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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뉴 나는 무엇을 아는가
미셸 드 몽테뉴 지음, 손우성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5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드디어 이 책이 온전한 형태로 재간되었다는 점을 먼저 기쁘게 생각한다. 사실 한 일 년 전 쯤 재간된 판에 인명사전 등이 삭제된 형태로 나와서 적지 않이 분노하였던 차이다. 이 번 판에서는 인명 및 테마 사전이 다시 나왔기에 독자들에게는 보다 몽테뉴를 제대로 느낄 쑤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하게 될 것이다.
몽테뉴. 흔히 어쭙지 않은 사람들이 이 몽테뉴의 사상을 함부로 이러느니 저러느니 단정을 짓는데 나는 그것을 보면 코웃음이 나온다. 어떤 면에서 몽테뉴는 동양적인 의미의 겸손함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이다. 그의 좌우명은 한마디로 요약된다.
"내가 무엇을 알겠는가?"
이런 좌우명을 가진 그가 자신의 사상을 자랑하려 이 글을 쓰는 위선을 행하였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몽테뉴는 신구교의 대립에 의한 종교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소극적이나마 관용을 주장하는 어쩌면 한 평범한 소시민의 바램을 좀 현학적으로 세련되게 표명한 것일 수도 있다. 따라서 몽테뉴의 이런 자유자재한 수필들을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해서 자신만의 독특한 몽테뉴를 빚어내기 보다 이 책을 한자 한자 읽어가며 몽테뉴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데는 서양 역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잇어야한다. 특히 고대 중세사를 알아야 하며 중세 철학 이나 적어도 플라톤 정도는 미리 알면 도리어 아주 재밌게 읽을 수 있기도 하다.
그러나 나 역시 한가지 나름대로 해석하고자 한다면, 한국적인 상황과 맞물려 이 관용이란 주제에 대해 한마디 하고 싶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지나치게 관용이 부족하다. 무엇이든 빨리빨리이고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서 의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감정에 아주 충실한데 그 바탕은 아마 사회적인 불공평에 대한 반발심때문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종교전쟁 못지 않은 비극이었던 625의 영향으로 보여진다. 전쟁전에는 북진통일을 주장했던 노대통령은 막상 전쟁이 나기가 무섭게 도망가는 것으로 부족해 전략적인 가치조차 의심스런 조치를 취했다- 북한은 다른 도강 준비가 된 상태였다. 한강 폭파.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것도 대한민국의 정통성에 의문을 제기하고도 족히 남음이 있다. 담당자는 통행제한을 가한 상태에서 폭파한 것도 아니오
피난민들이 북적되는 다리 한복판을 파괴했다. 이런 대통령이 다시 돌아와서는 살기 위해 부역했던 사람들에게는 가혹하게 대했으니 참으로 어질지 못한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오늘날 이 대한민국이 비록 밥술이나 먹게 되고 좀 사는 것처럼 되었지만 여전히 이 나라가 정의로운 나라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오히려 약육강식의 정글의 법칙이 좌우한다고 많은 사람들은 느끼고 하루하루 내가 먼저 사기치지 않으면 손해본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으로 필자는 본다. 관용을 말하기 전에 이 대한민국에서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무자비하게 굶어죽거나 맞아죽거나 혹은 손해보고 살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오직 무질서 뿐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몽테뉴가 꿈꾸던 관용에 매력을 느낀다. 그것은 다른 말로는 "신중함"이라고도 할 수 있을 듯 싶다. 사실 서양이 우리랑 다른 별천지에 그 나라 사람은 매우 우수한 것과 같이 느끼지만 서양사람들도 역사를 들여다보면 우리의 오늘처럼 무질서와 혼란을 다 겪어 보았던 것이다. 몽테뉴가 이 책을 쓴 이유도 바로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인 그런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개인 적으로는 몽테뉴의 죽음에 관한 고찰을 매우 감명깊게 읽었다. <철학을 하는 것과 죽음을 배우는 것>을 동일시까지 했던 그였기에 죽음은 결코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탐구되어야 할 인간사의 한 부분에 불과한 것으로까지 격하되었다. 이는 전편에 넘치는 몽테뉴의 소극성에 비해 매우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식인종에 관하여>,<기형아에 대하여> 와 같은 문화인류학적 또는 병자 사회학적인 편견에 대한 고찰을 통한 관용론에 대해서는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싶다.
그나저나 혼자만 잘살면 된다는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이 대한민국에서 한 번쯤 보다 잘 살기 위해서라도 한번 쯤 쉬어가는 마음으로 편안히 읽어보기를 권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