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노엄 촘스키 지음, 드니 로베르 외 인터뷰어, 강주헌 옮김, 레미 말랭그레 그림, / 시대의창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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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는 누구도 감히 권력자를 비난하거나 공격하지 못합니다. 가령 당신이 권력자들을 비난한다면 그들이 거센 반격을 가하면서 당신을 미치광이로 만들어 버릴 것입니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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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다른 아이들 1
앤드류 솔로몬 지음, 고기탁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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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았습니다. 

만일, 무지개 색이 일곱이 아니라 둘이면 어떨까? 흰색과 검정. 두 가지 색의 무지개라면.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채색의 띠가 하늘을 수놓는다 해도 조금도 감동적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흑백의 무지개는 아름답지 않아요. 흑백의 무지개는 무지개가 아니라 그냥 빛과 그림자로 흩어지는 말이 될겁니다. 우리가 무지개에 반한 이유는 다름 아닌 다채로운 빛깔 때문이었으니까요. 무지개는 그래서 아름답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다양한 빛을 내야 합니다. 

사실 무지개는 일곱가지 색으로 정확히 나눌 수 있는 종류도 아닙니다. 경계에 있는 무수히 많은 색의 영역들을 외면할 수 없지요. 빨간빛인가 하면 어느새 노란빛을 띠었다가 푸르고 검푸른 색으로 흩어지는 나열이 놀랍고 감격스러워요. 경계를 구분지어 빨주노초파남보로 이름 붙인 것은 그저 우리의 편리에 불과합니다. 


편리함은 상식에도 뿌리박힌 것 같습니다. 상식이 무엇인가요? '흔히 그렇게 생각하는 것' 쯤 되려나요? 그게 정답인가요? 답답합니다. 자꾸 되묻고 싶습니다. 더 불편해지고 싶습니다. 우리네 상식이란 폭력에 얼마나 다양한 빛깔이 뭉개지고 있는지 생각하면 누구라도 지금 저처럼 상식에 불만하고 기존의 상식을 탓하지 않을 수 없을겁니다. 


지금도 지구상 어느 곳에서는 동성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사람들이 국가 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성소수자들이 곳곳에서 차별을 받고 있나요? 흑백이 아니라고, 많은 사람들과 색이 같지 않다고, 너무 다양한 색이라고 차별 받는 소수자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그들이 '비정상'이라고 말하고 싶은가요? 당신은 정상인가요? 상식이니 정상이니 하는 것들은 어디서 비롯된 건가요? 


<차이>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 주는 것이다. 차이에 의한 각각의 경험이 해당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고립시킬 수도 있지만 그들이 모이면 거대한 집단을 형성하고, 그들의 투쟁은 서로를 단단하게 묶어 준다. 이례적인 사람들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오히려 완벽하게 정상인 것이 드물고 고독한 상태다. -23쪽 

정상이니 비정상이니 해도 우리 모두는 소수자로서의 경험을 하나쯤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이라 경험한 차별, 서울 출신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정규직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성인이 아니라 경험한 차별... 이 차별의 경험을 조금만 확대시켜 봅시다. 이주 노동자라 경험한 차별, 장애인이라 경험한 차별, 성소수자라 경험한 차별과 많이 다른가요? 놀랍도록 비슷해 보이는 건 왜일까요? 

인권은 합의의 대상이 아닙니다. 모든 존재에게 똑같은 권리가 있습니다. 그가 듣지 못해서, 몸이 작아서, 게이라서, 염색체 이상이라서 권리를 박탈하거나 축소할 수는 없습니다. '완벽하게 정상인 것이 드물고 고독한 상태'라는 구절에 밑줄 그은 이유입니다. 이 당연한 사실이 결코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세상, 그게 지금 우리가 발딛고 선 이 세상입니다. 


이 책은 그러나 그저 그런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좀 더 깊이 접근해요. 질병과 정체성을 구분하고 모호한 경계를 보다 세밀하게 들여다봅니다. 인권문제, 차별이나 국가폭력에 대해 나름대로 깊이 고민해왔다고 생각했음에도 이 지점에서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식증 같은 질병(사망율이 높고 위험한 질병)을 '정체성'이라고 할 수는 없다면서도 흔히 얘기하는 장애, 그러니까 청각장애와 같은 경우에 대해서는 나름의 정체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저는 이 차이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다만 그런 삶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하려 최선을 다해 노력할 뿐이지요. 심지어 거식증을 정체성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단체도 있다고 하니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결국 책은 이토록 다양한 빛깔을 들여다보고 경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아 그들의 삶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이 부분은 아주 중요해요. 편리에 의해 거칠게 구분지어 놓은 경계에도 무수히 넓은 스펙트럼의 삶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게이 부부의 트렌스젠더 자녀의 삶을 들여다 보는 것, 청각장애인 자신이 스스로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에 대해 듣는 것, 이런 것들은 모두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상식이라는 바보 같은 가면 뒤에 숨어 진짜 세상을 모르고 살게 마련입니다. 이런 목소리는 계속 나와야 하고 열심히 들어야 하고 앞으로도 계속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한발짝 씩 나아가야 합니다. 


책은 질문합니다. 

이 사회에서 소수자들의 삶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 


의학적 진보가 장애를 제거하듯이 사회적 진보는 장애를 지닌 채 보다 수월하게 살아가도록 도와준다. -51쪽 

사회적 진보를 기대하면서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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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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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란 꽤나 어려운 직업이로군요. 


종일 컴퓨터와 씨름하고, 끝없는 업무에 지칠대로 지치고, 마음 맞지 않는 동료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사소하지만 중요해 보이는 사소하기만한 업무에 상처 받고 긴장하는 직장인... 이 아니라 천사들. 이들이 <천국주식회사>의 등장인물들입니다. 천사들의 모습이 놀랍도록 우리네 모습과 닮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천사. 그 회사의 최고경영자로 있는 '하나님'은 또 얼마나 우리네 그들의 모습과 닮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니까요. 받아들이고 읽어야겠지요? 


이들의 '천국주식회사'는 몇 가지 규칙에 의해 운영됩니다. 인간의 자유의지를 인정해야 하고 중력의 법칙과 시간 같은 중요한 기본 규칙에 어긋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천사들은 화산 분출을 통제하고 물 관리를 하기도 하지만 주인공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기적부에 근무하는 직원들이에요. 기적부의 업무는 가히 창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크레이그는 그래서 이 일이 좋습니다. 작지만 어느 인간의 삶을 완전히 다른 형태로 바꾸어 줄 수 있는 자신의 업무를 사랑하지요. 


아직도 크레이그의 첫 기적이 기억난다. 크레이그는 48시간을 투자해 흰개미들이 널빤지를 파먹도록 하여 비실비실한 여자아이가 태권도 시범에서 그것을 깰 수 있게 해줬다. 아이가 때린 널빤지가 박살나자, 기적부가 있는 17층 전체에서 박수갈채를 보냈다. -83쪽

그는 기적부 안에서 인정받는 천사기도 해요. 그 사실이 짜릿하리만치 행복합니다. 크레이그는 이 일이 인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좋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면 자신의 일상이 엉망이고 연애 사업이 매번 실패해도 괜찮습니다. 크레이그는 그런 천사랍니다. 


문제는 하나님입니다. 그는 게으르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일들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을 찬양하는 기독교 방송이라든지 자신의 말을 세상에 전달하는 노숙자 라울과의 대화 같은 것들 말입니다. 그가 신성에 둘러싸인 위대한 존재라는 생각은 착각이었어요. 신은 지구와 인간들을 만들 때처럼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이 사실에 경악합니다. 하지만 경악하고 있을 수만은 없지요. 그들은 기적부의 업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천사들이잖아요. 열혈 신입 천사 일라이자는 직접 하나님을 찾아가 직언을 합니다. 

그런데 아니 이런, 하나님은 "그래? 역시 그렇지? 안 되겠어. 이제 지구를 없애자." 는 결론을 내립니다. 맙소사. 


이들이 지구를 구하기 위해 할 일은 어느 허점 많고 게으르고 소심한 인간 둘을 엮어주는 일입니다. 그 인간들은 자신들의 행동에 지구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알지도 못한 채 여전히 소심함을 잃어버려선 안 되는 보물처럼 꼭 끌어안고 집안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 중에도 샘은 자신의 이불 위에 시체처럼 누워 있었다 편의점에 한 번 들른 걸 제외하면, 그는 3일 내내 집을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146쪽 


대학교를 졸업한 이후 짧은 시간 동안 로라는 벌써 8,000달러가 넘는 카드 빚을 졌다. (...)던킨 도넛에 매일 커피를 사러 가는 일을 제외하면 그녀가 아파트 방구석을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152쪽 

답답한 천사들. 회사의 규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기적을 일으킬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두 명의 사랑스러운 천사와 두 명의 사랑하고픈 인간. 이들의 고군분투가 <천국주식회사>입니다. 이 소설은 재치있고 유쾌합니다. 내용은 꽤 심각한데 유쾌해서 좀 혼란스럽기까지 하지요. 지구가 없어진다면? 신의 간단한 선택으로 지구에 꾸린 모든 인간들의 삶이 어느 순간 연기처럼 사라진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불안하지 않아요. 천사가 있기 때문이지요. (신이 없어져도 상관 없다고 판단할만큼 하찮아보이는)우리 삶을 지키는 천사들이 있으니까요. 어쩌면 천국에는 정말로 신에 맞서 인간들을 지켜주는 수호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가 존재하지 않을까요? 


책을 덮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는 단 하나, 사랑이었습니다. 사랑 자체가 기적이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사실 천사들이 만들어내는 기적은 인간들의 사랑에 비하면 별 것 아닐지도 몰라요. 천사들이 아무리 엄청난 노력을 들여 두 사람이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든다 해도 각자의 마음이 그냥 구름처럼 지나갈 수도 있는 노릇이지요. 실제로 많은 순간 그렇게 천사들의 노력이 실패하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결국 기적은 일어났습니다. 기적은 천국이 아니라 지구, 땅 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있었어요. 상대를 이해하고 나를 바꾸고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그런, 기적 말이에요. 

그러니 샘과 로라의 사랑이 지구를 지켜낸 엄청난 기적이라는 점은 참으로 의미심장하게 느껴집니다.  


그나저나 한 가지, '천국'이라면서 지나치게 미국 중심적이라는 불만을 가질 수도 있지 않은가? 이런 의구심을 가질 수도 있겠는데요. 그건 그냥 천사 '크레이그'가 맡은 업무 탓이라고 해두면 어떨까요? 

크레이그 자신이 천국 안에서 그런 것처럼 말이지요. 너무 진지하게 따지진 말자고요! 


천국은 너무나 드넓었으나, 그중 아주 작은 구석탱이에서 그의 일생 전체를 보내고 있었다. -46쪽




 

그들의 손마디 뼈는 서로 손을 잡았을 때 불편하게 느끼게끔 배치되어 있었다. -137쪽


제가 아무 힘이 없다는 걸 알아요. 우리 천사 모두 그런 존재들이죠! 이 모든 게 의미 없다는 걸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건 저에게 의미가 있어요. 당신한테 의미 있는 건 도대체 뭐죠? -159쪽


그가 한 일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을 받는데도 여전히 그걸 기적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1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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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2015년이라니 믿기지가 않네요' 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냈습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시간이 

점점 빨리가니 나이 탓만 할 밖에요. 그래도 멋진 책들은 계속 나오고 읽기는 멈출 수 없으니 이대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르귄은 진리입니다. 
새해에도 르귄의 이야기를 읽으며 큰 위안과 환상을 맛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행복이 어디 있을까, 생각합니다. 
르귄의 책을 2015년 첫 추천신간으로 꼽을 수 있어서 또 행복하네요. 









익숙한 것이 더욱 좋고, 좋은 것을 계속해서 좋아하게 되기 마련이지만 그래도 새로운 것은 계속 쏟아지고 그 안에서 보물찾기 하듯 좋아하는 것을 찾아내는 것은 과연 독서의 엄청난 매력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모르는 작가가 많이 있고 그래서 알고 싶은 세계가 무수히 널려 있습니다. 희망적이네요. 

이 책 역시 새로 찾아낸 보물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됩니다. 









호기심을 자아내는 작가, 정세랑의 새 소설. 기대하지 않을 수 있나요? 

'형광빛 나는 칼국수를 먹은 삼남매에게 갑자기 초능력이 생긴다' 이것 참 매력적이지 않나요? 표지를 장식한 저 손톱깎이와 열쇠 등도 궁금해지고요. 재치있고 유쾌한 느낌이 벌써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그래서 새해에는 이런 소설이 꼭 읽고 싶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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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누운 밤 창비세계문학 39
훌리오 코르타사르 지음, 박병규 옮김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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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생각나지 않지만 어느 어두침침한 오후에 드러누워 본 영화가 떠올랐습니다. 시간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알 수 없는 곳, 낯선 산장에 떨어진 주인공이 악몽 같은 순간을 보내는데 어떤 경계를 지나면 다시 산장에 떨어진 처음 순간으로 되돌아갑니다. 되돌려진 시간은 다시 시작된 순간순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키고 앞서 했던 별 의미 없는 행위는 곧 어마어마한 결과를 낳습니다. 무의미한 것 같아 보이지만 결코 무의미하지 않은 반복과 환상에 저는 두통을 느꼈었습니다. 만약 그보다 먼저 이 작가, 훌리오 꼬르따사르를 만났다면 혼란이 좀 덜했을까요?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숫자처럼, 규칙이 있는 것 같기도 혹은 완전히 불규칙한 것 같기도 한 작품들이 몰려옵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나와 타자가 끝없이 교차되는 이야기이자 나와 타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이야기입니다. 정제되고 잘 짜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저는 혼란과 몰이해가 이토록 매력적일 수 있으리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이건 정말 경이로운 발견이 아닐 수 없네요. 


만일 누군가에게 "좋은 건 알았어. 그래서, 대강 무슨 줄거리야?"라고 질문 받는다면 분명 쉽게 답하지 못할 겁니다. 사진 속 인물들이 이야기를 하고(<악마의 침>), 짐승이 화자로 변모(혹은 그 반대)하는(<아숄로뜰>) 이야기, 소설을 읽던 주인공이 어느 새 소설의 일부가 되는 이야기(<맞물린 공원>)들이니까요. 이 시점에서 띠지에 실린 문장,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로는."을 읽어보게 됩니다(뒤에 언급할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의 한 구절입니다). 민망하긴 하지만 바로 이 문장이 소설을 접한 제 느낌과 무척 흡사하네요. 

그 중에서도 역시 <맞물린 공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압도적으로 짧습니다. 이렇게 짧은 단편을 읽어본 기억조차 없습니다. 단 두 쪽으로 이루어진 소설이라니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한쪽에 곁눈으로 보이는 커다란 공백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짧단 말이냐? 하지만 소설이 끝나면 이해하게 됩니다. 이 두 쪽 안에 완벽하게 순환하는 이야기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요. 소설은 끝났지만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는 한줄 한줄 읽어감에 따라 주변 현실이 산산조각 나는 야릇한 희열을 맛보고 있었다.(69쪽, <맞물린 공원>)"는데 과연 제가 그랬습니다. 작가는 이 문장을 쓰면서 그런 희열을 맛보는 독자가 자신의 탄생 100년이 되는 시점, 그것도 크리스마스에 여기 한국에 있으리라고 생각이나 했을까요! 


앞서 '나와 타자가 끝없이 교차되는 이야기이자 나와 타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무는 이야기'라고 한 이유에 대해서는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을 들어 설명하고 싶습니다. 저는 작가가 이 단편으로 본인이 지향하는 작품세계를 설명한 게 아닐까 하고까지 생각하는데요. 


소모사의 이야기로는 시공간을 철폐하는 방법은 상황과 동작을 되풀이하는 것이다. 이렇게 집요하게 접근하다보면 언젠가는 초기 조각상과 자신이 동일해질 것인데, 이것은 중첩과 같은 이중성이 아니라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79쪽, <키클라데스 제도의 우상> 
우연히 어느 섬에서 발견한 유물과 두 친구의 이야기예요. 모랑은 유물을 발견한 이후 소모사의 변화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소모사는 유물을 통해 자신이 과거에 속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고요. 끝내 모랑의 피를 바쳐 과거와 접촉하려고 합니다. '원초적인 접촉, 즉 합일'을 기원하는 것일 테죠. 그 계획은 실패로 돌아가지만 진짜 이야기는 소모사의 실패와 함께 시작됩니다. 소모사의 광기가 그대로 모랑에게 옮겨간 듯 모랑은 도끼를 쥐고 문 뒤에 숨어 도끼날을 핥습니다. 이제 모랑이냐 소모사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집요한 광기와 피만 남았고 이야기는 끝나니까요.  


이야기가 지나치게 불친절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그것이 이야기에 더욱 집중하게 하고 더욱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무수히 많은 상징과 비유가 오히려 독자를 자유롭게 만들어줘요. 소설을 읽는 시간, 장소, 각자의 처지에 따라 제각각 다른 이야기가 될 겁니다. 백 명이 읽으면 백 가지 이야기로 기억되겠지요. 그래서 이 이야기를 주변과 나누고 싶어지나 봅니다. 


마침 크리스마스에 환상적인 세상에서 신나게 놀다오니 드물게 즐겁습니다. 아마 두고두고 들춰볼 책이 되지 않을까 싶네요.  




습관이 된 것입니다. 앙드레, 습관이란 리듬이 구체화된 형식입니다. 리듬이 우리 삶을 도와주고 받는 요금입니다. -24~25쪽, <빠리의 아가씨에게 보내는 편지>


나는 아숄로뜰을 처음 보았을 때부터 조용한 모습에 반했다. 무심한 부동성으로 시간과 공간을 철폐하려는 아숄로뜰의 은밀한 의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92쪽, <아숄로뜰>


나는 보는 것이 무언지 안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면 말이다. 보는 것은 거짓을 드러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보는 것은 우리를 우리 바깥으로 무작정 내던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146쪽, <악마의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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