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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합니다, 라고 적어놓고 도대체 뭐가 간단하다는 것인지 한 구석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아마 간단하지 않다, 는 말을 적고 싶었던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맹목적으로 분투하는" 간단한 마음 때문에 시스터 캐리의 삶은 간단하지 않은 채로 있으니까요. 


처음엔 간단해보였습니다. 

시골 아가씨는 도시로 상경했고, 언니의 집에 머물다 언니의 곤궁한 삶에서 도망쳤지요.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더 화려한 것에 대한 욕망.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 만난 부티나는 남자와 상경 후 얻은 일자리에서 견디는 하루 동안 만난 비루한 노동자의 모습은 그야말로 극적인 대비였습니다. 시스터 캐리의 선택이 어렵지 않았던 것도 당연한 일일 거예요. 새롭고, 반짝반짝 빛나는 것, 그것은 언제나 마음을 사로잡는 법입니다. 


독자의 불안감은 아는지 모르는지, 캐리는 선택을 하고, 잠시 머물고, 분투하는 자신의 마음에 괴로워하며 다시 떠납니다. 떠나 도착한 곳에 무엇이 있는지는 캐리도, 독자도(혹시 작가도) 몰라요. 말하자면 저는 이 불안감이 참 좋았습니다. 


어떤 소설이라면 캐리는 언니의 집을 나오자마자 끝없는 추락을 경험했을지도 모릅니다. 또 다른 소설이라면 캐리는 드루에를 만나 그 생활에 만족하며 적당히 사치스러운 삶을 즐겼을지도 모르죠. 그것도 아닌 다른 소설이라면 캐리는 많은 사랑을 받는 배우로서의 삶을 누리며 과거의 자신을 내려다봤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소설이기 때문에, 그렇지만 현실은 늘 소설보다 극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는 상상이에요. 


그런데 시스터 캐리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줄을 긋습니다. 


아, 복잡한 인간의 삶이여! 아직까지 우리는 아주 희미하게밖에는 볼 수가 없다. 여기 있는 캐리는 처음에는 가난하고 투박하나 감정은 풍부하여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면 무엇에든 욕망으로 반응했지만, 결국 벽에 부딪힌 자신을 발견했을 뿐이다. (651쪽)

이 '복잡한 인간의 삶'은 허스트우드가 걷는 궤적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선택의 순간, 의지를 발휘하는 그 순간, 삶은 너무나 복잡한 나머지 그 짧은 순간이 자신을 어느 곳으로 데려가는지 제 스스로도 알지 못하면서 휘몰아칩니다. 허스트우드가 술의 뜨거운 열기에 취해 금고를 만지작거리던 바로 그때에 만일 누군가 나타나서 그에게 그가 어떤 죽음을 맞이할지 얘기해주었대도 달라지지 않았을 거예요. 그것은 스스로가 겪어내지 않고는 결코, 결단코 알 수 없는 일이지요. 


캐리는 창 밖을 봅니다. 지나온 시간을 이해하기 위해서요. 하지만 역시 '간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분투하고, 더 분투하고, 맹목적으로 분투합니다. 맹목적으로 분투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정직한, 우리 자신의 모습이란 생각입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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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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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낯선 친구에게서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에 대한 욕구를 전해들었을 때 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거의 소리를 질렀을 겁니다. 그 친구는 19살이었기 때문이에요. 속으로 소리를 내지르고는 곧이어 코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살, 그 나이를 곰곰이 따져보면서 말이지요. 저는 분명히 그 나이를 지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그 나이가 얼마나 어리지 않은지, 그 나이를 먹으며 겪어낸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불안하며 혼란스러운지 잘 알았으면서도 마치 그 나이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듯 그 친구를 대상화시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이 가장 지향하는 바로 현재의 저는 그것에 가장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그 친구는 그런 말을 해서 안 됐다는 듯이 소리 씩이나 질렀던지. 사람이란 이렇게나 어리석고 교만합니다. 


애써 저와 낯설고 어린 친구가 가진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를 적은 것은 이 이야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무척이나 아찔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죠. 그렇지만 잠시도 쉬지 못했습니다. (또 다시)최근에 아주 슬프고 화가 나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에서 도망쳐야 했거든요. 저는 이 이야기에 집착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놀라운 도피처였어요. 다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놀랍긴 하지만 말입니다. 


"수줍음 많고 순진하면서도 묘하게 아는 것이 많은" 수수께끼 같은 모린, 애정과 책임감과 기민함을 양손에 가득 쥐고 외줄타기를 하는 줄스, 그들의 울타리자 감옥인 로레타. 이 인물들, '그들'의 통제불가의 삶은 그대로 '오츠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줄스의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됩니다. 

세상은 제멋대로 미쳐 돌아갑니다.(453쪽)

도시적이고, 흥미로운 삶을 원했던 로레타가 통제하지 못한 그의 삶이나 
넉넉하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원했던 줄스가 통제하지 못한 그의 삶이나
예의바르고, 안정적인 삶을 원했던 모린이 통제하지 못한 그의 삶이나 
혹은 각각의 '그들'이 부대끼느라 통제하지 못한 그들의 삶은 어찌할 수 없어 무기력하고 애처롭습니다. 개인이면서 가족인 제 각기의 정체성에 얽매여 정체를 찾지 못하는 이들의 여정이 너무나 거대하고 엄청나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것은 또한, 그들이 살아내야 했던 세기, 시간, 그 순간들의 증명이기도 하죠. 


많은 것이 결정된 세기, 변할 것이 많지 않은 세기, 형이하적 불안보다 형이상적 불안에 더 적극적으로 노출된 세기에 이것과는 무척이나 달랐던, 모든 것이 가능하고 거칠고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지난 세기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 소설이 있다는 것 역시 엄청난 일이에요. 20세기 중반, 미국 디트로이트를 관통하는 삶의 뜨거운 에너지는 낯설고 두렵습니다. 거친 사람들, 거친 언어가, 거친 정서가 난무하는 곳은 그대로 하나의 폭력처럼 느껴집니다. 지구 한쪽 구석에 숨어 글로만 만나는 세상인데도 그렇네요. 한편 그것이 생생한 현실이란 짐작을 하면 이 두려움은 거짓도 아닐 겁니다. 


이 소설은 로레타, 모린, 줄스 세 사람 각각의 시선에서 진행되는데요. 꼭 처음부터 이 세 사람의 시선을 다 따라가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은 이들의 시선을 따라가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이 소설이 좋은 이유는 그저 치열하게 제멋대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파고, 또 파서 들어가고 치열하게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사는 개인의 미친 삶을 파헤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디트로이트의 어둡고 끈적하고 매캐한 공기를 잔뜩 들이마신 것 같네요. 정말 멋집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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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는 복잡한데 할말은 점점 줄어듭니다. 할 수 있는 말이라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좀 우울한 시절인데 기운을 내야겠지요. 



도리스 레싱의 작품이 모두 번역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Ben, in the World>요. 어디 출간 계획이 없나요? 

흑흑. 

그 와중에 이 책이 정말 반갑습니다! 












순전히 맨부커상 타이틀 때문에 궁금해졌는데, 어떨까요? 

두 권이고, 잠깐 줄거리를 보니 빠져들어 읽기 좋을 것 같아요. 













하이스미스의 작품은 읽지 않아도 수집하고 싶은 것들이에요. 

책장에 나란히 놓인 기발하고 서늘한 그의 작품을 바라봅니다. 

그 느낌과 이 작품 사이에 빨간줄이 연결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요즘 같은 기분에는 딱 이런 책을 읽고 싶습니다. 

제목도, 작가도, 줄거리도, 참 고맙습니다. 

도피, 는 아니고 그저 잔혹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보면 다른 상상과 의외의 깨달음이 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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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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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라고도 알려진 여호와는 아담과 하와가 겉모습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만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심지어 아주 원시적인 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에게 짜증이 났을 것이다. (9쪽)

이것은 근래 읽은 소설 중 가장 재치있는 첫 문장입니다. 다시 떠올려도 입꼬리가 삐죽삐죽, 웃음이 튀어나올 요량인가 몸이 먼저 반응하네요. 이 문장은 바로 뒤에 오는 "에덴동산에는 이 심각한 과실을 두고 달리 탓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와도 아주 잘 어울리며 심지어 이 두 번째 문장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기가 막힌 수식이었어요.

 

누구 탓도 못하고 자신에게 짜증내고 있는 하나님이라니. 정말 통쾌하지 않은가요?

 

저는 읽는 내내 이 통쾌함을 한 번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고, 실제로 펼쳐지는 꽤 새로운, 어느 면에서는 도끼 같은 고찰을 담은 다른 시선에 대한 만족이기도 했어요. 기독교 신자도, 성경에 대한 지식도, 신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는데 이 정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니 어떤 면에서는 참 희한합니다. 다만 이것은 아주 지적인 냉소, 이성적인 왜곡 같은 것일 텐데 나란 독자는 언제나 그런 것에 감동하므로...

그러니까 앞서 적은 첫 문장은 뒤에 올 소설 전체를 수식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오면 그 예감은 확실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카인이자 아벨, 그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내며 말이죠.

 

하나님이 자신의 과실 때문에(혹은 인간의 과실 때문에) 분노하고, 처벌을 하려 하거나 시험에 들게 하는 짓(!)은 태초, 아담과 하와과 선악과를 따먹은 순간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열받고,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어리석은 존재들에 대해 답답해 합니다. 어쩌면 이때부터 하나님은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존재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의심하고, 괴롭힐 작정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부터 너희는 이 편한 생활에 작별을 고할 것이다. 너, 하와, 너는 아침의 헛구역질을 포함하여 임신의 모든 불편을 겪고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을 뿐 아니라, 그 뒤에도 계속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내 꼴이 한심하구나, 하와가 말했다. 이 얼마나 나쁜 출발이냐. 내 운명은 어찌 이리도 슬픈 것이냐. 진작 그런 생각을 했어야지, 그리고 너, 아담, 땅이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으니, 너는 네 평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다. (20쪽)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은 어김없이 하나님의 시험에 들죠. 카인은 동생을 죽입니다. 하나님은 나타나고 카인은 그때부터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해요. 카인의 여정에서, 그 의심은 점차 확신이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운명이기도 할 거예요.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106쪽)에 말이지요.

 

이어 많은 순간, 카인이 발견하는 하나님의 괴짜스런 면과 그로 인한 불필요한 죽음들을 봅니다. 갑자기 조금 진지해보자면 이 세기에 신의 존재가 이토록 회의적이고 불확실해진 데에는 어느 정도, 아주 조금이라도, 신의 부덕 탓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물론 불완전하고, 그들이 모이면 더욱 어리석은 짓들을 하게 마련이죠. 그래서 인간은 반성하고 신을 향해 걸어갑니다. 하지만 인간을 만든 신은? 그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결론 아닌가? 어째서 그 무수한 생명이 그런 이유로 스러지고, 그런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그런 이유로 버려져도 괜찮단 말이지?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꽤 그럴 듯하고도 재치있는 뒷받침인 것입니다.

 

문득 중학교 때 읽었던 <람세스>가 생각납니다. 저는 어렸고, 람세스에 푹 빠졌고, 네페르타리와의 사랑 이야기, 이집트를 수호하는 신적인 존재이자 누구보다 인간적인 람세스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모세는, 모세의 기적은 좀, 별로였어요. 그런 날이었는데 하루는 집에 신을 믿으라는 신실한 눈빛의 여러 분이 찾아왔더랬습니다. <람세스>를 읽기 전, 그러니까 한 달만 일찍 그들이 찾아왔다면 어찌 됐을지 몰라도 그들은 그 이후 찾아왔고, 저는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신의 계시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경험한 신실한 눈빛과의 접촉은 그 정도고, 그것만으로도 <카인>이 통쾌할진대 혹 다른 더 '진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어떨까, 그런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앞서 말한 여러 이유로, 한 작품으로써 이 소설이 저는 참 좋습니다. 신나는 책읽기였어요. 좀 심심할 때, 또 꺼내보게 될 것 같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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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설 연휴를 앞두고 완전히!!! 까먹고 있었어요; 뭔가 허전하다 했더니... 이것을 ㅠㅠ 죄송합니다. ㅠㅠ 

 

 

이 시리즈 무척 매력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황정은, 윤이형도 아직이에요. 김애란으로 시작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어로 제목이 함께 붙어있는 이유도, 궁금하네요.

 

 

 

 

 

 

 

 

 

 

 

 

하인라인이라면 당연히 읽어야겠죠. 발붙인 현실이 답답할수록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되는데, 그때 이 소설이 도움이 되리란 기쁜 예감입니다.

 

 

 

 

 

 

 

 

 

 

 

구판을 갖고 있어요. 읽으려고 시도했으나 끝내진 못했죠. 하지만 읽어낸 앞부분이 여전히 선명합니다. 이번 기회에 완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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