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고

 

산다는 것은 타인의 견해를 가지고

코바늘뜨기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뜨개질을 하는 동안 생각은 자유롭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불안의 책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내 안의 나무 - 최영숙

 

                       

여기 검은 필름 한 장이 있다

형광 불빛을 받자 환하게 드러나는

내 안의 나뭇가지들

열매처럼 매달린 폐와 심장이

한그루 나무를 닮았다

한그루 나무이고 싶던 때를 기억하는

나는 한그루 나무

(놀라워라, 나도 모르는 속을 볼 수 있다니!)

심장이 부풀어 올랐군요,

무슨 가슴 벅찬 일이라도 있었는가

손을 대기에는 차마 뜨거운

내 안의 붉은 열매

그 열매 쪼아 먹고 살던 새 어디로 날아갔나

내 안의 가지들을 들여다본다.

새는 날아가고 텅 빈 어둠만 남은

공허한 갈빗대

활처럼 휘어져 어디라 방향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빈 둥우리를 치는 새 울음소리

환하고 따스한 겨울 한때에

두 팔 벌리고 크게 숨 멈추면

등을 뚫고 지나가는 한줄기 빛,

한그루 나무이고 싶던 때를 기억하는

내 안의 나뭇가지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추리소설이지만 책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요컨대 옳은 말은 그저 옳은 말일 뿐이다.

그것이 내 것이 되려면 내안에서 다시 체험되어야 한다.

내가 내 식으로 체험하지 않는 말이란 한 낱 떠다니는

정보에 불과하다. 

            고병권의 철학자와 하녀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벽 - 정호승

 

 

나는 이제 벽을 부수지 않는다

따스하게 어루만질 뿐이다

벽이 물렁물렁해질 때까지 어루만지다가

마냥 조용히 웃을 뿐이다

웃다가 벽 속으로 걸어갈 뿐이다

벽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면

봄눈 내리는 보리밭길을 걸을 수 있고

섬과 섬 사이로 작은 배들이 고요히 떠가는

봄바다를 한없이 바라볼 수 있다

나는 한때 벽 속에는 벽만 있는 줄 알았다

나는 한때 벽 속의 벽까지 부수려고 망치를 들었다

망치로 벽을 내리칠 때마다 오히려 내가

벽이 되었다

나와 함께 망치로 벽을 내리치던 벗들도

결국 벽이 되었다

부술수록 더욱 부서지지 않는

무너뜨릴수록 더욱 무너지지 않는

벽은 결국 벽으로 만들어지는 벽이었다

나는 이제 벽을 무너뜨리지 않는다

벽을 타고 오르는 꽃이 될 뿐이다

내리칠수록 벽이 되던 주먹을 펴

따스하게 벽을 쓰다듬을 뿐이다

벽이 빵이 될 때까지 쓰다듬다가

물 한잔에 빵 한조각을 먹을 뿐이다

그 빵을 들고 거리에 나가

배고픈 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