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6년 9월
평점 :
절판


 

새해가 되면 으레 과거에 대한 후회가 앞선다. 이건 아니다 싶어 결심을 하고 올핸 조금 달라져야 겠다고 굳게 마음먹건만 어느새 흐트러진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정신상태가 야기한 보잘것 없는 성과들과 자신의 모습에 내심 초조해지기도 하고 그래서 추운 겨울이 더 춥게 느껴진다. 그래서 이러한 때 다시 한번 결의를 새롭게 하기 위해 이 책을 다시 살펴보았다.

사실 난 불교를 좋아한다. 구도를 위한 가장 효율적인 길을 석가모니가 갔다고 생각하므로 그 분에게 많은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역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후렴구를 포함하는 숫다니파타도 자주 읽는다. 그것은 불교의 가장 초기의 경전으로 분석되고 있는데, 나는 그 글을 읽으면 마치 부처님의 목소리를 듣는듯한 감흥이다. 하지만, 이 소설에 나오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그와는 다르다. 그것은 마치 절규에 지쳐 실패한 인생에 대해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너 때문이야"라는 미움과 저주의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인간만사 아무도 알 수 없다. 새옹지마. 도스도예프스키는 자신의 도박빚을 갚기 위해서 역사상 엄청난 대작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만일 여기 나오는 주인공 혜완이 작가 자신의 심적 대변자라 한다면 이 소설이 나온 동기는 말 할 것도 없이 작가 자신의 불행한 결혼생활과 이혼일 것이다. 그래서 도스도예프키 처럼 경제적 곤궁을 피하려고 이 소설을 썼건 이혼을 통해 새로운 문제의식을 심화시킨 결과 이와 같은 베스트셀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어쨌든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지만 작가의 결혼생활이 불행했던 것만은 쉽게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불행의 이유가 깊이 생각하면 너무나 우습다. 그건 다름 아니라 한국에서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며 또는 남자는 다 자세히 살펴보면 "짐승"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세여자의 결혼 생활-혜완 자신의 이혼 경험, 능력은 있으나 바람둥이 남편을 둔 경혜, 바람둥이면서도 뻔뻔한 남편을 둔 영선에서 각종 후배 등등의 사회생활에서 간간히 나타난다. 이런 것은 하나의 사회의 관습처럼 된 것이라  강철로 만든 난공불락의 벽이기에 부딪힐 때 마다 세 여인에게서 일종의 절규와 한숨을 느낄 수가 있었다.

뻔한남자역 중에 그래도 좀 흥미롭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세명의 여자를 모두 "작업" 대상으로 삼았던 그 그지발싸개같은 대학선배와 문선우라는 혜완에게 변함없이 위안이 되어주는 남자친구였다. 하지만 혜완은 남자란 또 언제 어디서 어떻게 변할 수 있는 존재인지 잘 알기에 선우의 구혼을 냉정히 거리를 두고 우선 자신이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일을 찾아 그것 부터 하겠다는 생각인 것 같았다.

그러는 와중에 차차 자신의 일이 자리잡혀간다고 생각되던 찰나, 사고가 생긴다. 영선의 절규는 자살로 변하고 그녀의 부고가  혜완과 경혜앞에 찾아들었을 때 그렇게 그들은 영선의 무덤앞에서 가장 친한 친구를 보내야만 했다. 여기서 느끼는 혜완의 감정은 조금은 복잡한 것이다. 너무나 안타까운 심정으로 친구의 무덤 앞에선 혜완의 독백은 그 자신이 시행착오로 부터 얻은 결의가 얼마나 모질고 확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요약하자면 "네가 이렇게 된 건 말이야 결국 그 구닥다리 사랑과 헌신을 무조건적으로 남편에게 배푼 너 자신 때문이야!"

라는 친구에게는 조금은 모질어 보이는 그 저주와 원망의 말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혜완의 그 말은 옳은 말이다라고 느낀다. 어쩌면 그러한 넘을 수 없는 벽에서 오는 절규들은 혜완에게는 결국 하나의 무수한 "소음"들에 불과할 것이며 이제 혜완의 앞에는 그런 고칠 수 없는 일들 말고 때론 자신의 행복을 위하여 최소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나아가 독립된 자기 자신의 성취를 하기 위해서는 해야할 급박한 과제가 있을 것이다. 마치 잘거 다 자고 놀거 다 놀로 하는 학생이 명문대학에 입학하기를 바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한 푸념들에 일일히 솔깃해 한숨이나 쉬고 남탓이나 하는 사람에게 행복한 미래가 있을 수 없을 것이므로 이제는 단호히 영선의 푸념과 원망들을 냉정히 무시해 버리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일 것이다. 자신의 진짜의 미래를 위해서 자잘한 불평들은 잠시 마음에서 털어내고 새출발을 통해 정진해 나간다. 좋은 소설이고 좋은 결심이다. 비록 가슴깊은 곳에서 다소 억울하게 죽은 영선의 목소리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로인해 때로는 이미 굳게 결심한 자신의 마음 어딘가에서 아프게 울리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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