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집필하는 동안에도 너무 많은 여성이 다쳤고, 숨졌다. 책임 있는 자리에 앉은 자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고,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로 여러 방안에 무책임하게 고개를 젓는 모습도 빈번히 마주했다. 그러나 지치지 않을 것이고 낙담하지도 않을 것이다. 더 날카롭게 비판하고, 토론하고, 글 쓰고,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는 일들을 지속하면서 주어졌던 삶을 미처 살아내지 못한, 마땅히 살아 있어야 했던 그 여성들의 소중한 삶의 의미를 이어나갈 것이다.
방어폭력이란 친밀한 관계 폭력 피해자가 자신을 치명적인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가정폭력인 경우에는 함께 있는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폭력을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먼저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걷어차여 넘어진 상황에서 마지막 힘을 내 가해자의 다리를 힘겹게 물거나, 고통에 못 이겨 손톱으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내는 것, 공격을 막으려고 상대의 팔을 강하게 붙잡는 행동 등이 해당될 수 있다.
피해자들의 방어행위는 생존 본능에 가깝지만, 경찰 수사에서 이들은 가해자와 마찬가지로 폭력을 행사한 사람, 즉 서로 싸운 동등한 당사자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수사를 담당한 경찰관들이 맞대응, 즉 방어폭력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친밀한 관계 폭력에 대해 제대로 훈련받지 않은 경찰은 이러한 상황을 쌍방폭행으로 판단하기 쉽고, "둘이 알아서 하라"라거나 "서로 처벌 의사가 없으니 이쯤에서 정리하라"라고 조언하며 사건을 종결한다. 11번의 신고에도 피해자를 구하지 못한 데는 ‘방어폭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비전문적 수사기관의 책임이 크다. ‘폭력을 사용한 건 모두 잘못’이라는 경찰의 협소하고 무지한 판단은, 피해자에게 맞아 죽을 때까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말라는 것과 다름없다.
반복되는 신고는 피해자가 스스로의 힘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나라 경찰은 이러한 반복 신고를 위험 신호로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보다는, 단순히 피해자가 습관적으로 신고하는 것으로 치부하며 사안을 가볍게 여기는 경향이 있었다.
동일한 주소지와 전화번호에서 반복적으로 신고가 접수될 때, 경찰은 이를 심각하게 인식하기보다는 번거로운 일로 여기며 소홀히 대응했다. 마치 별것 아닌 문제로 공권력을 낭비한다는 인식이 내재된 행동 반응이다. 이처럼 반복된 경찰 신고가 아무런 실질적 효과를 내지 못할 때, 이는 단순히 피해자가 도움을 받지 못한 데서 그치지 않는다. 피해자는 점점 더 절망에 빠지고, 가해자는 오히려 자신감과 대담함을 얻는 왜곡된 상황이 만들어진다.
우리나라에 교제폭력을 규율할 수 있는 법률이 없지는 않다. 〈형법〉에 규정되어 있는 통상적인 폭행 및 협박죄로 가해자를 신고하고 처벌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런데 피해자가 과연 사건을 ‘접수할지’ 경찰이 궁금해하는 이유는 〈형법〉의 폭행 및 협박죄가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범죄이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죄란 피해자가 가해자를 처벌할 의사가 없다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를 말한다. 가해자가 분명히 범죄 행위를 저질렀음에도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가해자는 처벌받지 않는다. 따라서 경찰, 가해자 모두 피해자의 입을 바라보면서 피해자의 결정을 기다린다. 친밀한 관계의 그 ‘친밀성’이 피해자를 얼마나 취약하게 하는지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이러한 규율은 피해자를 오히려 위험에 빠뜨린다.
가해자 처벌 여부가 가해자의 범죄 행위가 아니라 피해자의 처벌 의사에 달려 있다는 것은 가해자를 의기양양하게 만든다. 자신이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피해자에게 은근한 경고를 주어 사건을 무마하는 일 따위는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정폭력 신고 과정에서 경찰이 피해자에게 가해자 처벌 의사를 묻는 관행의 문제점은 오랫동안 지적되어왔다. 피해자는 보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처벌 의사를 쉽게 밝히기 어렵다. 특히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의 경우, 피해자의 모든 정보가 가해자에게 노출되어 있어 신고 이후에도 안전을 보장받기 힘들기 때문이다. 가정폭력과 교제폭력의 높은 현장종결률은 가해자 처벌에 대한 피해자의 상당한 부담감을 방증한다.
가해자는 피해자의 한마디에 따라 경찰 수사를 받을 수도 있고, 반대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상황이 정리될 수도 있다. 피해자의 의사에 따라 가해자의 처벌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피해자가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이러한 제도는 피해자를 더욱 취약하게 만든다. 경찰이 "가해자 처벌을 원하십니까?"라고 물을 때, "네, 엄하게 처벌해주세요. 제가 당한 일을 생각하면 정말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피해자는 많지 않다. 이는 가해자를 여전히 사랑해서도, 피해가 가벼워서도, 연인과의 관계가 어색해질까 걱정해서도 아니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무섭다. 처벌을 원한다고 답하면 "네가 나 전과자 만들고서 무사할 것 같아?" "내가 널 가만둘 것 같아?" "너뿐만 아니라 네 가족도 다 죽여버릴 거야. 너 이거 거짓말 같지?"와 같은 가해자의 협박을 마주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간의 경험을 통해 가해자가 실제로 잔인한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가해자는 내가 사는 집, 친구들의 집, 부모님의 집, 학교, 직장 등 내가 다니는 동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의사불벌 조항은 국가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개인 간의 경미한 다툼을 원활히 처리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사소한 시비나 분쟁이 있었다가 화해하고 합의할 의사가 있는 경우 법정까지 가지 않고 개인 간 해결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그러나 이러한 조항은 서로 모르는 타인 사이에는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교제폭력이나 가정폭력에서는 피해자를 취약하게만 한다. 보복폭행의 두려움으로 피해자가 진정한 의사를 밝히기 어렵기 때문이다.
명백히 시스템의 문제다. 미국에서는 친밀한 관계에서 발생한 폭력에 대해 가정폭력 의무체포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주별로 현장 조치의 수위가 다를 수 있으나, 최소 23개 주와 워싱턴 D.C.에서 의무체포 제도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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