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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평점 :
하나님이라고도 알려진 여호와는 아담과 하와가 겉모습은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만 말을 한마디도 못하고 심지어 아주 원시적인 소리도 내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신에게 짜증이 났을 것이다. (9쪽)
이것은 근래 읽은 소설 중 가장 재치있는 첫 문장입니다. 다시 떠올려도 입꼬리가 삐죽삐죽, 웃음이 튀어나올 요량인가 몸이 먼저 반응하네요. 이 문장은 바로 뒤에 오는 "에덴동산에는 이 심각한 과실을 두고 달리 탓할 존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와도 아주 잘 어울리며 심지어 이 두 번째 문장을 최대한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기가 막힌 수식이었어요.
누구 탓도 못하고 자신에게 짜증내고 있는 하나님이라니. 정말 통쾌하지 않은가요?
저는 읽는 내내 이 통쾌함을 한 번도 버리지 않았습니다. 주제 사라마구라는 작가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고, 실제로 펼쳐지는 꽤 새로운, 어느 면에서는 도끼 같은 고찰을 담은 다른 시선에 대한 만족이기도 했어요. 기독교 신자도, 성경에 대한 지식도, 신에 대한 관심도 별로 없는데 이 정도 만족을 느낄 수 있다니 어떤 면에서는 참 희한합니다. 다만 이것은 아주 지적인 냉소, 이성적인 왜곡 같은 것일 텐데 나란 독자는 언제나 그런 것에 감동하므로...
그러니까 앞서 적은 첫 문장은 뒤에 올 소설 전체를 수식하고 있는 셈입니다. 마지막 문장까지 읽고, 다시 첫 문장으로 돌아오면 그 예감은 확실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카인이자 아벨, 그의 목소리에 박수를 보내며 말이죠.
하나님이 자신의 과실 때문에(혹은 인간의 과실 때문에) 분노하고, 처벌을 하려 하거나 시험에 들게 하는 짓(!)은 태초, 아담과 하와과 선악과를 따먹은 순간부터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열받고, 이들에게 저주를 내리고, 어리석은 존재들에 대해 답답해 합니다. 어쩌면 이때부터 하나님은 불완전하고 어리석은 존재를 끊임없이 시험하고, 의심하고, 괴롭힐 작정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제부터 너희는 이 편한 생활에 작별을 고할 것이다. 너, 하와, 너는 아침의 헛구역질을 포함하여 임신의 모든 불편을 겪고 고통을 겪으며 아이를 낳을 뿐 아니라, 그 뒤에도 계속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내 꼴이 한심하구나, 하와가 말했다. 이 얼마나 나쁜 출발이냐. 내 운명은 어찌 이리도 슬픈 것이냐. 진작 그런 생각을 했어야지, 그리고 너, 아담, 땅이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았으니, 너는 네 평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것이다. (20쪽)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낳은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은 어김없이 하나님의 시험에 들죠. 카인은 동생을 죽입니다. 하나님은 나타나고 카인은 그때부터 하나님을 의심하기 시작해요. 카인의 여정에서, 그 의심은 점차 확신이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운명이기도 할 거예요. "인류의 역사는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이니,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우리는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106쪽)에 말이지요.
이어 많은 순간, 카인이 발견하는 하나님의 괴짜스런 면과 그로 인한 불필요한 죽음들을 봅니다. 갑자기 조금 진지해보자면 이 세기에 신의 존재가 이토록 회의적이고 불확실해진 데에는 어느 정도, 아주 조금이라도, 신의 부덕 탓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은 물론 불완전하고, 그들이 모이면 더욱 어리석은 짓들을 하게 마련이죠. 그래서 인간은 반성하고 신을 향해 걸어갑니다. 하지만 인간을 만든 신은? 그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주 합리적이고 자연스러운 결론 아닌가? 어째서 그 무수한 생명이 그런 이유로 스러지고, 그런 이유로 괴롭힘을 당하고, 그런 이유로 버려져도 괜찮단 말이지? 이 소설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꽤 그럴 듯하고도 재치있는 뒷받침인 것입니다.
문득 중학교 때 읽었던 <람세스>가 생각납니다. 저는 어렸고, 람세스에 푹 빠졌고, 네페르타리와의 사랑 이야기, 이집트를 수호하는 신적인 존재이자 누구보다 인간적인 람세스의 이야기를 몇 번이고 읽었습니다. 모세는, 모세의 기적은 좀, 별로였어요. 그런 날이었는데 하루는 집에 신을 믿으라는 신실한 눈빛의 여러 분이 찾아왔더랬습니다. <람세스>를 읽기 전, 그러니까 한 달만 일찍 그들이 찾아왔다면 어찌 됐을지 몰라도 그들은 그 이후 찾아왔고, 저는 그것이, 역설적이게도, 신의 계시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경험한 신실한 눈빛과의 접촉은 그 정도고, 그것만으로도 <카인>이 통쾌할진대 혹 다른 더 '진한' 경험을 한 사람들은 어떨까, 그런 궁금증을 갖게 됩니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앞서 말한 여러 이유로, 한 작품으로써 이 소설이 저는 참 좋습니다. 신나는 책읽기였어요. 좀 심심할 때, 또 꺼내보게 될 것 같습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