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에 대해 얘기를 좀 해보라고 하시는데

난 내가 삶을 산 거라는 확신이 그다지 서지 않는군요

오히려 삶이 우리를 갖고 소유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살았다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마치 스스로 삶을 선택이라도

한 것처럼 자기 삶인 양 기억하곤 하지요

개인적으로 나는 살면서 선택권을 거의 갖지 못했습니다.

지극히 일반적이고 사적이며 일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나를 이끌었고어떤 면에서는 나를 속여 넘겼지요

      로맹 가리의 내 삶의 의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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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르다 - 나희덕


 

 좋아하는 동사를 묻자 그는

 흐르다, 라고 대답했다

 나도 그 동사가 마음에 들었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흐르다, 가 흘러내리다, 의 동의어라는 것을

 

 그저 수평적 움직임이라고만 생각했다

 몇 줄기 눈물이 볼을 타고 천천히 흘러내리기 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눈물의 수직성을

 

 눈에서 입술로, 상류에서 하류로, 젊음에서 늙음으로,

 아 있음에서 죽음으로, 높은 지대에서 낮은 지대로, 어제에

 서 오늘로, 그리고 내일로, 최초의 순간에서 점점 멀어지는

 방식으로, 에너지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의 방향으로, 기억

 의 밀도가 높은 시간에서 낮은 시간으로

 

 흐르는 모든 존재는

 흐르는 동시에 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아래로 아래로 떠밀려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

  흘러오르다, 라는 말이 어디 있는가

 

 고여 있거나

 갇혀 있지 않는 한

 쉴새없이 흘러내리는 물과 흙

 피와 눈물

 세포와 원소

 사랑과 우정

 또는 시간과 기억

 

 원치 않았지만 그것이 끝내 우리를 데려다 부려놓는 곳

 어떤 하류의 퇴적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했다

 흐르다, 라는 동사는 흐르지 못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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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대 짐 자무시 67행성 - 박정대




9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대화를 나누고 싶어, 뜨거운 차를 마시고 덥혀진 몸으로 그대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오래 이야기하고 싶어,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과 그 바람에 밀려 아득히 먼 곳으로 흘러가는 구름에 대하여, 덜컹거리는 창문과 덜컹거리며 달려가는 겨울 야간열차에 대하여, 대륙을 횡단하는 생에 대하여 

  

10 

사물의 상태, 내가 만지고 쓰다듬는 사물의 상태, 내가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사물의 상태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모든 사물들은 뜨겁고 동시에 차갑다,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호응하는 것이다, 끊임없이 움직이며 정렬하는 것이다, 내가 밤에 당도한 것이 아니라 밤과 내가 지금 여기에 당도한 것이다그냥 당도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꿈꾸었기에 지금 여기에 내가 고요한 사물의 상태로 당도해 있다 

 

11  

담배연기로 사색을 한다, 담배연기로 항해를 한다, 참 많은 유령들의 시간이 지났다, 퇴근할 시간이다, 많은 것들이 변형되고 더 많은 것들이 추가될 것이다, 결국 아무 것도 남지 않을 것이다, 아우라를 부정하고 마후라를 목에 휘감고 펄럭이며 퇴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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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미에서 보면, 모든 종교의 신은 다 결함이 있고 불완전한 존재가 아닌가.

왜냐하면 신이란 결국 우리 인간의 특성과 자질을 고스란히 떠안으면서, 이를

확장한 존재니까.

   스타니스와프 렘의 솔라리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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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성이라는 유령은 허상이자 망상이자 사회적 환상이다.

연기하기에 매우 까다로운 인물이며, 그 역할

(회생, 감내, 고통의 와중에도 발랄함을 잃지 않기)을 연기하다

 끝내 이성을 잃고 만 여자도 수두룩했다

    데버라 라비의 살림 비용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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