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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 전10권 ㅣ 조정래 대하소설
조정래 지음 / 해냄 / 2001년 10월
평점 :
품절
해방정국과 6.25에 이르는 건국초의 혼란상에 남한 빨치산처럼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 들중 다수가 죽음을 각오할 만큼 자신의 신념이 옳다고 자신하고 있는 용사들이었고 또 상당수가 항일 경력이 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북한으로부터는 소모품처럼 취급되었으며 미군정과 신정부로부터는 가혹한 탄압을 받았던 것이다. 비록 이 소설에도 드러나듯 그들 자신이 수많은 증오 범죄와 보복학살을 행한 당사자로 자신들이 혼란을 더한 죄인이라는 것을 아주 부인할 수는 없을 망정 최소한 그들을 위해 충분한 변명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전후 빨치산을 소재로 한 소설이 계속 출간되었지만 이 책에 의해 비로소 빨치산의 다소 억울함이 해소되고 마치 그 때 그 인물들이 다시 나타난 듯한 느낌마저 든다. 왠지 그들이 원통하게 죽어 지금 지리산이나 태백산맥 어느 곳을 배회할 그들의 영혼이 이 책을 읽고 비로소 원한을 풀고 저승으로 갈 것같다. 그러한면에서 역사가 단지 '힘있는 자들의 기록' 이어서는 안된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이 책은 여순반란이 실패로 돌아가서 벌교지역을 접수해 인민재판과 토지개혁을 실시했던 빨치산 두목 염상진이 노출된 조직원을 이끌고 다시 산으로 숨어드는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여기서 부터 그들은 실제 역사에서 그러했듯이 해방정국과 맞물리며 토벌대,군경을 상대로 역사와 민족을 위한 가열찬 투쟁에 들어간다. 그러나 기쁨도 한 때, 그들은 잠시 6.25직후 인민군의 진주로 고생 끝에 해방의 감격을 맞이하였으나 인민군과 함께 북으로 가지 못하고 입산한다.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김일성 등은 그들을 남겨둔채 휴전협정에 나선다. 이 때 부터는 더이상 빨치산들이 자신의 투쟁목표를 상실한 시점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공화국"을 위해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그들의 결의에서 나는 어떤 묘한 냉소를 느꼈다. 좌우익을 막론하고 많은 연구자들이 도대체 그들은 무엇때문에 순교자가 되었는지 혀를 끌끌 차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일 것이다. 그들 중 과연 얼마나가 공산주의가 무엇인지나 알기나 했을까하는 이야기는 괜히 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것도 냉엄한 현실임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이런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그들의 선택은 투항이냐 죽음이냐하는 것이다. 주인공 염상진은 기꺼이 자신을 포위한 토벌대 앞에 투항을 거부하고 부하들과 자폭한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새로운 다짐과 결의로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어쨌던 당시의 숨막히는 상황을 소설을 통해 재현하는데 성공했다. 그것이 조정래 소설의 매력이고 그래서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조정래의 인물 설정에 대해서는 유감이다. 쟁쟁한 실존인물들을 놔두고 하필이면 가공 인물은 염상진을 주인공으로 설정했다는 점이 그런것이다. 사실 고독한 영웅(?)을은 실제로도 널려있다.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남부군 사령관 리현상, 육본 지휘부까지 나서 구명운동을 했던 대남유격대총사령관 남도부 등은 실제로 남과 북으로 부터 무수한 훈장과 포상을 받고 영화를 누리를 사람들에 비해 전혀 손색이 없는 외면받은 한국전의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염상진이 별로 기대에 맞지 않음이 아쉬움이다. 또한 김범우와 같은 갈등하는 지식인 상은 이광수의 최초 소설 이형식 이래 항상나오는 계몽주의의 표본인 것 같아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는 행동하는 구태 그 자체였다. 또한 3류소설에서나 나올 만한 뻔한 소재도 간간히 신경을 거슬렸다. 예를 들어 우익단체 간부가 빨치산의 아내를 강간하는 장면 같은 것은 너무 유치하지 않은가 한다. 하지만 어차피 독자를 겨냥하는 소설이어야 한다면 이와 같은 통속성도 용인되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니 어쩔수 없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니 내 본심이 드러난 듯하다. 사실 나는 이 소설이 완전히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소설의 한계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역사자체가 주인공인 이러한 류의 소설에서 인물설정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물론 소설로서는 훌륭한 소설이다. 하지만 조정래 못지않게 역사를 사랑하는 나의 입장에서 적지 않이 실망한다. 지은이의 역사관 자체에도 그다지 사실 큰 공감은 못한다. 나는 역사에 대한 어떤 주견을 가진 역사주의자가 아닌 리얼리스트이기에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 역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떤 역사라도 그 역사를 남긴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기타의 주관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면 하물며 소설의 한계는 명확한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현장감있는 경우에 있어서는 하나의 시뮬레이션이 되기는 하겠지만. 이제는 우리 모두 하대치와 같이 상진의 무덤앞에서 눈앞에 닦친 진짜 현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