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나무 - 최영숙
여기 검은 필름 한 장이 있다
형광 불빛을 받자 환하게 드러나는
내 안의 나뭇가지들
열매처럼 매달린 폐와 심장이
한그루 나무를 닮았다
한그루 나무이고 싶던 때를 기억하는
나는 한그루 나무
(놀라워라, 나도 모르는 속을 볼 수 있다니!)
심장이 부풀어 올랐군요,
무슨 가슴 벅찬 일이라도 있었는가
손을 대기에는 차마 뜨거운
내 안의 붉은 열매
그 열매 쪼아 먹고 살던 새 어디로 날아갔나
내 안의 가지들을 들여다본다.
새는 날아가고 텅 빈 어둠만 남은
공허한 갈빗대
활처럼 휘어져 어디라 방향할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빈 둥우리를 치는 새 울음소리
환하고 따스한 겨울 한때에
두 팔 벌리고 크게 숨 멈추면
등을 뚫고 지나가는 한줄기 빛,
한그루 나무이고 싶던 때를 기억하는
내 안의 나뭇가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