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김훈 지음 / 학고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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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쉽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읽기에 쉽지 않았다. 금방 다 읽을 것 같았는데 다 읽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쓰라리는 마음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싶으니까 책장이 넘어가지 않았다. 


하필 눈보라와 추위 속 남한산성의 계절과 같은 시기에 이 책을 읽은 것인지. 따뜻한 방안에서 읽고 있었어도 400년 전 그때의 추위가 내 손과 발에 와 닿는 것만 같았다. 죽고 싶다고 죽어지는 것도 아니고 살고 싶다고 살아지는 것도 아닌 기막힌 목숨들. 나는 도저히 '나라면...'이라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작가의 글솜씨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바가 못된다. 다만 짐작할 따름이다. 이 한 줄을 쓰면서 혹 눈물 삼키지나 않았는지, 이 한 줄을 쓰면서 혹 잡고 있던 필기구를 부러뜨리지나 않았는지, 이 한 줄을 쓰면서 혹 신음 같은 한탄을 참지나 않았는지. 읽는 내가 이토록 처참하고 처참한데 쓰는 사람은 어떠했을까.


나는 이 책이 400년 전에 있었던 일만을 고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지금도 김상헌의 이름으로, 최명길의 이름으로, 이시백의 이름으로, 김류의 이름으로, 그리고 누구보다 서날쇠의 이름으로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올바른 정치가라면, 올바른 지도자라면, 살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백성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해 주어야 한다.


나는 왜 남한산성에서 여진족과는 한번 싸워 보지도 못하고 추위와 굶주림으로 지쳐 죽어간 이름 모를 백성들의 한이 인조 임금이 칸 앞에 절한 치욕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 (y에서 옮김2008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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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잊기 좋은 이름
    김애란 지음 / 열림원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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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판절판


    잊기 좋은 이름이라는 게 있던가, 잊고 싶지 않아도 잊어버리니 그게 문제인 것이지. 한편으로는 잊지 않는다는 게 좋을 일만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잊을 만하면 잊어버리는 게 서로에게 나은 것일 수도 있으니. 아무리 애틋하고 아무리 그립다고 해도. 그래서 날마다 잊고 있어서 우리는 또 낯선 매일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 테고. 


    최근에 나온 책으로 손석희 아나운서와 주고받는 대화를 유튜브로 보았다. 작가가 인터뷰를 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는데 새삼 작가의 사정이 궁금해져서 찾아낸 책이다. 더듬어 살펴보니 이 작가의 글을 내가 꽤나 읽었던 것으로 나온다. 그렇지만 내게는 아직 특별한 작가가 되지 못한 듯하다. 


    정작 인터뷰의 소재가 된 책도 아직 읽지 못했다. 이 책은 나온 지 좀 되었고, 작가의 옛 이야기들, 작가가 되기까지의 사정들, 작가가 되기 시작하면서, 작가가 된 전후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작가에 대한 애정이 깊은 독자라면 벌써 읽었을 책이었겠다.


    인터뷰 때 보여준 말들이 퍽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이 작가의 글에서 내가 놓쳤던 게 있지 않았나 싶어 실린 글들을 주의 깊게 보았다. 특별히 돋보이는 게 없었던 것을 보면 이 작가와 나 사이의 거리가 이만큼 떨어져 있는 것인가 싶어진다. 말과 글은 또 다르니까. 말할 때의 모습과 글로 보여 주는 모습은 다르게 마련이니까.(똑같은 사람이 있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계속 읽어야지.


    작가의 글을 따라 가면서 내 안에 있을 이름들을 불러 보는 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생각이 든다. 독자인 나로서는 전문가인 작가의 체험을 통해 내 체험을 환기시켜 보는 일로 일상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으니. 잊기 좋은 이름 몇몇은 영영 떠오르지 않았다. 이 역시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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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만치 혼자서
    김훈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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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용은 내 취향이 아니나 문체가 아주 마음에 들어서 읽는 소설집. 이런 내용은 읽는 일 자체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안 읽고 싶고 모르고 싶고 외면하게 되고. 할 수만 있다면 영영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 내용들. 그래서 반대로 더더욱 알아야 할 내용들. 알아서, 끝내 알아내어서, 이웃으로 당사자로 부딪히고 깨지면서도 헤쳐나가야 할 고단한 일상의 상황들. 소설이지만 끝내 소설로 남을 수 없는 현실의 아픈 상처들. 


    작가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썼다는데, 그렇다면 나는 한 사람의 이웃으로 이 글을 읽어야 하는 것인데, 읽는 동안에도 읽고 난 후에도 나는 자신이 없다. 내가 누군가의 이웃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없는 까닭이다. 나는 비겁한 방관자로 살 때가 많고(아니, 대체로 삶이 이러하고) 아주 가끔 흥분하고 분노하지만 누군가에게 영향력을 미치지도 못한다. 그래서 더 모른 척하고 싶은 것일 테다. 내 무능과 내 무기력이 나를 더욱 주저앉히곤 하니까. 


    그래도 읽는다. 읽고 아파한다. 아파서, 쓰려서, 미안해서, 부끄러워서, 울지도 못한다. 울 자격도 없지 않나? 편하게 앉아서 글 몇 줄 읽는 주제에 무슨 염치로...... 차갑게 그러면서 간결하게 쓰여 있는 글은 끝도 없이 나를 때린다. 책은, 글의 힘은, 이렇게 줄곧 매맞는 기분으로도 계속 읽고 싶도록 하는 데에 있다. 적어도 느끼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나, 아무 행동으로 나서지는 못하더라도, 이만큼의 사회적 양심이라도 가지라면서.        


    어쩌면 나처럼 이만치 혼자서 물러 나와 있는 이들에게, 이웃으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을 전하려고 쓴 책인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고마운 각성이다. 작품 속 인물들을, 이와 비슷한 처지의 우리네 이웃들을, 조금이라도 깊이 바라봐 줄 수 있어야 한다. 어쩌자고 모든 배경 묘사는 아름답기만 한 것이었는지. (y에서 옮김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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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 아래 ㅣ 마스다 미리 만화 시리즈
    마스다 미리 지음, 조은하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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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하늘을 중심 소재로 이렇게 아기자기한 만화를 그려내다니. 평온했다. 그림이 아주 멋지다거나 놀라운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부담없이 머물 수 있다. 그게 더 좋았다. 어쩌면, 나도 이렇게 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그런데 실제로 하는 것과는 아주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작가의 능력을 함부로 평가하려는 것은 절대로 아님)

     

    만화는, 아기자기한 만화는, 내용이 좋은 만화는, 내게 하나의 꿈이다. 멀리, 저만큼 떨어져 있는 꿈. 손에서 놓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붙잡지도 못하고.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꿈. 꼭 해 볼 것도 아니면서 언젠가 해 볼 수도 있지 않으려나 그런 꿈. 없는 것보다는 분명히 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늘의 별이 우리에게 들려주는 수많은 이야기들. 과학이든 신화든 전설이든 우주의 생성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무궁무진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럴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 우리가 우주를 공부하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우리의 우주를 지켜야 하는 사명 때문이라고 하는데, 무거운 사명조차도 가뿐하게 받아들여진다.

     

    작가에 대해 모르고 있었는데, 좀더 알아 보아도 괜찮은 사람인 모양이다. 겉멋보다는 내용에 충실한 만화책이 다양한 분야에서 많이많이 나오기를 기대하면서. (y에서 옮김2013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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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것들이 신경 쓰입니다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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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소한 사람, 대범한 사람. 사소한 성격, 대범한 성격. 사람의 성향을 둘 중 하나로 딱 잘라 나눌 수는 없는 일이다. 일에 따라서 어느 쪽 성향이 더 강하게 나타나는가, 대체로 어떤 성향이 더 자주 나타나는가 정도로 구별할 수 있을 뿐.


      나는? 나는 사소한 데에 신경을 많이 쓰는 쪽인가, 대범하게 일을 처리하고 넘기는 쪽인가? 사소한 일까지도 얽매인다고 여겼는데 어떤 일에서는 퍽 대범하게 넘겨 버리곤 해서 나 스스로 놀란 적도 여러 번. 그러면서도 소심하다고 착각도 많이 하고 살았는데. 결국 어느 한 쪽이 더 낫고 다른 한 쪽이 모자라는 그런 게 아니었던 것이다. 성격이란 건, 성향이란 건. 그저 그러할 수밖에 없고 그러고 싶어하고 그러는 게 스스로 마음 편해서일 뿐. 


      이 작가의 글이나 만화를 보고 있으면 참으로 하찮은 일에 놓여 있는 경우의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일상에서는 미처 의식하지도 못하고 넘길 자잘하고 사소한 일들, 그 일에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떠했던가 하는 되돌아봄. 그리고 그게 그 순간에는 어떤 이유로든 민망했거나 난처했거나 부끄러했던 것 같은데 지나고 보면 그럴 필요가 전혀 없었던 그런 상황들. 그리하여 내가 그리 모자란 것도 아니고 남부끄러울 만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고나 할까. 한마디로 나대로 다른 이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아차린다는 말.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마저 사랑스러운 나 자신의 모습이라고. 


      작가처럼 사소한 것들에 신경을 쓰면서 살고 있는 내가 더 이상 궁색하게 여겨지지 않는다. 이러면 된 것이다. (y에서 옮김2023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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