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풀리는 작은 여행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걷다 / 2014년 6월
평점 :
절판


책, 작은 편이다. 얇은 편이기도 하다. 실린 사진은 흑백이고 작아서 알아보기 쉽지 않다. 책값은 책에 비해 비싼 편이다. 작가의 만화와 글은 그래도 괜찮다. 이 모든 아쉬움을 달래 줄 정도로.(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책의 얇은 두께와 편집에서 느껴지는 약간의 무성의는 우리나라 출판사의 성급함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한창 잘나가는 작가니 어서 출판하고 싶었던 것 같은.) 


내가 왜 마스다 미리의 글과 그림에 계속 빠져 들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부분을 함께 헤아려 보았다. 그리고 '느슨함' 때문이라고 이유를 찾았다. 이 작가, 성실하기는 하지만 치열하다거나 정열적이라거나 온몸과 정신을 바친다거나 하는 쪽은 아니다. 나는 그렇게 읽었다. 그동안 내가 치열한 인생들에 좀 시달렸던 모양이다. 분명히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들의 대단한 인생이었음에도, 초기에는 그런 분들의 삶에 감동도 받고 자극도 확실히 받았으나 어느 시점부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단해지는 자신을 느끼곤 했다. 저렇게 힘들게 살아야 한다니, 저렇게 바쁘게, 저렇게 애타게, 저렇게 간절하게, 저렇게 지독하게,...... 저렇게 저렇게....... 


그래, 그렇게 살면, 성공의 이름을 얻기도 할 테고, 사람들의 선망을 얻기도 할 테고, 돈도 많이 벌 수 있을 테고, 보람도 있을 테고, 세계적으로 이름도 알릴 수 있을 테고, ......그렇겠지, 바쁜 만큼 신나고 바쁜 만큼 벅차고, 바쁜 만큼 우쭐해지고......그럴 수 있을 테지. 그런데, 그런데, 그게 숨가쁘게만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한쪽으로 치열한 만큼 다른 한쪽으로는 허전하게 여겨지는 부분은 없을까, 꼭 저렇게 대단하다 싶을 정도로 살아야만 하나, 좀 덜 하고 좀 덜 얻고 좀 덜 바쁘면 안 되는 걸까. 학생에게만 스펙이 필요한 시대가 아닌 요즘, 스펙이라는 현상에 그만 질려 버리고 만 나. 할 수만 있다면 한 발 뒤로 물러 서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이 작가, 이 대목에서 내 마음과 만났다. 남 다 갖는 것 갖지 못해도 괜찮다고 할 수 있는 처지, 혼자서 먹고 혼자서 놀러 다니고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 그리 서글퍼하지도 속상해 하지도 않는 경지, 적당한 선에서 포기할 것은 포기하고 구할 것은 구하고, 그러면서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마음 속 감동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누릴 줄 아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 받아들일 수 있고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욕심은 바로 행복이 될 수도 있었다. 


작가가 슬쩍 흘리는 것처럼 드러내는 세상에 대한 가치관. 그런 가치관들에 동의하고 있는 내 자신이 다행스럽게 여겨지는 것도 기쁨이다. 이 작가의 글을 계속 읽는 것이 이렇게 내 안의 기쁨과 만나는 것이었음을. (y에서 옮김2014071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두고 온 여름 ㅣ 소설Q
성해나 지음 / 창비 / 202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제 봄은 확실히 아니다. 여름인가 하는데 완전한 여름도 아니다. 어중간한 경계에서 지나간 여름, 두고 온 여름을 들여다 본다. 애틋하고 애잔하다. 두고 온 것들은 언제나 이런 듯하다. 여름마저도.


책은 가볍고 분량은 많지 않다. 한달음에 읽을 수 있다. 굳이 그러고 싶지 않다면 화자가 바뀔 때 쉬어도 좋겠고. 부모의 재혼으로 형제가 된 기하와 재하. 둘은 번갈아 서술한다. 두 번씩. 네 번 나누어 읽으면 이들 형제가 두고 온 여름이 더욱 애잔하게 와 닿을지도. 


나는 한번에 다 읽었다. 내게는 좀 싱거웠고 밋밋했고 서운했다. 분량이 적은 탓이었는지 두 화자가 내보이는 심사에서 무게감을 얻지 못했다. 공감도 동정도 이해도 더 하고 싶지 않은 선을 내 쪽에서 긋고 만 기분, 이게 서운해서 책한테도 서운해졌다. 


책 제목이 근사했는데 제목만 깊이 새긴다. 다른 곳에서 내가 써 먹게 될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2026-05-19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5-20 2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슬픈 사이프러스 ㅣ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47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설은 에필로그로 시작한다. 살인을 했다는 여주인공. 당연히 아닐 것임을 짐작하고, 어떻게 누명을 벗어 나가는가에 초점을 맞춰 읽게 된다. 실제 증거는 없이 모든 정황증거만 여주인공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상황에서 푸아로 경감이 등장한다. 그리고 장미, 여주인공인 엘리너가 들려준 장미에 얽힌 이야기에서 푸아로는 사건을 해결하는 실마리를 얻는다. 장미라면 당연히 가시가 있는 줄 알았는데 가시가 없는 장미도 있다니, 거 참. 


돈과 질투는 범죄를 일으키는 아주 절대적인 동기다. 원래 내것이 아닌 돈을 얻겠다고, 또는 질투를 견디지 못해서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일, 흔하지 않은 듯 흔하게 일어나는 사건이다. 그게 정말 그럴 만한 일인가. 아무튼 작가는 이 동기만으로도 많은 작품을 지루하지 않게 잘도 만들어내었다. 이게 더 신기하다. 매번 달라지는 장치로서의 배경 설정.


그리고 남은 건 사랑. 어떤 사랑이 더 참된 사랑인지, 사랑이라는 게 어느 정도 허용하고 어느 선에서 거부하게 되는 건지 생각해 보도록 해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내 마음이 네 마음 같지 않아서 늘 갈등을 빚고 이 갈등 때문에 다투고 헤어지는 인생사, 그럼에도 어떤 이들은 내내 같이 살고 내내 사랑한다고 믿는다. 젊어서 하는 사랑과 나이 들어 믿는 사랑에도 차이가 있는 셈인가. 그럴 수도. 


아직도 이 작가의 작품이 제법 남아 있어서 은근히 마음 든든하다. 다 읽어 버리면 그때는 무슨 재미로? (y에서 옮김202106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마음이 급해졌어, 아름다운 것을 모두 보고 싶어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7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쓰기 위해 이런 여행에 참여한 것일까, 이런 여행에 참여하다 보니 이 책이 나온 걸까? 괜한 궁금증이다. 무엇이 먼저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마는, 아마 나는 뒤쪽이었으면 더 좋겠구나 싶은 마음을 품고 있는 것일 테다. 어떤 목적 이전의 순수한 의도에 한 표. 


그래, 이런 방법도 있었던 거다. 패키지는 왜 꼭 누군가 아는 사람과 혹은 가족과 같이 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었더란 말인가. 2인실을 모르는 사람과 쓰기 싫으면 돈을 더 내고 혼자 누릴 수도 있는 것을. 혼자 여행 가기는 무섭고 그런데도 혼자 가고 싶기는 하고 그럴 때 이런 패키지를 이용하면 딱 좋을 만한데. 작가가 말하는 것처럼 아주 약간의 불편과 참견만 받아들일 수 있으면 이보다 편리하고 안전한 여행도 없을 텐데. 나처럼 겁도 많으면서 울렁거리는 마음만큼은 강한 소심한 여행자에게는 더할 수 없이 좋은 조건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책에는 모두 5건의 여행이 소개되어 있다. 모두 만만하지 않은 곳이다. 무엇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때와  장소다. 쉽게 가기 어려우면서 이름 알려진 곳을 여행하고자 했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기는 하겠지만 나로서는 좀 엄두가 안 나기는 한다. 아무리 구경거리가 좋다고 해도 굳이 사람이 최고로 많을 때 그런 곳에 가야 하나 싶기도 하고. 내가 어떤 곳을 꼭 보고야 말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사람은 아니고. 장소 선정에 있어서는 작가와 나의 취향이 다르다고 보면 되겠다.


여행은 해도 해도 메마른 갈증을 남겨 놓는 것 같다. 꽤나 돌아다녀 본 듯해도 또 떠돌았으면 싶기도 하다. 집을 나서면 온통 불편한 것 투성이라 곧 돌아오고 싶다고 하면서 집에 있으면 또 나가고 싶은 마음, 자연스러운 것이겠지? 마음먹는다고 아무 때나 할 수 없어서 더 그럴 수도 있을 테고.


나이 더 들기 전에 나도 혼자 하는 여행, 이거 해 보나 어쩌나? 즐거운 고민 하나 얻었네. (y에서 옮김2018071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고양이 발 살인사건 ㅣ 코니 윌리스 소설집
코니 윌리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크리스마스를 소재로 한 글들이 제법 있다. 크리스마스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글도 그만큼의 가치를 가질 수 있겠으나 크리스마스에 아무런 감흥이 없는 나로서는 읽는 동안 좀 난감해진다. 인물들을 이해하는 마음이 확 떨어지고, 이해하고 싶은 의욕 자체도 없고, 다들 왜 이러나 싶은 정도로 작가나 인물들에게 삐딱해지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또 읽고 있고. 이 책도 그랬고.


이 작가의 글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점이 몇 가지 있다. 목적지까지 한참을 빙빙 돌아야 한다는 것, 그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 자체가 우리네 삶의 뒷면 중 하나라는 것, 답답하고 안타까운 상황을 끝내 이겨내더라도 후련함보다는 섭섭함이 더 크게 남는다는 것, 그런데도 생은 재미있고 살아볼 만하고 너도 나도 괜찮은 사람임을 알게 되는 것. 이런 재미있는 요소들을 이 소설집에서는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말았지만. 


대체로 유쾌함을 얻지 못했다. 특히 '고양이 발 살인사건'에서는 무섭다는 느낌이 매우 컸다. 이 작가의 글에서 못 느꼈던 감정이었는데. '절찬 상영중'에서는 짜증이 좀 많이 났고, '소식지'에서는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상황이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다고 해도 말이지. '말하라 유령'과 '동방박사들의 여정'에서는 이들이 뭘 하는 건가, 어쩌겠다는 건가, 종교가 없으니 와 닿는 게 없구나 싶은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날이 춥지 않아서 이 책을 제대로 못 읽어 낸 것이 아닐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