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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깨끗한 봄을 기다립니다. 매일 미세먼지 수치를 확인하는 게 일과입니다. 슬퍼요. 좋은 책들로 위로라도, 받아야겠습니다. 



상상력이 빈곤한 시대에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 나만 빼고 모두 엄청난 상상력 속에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책도 마찬가지예요. 늘 나의 빈곤한 상상력을 비웃고 좀 더 노력하라고 자극도 하죠. 3월에 꼭 읽어보고 싶네요. 

불새 출판사를 응원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모르는 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조금만 아는 것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 있게 이야기하는 잘못을 저지르곤 합니다. 늘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이슬람을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을 겁니다. 그게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의 장편이라면 더욱 믿음직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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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너리 오코너 - 오르는 것은 모두 한데 모인다 외 30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2
플래너리 오코너 지음, 고정아 옮김 / 현대문학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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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또 거짓말을 합니다. 세상은 그래도 살만한 곳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정직함과 신념이 있으면 흔들리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고 거짓말 하고, 좋아하는 것을 싫어하는 척 또 거짓말을 합니다. 


거짓말이 없다면 세상도 없을 겁니다. 물론 문학도, 예술도 없겠지요. 그래서 거짓말은 세상이고 세상은 어찌되지 않는 현실이니 거짓말은 결국 우리네 현실이자 진실입니다. 거짓말 투성이인 세상은 사실 절대로 안전하지 않은,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흔들려 날아가버리고 말 지푸라기로 지은 집인 겁니다. 실제로 땅이 꺼지고 하늘이 무너지기도 하거니와 우리네 삶이 얼마나 위태롭게 겨우 발바닥 크기의 땅 위를 버티고 섰는지 생각하면 지금 이렇게 편안하게 앉아 책에 대해 노닥거리는 짓 마저도 신의 축복이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네요. 이런 역설이라니. 삶이란 참 괴짜 같고요.   


세상이 지푸라기로 지은 집이라는 거짓말을 플래너리 오코너만큼 일관되고 냉소적이고 흥미롭게 하는 작가가 어디 흔할까요. 종교와 법, 윤리를 비웃는 그녀의 작품들은 기괴하지만 통쾌합니다. 종교적 주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된 환상, 즉 '선의'가 있다면 문제 없다는 그 말도 안되는 환상을 오코너는 산산히 조각냅니다. 삶의 테두리랄지 안전한 홈스윗홈은 세상 어디에도 없지요. 이상향 역시, 존재하지 않으며 세상은 추악한 민낯을 거리낌 없이 드러내고 다닙니다. 


지금은 백인 편, 흑인 편 두 쪽밖에 없어요. 이 선거가 그렇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아요. (<이발사>, 25쪽)


그녀가 그린 위선적인 삶에 대해 생각해 봐요. 아들, 손자, 며느리가 모두 죽어가는 마당에도 끝까지 '부적응자'를 교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그를 감화하려는 할머니(<좋은 사람은 드물다>)와 딸의 의족을 들고 튀는 청년을 멀리서 보며 '우리 모두가 저렇게 순진하다면 세상이 훨씬 좋아질 거라고 말하는 엄마(<좋은 시골 사람들>)는 어떤가요. 그들의 참혹하고 우스꽝스러운 최후는 기가 막힐 지경입니다. 어째서 저토록 부조리한 사고의 인간들이란 말인지!  


교사 삼촌은 최후의 심판의 날에 십자가 표시를 단 시체가 전부 모일 거라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을 거야. 바깥세상은 네가 배우고 자란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 (<죽은 사람보다 불쌍한 사람은 없다>, 404쪽)


그렇지만 할머니와 엄마 같은 사람들은 소설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씩 인간이란 존재가 필연적으로 뱉어내고 있는 부조리 사고를 목도하게 돼요. 그건 나도 마찬가지지요. 앞서 고백했듯, 나는 매일 거짓말을 하거든요. 


플래너리 오코너가 보여준 냉소는 달리 보면 희망적입니다. 소설 같은 소설을 읽고 있노라면 어떤 위안이 찾아들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단편들이고 압축적인 이야기들이니 매순간, 삶이 우리를 괴롭히거나 세상 만사가 귀찮을 때 오코너의 세계 안으로 깊게 몸 담그는 것도 아주 좋은 방법이겠네요.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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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권수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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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 서로에게 감상을 이야기합니다. "그 장면은 진짜 깜짝 놀랐어"라든지 "주인공 연기 대단하네" 하는 식이죠. 친구 얘기에 맞장구 치기도 하지만 내심 놀랍니다. 같은 공간, 같은 장면을 있었는데 우리가 본 영화는 달랐으니까요. 책도 그렇죠. 정말 좋아하는 책을 추천했는데 상대 반응이 심드렁할 때, 진짜 재미있다는데 '응?'하게 되는 책을 읽을 때, '아.. 역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살고 있다' 생각하게 됩니다.  

각자의 세상은 자기 외에 누구도 상상할 수 없게, 혹은 자신조차도 상상할 수 없게 편집되어 있습니다.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은 쉽게 직원을 자르고 어떤 사람은 추운 겨울에 굴뚝 위로 올라가는 선택을 하겠죠. 각자의 세상이 똑같이 않다는 것은 그래서 축복이자 저주일 겁니다. 


데이비드 실즈는 책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에서 "모든 비평은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했어요. 인간에게로 시선을 넓혀봅니다. 모든 (인간에 대한)기억은 비평이죠.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은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닐지 모릅니다. 당신에게만 그런 사람이었을 거예요. 나라는 인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일까요? 내가 생각하는 내가 내가 아니라면요?


따지고 보면 나는 한 번도 그 페드로 맥케부아였던 적이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파동들이 때로는 먼 곳에서 때로는 더 세게 나를 뚫고 지나갔었다. 그러다 차츰차츰 허공을 떠돌고 있던 그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나였다.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130쪽

파트릭 모디아노에게 '나'란 '모든 메아리들이 결정체를 이룬' 존재입니다. 하물며 '나'에게 조각난 채로 남은 '그녀'는 어떻겠어요. 작가는 아예 적극적으로 '조각난 존재'와 '기억하지 못하는 주인공'을 내세웁니다. 잘게 쪼개져 조각난 기억에 의지해 과거를 추적합니다. 기억을 의심하고 떠오른 기억을 점검하면서 차츰 '그녀'에게로 향하는 여정이 바로 <지평>입니다. 


보스망스와 마르가레트는 상처 입은 사람들입니다. 오래된 상처를 안은 대도시의 삶. 공간과 자신을 연결하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부유하는 익명의 존재들이 서로를 알아본 걸까요. 보스망스는 그녀와 익명의 도시에서 "서로를 보지 못한 채 스쳐지나갔을 것"(93쪽)이라는 사실을 직감합니다. 이제야 안개에서 퍼뜩 깨어난 것 같은 느낌을 받아요. 그는 그녀를 꼭 쥐고 싶습니다. 불가능하리란 예감이 늘 있었지만 말이죠. 보스망스는 마르가레트의 과거를 처음부터 막연하게 느꼈던 것 같거든요. 그는 마르가레트가 "군중 속에 사라질"까봐 "순간순간 그런 두려움을 품었었"죠. "그녀를 처음 만난 날부터 그랬"(20쪽)습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보스망스의 그런 예감이 더욱 애달픈 이유예요. 


사실 그녀를 찾지 못한다 해도 좌절할 이유는 없습니다. 찾을 거라는 희망만 있다면요. 


적어도 의혹이 있는 한 아직 일종의 희망이, 먼 지평을 향한 탈주로가 남은 것이다. (153쪽)

보스망스에게 마르가레트는 과거의 파편이자 미래로 가는 지평입니다. 실제로 마르가레트가 어디 있는지, 그녀가 보스망스를 기억하는지, 기억 한다면 어떻게 기억하는지, 살아있기는 한 건지는 크게 상관 없습니다. 보스망스 안에 그런 조각이 떠돌고 있고 조각을 딛어 조금씩 걸어나갈 수만 있다면 말이죠. 생의 한 교차로에 있는 남자의 모습이 외롭고 고통스럽게만은 느껴지지 않는 이유일 겁니다. 


무엇보다 아름다운 문장들이 짧은 이야기를 풍성하게 합니다. 서글프고, 위협적일 때도 있고, 가만히 미소지을 만큼 평화롭고, 그저 아름다운 문장들이 열심히 과거를 지나오기 때문에 현재가 어디 있는지 또는 미래가 어떤 모양인지 하는 것에 대해서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느껴져요. 오히려 지금의 나, 이곳의 내가 이 소설을 만날 때마다 소설은 몇 번이고 변하고 다른 이야기를 건넬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기억 속에 있는 <지평>과 타인의 기억속 <지평>이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 해보고 싶습니다. 


파리 같은 대도시에서 모여사는 수백만의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을 긴 시간차를 두고, 그것도 매번 먼젓번 장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마주칠 수 있다는 사실이 그는 놀라웠다. (중략)그래서 보스망스는 운명이 때로 고집을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은 사람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마주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때 우리가 그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면, 그건 유감스럽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18쪽)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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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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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여덟 살이라는 시절을 분명히 지나왔는데, 어째서 여덟 살 아이의 머릿속은 이해되지 않는 걸까요? 어렸을 때는 그토록 '어른들은 몰라요'를 외쳐놓고 정작 크고 나니 '아이들 머릿속은 알 수 없다'고 하는 건 역시 인간이라는 얕은 이해와 자기 중심적 존재의 증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는 이럴 것이다'라고 하는 상식, 혹은 편견이 대체로 위험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심정으로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다시 한 번 생각해야겠다고 매일 새롭게 다짐하게 됩니다. 


선생님들과 부모님, 수지 아줌마까지도 테오의 머릿속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듯 테오 역시 어른들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테오의 눈에 엄마는 예쁘지만 불안하고, 아빠는 단순한 질문을 합니다. 사춘기 누나 역시 "엄마의 줄자를 허리에 두르는"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하고요. 


이긴다는 게 어색하게 여겨질 만큼 지는 게 습관이 되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실이 아닐까 봐, 금방이라도 꿈에서 깰까 봐 두려워서 그러는 걸까? (25쪽)

테오는 그래서 어른들이 늘 궁금합니다. 어른들은 늘 전투에서 집니다. 늘상 지는 것 같으니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게 지고 결국 이혼을 하게 될까 두려워요. 테오가 바라는 것은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행복한 가족(27쪽)'인데 말이지요. 그러다 우연히 모든 전투에서 이겼다는, 한 번도 진 적 없다는 나폴레옹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거다!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야 합니다. 만나서 전투에서 이기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테오의 진정한 전투입니다. 


호기심 많고 철학적인(!) 여덟 살 테오가 나폴레옹을 만나는 건 쉽지 않은 여정입니다. 나폴레옹은 진즉 죽었거든요. 그럼 어떻게 만나야 하지? 여기에 이 소설의 매력이 있습니다. 

엉뚱한 소년 테오의 눈으로 보는 세상은 그동안 제가 알던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곳처럼 느껴집니다.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것을 가르치는 선생님들, 제 정신이 아닌 것 같은 선문답을 늘어놓는 수지 아줌마, 무언가 알 것 같았지만 테오를 대실망으로 몰아넣은 화가 랭보까지 테오는 모두에게 영향 받고 계속해서 성장합니다. 그렇게 성장한 테오가 어떤 어른이 될까 너무 궁금할 정도로 말이에요. 원래 그런 것 같던 세상은 조금만 달리 보면 엄청나게 궁금한 것들 투성이었습니다. 테오 덕분에 알게 된 사실.


줄리아는 친구들이 자기 공책을 베끼지 못하게 한다. 그러면 선생님 말씀을 잘 따랐으니 착한 아이일까? 아니면 친구들을 도와주지 않았으니 나쁜 아이일까? 또 수지 아줌마처럼 자기 자식이 아닌 다른 집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부가 돈을 벌어서 집에 보내면 착한 사람일까, 아니면 자기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지내니까 나쁜 사람일까? (40쪽)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마이너스 인간이 되기로 결심합니다. 죽기로 마음 먹은 것이죠. 죽는다 하더라도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나름대로의 철학적 결론을 내립니다. 마이너스 개념을 테오에게 일깨워준 친구 시엔에게도 이 비밀을 털어놓습니다. 시엔은-우리처럼- 테오의 고백에 불안한 것 같지만 달리 말릴 수가 없습니다. 테오가 워낙 확고하니까요. 테오의 선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로 인해 닥칠 엄청난 결과도 무시무시하게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여덟 살 사람들의 대화에 감동 받은 건 저뿐만이 아니겠지요? 이 아름다운 대화 내용 말이에요. 


-이해할 것 같아. 내 짝이 없어지면 슬프겠지만.

-그건 걱정 마. 내가 안 보이게 되면 널 만나러 교실로 올게. 네가 만든 종이비행기가 날아다니게 만들게. 그러면 내가 네 옆에 와 있다고 생각하면 돼. (181쪽)

테오는 어떻게 될까요? 이 아이의 짧은 생을 통틀어 가장 위대하고 엄청난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까요? 사랑스러운 아이 테오가 아무것도 잃지 않으면서 자신이 원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혹시 발견하지 못한 테오가 주변에 있지는 않은지 곰곰이 생각합니다. 테오 같은 아이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테오 같은 아이들이 상처 받지 않고, 구겨지지 않고, 세상을 더 사랑하며 살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런 예쁜 마음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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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도 길어지고 낮에는 포근하기까지 한 것이, 길었던 겨울도 끝나가나 봅니다. 어제는 꽃시장 앞에 길게 줄 선 사람들을 보면서 '벌써 졸업식이 한창일 때구나' 생각했어요. 더구나 2월은 짧으니 또 눈 깜짝하면 봄이 오겠죠? 봄이 좋아요. 봄을 기다립니다. 




제안들 시리즈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만 무척 갖고 싶은 책입니다. 갖고 싶어요. 저 당당하고 자신감 있는 표지와 시리즈의 목록을 보고 있노라면 아직 읽지 않은 게 민망해질 정도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처음으로 꼽습니다! 













맙소사. 1월은 역시 책이 쏟아집니다. 읽을 책이 이렇게나 많아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새해 첫 머리에 읽기는 조금 묵직한 주제가 아닐까 싶겠지만 이 책이야말로 새해가 되어 큰 숨으로 읽어야 할 책이기도 해요. 












방금 묵직한 주제의 책을 읽고 싶다고 했으면서도 곧장 이 책을 꼽은 이유는 어쨌든, 소설은 흥미로워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 때문입니다. 저 고양이 눈빛 보세요. "읽지 않으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듯해요. 

한 <개의 심장>이나 <드러누운 밤>처럼 탁월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낀 희열이 있기 때문에 <수고양이 무어의 인생관>이 기대되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역사는 항상 발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는가, 하는 질문에는 언제나 물음표입니다. 기술적인 차원에서야 크게 반박의 여지가 없을지 모르겠는데요. 그렇지만 조금만 자세히 삶을 들여다보면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불길한 예감도 떨쳐낼 수 없습니다. <라운드 하우스>와 같은 소설에 손이 가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이것이 저에게는 가장 확실한 현실감각이고 적어도 저 스스로가 발전하는 방향으로 나가려는 최소한의 노력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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