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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복거일 / 문학과지성사 / 1998년 6월
평점 :
識者憂患.
나는 이 책과 그간 복거일의 주장을 살펴보면서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보통의 인물들 평범한 인간들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본다. 그런데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스스로 "조금 더 안다"고 생각하는 어쭙잖은 지식인일 때가 많다. 그런 면에서 <범인에겐 침을, 바보에겐 존경을, 천재에겐 감사를> 이란 어느 가난한 조각가에 슬픈 유언에 더욱더 고개가 끄덕여진다.
민족을 핑계로 무지막지한 쇄국주의 폐쇄주의를 애국으로 착각하는 많은 한국의 세태에 일침을 가하는 것까지는 좋은 생각이었다고 인정한다. 그런데 그것에 한걸음 나아가 영어를 공용화하여야 한다는 데에서는 어쩌면 이 복거일이란 사람도 사실 지적으로는 그가 비판하는 보수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협소한 주견밖에는 없을 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가진다. 識者憂患. 자신의 전문분야에 대해 잘 아는 듯한 착각이 들면 괜히 우쭐하는 것이 인간의 심사인 것을 보면 그러한 무모함이 오늘날 우리사회에 쓸데없는 근심거리를 더하는 것 같아 마음이 매우 착잡하다. 하긴 잘 생각해 보면 이 복거일이란 사람 비록 識者憂患 의 범주에 들더라도 꽤 순진하고 들어줄 만한 주장이 많다고 느끼기는 하다. 국어를 공격하는 더욱 사악한 시도의 조갑제나 조선일보류의 꼴보수주의 보다는 매우 순수한 주장일 것 같다.
두 조씨들은 마치 한글전용이 우리 문화수준을 크게 하향시켰다고 보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우리 무화수준은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이다. 우리 문화는 조선후기이래 큰 침체기를 맞았고 아직 회복하지 못했을 뿐이고 그리고 이제 얼마 안된 한글 전용 당연히 우리의 지금의 문화수준을 고대로 반영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이들에게는 과거 세종대왕님께서 최만리등 속된 선비를 꾸짖으셨던 "庸俗"한 지식인의 범주에 든다 하겠다.
영어공용화론을 주장하는 복거일은 전형적인 무력학 지식인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공용화하는 인도, 필리핀은 얼마나 잘사는가? 무력한 지식인은 헛된 이미지에 잘 속는다. 어디 미국 영국이 잘사는 것이 영어를 쓰기 때문이라던가? 참으로 식자우환이란 한국사회의 불치의 병이란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