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자와 유키치 - 탈아론을 어떻게 펼쳤는가 역사 속에 살아 있는 인간 탐구 16
정일성 지음 / 지식산업사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일본 최고액권의 모델이 메이지 천왕이 아니라 후쿠자와 유키치(福澤諭吉)란 사실은 참으로 의외의 일이다. 메이지 유신을 필두로하는 일본의 개화시대에 있어서 그 만큼 후쿠자와 유키치의 역할이 지대함을 느낄 수 있을 뿐 만아니라 이 후쿠자와 유키치는 그 시대에 있어서만큼은 적어도 일본적 사상가가 아닌 범동양적 사상가였다. 그가 '일신의 독립이 일국 돕립의 기초"란 신념의 자유사상을 옹호하는 <학문의 권장>을 저술하던 1870년대까지만 해도 그는 서세동점의 정세 속에서 동요하던 동양의 학계에서는 거물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그의 여러가지 국가주의자로서의 사상적 변모 과정을 통해 우리에게는 <탈아론>을 통해 일본 제국주의의 사상적 뿌리로 부정적인 인식을 남기고 있다.

아직 이 개화기의 거장이 남긴 변변한 역서가 부조한 이 때, 나름대로 이 책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일생과 그의 사상적 변화과정을 개략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대략 후쿠자와의 삶과 사상은 1880년 경을 기준으로 확연히 나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에는 서양세력 침투에 따른 개방과 개혁을 통한 국가 재건을 목표로 한중일을 망라한 모든 아시아 국가의 개화와 협력을 주장했다면, 일본의 국가 건설이 어느정도 성장하고 해외로의 팽창을 준비하는 시점에서 그는 국가주의자로 일변하였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은 이러한 확연히 다른 두가지 관점에서 마치 두 명 전혀 다른 인물의 후쿠자와를 조명해 둘 필요가 있다.

 후쿠자와는 한국에 대해서도 비상한 관심을 가졌던 인물이었다. 그의 조선에 대한 평가는 과거 역시 한학을 했던 사람으로서 매우 훌륭하다는 한편으로 어떤 컴플렉스마저 갖고 있었는데 그의 당대에 조선은 왜 이렇게 퇴보해 보이느냐에 대해 매우 고민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답은 조선은 진보도 퇴보도 한 것이아니라 그저 정체된 것일 뿐이어서 나날이 일신변화하는 현대문명으로서는 조선은 퇴보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한학과 서학을 겸하고 막말의 동양문명권과 개화된 메이지시대를 다 살아본 대학자의 평가이니 이는 우리도 한 번 귀기울여볼 만한 말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그는 한국내의 영세한 수준의 개화학자들에게는 넘을 수 없는 거대한 산이자 흠모의 대상이었고 유길준 등 많은 한국인 제자를 양성하고 김옥균 등의 개화정치가와 인연을 맺은 한국 개화사상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었다. 여기까지면 한국과 그의 인연은 꽤 긍정적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책에서는 그의 한국과의 악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에 그의 추종자들이 다수 관련되어 있어 이 사건에 대한 그의 개입정도가 어느 정도일지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후쿠자와의 학문적 위상과 그간의 인연을 볼 때 이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이다. 명성황후 사건으로 인해 일본과 한국은 그야말로 불구대천의 관계가 된 것이며 만일 사실이라면 동양평화를 그토록 부르짖던 그가 씻을 수 없는 원한의 씨앗을 그의 손으로 손수 뿌려노았을 것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대체로 후쿠자와의 후기행적은 한국인이 나로서 많은 아쉬움을 갖게 한다. 당대의 개화사상가들과 동양의 많은 서양학도들의 이유도 그랬겠지만 후쿠자와가 그 토록 흠모받은 이유는 서양학과 동양학의 간극 사이에 방황하는 그들에게 후쿠자와는 하나의 개척자요 선구자요 모범이었다. 그는 범 동양적인 인물로 자리매김 될 수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저 일본의 영웅에 만족해야만 할 것 같다. 그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 허나 죽은자는 말이없다. 이 책 표지에 나오는 그의 사진 처럼...  후쿠자와를 흠모했던 조선청년 중에는 이광수도 있었다고 한다. 어쩌면 이광수가 <무정>에서 구식여자와 신식여자 사이에서 고뇌 갈등하는 지식인의 모습은 학자나 학생으로 치면 신학문과 구학문 신생활과 구습 모두에 잘 영합해야 하는 자신의 모습의 투영이었으리라. 재미있는 건 이광수 역시 후쿠자와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광수에게도 마찬가지겠지만 후쿠자와라고 그렇다고 모두 나쁜 면만 있는 것이 아닐 것이면 다소 위험한 사상가지만 혼란한 시기에 한 개척자였던 그의 사상도 좀더 냉정하고 정당하게 평가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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