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쌓여 한 달, 일 년이 되고 미래가 됩니다. 여기서 긍정적인 사실은 실패도 서서히 쌓이지만 성공도 서서히 쌓인다는 것입니다.
도덕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거창한 철학이 등장할 것 같지만 헤밍웨이가 정의하는 도덕은 의외로 심플합니다. 내 기분을 자제하지 못하고 스스로에게서 도망치기 위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면 결국 자신은 더욱 더 불쾌해진다는 것이 헤밍웨이가 말하는 도덕입니다. 정말 간결하고 명료하죠. 우리 역시 감정을 주체 못하고 내뱉은 말 때문에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습니까? 나를 마주하지 못하고 지금 이 상황에서 도망쳐 일을 그르친 적은 얼마나 많은가요? 하지만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서 말하는 도덕, 즉 기분대로 행동하고 나서 후회했는지, 불쾌했는지 생각해 보면 이런 후회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헤밍웨이가 제시한 이 가이드라인처럼, 자신의 기분과 감정을 면밀하게 들여다보면서 훗날 스스로 불쾌해지지 않는 도덕적인 선에서 행동을 해 나가면 인생의 작은 해답이 되지 않을까요? 나에게 변명하지 말고, 나에게서 도망치지 말고 말이지요.
매일 같은 것이 반복되는 우리의 하루도 어떤 면에서는 시시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실한 하루들이 모여 인생의 총합을 이루고 멋진 삶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헤밍웨이가 무명시절부터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이후까지도 스스로 다그치며 외웠던 만트라는 ‘하나의 진실된 문장(one true sentence)’이었습니다. 문학계에서는 ‘헤밍웨이=하나의 진실된 문장’이라고 정의할 정도로 그를 대변하는 표현입니다. 단어, 문장, 단락, 소설 전체가 진실되어야 했기 때문에 그는 경험하지 않은 것은 글로 옮기지 않았습니다. 모든 작품 하나하나가 그의 삶 자체였습니다. 다른 어느 작가보다도 헤밍웨이의 작품은 그의 인생과 주변 사람을 알아야만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진실한 문장을 탄생시키기 위해 그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가혹했습니다. 비평가들이 칼날을 들이대기 전에 진실되지 못한 자신의 글을 스스로 도려내야 했습니다. 자신에게 끊임없이 질문해야 했기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상처와 충격을 이겨 내는 능력이었습니다.
인생에 어느 압박도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짓누르는 부담을 이겨 내는 일입니다. 사람은 압박에 취약합니다. 짓눌리다가 엉뚱한 실수를 하기도 합니다. 심적인 부담을 못 이기고 최악의 수를 두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럴 때 대개 나‘만’ 인생이 안 풀린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과연 진짜로 그런가요?
인간은 누구나 고독을 품고 있습니다. 인류가 이 지구상에 온 이후로 지금까지 변하지 않은 사실일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하게 공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 바로 이 외로움이라는 감정입니다. 세상이 눈부시게 변하고 인공지능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도, 모든 고독과 외로움을 문명의 이기로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외로움과 고독이라는 감정은 각자의 사정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로 콕 집어 표현하기 어려운 것을 대신 드러내 말해 주고 있는 것이 헤밍웨이의 작품입니다. 이런 이유로 헤밍웨이의 작품들이 영원한 고전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고독의 감정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몰입의 힘은 대단합니다. 몰입해 달리다 보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도 합니다. 내가 지금 몰입하고 있는 분야에서 성과가 나지 않더라도, 내가 열고자 하는 문이 끝내 열리지 않더라도 적어도 다른 문은 열리거든요. 또한 몰입하는 순간에는 결핍을 따질 겨를도 없습니다. 톨스토이가 말했듯 자신이 생각할 때 너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여겨질 때는 쓸데없는 일에 마을 쓸 겨를이 없기 때문입니다.
꿈과 목표 이 두 녀석들은 질투가 많습니다. 자신들에게 완전히 헌신하지 않으면 눈길조차 주지 않지요. 다른 데 신경 쓰는 것을 못 참고 떠나 버립니다. 때문에 재능만으로는 한 분야에서 인정받기 어렵습니다. 일관성과 노력이라는 진리에 의해서 인정받는 것이지요. 피츠제럴드의 몰락은 아무리 훌륭한 재능도 목표와 노력 없이는 빛을 잃는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누구든 다리 하나로 설 수 없는 것처럼, 재능도 홀로 설 수 없습니다. 노력이라는 다른 다리가 꼭 필요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틈틈이 뇌가 한숨 돌릴 틈을 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지금 처한 일상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을 부러워하고 동경합니다. 현재란 어쩔 수 없이 그런 것입니다. 항상 불만족스럽고, 내 현실이 아닌 것은 다 멋진 영화처럼 보이지요. 동경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어 합니다.
자신이 가진 가치보다 더 많은 지출을 하게 되면 빈곤과 파산에 이릅니다. 자신이 가진 가치가 얼마인지 모르고 무언가를 계속 얻으려 하다 보면 정신적인 빈곤, 인간관계의 후회, 지식의 파산에 이를 수 있겠죠. 후회 없이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스스로 반성할게 없다는 뜻인데 좋은 의미가 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반드시 어떤 대가를 치르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대가를 치르기 위한 준비로 무언가를 많이, 그리고 미리 채워 두어야 합니다. 세상은 다양한 재화를 사고파는 거대한 쇼핑몰이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삶이 지겹고 지긋지긋할 때 현실에서 달아나고 싶은 기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도망친 그곳은 얼마나 천국 같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놀라지 마세요. "달아난 곳에 천국은 없습니다." 제가 장담하지요. 도망친 그곳에서도 역시 새로운 걱정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금세 또 다른 낯선 곳으로 도망치고 싶어질 겁니다.
모든 인생의 이치는 ‘평균으로의 회귀’ 법칙을 따릅니다. 세상 모든 일이 평균에 맞춰지기 위하여 좋은 일은 나쁜 일을 끌어오고, 나쁜 일은 좋은 일을 끌어온다는 법칙입니다. 어쩌면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이 그냥 그저 그런 하루를 걱정 없이 보내는 것이 최상일지도 모릅니다.
요즘 ‘메타인지(한 차원 높은 인지 과정으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는 능력)’라는 단어가 유행합니다. 스스로를 마주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도망치지 않고 스스로를 직시한다는 것은 위치, 한계, 본질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내 안의 나는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심각한 나르시시스트가 아닌 이상 용서가 안 되는 부분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와의 화해, 소통, 반성, 용서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메타인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삶이 다르게 보입니다.
스스로를 진실하게 마주하고 넘치는 생각과 자기연민을 버리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우선 자신에게 규율을 정해 보세요. 과도하게 생각하거나 자기를 연민할 틈이 생기지 않을 규칙을 만드는 겁니다. 헤밍웨이의 규칙은 하루에 쓰는 단어 수를 정해 놓고 매일 쓰는 것이었습니다. 자신만의 방법을 찾아봅시다. 자신을 하루하루 단련하다 보면 얇은 철사를 꼬아 두꺼운 철근이 되듯이 강인한 내면으로 자라날 겁니다.
마음을 따르는 삶을 살며, 아름다운 이야기가 내면에 남은 사람은 명랑하고 행복한 마음 근육이 짱짱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야깃거리가 많다는 것은 일하는 데 있어서 남들과 차별화되는 영감을 주는 것은 물론, 살아가는 내내 자부심이 됩니다. 단편적인 지식이 주지 못하는 입체적인 행복은 이런 곳에서 나옵니다.
생각을 계속하다 보면 자연히 한도를 넘게 됩니다. 실패자가 아닌데도 생각이 부풀려집니다. 기분이 좋다가도 생각할수록 모든 게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가장 중요한 건 생각을 방치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일어나는 핵심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그 핵심 이유가 나도 모르게 떠오를 때는 생각 버튼을 바꿔 버려야 하는 겁니다.
우리는 모든 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세상에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은 없습니다. ‘하루아침에’라는 표현 역시 이전에 수많은 과정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그 일은 사실 우리의 하루 속에서 천천히, 서서히, 조금씩 만들어진 것들입니다. 성격이나 인생을 사는 태도 등으로 이미 모든 조건이 마련된 상태에서 하나의 불씨로 인해 큰 불이 일어나자 마치 갑자기 불이 난 것처럼 보일 뿐인 겁니다. 우리는 변화의 신호를 주의 깊게 관찰해야 합니다. 변화를 외면하면 현실에 머물게 되고, 현실에 머물면 적응에 실패하고 인생에 실패할 테니까요.
되었습니다. 지금 차갑고 세찬 비를 맞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도 없는 벌판에 혼자 서서 비를 맞으며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봄이 영영 오지 않을 듯 겨울이 기승을 부려도 결국 봄은 옵니다. 거센 폭풍 같은 압박 속에서 헤밍웨이의 글이 작은 우산이 되어 줄 거라 믿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봄이 곧 찾아오길 바랍니다.
일단 잘하든 못하든, 완벽하든 아니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시작한 후에는 완벽을 위해 다그치기보다는 자신만의 속도로 여유를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일할 수 있거든요.
헤밍웨이가 인용한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가 더더욱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헤밍웨이의 세대는 갔지만 지금 우리 세대 또한 또 다른 전쟁터에서 살아가고 있고, 이런 우리의 모습은 변하지 않으며, 영원히 세상은 그대로라는 사실이 말이지요. 태양은 또 다시 떠오릅니다. 그러니 불행할 필요 없지요. 21세기의 길 잃은 세대도 제이크처럼 자신의 삶에 책임을 느끼고, 인생이 달아나지 않도록 따듯한 시각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사실은 지금 바로 여기가 괜찮은 곳입니다. 지옥 같아 보여도 본인의 현재에서 승부를 봐야 합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 봐야죠. 다른 곳으로 도망쳐도 똑같을 겁니다. 왜냐하면 천국은 어디에도 없으니까요.
청구서는 대부분 사람이 잘 모르고 지나가기도 하고 당장 깨닫지는 못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무조건 깨닫게 되는 인생의 진리이기도 합니다. 변하지 않고 세상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죠. 꼭 연애가 아니더라도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호의 역시 대가를 치루지 않고 계속 받기만 하다 보면 언젠가는 청구서가 날아오기 마련입니다.
일을 잘 끝내려면 오히려 숨 쉴 틈을 주어야 합니다. 오늘 떠오른 영감을 다 짜내어 써 버리며 내일의 영감이 말라비틀어지도록 하면 안 됩니다. 체력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오늘 50퍼센트 또는 70퍼센트만 쓰고 완전히 방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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