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럴렐 월드 러브 스토리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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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락영화처럼, 보고 있는 그 순간의 즐거움으로 만족한다면, 어김없을 소설. 소설에서 소설 그 자체의 재미에 더한 것까지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소설도 아주 괜찮다고 생각한다. 추리 과정에 빠져들고 자신의 의식에 궁금증도 느껴보고. 색다르기도 하고, 무엇보다 시간을 들여서 집중하고 있는 자신이 마음에 들 테니까.    


히가시노 게이고의 관심 영역은 놀라울 정도이다. 작가의 상상력이라는 부분에서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이쯤 되면 정말 세상 바라보는 게 재미있겠다 싶다. 어느 한 곳 흥미롭지 않은 데가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소설은 우리의 기억을 소재로 한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내 기억은 사실일까. 내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믿을 만한 것일까. 내 기억과 네 기억에 차이가 생기는 것은 어떤 까닭에서일까. 기억이 힘을 갖고 있기는 할까. 기억을 믿어도 좋을까...... 


뇌 기억과 관련된 과학 글을 읽는 것과는 아주 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이니까 허구이니까 그 점을 감안하고 읽더라도 우리 기억에 대한 일부는 누구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 싶다. 기억하고 싶은 일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고, 좋은 기억은 오래오래 남기고 나쁜 기억은 빨리 없애 버리고 싶은 마음만큼이나 기억을 스스로 통제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그래, 마음 한 켠으로 앓고 있는 병도 치료할 수 있을 듯하다. 물론 반대로 나쁜 사람이 나쁜 기억을 빨리 없애고 나쁜 일을 자꾸 저지른다면 그 또한 큰 문제가 되기도 하겠지만. 


이 작가의 소설은 계속 내 관심의 대상이 되겠구나. (y에서 옮김2014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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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게, 봄에게
사이토 린.우키마루 지음, 요시다 히사노리 그림, 이하나 옮김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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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하면서 평생 만나지 못하는 이가 있다. 봄과 가을처럼, 여름과 겨울처럼. 작가의 참신하면서도 애틋한 발상이 마음에 든다.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받아들이는 태도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 배워야 하는 게 아닌지.


너를 사랑한다면서도 너를 모르는 나, 나를 사랑한다면서도 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너, 누구누구를 사랑한다고 떠들면서 정작은 자기 자신조차 사랑할 줄 모르는 나. 알아듣고 인정하고 깨닫고 바꾸려는 노력을 하는 게 남은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길이라고, 나는 믿는다.


봄여름가을겨울을 다 겪을 수 있는 곳에 사는 것이 지구인으로서 얻은 커다란 축복임을 이제는 안다. 지구의 위기라고, 기후 변화의 재앙이라고, 인류가 저지른 오만한 일의 결과라고, 경고받고 있는 요즈음. 우리에게도 봄과 가을이 더 이상 오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이 오기를 바라는 성급한 마음에 들여다 본 책이다. 내가 지금 편안한 것이 썩 편하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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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Official Stardew Valley Cookbook (Hardcover) - 게임 <스타듀밸리> 공식 요리책
ConcernedApe / Random House Worlds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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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갖고 싶어지기도 하는 일이다. 사치품으로 마련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을 방법이 없고 이 책에서 알려 주는 레시피대로 요리를 해 볼 생각도 없다. 그냥 비싼 그림책으로 구입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오로지 스타듀밸리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좋아하는 요리를 소재로 삼은 책이라는 이유로. 

스타듀밸리는 컴퓨터 게임 이름이다. 이른바 농장 경영, 힐링 게임의 한 종류다. 이 게임을 한 지는 제법 되었고 늘 하는데도 지루하지 않고 지웠다가 다시 시작해도 또 흥미진진하고. 하나의 게임을 이렇게 오래 하는 사람이 더러 있기도 하다는데 나는 습관처럼 게임 속 하루의 노동을 채운다. 실제 일을 하는 것마냥. 

게임 안에서 요리를 할 수 있다. 내 캐릭터가 레벨을 올리면서 키운 농작물이나 잡은 생선으로 요리를 할 수 있게 되는데 그렇게 만든 요리를 다른 NPC에게 선물할 수 있다. 각 NPC마다 좋아하는 요리가 다른데 이게 재미있는 요소다. 누구에게 어떤 요리를 만들어 줄 것인가. 책은 이런 내용까지 다 담아 놓았다. 

영어로 쓰여 있지만 내가 보고 싶은 내용은 충분히 알아볼 정도이다. 요리의 재료 이름이라든가, 이 요리를 누가 좋아한다든가, 누가 레시피를 제공했다든가 하는 정보를 읽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요리책이지만 이 책을 보고 요리를 할 생각은 전혀 없는 독자인 나, 나는 게임의 연장으로 이 책을 펼친다. 내 감정의 사치를 위해 책값의 무게를 기꺼이 지불하면서.

얼마 전에 이 게임에 등장하는 음악을 연주하는 콘서트가 있었다.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은 했는데 끝내 가지 못했다. 어떤 게임은 영화만큼 감동을 전해 줄 수도 있는 모양이다. 이 게임이 내게 이러는 것처럼. (y에서 옮김2024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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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를 연주하는 소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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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생각, 예쁜 글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이니까 가능한 세상, 이룰 수 없을 것 같지만 현실이 되었으면 하는 세상, 각자의 수단은 달라도 누구나 꿈꾸는 행복한 세상. 그 세상을 향한 소설이다. 안타깝지만. 


소설로도 말하고 있지만, 이 소설에서 그리고 있는 어른 혹은 기득권자들의 태도는 인정하는 만큼 참 마음에 들지 않는다. 흔들리는 게 두렵기는 할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너 지금 잘 못하고 있다', 혹은 '네가 이제까지 믿어 온 게 잘못된 것이다'라고 한다면 어찌 거부감을 갖지 않겠는가. 쉽게 마음을 열 수 없는 것도, 열리지 않는 것도 또한 이해된다. 그럼에도 늘 변화는 있었고, 그 변화를 인정하지 못하면 새 시대에 적응할 수 없었다는 것을 무수한 역사적 사례에서도 확인했건만. 


작가는 그런 완고한 어른들이 못마땅했을까. 어린 젊은이들을 부모나 어른들보다 훨씬 지혜롭고 철든 사람으로 보여 준다. 스무살은 어쩌면 어린 나이가 아닌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이 소설의 '빛'과 같은 혜안이 없다. 다른 사람의 기분이나 능력을 알아채는 재주도 없고, 오히려 남들 다 알아보는 면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뛰어난 힘을 갖고 있지 못해서 살아오는 동안 가끔 섭섭하기는 했으나 그게 내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내가 내 그릇의 크기를 진작 알았다는 게 고마울 일이다. 


미쓰루처럼 천재나 선구자로 여겨지는 사람들의 외로움과 고단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은 비범한 사람들의 능력을 정말 시기하는 걸까, 그들이 사라져 버렸으면 싶을 정도로? 완전히 아니라고는 못하겠기에 내 마음도 섬뜩하다. (y에서 옮김2014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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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회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하현 옮김 / 한겨레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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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12편의 소설. 각각의 이야기는 글이 끝나자마자 다 잊어버리고, 다음 편을 읽으면 분명히 앞의 글과 다른 이야기인데 마칠 때쯤 앞의 글과 구분도 안 되고, 나는 지금 무엇을 읽고 있나 막연하다 싶은데도 마냥 빠져드는 기분. 하나 읽고 금방 분위기를 바꾸고 싶지 않아 시간을 두었다가 읽어도 내가 겪는 현상은 앞의 독서와 같아진다. 설명하기 쉽지 않은데 계속 머물러 있고 싶은 마음, 나의 아일랜드 현상이다.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인물들, 달리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과의 관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갈등과 다툼과 오해와 절망과 기대들을 담아 놓은 이야기. 좀 슬프고 좀 쓸쓸하고 좀 춥고 좀 고단하고 그런데도 또 내일에는 오늘보다 힘을 내어 살아볼까 기운을 차리게 하는 인물들의 메시지 혹은 작가의 당부. 내가 이 작가의 소설을 계속 읽고 있는 큰 이유다. 


뚜렷하고 명확하지 않은 것들을 아주 좋아하지 편인데 이 작가의 글에서는 다르게 느낀다. 흐려서 희미해서 불투명한데 매혹적이다. 나는 이끌려 들어가고 빠져들고 머문다. 누가 누구인지도 헷갈리는데 어디가 어디인지도 모르겠는데 문장 하나하나에 멈추고 두리번거리고 다시 들여다보고 의도된 무정함에 소스라친다. 삶은 늘 이만큼 떨어져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아무리 매달리며 살고자 해도.


12편의 소설 속 인물 중 어느 한 사람도 기억나지 않는다. 그냥 다 소중하게 여겨진다. 너도 나도 우리 모두는. 내가 알든 모르든 살아 있는 모두는. 전혀 모르는 채로 살아도 나는 기꺼이 빌어 줄 수 있겠다, 그의 평온했으면 하는 생을. 지금 아픈 모든 생명들을 향한 회복을. 


소설에서 '알았다'는 말을 자주 보았다는 기억이 난다. 세어 보지 않았으므로 횟수는 모르겠다. 실제로 얼마나 많은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알았다'는 문장의 마지막 표현이 나올 때마다 나는 안심이 되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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