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마시는 것들의 자연사 - 맛, 음식, 요리, 사피엔스, 그리고 진화
조너선 실버타운 지음, 노승영 옮김 / 서해문집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동물이든 식물이든 인간이든 세균이든 지구 위에 머물고 있는 개체들은 다들 똑같은 목적으로 똑같은 운명으로 제 삶을 이어가려고 하는 것일까. 오로지 살아남기. 내가 아니라면 나의 유전체를 남김으로써. 고스란히 남기는 게 어렵다면 변화를 통해서라도, 그게 진화라면 더더욱, 그리하여 살아남기만 한다면. 


먹고 마시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유쾌한 기분으로 읽으려고 했는데, 지극히 가벼운 마음으로 펼쳤는데, 읽는 동안에는 내내 가벼운 마음이었으나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점점 더 숙연해졌다. 지구 밖에서, 지구에 생명체가 생기기 시작하던 즈음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역사를 지켜보는 심정이었다. 이러려고 하지 않는데도 저절로 이런 마음이 들도록 붙잡아 끄는 힘은 작가의 것이겠지. 거대한 시각이라는 게 아마도 이런 통찰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다.    


책의 부제로 나와 있는 말-'맛, 요리, 음식, 사피엔스, 그리고 진화'-을 다 읽고 보니 온전히 이해가 된다. 맛도 요리도 음식까지도 사람이 사람을 위한 것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는 것. 우리 인간이 알고 있는 바의 의지라는 걸 갖지 않은 식물이라도 그들대로는 살아남을 유전자를 지키거나 바꾸거나 해야 했다는 것. 그 과정에서 인간을 위한 음식 재료가 되어서라도. 식물이 이러할진대 동물은 더 말해 무엇하랴 싶고. 이래서야 밥 한 끼, 차 한 잔 먹고 마실 때마다 진화의 속성을 헤아리게 되는 게 아닐지. 그때 내 기분은 좋을까, 성가실까, 설렐까, 멍해질까. 아무려면 어때, 지금 이렇게 신나는데.   


내가 조금 알고 있던 과학과 역사의 지식에 엄청나게 거대한 내용을 덮어야 했던 탓에 읽었다고 다 알게 된 아니다. 어쩌면 내가 품은 지식의 양은 이 책으로 얻어서 늘린 것보다 기억했던 것마저 잊어버리면서 잃은 것이 더 많아졌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풍성한 느낌이다. 배도 부르고 머리속도 그득해진 듯한, 좋은 책은 나를 홀로 착각하게 만들어준다. 끝도 없이 펼쳐 보이는 자료와 증거들에 가끔 지루한 느낌을 받기도 했지만, 그래서 엉성한 시각으로 이들을 훌훌 넘기기도 했지만, 맥락만큼은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우리는 모두 진화 과정에 놓여 있다는 것을.    


마지막 장에서 작가가 GMO에 대해 말하고 있는 대목은 새로웠다. 내가 생각을 바꿔야 하나 보다, 마음먹을 정도로. (y에서 옮김20211226)

아프리카 바깥에 사는 6억 인구는 모두 약 7만2000년 전 어느 화창한 날 아프리카의 뿔(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지부티가 자리 잡고 있는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홍해를 가로질러 아라비아반도로 건나간 소규모 무리의 후손이다. 이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의 유전자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인구는 유전적으로 매우 다양하며 민족 간에 다른 점이 많다. 이에 비해 나머지 인구는 유전적으로 획일적이어서, 아프리카 인구의 다양한 유전자 중에서 대탈주를 감행한 수백 명의 유전자만을 모두가 공유한다. 아프리카에서 멀수록 타고난 유전적 다양성은 감소한다. 이것을 보면 이주의 단계마다 소규모 무리가 떨어져 나와 이동하고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정착지를 건설하고 정착민 수가 많아지면 다시 일부가 떨어져 나왔음을 알 수 있다. - P59

우리는 빵이 주식이라는 사실을 당연하게 여기지만, 여기에는 우리를 상상 가능한 모든 방식으로 변화시킨 1만2000년의 역사가 숨겨져 있다. 이 변화는 동식물의 진화를 우리의 목적에 맞게 좌우하는 법을 배운 신석기 혁명에서 주춧돌 역할을 했다. 농업 덕에 인류가 식량을 얻고 인구가 증가할 수 있었으며, 잉여 농산물 덕에 산 자를 위해 도시를 건설하고 죽은 자를 위해 거대한 무덤을 지을 수 있었다. 농업 덕에 생긴 여가 시간에 우리는 자연을 관찰하고 자연법칙을 발견했다. 다윈은 길들이기가 동식물에 미친 영향을 관찰해, 이 생물을 우리 입맛에 맞게 빚은 인위적 선택이 우리와 모든 생물을 형성한 자연선택과 비슷하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빵은 우리를 길들였으며, 이제 지구 길들이기는 막바지에 이르렀다. - P87

사람들은 진화를 마치 후진 기어가 없는 자동차 같은 일방향적 과정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진화는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은 쓸모 있는 것과 쓸모없는 것의 무작위 조합에서 형질을 골라내지만 이 형질이 쓰임새를 잃으면 버리기도 한다. 진화 과정에서 기능을 잃은 형질의 유전자는 돌연변이가 누적되어 허깨비 같은 ‘위유전자’가 되는 경향이 있다. 위유전자는 한때 유용했던 유전자의 흐릿한 그림자에 불과하다.

- P98

우리의 미각 수용체는 필수 영양소를 입안에 넣었을 때 뇌에 신호를 보낸다. 단백질은 감칠맛, 탄수화물은 단맛, 지질은 기름진 맛을 느끼게 한다. 물론 미각 수용체는 진화가 우리에게 선사한 감각 기관 중 일부에 불과하다. - P108

식물이 만드는 수만 가지 화합물의 목적은 주로 - 아니면 오로지 - 천적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는 것이다. 이 화합물은 허브와 양념의 활성 성분일 뿐 아니라 퀴닌과 아스피린 같은 약재, 아편과 대마 같은 마약, 커피와 차 같은 기호식품으로 쓰이기도 한다. 적은 수단으로 많은 결실을 낳는 진화는 몇 가지 성분을 변화시키는 것만으로 이 화학적 다양성을 만들어냈다. - P183

운동 경기에서 숭배와 전쟁에 이르는 모든 집단 활동, 공동체나 국가나 평등을 토대로 한 모든 숭고한 정치 이념, 이를 떠받치는 민주주의 제도와 법의 지배는 궁극적으로 맛있는 스테이크에서 공정한 몫을 얻으려는 고대의 욕망에서 비롯한다. - P274

GM을 비롯한 모든 형태의 동식물 육종에서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생길 수 있다. 이것은 GM이 여느 육종 기술보다 본질적으로 더 위험하기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것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새로운 것 중에서 건강과 환경에 가장 심각한 위험이 된 것은 GM 작물이나 길들여진 종이 아니라 아르헨티나개미, 얼룩말홍합, 칡 같은 야생 외래종이다. 각각의 종은 천연 서식처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때 막대한 피해를 초래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또는 하지 못하든 위험을 피할 수는 없다. 그러니 모든 위험의 경중을 따져야 한다. 현재 GMO의 위험은 터무니없이 과장되어 있는 데 반해 GMO를 이용한 지속 가능한 식량 생산의 가능성은 너무 과소평가되어 있다. - P290

식단을 연구하면, 여러 문화의 다양한 식단을 비교해 얻을 수 있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것은 건강하고 균형 잡힌 식단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고기를 과식하거나 동물성 단백질을 아예 끊는 극단적 식단만이 문제라는 것이다. 이 극단 사이에 있는 식단에서 건강의 최대 위협은 지나친 열량 섭취라는 현대적 현상이다. - P29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2022 신예작가
강보라 외 지음 / 한국소설가협회 / 2021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화진 작가의 글을 찾다가 만난 책이다. <사랑의 신>이 작가의 등단 작품이었다는 것을 몰랐고 이 글은 작가의 작품집에서 이미 보았다. 좋아하는 작가를 알고 그의 이전 자취를 따라가 보는 일도 재미있다. 내가 시간을 거슬러 가는 것도 작가가 어떤 길로 오고 있는지를 보는 것도. 

20명의 작가의 글이 실려 있는 책이다. 신춘문예로, 문예잡지로 2021년 가까이에 등단한 작품들이라고 한다. 등단 작품들을 읽고 있으면 비슷한 분위기의 공통점을 느끼는 경우도 있다. 갈등에 빠져 있는 인물을 선택하는 기준, 스산한 배경, 현실의 모순을 어중간하게 고발하거나 한탄하는 주제 같은 것들. 심사를 하는 입장을 고려하여 점수를 얻기에 좋은 장치 따위들. 나더러 쓰라고 하면 못 쓰겠지만 읽다 보면 보이는 겹치는 요소들. 결국 작가는 자신의 등단 작품에서 한 발 나가 자신의 세계를 넓히고 높이고 깊이 있게 확장시켜야 한다는 것일 텐데. 누군가는 나아가고 누군가는 끝내 나아가지 못하고. 세상 많은 일이 그러하듯이. 

도재경|춘천 사람은 파인애플을 좋아해
양지예|겨울나그네 발굴단
박진희|해바라기로 피는 커피

김화진 작가의 글 말고 내 마음을 붙잡은 글 세 편이다. 기록을 남긴다. (y에서 옮김2024102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카피캣 식당
범유진 지음 / &(앤드) / 202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근에 작가의 짧은 글을 봤는데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찾은 책. 제목만 봤을 때는 고양이를 소재로 삼은 소설집, 표지 그림으로 봤을 때는 근사한 음식을 소재로 삼은 소설집, 둘이 만났으니 내 취향이겠구나 지레짐작하며 읽은 책이었는데 짐작과 같지는 않았다.  

카피캣. 모방하는 사람, 흉내쟁이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게 아니었다. 흉내쟁이가 주인공이었다. 그것도 남의 삶을 가져다 자신의 것과 바꾸고 싶어 하는 사람, 흉내쟁이보다 더 겁쟁이 같다. 세상에는 이렇게 바꾸고 싶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많다는 뜻일까? 말도 안 되지만 기회가 생긴다면 그러고 싶은 이들. 나는? 나는 어떨까? 내 안에 이런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나? 말하고 싶지 않은 걸 보니 나는 정직하지 못하다.

등장인물이 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악마도 악마의 제안에 솔깃하는 의뢰인들도. 주동인물이든 반동인물이든 빠져 드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못 찾았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만 내 취향이 아닌 것인지, 작가가 인물을 그려 내는 방식이 내 취향과 어긋나는 것인지 이것도 모르겠고. 작가의 글을 더 읽어 봐야 한다는 것인데, 지금으로서는 망설여진다. 내가 작가에게는, 여기까지 온 셈이다. 더 읽을까 어쩔까.   

수상한 곳에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현실이나 소설이나 관심도 호기심도 생기지 않는구나. 수상하지 않은 시절, 수상하지 않은 곳에서 살아가고 싶다. (y에서 옮김202412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수상한 사람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윤성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7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읽다 보면 서늘하게 찔리는 기분을 느낄 때가 있다. 작품 속 주인공이 미냥 긍정적이기만 한 게 아닌 인물이 더러 있는데, 그럼에도 은근히 지지를 하다가 그만 뒤통수를 탁 맞는 기분이랄까? 지지를 할 때의 마음은 내 안에 숨겨 둔 이기심이나 욕심과 만나 동일시되었을 때이고, 당황스러워질 경우는 그 인물이 벌을 받게 되거나 난처한 상황에 놓이게 될 때다. 마치 내가 내 욕심에 발등 찍혀 난감해지기나 한 것처럼. 


이 책은 개정판인 모양이다. 앞서 읽은 기억이 나지 않아 좀 망설였는데 읽고 보니 안 읽었던 게 맞았다.(요즘 들어 이미 읽은 책을 모르고 또 읽는 실수가 잦아진 것 같아서 좀 따지게 되었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 혼이 나거나 곤란한 처지에 놓이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자니 작가는 인간의 어떤 면을 드러내어 경고하고 싶어 했던 걸까 하는 추측까지 하게 된다.


지극히 평범하고 보통의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또 마냥 착하거나 모범적이거나 반듯한 건 아닌 사람들의 삶. 그러지 않겠다고 하면서도 슬쩍 죄도 짓고 양심의 가책을 무시하기도 하고 친절을 위장해서 속이기도 하고 또 그런 약점을 들키지 않으려고 술수도 부리고 하는 사람들.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약하고 부족하고 어리석고 간사하고 때로 음흉하기도 한 사람들. 그리고 그럴 때도 있는 바로 내 모습.


그런가, 그래서 내가 이 작가의 글을 꾸준히 읽고 있는 건가? 인간 보편의 어두운 약점을 만나 확인하고 스스로 혼내고 경계하고 싶어서? 읽고 나면 시원해지는 게 아니라 좀 거북하기도 하고 찝찝하기도 하면서 확 상쾌해지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드문데도 계속 읽게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걸까? (y에서 옮김2018032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앞서 읽었던 이 작가의 산문집이 내게 아주 좋은 인상을 남겨 주었고, 그 책이 마음에 들어 이 책을 구한 것이었는데, 이제 이 책은 이 작가가 쓴 다른 책까지 관심을 갖게 해 준다. 독서의 기쁨, 작가의 발견이다. 한동안 우리 소설에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는데 제대로 만나게 된 것 같아 참 고맙다.


    소설의 분위기는 대체로 밝지 않다. 그렇다고 어둡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닌데 어쨌든 가라앉아 있다. 사는 일에 희망도 별로 없어 보이고, 답답하고 한심하기도 하고, 소설 속 주인공들은 늘 술을 마시고 있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짜증이 나지 않는다는 것. 무엇 때문에 온통 암울해 보이는 분위기에도 나는 기꺼이 들어서는 마음으로 이 소설들을 읽고 있는 건가 따져 보고 싶게 해 준다.(보통 이런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에 그다지 마음 두지 않는 스타일인데.)  


    좋은 문장 표현에 반했던 면도 있다. 줄거리만 따라 읽어 가는 게 아니라 평범한 일상을 세세하게 묘사해 놓은 게 좋아서 지나쳤다가도 다시 돌아와 읽었다. 이런 경험, 윤대녕의 소설을 읽으면서 해 봤던 건데. 내용도 주제도 문체도 차이가 아주 많은데 나는 비슷하게 읽고 있다. 비슷하게 좋아하게 된 것 같다. 또 생각해 봐도 좋다. 내가 좋아할 작가가, 내가 기뻐하며 읽을 책이 늘어났다는 것은. 


    학생들과의 독서 모임보다 어른들이 여는 독서 모임에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소설의 주제를 찾아내는 것보다 각 소설들을 읽은 후 자신이 생각한 것만 얘기해 보라고 해도 참여한 사람 수만큼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이 작가의 소설의 장점이 이것이었구나, 읽는 사람이 자신의 속 이야기를 끄집어 낼 수 있도록 해 준다는 것. 어쩌면 이건 박완서의 소설을 읽으면서 내가 얻었던 유익한 경험이기도 한데. 


    끝까지 다행이다 하면서 읽을 수 있어 좋았다. 한 작가의 소설이 다시 그의 소설을 불러 내는 일은 좀처럼얻기 어려운 행운이기도 하니까. (y에서 옮김201809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