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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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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만난 낯선 친구에게서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에 대한 욕구를 전해들었을 때 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랐습니다. 거의 소리를 질렀을 겁니다. 그 친구는 19살이었기 때문이에요. 속으로 소리를 내지르고는 곧이어 코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19살, 그 나이를 곰곰이 따져보면서 말이지요. 저는 분명히 그 나이를 지나왔습니다. 그러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라서 그 나이가 얼마나 어리지 않은지, 그 나이를 먹으며 겪어낸 세상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불안하며 혼란스러운지 잘 알았으면서도 마치 그 나이를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듯 그 친구를 대상화시켜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는 다른 누구도 아닌 제 자신이 가장 지향하는 바로 현재의 저는 그것에 가장 맹목적으로 매달리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그 친구는 그런 말을 해서 안 됐다는 듯이 소리 씩이나 질렀던지. 사람이란 이렇게나 어리석고 교만합니다. 


애써 저와 낯설고 어린 친구가 가진 "안전하고 편안한 상태"를 적은 것은 이 이야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야기들이 쏟아져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무척이나 아찔하고 혼란스러운 이야기죠. 그렇지만 잠시도 쉬지 못했습니다. (또 다시)최근에 아주 슬프고 화가 나는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에서 도망쳐야 했거든요. 저는 이 이야기에 집착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놀라운 도피처였어요. 다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놀랍긴 하지만 말입니다. 


"수줍음 많고 순진하면서도 묘하게 아는 것이 많은" 수수께끼 같은 모린, 애정과 책임감과 기민함을 양손에 가득 쥐고 외줄타기를 하는 줄스, 그들의 울타리자 감옥인 로레타. 이 인물들, '그들'의 통제불가의 삶은 그대로 '오츠 선생님'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줄스의 한 문장으로 정리가 됩니다. 

세상은 제멋대로 미쳐 돌아갑니다.(453쪽)

도시적이고, 흥미로운 삶을 원했던 로레타가 통제하지 못한 그의 삶이나 
넉넉하고, 사랑이 넘치는 삶을 원했던 줄스가 통제하지 못한 그의 삶이나
예의바르고, 안정적인 삶을 원했던 모린이 통제하지 못한 그의 삶이나 
혹은 각각의 '그들'이 부대끼느라 통제하지 못한 그들의 삶은 어찌할 수 없어 무기력하고 애처롭습니다. 개인이면서 가족인 제 각기의 정체성에 얽매여 정체를 찾지 못하는 이들의 여정이 너무나 거대하고 엄청나서 숨이 막힐 지경입니다. 

그것은 또한, 그들이 살아내야 했던 세기, 시간, 그 순간들의 증명이기도 하죠. 


많은 것이 결정된 세기, 변할 것이 많지 않은 세기, 형이하적 불안보다 형이상적 불안에 더 적극적으로 노출된 세기에 이것과는 무척이나 달랐던, 모든 것이 가능하고 거칠고 알 수 없는 것들이 가득한 지난 세기의 이야기를 기억한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그런 소설이 있다는 것 역시 엄청난 일이에요. 20세기 중반, 미국 디트로이트를 관통하는 삶의 뜨거운 에너지는 낯설고 두렵습니다. 거친 사람들, 거친 언어가, 거친 정서가 난무하는 곳은 그대로 하나의 폭력처럼 느껴집니다. 지구 한쪽 구석에 숨어 글로만 만나는 세상인데도 그렇네요. 한편 그것이 생생한 현실이란 짐작을 하면 이 두려움은 거짓도 아닐 겁니다. 


이 소설은 로레타, 모린, 줄스 세 사람 각각의 시선에서 진행되는데요. 꼭 처음부터 이 세 사람의 시선을 다 따라가려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혹은 이들의 시선을 따라가지 않아도 좋을 거예요. 이 소설이 좋은 이유는 그저 치열하게 제멋대로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파고, 또 파서 들어가고 치열하게 미쳐 돌아가는 세상을 사는 개인의 미친 삶을 파헤친다는 점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디트로이트의 어둡고 끈적하고 매캐한 공기를 잔뜩 들이마신 것 같네요. 정말 멋집니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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