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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 2015 제39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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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할 일이 많은 어느 날, 책을 들고 나섰습니다. 내릴 정류장을 놓칠 뻔하거나,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치거나, 이동하는 일이 귀찮게 되리라고 나설 때는 생각하지 못한 채로 말이에요. (「관통」처럼)평범한 일상 어딘가에 미세한 틈 벌어진 곳을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소설 읽는 내내 말이죠.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일그러지고, 어긋나고, 무언가 잃어버린 사람들입니다. 삶은 안정되지 않을 뿐더러 피폐하기만 하고, 안전하게 발붙이고 설 조그만 땅뙈기 하나 없는 이들은 공격적이며 잔혹합니다. 그것은 완벽한 현실 인식이라서 섣부른 인사, 선의의 베풂 따위가 안 그래도 하찮기만 한 이 자리의 생활을 얼마나 쉽게 파괴하고 상처입힐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에 벌어지는 행위들이에요.

 

옆자리를 나눈다는 행위는 그 자리가 비어 있다고만 해서 가능한 일이 아니다. (「식우(蝕雨)」, 164쪽)

물론 알고 있습니다. 저대로 두면 그들은 녹아버리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요. 그렇다고 옆자리를 비워주기엔 내 삶의 한 순간도 너무나 위태로워요. 그와 나의 삶은 아주 짧은 시간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비슷한 수순으로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요. 아직 이 안에 있다고 해서 안심하지 않는 이유기도 해요. 그 낮은 상태, 그것은 나만이 아닐 겁니다.

 

자괴감은 느껴요. 사람이니까.

 

더러운 물 한 방울도 밟히는 순간만큼은 지우기 힘든 얼룩을 옷자락에 남기며 스스로를 주장할 줄 알았다. (「여기 말고 저기, 그래 어쩌면 거기」, 11쪽)

그 시간은 길지 않죠. 총알 튀는 전장에서 그것은 그저 짧은 감상이고, 계속하다간 자칫 죽는 시간만 앞당길지도 모르니까요. 더구나 지척에 선 그가 도리어 총알이 되어 내 심장에 박힐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이미 너무 많이 그런 경험을 해왔기 때문에 말이에요.

 

(전략), 적어도 지금 눈앞의 동물은 누군가에게 상처나 피해를 주는 데에 필요한 최소한의 신체 활동인 소리와 움직임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사람보단 낫다는 것이다. (「이물(異物)」, 191쪽)

차라리 품 안에 작은 강아지, 정체 모를 동물, 우연히 만난 모조작품에 집중하고 그에 손 내미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이유입니다.

 

혹시 소설이 지나치게 느껴질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는 아주 건조하고 정확한 뉴스 기사를 읽는 것처럼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왜곡된 세계 안에 어느 개인이 일그러지지 않은모습으로 삶을 유지할 수 있을까요? 만일 일그러지지 않았다면, 그것이야말로 지나친 그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덧붙여 표지 말이에요. 책표지라는 게 참 신기해서, 책을 읽기 전까지는 도대체 의미를 찾기 힘든데 읽고 나면 작은 점 하나, 찢긴 틈새 하나도 큰 의미가 됩니다. 샛노란 배경 한 가운데 예리하게 벌어진 틈. '그것이 나만은 아니기를' 바라는 세상 모든 '나름대로의 삶'이 손짓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 멋진 표지예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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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5-23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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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 작가를 읽었다면 당연히 꼽았을 것이고, 아직 읽지 않았다면 당연히 꼽아야 할 책이네요.

이 K 시리즈의 기획도 독특해서 눈이 가고요.

우리에게도 이런 작가가 있다는 것이 힘이 됩니다.

 

 

 

 

 

 

 

 

 

 

 

 

 불과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이 힘겹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이 작가에게 주어진 행운이기도 하겠지요. 다시 그의 작품을 꺼내보는 때에 새로운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건 독자의 행운이기도 하고요.

 

 

 

 

 

 

 

 

 

 

 

 

 이쯤되면 출판사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고쿠를 이렇게 내준다면 말입니다. 그런데 기대만큼 많이 읽히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고, 저라도 부지런히 읽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멀었네요... 여러분! 이 작가 읽어보세요. 진짜 재미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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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세부터 헬로라이프]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55세부터 헬로라이프 스토리콜렉터 29
무라카미 류 지음, 윤성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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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친구들과 조근조근 삶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현재의 고민에 대해 늘어놓다가 5년 후의 일을 상상합니다. 머릿속 시간은 아주 손쉽게 55세라는 시간에 닿습니다. 55세. 그 시간. 우리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 새로 어떤 것에 도전하기는 어려울 거야, 건강했으면 좋겠다, 향 좋은 차를 마시고 평화로운 햇살이 내리는 공원에서 볕을 쬐는 거야, 꽃밭을 가꾸는 건 어때, 하지만 돈을 많이 벌어놔야 하겠지, 그때도 일을 하고 싶진 않아, 세상은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을지도 모르지...

 

지금 살고 있는 일상이 그렇듯, 55세의 시간 역시 낭만으로만 차 있진 않겠지요. 삶이란 그런 것이고 그 시간 역시 특별할 것 없이 소중한 나의 삶일 테니까요.

 

이런 생각을 따뜻하게 보듬어 준 건 <55세부터 헬로라이프>입니다.

 

누군가는 이혼을 하고 젊은 남자와의 하룻밤에서 자신을 찾고, 어떤 이는 노숙자가 되어버린 오랜 친구의 마지막을 지켜주고, 다른 사람은 반려견을 통해 자신의 삶을 새롭게 바라본다... 그것은 특별한 일이 무시로 일어나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담담히 말하고자 했던 작가의 따뜻한 인사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들에게서 내 부모를 보고, 나를 보고, 삶을 바라보게 돼요. 저기 지나가는 아저씨의 삶을 상상하고 언젠가 알고 지냈지만 소식이 끊긴 지인의 삶을 궁금해하게 합니다. 그리고 모두가, 삶이 주는 날카로움에 공격당하지 않고 소중한 것을 지키며 지내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누구나의 '라이프'는 '헬로'하고 가볍게 인사를 건넬 수 있는 상태여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이상 없기를 꿈처럼 바랍니다.

 

차를 마셔요. 작가가 보여준대로 천천히, 따뜻한 음료를 후후 불어가며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음미합니다. 마음에 쌓였던 별 것 아닌 먼지들이 가볍게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다시 크게 숨을 쉬고 맑은 공기를 들이마십니다. 더구나 이 계절은 그렇게 어떤 시간을 누리기에 참 좋은 때니까요.

 

그렇게 날 선 작품을 쓰던 작가의 따뜻한 이야기가 마음을 크게 울리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 좋네요. 이런 아침.

 

누구나 힘든 시기가 있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할 때 먼저 마실 것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면 어떤 사람이라도 마음이 진정될 것이다. 그것은 의식 같은 것이며 그 누구에게도 의존할 필요가 없다. (<결혼상담소>, 58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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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아이들]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우리 동네 아이들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29
나지브 마흐푸즈 지음, 배혜경 옮김 / 민음사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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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너무 일찍 내놓은 탓에, 이제는 완연한 봄이 되었는데도 화분은 시들하기만 합니다. 뒤늦게 화분의 괴로움을 알아차려 해 드는 곳을 따라 화분을 옮겨보고, 영양제도 꽂아주고, 혹 목이 마를까 물도 듬뿍 주지만 어쩐지 이미 늦었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만 합니다.

 

화분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을 읽고 나서 말이지요.

 

사람이 살고, 원하는 것을 하고, 다투고, 죽기까지 시간이 똑같이 흘러도 같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시기'라고 부르겠습니다. 시기가 적절치 않아 많은 사람들의 운명이 뒤바뀝니다. 조금씩 틀어진 저들의 운명은 역사를 바꿔놓기도 하지요. '우리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저들의 운명을 탓하고, 옛날 이야기를 그리워하며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버텨냅니다. 어째서 이들의 삶은 그토록 닮아 있는지 몰라요. 사막은 황량하기만 하고, 마을은 척박하기만 하죠. 마을을 내려다보는 '대저택'은 굳건하고 냉담해서 누구에게는 존재만으로 희망이기도 하지만 대개의 사람들에게 대저택은 절망을 상기할 뿐입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찰나에 불과한 영광의 순간들은 다시 오지 않을 테니까요.

 

영광은 알아차릴 틈 없이 서서히 다가옵니다. 공명심 높은 개인이 사람들과 부대끼며 제 생각을 고양시키면 서서히 전운이 감돌죠.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피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대의'가 무엇인지 잊지 않는 영웅들과 지지자들은 끝내 그들의 영광을 이룩해요.

 

많은 이야기는 그 영광의 순간을 보여주고는 끝이 납니다. 독자는 희망을 꿈꾸고 현실을 탓함과 동시에 그 현실에 살아갈 동력을 얻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절대로 그렇지 않죠. 다시 부조리의 싹이 트고, 이기심이 자라나면서 제자리로 가고 말아요. 혹은 후퇴한 채로 머물거나 말입니다. <우리 동네 아이들>이 빛나는 것은 영광의 순간 이후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우리 동네'를 꿋꿋하게 그려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끝나지 않은 이야기'거든요.

 

순환하는 역사 안에서 신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종교란 무엇인지, 과학과 무기가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작가 나지브 마흐푸즈는 넓은 시선으로 '우리 동네'를 보여줌으로써 대단히 세밀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수장들(폭력배들), 관재인(재벌)과 마을 사람들이 대립하는 순간에 희망을 그리기도 하고요, 다시 새로운 영웅이 등장하기까지 순환하는 역사의 숙명적인 순간들을 담담히 적어내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반복되는 이야기에 절망을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이야기들에서 오히려 희망을 얻었어요. 반복될지언정 '이야기'로만 전해지던 어떤 순간은 언젠가 반드시 오리라고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죠. 다만 더 망가뜨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나빠지는 것을 막으려 노력하면서 다음 세대, 혹은 다다음 세대가 만날 영광의 순간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 어느 어른에게 들은 이런 삶의 자세로 씩씩하고 즐겁게 살아가 볼 생각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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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멍충한 - 기묘한 이야기에 담아낸 인간 본성의 아이러니
한승재 지음 / 열린책들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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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가는 길이었는데, 아마 이른 시간 등교가 너무 힘들어 고개를 푹 숙이고 좁은 골목길을 걷고 있었을 겁니다. 목에서 나는 소리는 아니고, 어쩐지 동작들이 만들어내는 푸득푸득한 소리를 들은 것 같았습니다. 의아했던 이유는 그 골목길이 인적이 드문 곳이고 이른 아침이라 길을 지나는 사람은 저뿐이었기 때문이에요. 그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소리의 출처를 찾아 고개를 들었는데 저는 그만 돌고래가 부럽지 않은 엄청난 소리를 발산하고 말았습니다(그후 다시는 그 소리를 낸 적이 없어요). 제 어깨 정도 높이의 담벼락 위에 그야말로 빼곡하게(!) 비둘기들이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아. 그때처럼 단어 본뜻에 가까운 공포를 느낀 적도 없었죠. 저는 뒤따라오던 할머니에게 강스파이크를 때리는 배구 선수 못지 않은 힘이 실린 손바닥으로 등짝을 얻어맞았고(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할머니), 즉시 그 골목길과 이별했습니다.


먼저 표지 얘기를 해야겠네요. 책을 다 읽고 책을 뒤적이다 발견했어요. 커버 일러스트가 작가의 작품이라고 써있더군요. 역시 재주 좋은 분입니다. 언뜻 만개한 꽃 같은데요, 실은 비둘기입니다. 비둘기...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비둘기는 그때부터 여전히 공포입니다. 그런데 비둘기 가득한 그림에 무려 <비둘기 파티>라는 작품을 읽어야 했을 때는 그야말로 괴로움이었죠. 공포란 참 불편한 녀석이란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실은 슬픈 시기라 마음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너무 큰 슬픔으로 가득 차 있어 방법을 모르겠더군요. 책은 일찍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계속 다른 일들로 미뤄지곤 했습니다. 재미있는 책인데요. 재미있어도 되는 건가, 싶었거든요.

사실은 이 말을 가장 먼저 했어야 했는데 다른 말만 했네요. 이 책 재미있어요. 재미있습니다. 독특하고, 신선한 작품들이 줄줄이 나와요. 텔레파시로 대화하는 학대당한 인간들, 그들을 쫓는 형사의 잔혹함, 인간의 진화, 완전하지 않은 세상의 틈에 관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나옵니다. 이 소재만으로도 흥미롭지 않습니까?


학생, 나는 말입니다. 딱 이런 황당한 이야기를 들으면 말이죠. 무조건 믿고 봐요. 게다가 그것이 사실인지 거짓인지 착각인지 절대 확인하지 않습니다. 살아 숨 쉬는 것에 메스를 갖다 대는 순간 숨통은 끊어져 버리는 법 아니겠습니까? (22쪽, <검은 산>)


하지만 소재만으로 소설이 '재미있다'고 말하진 않죠. 잘 짜여진 이야기를 읽다보면 이 작가가 건축가라는 사실 마저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아주 좋은 발견을 했어요. 작가의 작품을 계속 기다리는 마음으로 마칩니다.


어려운 시기에, 이 책에 많은 도움을 받았네요.

*열린책들로부터 책 제공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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