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은 하나 없는데 뭐든 알아서 잘 딱 깔끔하게 해내야 한다. 기댈 곳은 없지만 실패는 절대 용납되지 않는 신입이라니. 사기꾼들에게 이보다 더 좋은 먹잇감은 없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전 세계 사기 범죄 1위 국가다. 작년 전세 사기 피해자만 10만 5,000명에 달했고 피해자들의 70%는 안타깝게도 사회 초년생들이었다. 이유가 있었다. 초년생들의 뇌는 유독 사기꾼들의 기술에 취약했기 때문이다. 사기꾼들은 딱 두 가지 기술로 초년생들의 뇌를 요리했다. 강압적으로 압박하거나, 따뜻하게 위로하거나.
정부는 부랴부랴 전세 사기 특별 수사팀을 구성했고 사기 범죄 형량 강화에 대한 논의도 곳곳에서 시작되었지만 그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진짜 중요한 일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근본적으로 사기의 난도를 올리는 것. 다시 말해, ‘똑똑한 뉴비를 만드는 것’이다.
‘다 큰 애들한테 그렇게까지 해줘야 돼?’ ‘우리 땐 다 발로 뛰었는데 말이야’ ‘하나하나 알려주면 버릇 나빠져’라고 말하고 싶은 어른들이 수두룩 빽빽일 테지만, 모르는 소리. 요즘 애들이 더 멍청해서 혹은 덜 노력해서 사기를 당하는 것이 아니다. 그땐 그냥 사기꾼들도 멍청했을 뿐이다.
나 살겠다고 뉴비 등쳐 먹는 짓은 엄중히 단죄하고 어렵사리 물어보면 기분 좋게 알려주고. 쓸 만한 아이템이 있으면 맘씨 좋게 나눠줘야 한다. 당연히 비난의 화살은 뉴비가 아닌 몹쓸 사기꾼과 불법 핵 유저들을 향해야 한다. 그게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우리 고인 물들이 해줘야 하는 일이다.
누구를 위해? 나를 위해. 우리라는 게임의 건강을 위해.
습관적으로 타인의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사람들이 있다.
작은 실수를 과하게 꼬집고 최대한 망신을 줘 주변의 편견을 조장하는. 그래서 자신의 입맛에 맞게 우리를 조종하려 드는 사람들이. 이들은 자신의 말에 무너지는 타인의 모습을 보며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데, 가히 일상적 사이코패스라 표현할 만하다.
모든 사이코패스가 살인자가 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법에 걸리지 않는 살인을 한다. 몸이 아닌 정신을 죽이는 것이다. 이들은 절대 누군가를 죽이지 않는다. 단지 죽고 싶게 만든다. 별 이유는 없다. 그게 더 편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는 전자보다 훨씬 더 섬뜩한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이토록 선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나 역시
진짜 사이코패스는 감옥에 있지 않다. 그들은 학교와 회사와 가정과 동호회 안에 있다. 더 섬찟하고 더 똑똑한 모습으로. 그런 사람들에게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나는 도망치는 것밖에는 알지 못한다. 나약해서, 부족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도망쳐야 할 때도 있으니까.
물론 누군가는 이런 것도 못 견디는 놈이 도대체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또 훈계를 놓겠지만, 유명 격투기 선수조차 말하지 않았나.
"칼 든 사람을 어떻게 이겨요. 도망쳐야지."
프로 격투기 선수조차 칼 든 상대에게는 답이 없다. 그리고 세상에는 손보다 입으로 칼을 들고 사는 사람이 더 많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사는 나라다.
한 해 평균 1,900시간을 일하는데도 업무 시간을 더 늘리려는 나라며, 평균 공부 시간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 거기다 과로사로만 한 해 500명이 넘게 죽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재수생과 취준생 수는 매년 정점을 찍고, 청년 자살률 또한 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열심히 살지만 가장 많은 실패를 하는 나라.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가장 많이 건네는 말은 이렇다.
"누칼협?" 그러니까 누가 그렇게 살라고 칼 들고 협박함?
절망이 넘치는 시대, 우린 좀 더 운의 힘을 믿어야 한다. 최선의 선택을 하고 최선의 노력을 해도 원하지 않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당연한 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실패는 온전히 당신의 것이 아니다. 최선을 다한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는 말을 좀 더 넉넉하게 건넬 줄도 알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핑곗거리가 아닌, 삶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시작할 용기를 얻기 위해.
사람은 나이를 하나 먹을 때마다 타고난 표정 하나씩을 잃는다고 한다. 웃음, 행복, 만족, 기쁨. 신기하게도 맑은 표정부터 잃게 되는 우리는 짜증으로 일관되다 결국 무표정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고.
그래서 웃음에는 연습이 필요하다. 웃음이 행복이, 모래 위 글씨처럼 인생이란 파도에 쓸려가기 전에 습관을 만들고 몸에 배게 해야 한다. 화밖에 남지 않은 얼굴로 마지막을 장식하고 싶지는 않다. 끝까지 삶에 웃어 보이고 싶다.
‘인생은 원래 차가운 거야’라는 멍청한 생각 때문에 다 잊어버린 즐거움이었다. 언제부터 이 모든 것을 잊어버렸던 걸까.
문득 냉소했던 어느 코미디언의 말이 떠올라 피식한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겁니다." 나도 조금은 밝아질 수 있을까?
현대사회에서 가장 값비싼 물건은 단연 ‘관심’일 것이다. 틱톡, 인스타그램, 유튜브, 페이스북, 트위터 등등. SNS에서는 매초 단위로 타인의 소식이 올라오고 그 속에서 관심을 얻기 위해 우린 더더욱 희소한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그리고 알다시피 명품은 그를 위한 가장 손쉬운 수단이다.
명품에는 설득이 필요 없다. 사진이면 한 컷이면 간단하게 세상에 선포된다. "지금 이 순간 나만큼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모든 인생이 그렇듯 극강의 편리는 항상 극강의 부작용을 낳기 마련이다.
내 얼굴은 어딘가 찌그러졌지만 나름 귀엽고, 돈까스는 오마카세보다 열 배는 저렴하지만 질리지 않아요. 퇴근길 지하철에서는 우연히 빈자리도 발견했어요. 그게 내 인생이더라고요. 생각보다 괜찮은 내 인생. 물론 요즘도 주로 불행해요. 친구들의 SNS를 보며 왜 내 인생만 이런가 뱃속이 자주 뒤집히기도 하죠.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이렇게 다짐해요.
오늘도 내 인생에는 비가 많이 내릴 거야. 하지만 말야, 나는 그 속에서도 춤출 줄 아는 사람이지."
자신과 맞지 않는 취향에 ‘이상하다’라는 말로 거리 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독특하다’라는 말로 포용하는 사람이 있다. 이 짧은 순간에도 우린 그 사람이 세상을 대하는 체온을 느낄 수 있다. 무엇이 맞고 틀린지를 떠나 무엇이 더 따뜻한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한번 해볼까?’ 해보지 않은 것에 섣부른 마침표를 찍지 않고 꾸준히 물음표를 던지는 그들을 보며 나는 내 인생에서도 아직 할 것이 남아 있다는 기대감을 느낀다. 삶에 쉽게 담쌓지 않겠다는 의지를 또 한 번 불태우게 된다.
사람의 말에는 그가 가진 참 많은 것들이 드러난다. 내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느끼고 해석하고 결론짓는지는 의외로 내가 평소 쓰는 말투에 담겨 있다. 마치 어릴 적 방학 숙제로 해간 양파 실험처럼 좋은 말, 예쁜 말을 더 많이 듣고 뱉은 나일수록 마음의 크기 역시 잘 자라게 됐다. 예쁘게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서는, 먼저 예쁜 말을 써야 했다.
삶을 예쁘게 바라보는 사람이 되고 싶다. 매사 긍정적으로 살아가고 매일은 아니더라도 자주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나는 25년 전 초등학생 때의 내가 양파에게 해준 것처럼 나를 속이고 또 달랠 것이다.
"걱정 마, 오늘도 멋진 일이 일어날 거야." 그렇게 내 세상은 조금 더 예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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