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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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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기. 드물지 않은 이 단어가 자꾸 생각났습니다. 오직 복기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오기의 복기. 오기는 자신이 이 삶에서 무심코 두었던 한 수, 한 수가 얼마나 심각한 악수였는지 깨닫기 위해 아내를 잃고, 불구의 몸이 되어 누워있어야만 했습니다. 무척, 서늘합니다. 


내 마음 같지 않음은 고정된 사실이지만 어리석은 인간은 종종 내 마음 같지 않음을 망각합니다. 당연히 내 마음 같을 거라 짐작하고, 내 마음을 알아주길 바라며, 그의 마음이 내 마음 같기를 희망합니다. 새삼 어리석습니다. 아무것도 내 마음 같을 수 없어요. 그는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나 하나도 온전히 내가 아니어서 매순간 다른 사람이 되고 그 다른 사람에 놀라 서둘러 내가 되곤 하는 걸요.(그것도 나라고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그가 내 마음 같으리라 믿었던 건지, 오히려 믿을 수가 없어집니다. 오기는 세계와 몸의 감옥에 갇혀 혹시,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오기가 세상 안으로 다시 끌어내려져 왔을 때, 그가 맞닥뜨린 세계가 저리게 남습니다. 


오기는 사람들과 함께 환자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서야 자신이 현실로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넘치는 광량과 친절하게 오기를 살펴주던 간호사, 두 눈만 끔뻑이는 오기에게 정말 잘했다고 격려해주는 의사가 있는 병실이 아니라, 시끄럽고 번잡스럽고 줄을 서고 기다리고 힐끔거리는 세계로 돌아온 것이다. (13쪽)


이 세계야말로 내 마음 같지 않은 세계. 내 마음 같아야 할 단 하나, 내 몸 마저도 내 마음 같지 않은 오기의 세계. 그 세계가 지독히 서늘해서 저는 오기의 마지막 순간, 그가 깊은 땅 속에 누워 맛본 아늑함을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내 마음 같지 않음 때문에 더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되는 세계였을 테니까요. 


통증은 계속되었고 몸 이곳저곳을 만질 때마다 더 심해졌다. 그러다가 오기는 어느 순간부터 바닥에서 전해오던 흙과 돌멩이의 감촉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몸이 딱딱해졌고 숨이 다소 가벼워졌다. 통증이 지나갔다. 조금 더 지나자 통증은 완전히 사라졌고 일순 편안해졌다. (205쪽)


저는 죽은 아내의 이야기가 너무나 궁금합니다. 가장 내 마음 같다고 믿은 사람과 서서히 삶의 자취가 달라지면서, 의심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면서, 홀로 남아 자신이 구축할 수 있는 단 한 곳을 치열하게 가꾸면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지 그의 이야기가 너무나 듣고 싶습니다. 결코 발견되지 않을 완전히 끝이 나버린 한 사람의 이야기여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 이야기는 영원히 안개 속에 흩어져 있겠지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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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떠오르는 아시아에서 더럽게 부자 되는 법
모신 하미드 지음, 안종설 옮김 / 문학수첩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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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비슷하지만 똑같지는 않은, 제각각의 삶을 생각했다면 오늘은 그와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르지만 거기서 거기인, 하나같이 비루하고 욕망으로 가득한 인생을 생각합니다. 인간의 삶이란 그렇게나 비슷하고, 다르네요. 


이 흥미로운 소설은 몇 년 전 책에서 만난 어느 개발도상국의 화려한 도시, 그 빛 밑에 숨은 그늘진 동네, 냄새나고 지독하게 가난하고 건강하지 않은 깡마른 아이를 떠오르게 합니다. 그 아이는 아주 가느다란 팔다리를 가졌고, 머리에 비해 몸이 너무 얇았고, 다만 눈빛만은 형형했습니다. 애처롭기도 하고 당돌하기도 한 아이의 눈을 보고 있노라면 그저 그 아이의 삶에 지금까지보다는 더 많은 행운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빌게 되었습니다. 


"바로 여기." 이번에 짚은 곳은 당신의 두 눈 사이다. "다른 놈들이 너한테 함부로 덤비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때문이야."(51쪽)

그야말로 '떠오르는' 중인 그런 곳에서 가진 것이라곤 눈빛뿐인 사람이 있다면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사랑에 빠지지 않고(그러나 한 사람을 열렬히 사랑하고), 고수에게 배우고(도덕 같은 복잡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고수), 폭력 사용을 마다하지 않고, 관료와 친구가 되고, 전쟁 기술자들을 후원하는 수밖에요. 그러다 꼬여버린 삶이 형형한 눈빛의 아이를 어떻게 만드는지는, 글쎄요. 저는 그런 사람을 많은 소설에서, 영화에서, 기사와 뉴스에서 봤습니다. 


어쩜 이렇게도 닮았는지요. 


모두가 뒤섞여 사는 이곳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나라는 존재는 그저 온갖 우연과 맞아 떨어지거나 어긋난 찰나로 결정됩니다. 언젠가 "내 지금을 내 그 모든 선택이 만들었다"고 적은 적이 있지만 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생각의 문을 무한히 확장해서 좀 더 먼 곳까지 뻗도록 내버려둔다면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고 말아요. 그러니 병으로 가난 속에 죽어간 부모님과 누나, 일찍부터 삶이라는 정체 모를 것을 찾아 다닌 사람들이 크게 다르지 않은 세상을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어쩌면 성석제나 에밀 졸라, 필립 로스, 김은국 같은 작가들이 줄줄이 떠오른 이유기도 해요. 그리고 그것은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기도 합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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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내성적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지극히 내성적인
최정화 지음 / 창비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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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만나러 갑니다. 차창 밖을 망연히 바라보는 일은 제일 먼저 만나는 즐거움입니다. 조금만 차를 달려도 높은 건물은 금방 자취를 감춥니다. 나무들의 키도 커지고, 굵어집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탓에 그 차이가 저는 그저 신기합니다. 그렇게 큰 나무들이 제멋대로인듯 튼튼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게 말이에요. 얼마나 오래 됐을까, 앞으로도 저기에 있을까, 더 깊은 곳,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의 밤은 어떨까, 뭐 그런 게 궁금해집니다. 

말하자면 이런 겁니다. 나무가 무성한 숲. 그곳은 멀리서 바라보기에 참 아름답습니다. 평화롭죠. 하지만 잘 압니다. 조금만 가까이 가도 얼마나 울퉁불퉁하고 치열한 삶이 펼쳐지는지. '삐뚤어지고 괴이'한 나무 한 그루의 삶을 상상해요. 그건, 평온하지도 안전하지도 않겠지요.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운집한 숲을 거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별 일 없이 지내는 것 같은 수많은 나무, 아니 사람들, 그들의 괴이해 보이기만 하는 삶을 생각했어요. 

어떤 의심이 끝없이 펼쳐지는 이야기를 쓰는 작가와 그걸 읽는 독자의 불안(<구두>), 피곤한 한 나절을 보내는 성실한 사람의 하루 한 때가 잠시 조각나는 찰나(<팜비치>), 분명히 원하는 것이 있지만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는 개인의 불안(<오가닉 코튼 베이브>), 가장 가까운 사람을 피상적으로 바라보는 어긋난 자아(<틀니>), 이기심과 자존감이 덩쿨처럼 뒤엉킨 누구와 누구의 동상이몽(<홍로>), 뻗을 수 있는 한 멀리 뻗어나간 오해(<지극히 내성적인 살인의 경우>), 결코 가닿을 수 없는 사랑하는 미지의 영역(<타투>), 휘어지고 휘어지다 끝내 부러져버리는 깜짝 놀라는 순간(<대머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 소유했다고 느끼는 공기 같은 욕구(<파란 책>), 밟히고 밟혀서 자세를 낮추고 있어도 절대 죽지는 않는 잔디 같은 삶(<집이 넓어지고 있어>), 그 모든 다른 모습의 나무들이 펼쳐진 숲을 거니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런 것을 이 책에서 만났습니다. 참 멋진 일이었어요. 


무언가 부러져 떨어지는 순간을 평화롭게 지켜볼 수 있는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면 이런 이야기에서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다른 무엇보다 저는 이 단편들이 모두 좋았기 때문에 최정화 작가의 단편 활동을 계속해서 응원하는 마음이 듭니다. 거대한 서사를 상상할 수 있는 한 장의 사진, 같았어요. 어쩐지 그런 사진은 자꾸 들여다보게 되는 법이지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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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더 많은 사람이 건강했으면, 행복했으면, 평화로웠으면, 하고 기도하는 계절입니다. 




이제는 사라지고 없지만 트위터에 있었던 추억의 '별 ★'표시를 한다면 아주 일찍부터 별을 찍어두었던 책입니다. 여러 곳에서 추천한 글을 읽었어요. 지금 여기에서 가장 읽어야 할 책이라는 말에 공감했고요. 이 책은 반드시 읽을 겁니다. 












표지가 눈에 띄는데,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이 표지가 또 어떻게 다르게 보일지 기대가 됩니다. 그만큼 많은 것을 상상하게 한다는 의미겠죠. 작가도, 출판사도, 다 좋네요.













이 책도 별 찍었답니다! "다른 종류의, 다른 화자의, 다른 시선의 텍스트"라는 소개글이 멋졌어요. 어쩐지 도전욕구가 폴폴 솟는 작품입니다. 













언제부턴가 이런 대화체의 소설이 좋아졌는데요. 점점 소설보다 다른 분야의 책을 읽기가 편해졌다는 지인의 말도 떠오르는 대목입니다. 말하자면 작가에게 더 다가가고 싶고, 은유와 상징의 세계가 좀 걷힌 선명한 세계가 속편한 것이겠죠. 물론 상징의 세계, 그 자체가 주는 희열도 있으니 저는 그 지인의 말에 100% 동감하지는 않지만요. 그 틈바구니에 낀 소설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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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에 겐자부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오에 겐자부로 - 사육 외 22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21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승애 옮김 / 현대문학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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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사>를 읽고... 도무지 갈피를 잡지 못해 좌절했던 기억이 있었기 때문에(흑흑)... 선뜻 손이 가지 않았습니다. 이 '노벨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대작가의 작품은 끝내 즐길 수 없을 거야, 라는 위축 때문에 말이지요. 그런데 아아. 어쩜... 이럴 거였으면 이 책을 먼저 만나게 해주지 그랬어, 대상 없는 원망을 던졌습니다. 읽는 내내 그랬어요. 


오에 겐자부로의 단편을 시기로 묶은 멋진 이 책은 그 자체로 훌륭한 오에 겐자부로라는 한 사람을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 초기 단편의 주인공들과 중기, 후기 작품들의 주인공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읽는 것도 아주 재미있는 부분이지요. 그만큼 주인공을 둘러싼 세상도 넓어지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소년들과 대사를 만나는 성년은 한 작가 안에서 어떻게 모습을 바꾸며 고민을 거듭했는지 지켜볼 수 있어요. 


다만 저는 초기 단편들이 너무나, 지나치게 좋았습니다. 


<기묘한 아르바이트>가 특히 그랬고요. <사육>도 그렇죠. <남의 다리>는 물론이고... 

특유의 희망없음, 혹은 희망하지 않음에 집착하는 젊은 시절의 오에 겐자부로를 상상하게 하는 멋진 단편들입니다. 


언제나 이런 데 조금만 깊숙이 개입하다 보면 뭔가가 꼬인다. 설득할 수는 없다. 특히 이런 종류의 남자를 이해시키기란 매우 어령ㄴ 일이다. 게다가 남자를 이해시킨다고 무슨 득이 있을 것인가. 이런 남자를 설득하기 위해 머리가 어질어질해지도록 토론을 한다 해도 나는 나 자신에게 바로 돌아올 뿐이다. 그리고 스스로가 심하게 애매하고, 우선 자신을 설득해야 하는 귀찮은 일이 방치되어 있음을 깨닫고, 어쩌지 못하는 만성 소화불량 같은 감정에 빠지고 만다. 손해 보는 쪽은 언제나 나다. (<사자의 잘난 척>, 57~58쪽)

(다른 작품을 기껏 꼽아놓고 또 다른 작품을 인용하는 건 왜...)

만일 이 작품들이 발표된 시기를 살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상상을 하며 책을 읽었어요. 정말 뒤늦은, 안타깝고 짜릿한 상상입니다. 


저처럼 헤매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시작으로 오에 겐자부로를 만끽했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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