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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안오는 밤에 쓴 시 -양장본
알렉산드르 세르게비치 푸시킨 지음, 석영중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5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아리스뜨"에게 주는 충고의 편지 형식으로 된 푸슈킨이 첫 정식 발표했다는 시로 부터 시작한다. 재밌는 것은 발표연대는 1814년. 만일 우리나라의 예전 습관 처럼 호적신고를 1-2년 늦추지 않는다면 1799년 생이라니 대략 한국나이로 15-16세란 말이다. 내 나이 15,16살 때 나는 무엇을 했던가 생각해 보았다. 그 당시 내가 읽었던 책이란 그저 교과서 외엔 만화책이나 무협지 정도가 였을 뿐이었다. 러시아판 천재교육의 효과였을까? 나이를 생각하면 좀 건방지다는 생각이 들지만 천재의 충고 중 가슴에 와 닿는 구절만 나름대로 적어본다.
아리스뜨여. 종이를 낭비하는 자가 시인은 아니라네
좋은 시란 그렇게 쉽게 써지는 게 아니네.
시에 취미가 없는 자, 그래서 근심 걱정 없이
조용히 세월을 보내는 자 행복하도다
풍자의 펜으로 너를 괴롭히게 될까 두렵구나.
솔직이 푸슈킨의 시는 어렵다. 아니 어렵다기 보다 좀 생소한 편이란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그가 서정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 서사시에 몰두하고 있는 점이 바로 그 이유일 것이다.서사시란 본래 딱딱하기 마련아니던가. 또한 푸슈킨이 결투 끝에 단테스의 칼에 찔려 죽음에 이르렀을 때 차르는 그에 대한 책임론 등으로 비난을 받았으며 그의 애도가 자신의 권위에 대한 반항으로 비화할까 장례식마저 통제 했을 만큼 푸슈킨은 정치적인 면과 깊숙히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는 21세기의 한국을 사는 우리들에게는 솔직히 피부에 와 닿는 일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시인인 친구에게>란 그의 데뷰작에서 보면 어렴풋이라도 이 천재가 마음에 품고 싶은 바를 짐작이라도 할 것 같다. 우선 그가 대화를 하고 싶은 자들은 시는 고민없이 쉽게 쓰고 명성이 우렁차게 세계를 진동시킬 것이라 믿는 어리석은 시인일 것이다. 하지만 좀 더 그 어리석은 사람들을 문화예술인으로 넓혀 볼 수도 있고 그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영웅이 되려하는 러시아의 애국자 지망생들에 대한 것으로도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가 시를 통해 대화를 원했던 사람들은 대체로 이와 같을 것이다. 반대로 전제자인 차르나 그에 굴종하는 민중을 조롱하는 것도 변함없는 테마가 아닌가 한다. 시대와 역사 문화는 다르지만 푸슈킨이 점잖게 표하는 그에 대한 울분과 격정에 공감을 느끼는 바 적지 않으며 그의 다난하고 고독한 삶과 돌연한 죽음에 슬픔을 느끼며 한편으로 분노하게 된다. 아울러 <범인에겐 침을, 바보에겐 존경을, 천재에겐 감사를>이란 격언이 생각나게 된다.
한마디로 푸슈킨의 처한 상황을 잘 이해는 못해도 공감은 간다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