그것은 가볍게 넘겼다. 나에게 그녀는 변함이 없었다. 옷에서나 대화에서나 식욕에서나(소식이었다) 흡연에서나(굳건했다). 내가 도착하고, 그녀는 늘 이미 와 있고, 내가 앉으면 그녀는 묻곤 했다. "그래, 오늘은 무슨 소식을 가져왔나요?" 그러면 나는 미소를 짓고 그녀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그녀가 웃음을 터뜨리게 하고, 실패한 결혼과 성공한 자식과 옮겨 다니는 직업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소식을 전하려고 최선을 다하곤 했다. 그녀의 지적 관심은 시간을 초월했다. 그리고 늘 그녀가 점심값을 냈다.

나는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작별도, 소환도, 마지막 메시지도 없었다. 나는 그녀가 불평 없이, 스토아학파답게, 소리 없이, 거의 은밀하게 죽었다고 상상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 ― 이런 것이 수십 년 동안 오늘의 만트라 역할을 해왔다. 안이한 진술이다. 오히려 개인적인 것은 역사적인historical 것이다. (또 개인적인 것은, 잊지 않기 위해 말해두는데, 히스테리적hysterical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것은 어떨까. "현재의 과제는 과거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교정하는 것이다. 이 과제는 과거를 교정할 수 없을 때 더 긴요하다." 이건 EF의 목소리일 수도 있다. 또 지난 200년 내의 유럽의 어떤 철학자-역사학자가 한 말의 번역일 수도 있다.
어떤 항목은 한 문단 길이고, 어떤 것들은 한 페이지 길이고, 어떤 것들은 출처가 밝혀져 있고, 다수는 밝혀져 있지 않았다. 어떤 것들은 스크랩, 또는 즉흥적인 기록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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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것도 제출하지 못했다. 거창한 관념 몇 가지 ― 역사적 진실의 허약성, 인격의 허약성, 종교적 믿음의 허약성 등 ― 를 산만하게 집적거렸지만 한두 문단 이상을 쓴 기억은 없다. 그런 것 대신 나의 관심을 차지하게 된 것은 인간관계의 허약성과 결혼의 허약성이었다. 나는 이혼한 지 두 해쯤 되어가고 있었으며 깨끗한 법적 결별이라는 관념이 미망임을 발견하고 있었다. 상처, 원한, 경제적 고통 ― 이 모든 것은 계속된다. 또 아무리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라 해도 변호사의 간단한 편지 한 통, 새 상담사와 한 번의 만남, 아이의 장래를 두고 어른스럽게 토론하기로 하고 한 번 만난 것으로도 강박에 사로잡히고 복수심에 불타고 자기 연민에 빠지기 ― 다른 말로 제정신을 잃기 ― 십상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고통은 덜어주겠다. 나 자신에게도 그 이야기를 하는 고통을 덜어주고 싶기 때문에.

나는 대담한 사람이 아니다. 내 인생에서 대담한 걸로 오해될 수도 있는 결정들(결혼, 이혼, 혼외자를 둔 것, 한동안 외국에서 산 것)은 사실 신경과민이나 겁 때문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우리 삶에서, 그 철학자가 선포한 대로,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어떻게 해볼 수 없으며, 자유와 행복이 이 두 범주의 차이를 인식하는 데 달려 있다면 내 인생은 그런 철학적인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나 자신이 통제하에 있다는 생각과 모든 것이 가망 없고 나의 한계를 완전히 넘어서 버렸다, 이해와 삶 양쪽에서 그렇게 되었다는 깨달음 사이에서 시소를 타고 지그재그로 움직였다. 그래,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듯이, 아마도.

앞서 말한 대로 그녀는 어떤 면에서도 공적 인물이 아니었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기질로 보나 적성으로 보나 명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나는 우리 동기들이 처음에 그녀에게 어떻게 반응했는지 돌아보았다. 어떤 경외감, 초기의 꽤 많은 침묵과 어색함, 어떤 말로 표현되지 않는 재미. 그 모든 것이 곧 진짜 온기로 바뀌었다. 또 그녀를 보호하는 듯한 분위기로 바뀌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그녀가 세상에 적합하지 않다고, 고결함 때문에 상처받기 쉽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선심 쓰는 척하는 태도와는 상관없었다.

그녀와 직선적인 대화를 나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제 알겠는가? 아니, 이것도 모욕이다, 라는 걸 깨닫게 된다. 내 말은, 나에게, 또 나 같은 사람들에게 그녀와 대화를 나눌 때 그것을 주도하거나, 심지어 동등한 자리에 서는 게 얼마나 힘든지 이제 알겠느냐는 거다. 그녀가 그걸 교묘하게 조종하기 때문이 아니라 ― 그녀는 내가 만나본 여자 가운데 그런 교묘한 조종과 가장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 더 넓게, 다른 지평과 초점으로 사물을 검토하기 때문이었다.

이제, 바라건대는, 내가 왜 그녀를 흠모했는지 알게 되었기를 바란다. 또 나는 그녀가 나보다 훨씬 똑똑하다는 사실을 흠모했다. 내가 이런 말을 안나에게 했을 때 ― 딱 그대로 ― 그녀는 나를 지적인 마조히스트라고 불렀다. 나는그 딱지가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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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우리에게 한 가지 가르쳐준 게 있다면 역사는 길게 보아야 한다는 것, 나아가서 역사는 무기력하게 혼수상태로 누워 우리가 크고 작은 망원경을 들이대기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활동적이고 들끓고 가끔 화산처럼 폭발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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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크놀로지의 진보가 도덕적 혜택을 가져올 거라고 가정합니다만 철로는 아무런 혜택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인터넷도 그러겠죠. 도덕적 혜택은 전혀 없어요. 그렇다고 비도덕이 늘어난다고 말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경이로운 테크놀로지는 도덕적으로 중립적이에요. 기차는 식량을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가져다줄 수 있습니다. 똑같이 총, 또 총알받이를 더 빨리 전선에 가져다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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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핀치를 만나고 알게 된 것에 더 감사했다. 실제와 비교할 때 영 부실한 말이기는 하지만. 그녀가 말한 대로 우리는 삶에서 늘 우연이라는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 삶에서 행운의 평균 할당량이 얼마인지 또는 얼마가 되어야 하는지는 알지 못하지만 ― 이것은 답할 수 없는 질문이고, 또 어차피 여기에 "얼마가 되어야 한다" 같은 건 없는 게 분명하다 ― 그녀가 나의 행운에 속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어떤 일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다. 우리의 의견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있고, 우리의 충동, 욕망, 혐오 ― 간단히 말해서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모든 것 ― 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떻게 해볼 수 없고, 우리의 소유나 평판이나 공적 직책도 마찬가지다. 즉, 우리 자신에게서 비롯되지 않는 모든 것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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