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한때 - 천양희

 

 

비 갠 하늘에서 땡볕이 내려온다.

촘촘한 나뭇잎이 화들짝 잠을 깬다.

공터가 물끄러미 길을 엿보는데, 두살배기 아기가 뒤뚱뒤뚱 걸어간다.

 

생생한 생()! 우주가 저렇게 뭉클하다

고통만이 내 선생이 아니란 걸

깨닫는다. 몸 한쪽이 조금 기루뚱한다

 

바람이 간혹 숲 속에서 달려나온다.

놀란 새들이 공처럼 튀어오르고, 가파른 언덕이 헐떡거린다.

웬 기()저렇게 기막히다

 

발밑에 밟히는 시름꽃들, 삶이란

원래 기막힌 것이라고 중얼거린다

 

나는 다시

숨을 쉬며 부푼다. 살아 붐빈다.

 

 쑷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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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경 한계선 - 박 정 대

 

 

풍경들을 지나서 왔지

지나온 풍경들이 기억의 선반 위에

하나둘 얹힐 때

생은 풍경을 기억하지 못해도

풍경은 삶을 고스란히 기억하지

아주 머나먼 곳에 당도했어도

끝끝내 당도할 수 없었던 풍경은

무엇이었을까

그리운 풍경들은 우리를 배반하지 않네

풍경의 건반 위에

그대로 남아

풍경처럼 살아

풍경, 풍경

생을 노래하지

 

 여우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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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월, 이 하루 - 이태수

 

 

 

어디를 헤매다가 마음아,

곤죽이 되어 돌아왔니? 구겨진 길들

발목에 매단 채 봉두난발(蓬頭亂髮),

해진 옷자락으로 되돌아왔니?

하늘의 푸른 잉크 빛 속으로 아득하게

새들이 빨려 들어가는 유월 한낮.

모란이 뜨락에서 꽃잎을 떨어뜨리는 동안

가까스로 햇살에 몸을 맡겨

제정신이 드는 마음아,

이 풍진(風塵) 세상을 어찌하리.

누군가 산을 넘고 물 건너 멀리 가보아도

끝내 눈물 흘리고 돌아왔다 하지 않니.

바람 잘 날 없어도 낮게 비워보면

작은 꽃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 것을.

실로 가련한 마음아, 네가 깃들여

길을 트고 걸어야 할 지금 여기는

그래도 땅에 발을 붙이고

하늘 올려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그늘지고 헐벗어도 다스한 가슴들이

한낮에도 조그맣게 불을 밝혀주어,

물러서던 길도 환해지고 있지 않니?

나무들이 껴입은 초록빛에 스며들며

물방울처럼 글썽이는 유월, 이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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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터3 박상우

 

 

어둠이 졸졸졸 고이는 공터

구석에 널브러진 폐타이어

속도의 중력에 실려 살아왔던 한 생애의

최후를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달려왔을 그 많은 길과 일별했던

풍경들을 그는 기억하고 있을까

누구에게나 한때 생의 절정은 있는 법이다

속도란 마약과도 같은 것

망가지고 부서져 저렇듯 버려져서야

실감되는 무형의 폭력인 것이다

가속의 쾌감에 전율했던 날들은 짧고

길고 지루한 남루의 시간 견디는

그대 생의 종착

생은 언제나 돌이킬 수 없을 때에는

깨달음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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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떨어져도 튀는 공처럼 - 정현종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떨어져도 튀는 공이 되어

살아봐야지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탄력의 나라의
왕자처럼

가볍게 떠올라야지
곧 움직일 준비가 되어 있는 꼴
둥근 공이 되어

옳지 최선의 꼴
지금의 네 모습처럼
떨어져도 뛰어오르는 꼴
쓰러지는 법이 없는 공이 되어

 

작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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