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 개정판
피천득 지음 / 샘터사 / 200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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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 사 둔 책인지 기억에도 없고, 리뷰에 남긴 흔적이 없으니 다 읽었는지 어쨌는지도 기억이 없고, 그런 어느 순간 꽂혀 있는 책을 불현듯 꺼내어 넘겼다. 금방금방 넘어 가는 게 아니라 자꾸만 눈이 머무른다. 읽다 보니 분명히 읽은 기억이 되살아나는데 다시 또 읽게 된다. 좀처럼 내가 하지 않는 일인데.

한번 읽은 책을 다시 꺼내어 읽는 일이 내게는 아주 드물다. 가끔 학생들에게 쓸 글을 찾기 위해 다시 뒤적이고 챙기는 일은 있어도 온전히 새로 읽어 본 기억으로 남아 있는 책은 없는데, 어찌된 셈인지 이 책이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인연이어서일까.

오래오래 전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배웠던 이 책의 제목인 '인연'이 떠올라서였던 것 같다. 갑자기 그때의 추억, 그때 글을 읽으시며 수업을 하시던 담임 선생님(그분은 왜 그리 빨리 돌아가신 것인지), 지금도 여전히 만나고 있지만 그때 함께 떠들고 놀았던 친구들의 인상 등등이 생각나면서 이 책을 처음 보았던 시절로 나를 되돌려 놓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피천득의 수필을 처음으로 본 책은 이 책이 아니라 범우사에서 발행했던 작은 책자 '수필'이었을 것이다. 대학교 때 사서 읽었던 것 같은데 그 책은 곧 잃어버린 것 같고, 이후 수업을 하다가 필요에 의해 이 책을 구입했고, 보다 보니 몇 년 전에 몇 편의 글은 수업에 활용했다는 기억도 난다. 아, 어쩌자고 이렇게 내 추억이 많이 담겨 있단 말인가.

이 리뷰를 쓴 뒤에도 이 책을 곧 다시 펼쳐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나이가 들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나이 들어가면서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너무도 따스하고 그리고 서럽다. 지금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너무도 고맙고 더 누리지 못하는 것에 대해 섭섭해지지가 않는다.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인연들이 떠올라 마음 아프고 현재 잇고 사는 인연들이 눈물겹도록 소중하고 고맙다.

책도 추억이 되는가.  (y에서 옮김201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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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궤도 1 - 빨간 비행기 ㅣ 신의 궤도 1
배명훈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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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 중 첫째 권을 읽었다. 펼쳐 놓은 상태로 잠시 끝난 책. 작가가 독자에게 던진 물음들을 내 방식으로 정리한다. 답은 내가 찾아내야 할 테고.


신은 뭐지? 신이 있는지 없는지 증명할 수 없어서 답을 만들 수가 없다는데. 그렇다면 신은 왜 필요하지? 누가 신을 원하지? 거꾸로 붙잡고 들어가면 보일 듯도 한데,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다. 나는 신 자체에 관심이 없는 탓이다. 관심이 안 생기는 대상에는 더 이상 주목하고 싶지 않다. 낭비가 될 뿐이니까. 대신 작가의 탐색 과정에 흥미를 느낀다. 이 작가는 신을 어떻게 그려 내고 있는가.


십오만 년은 어느 만큼의 양일까. 작가는 참으로 넉넉하게도 끌어안았다. 십오만 년 후에 지구 아닌 다른 행성으로 주인공을 보내다니. 그리고 깨어나게 하다니. 비행기를 키운다는 설정은 또 얼마나 참신한지. 주인공들이 조종하는 삼엽기가 어떤 비행기인지 찾아보기도 했다. 날개가 세 쌍(3단)인 비행기라는데, 그러면 오엽기, 칠엽기도 어떤 모습인지 짐작이 된다. 맞거나 안 맞거나 관계 없이. 십오만 년 후에 나니예라는 행성에서 날아다니는 비행기가 정확하게 어떤 모습일지 만들어낸 작가는 알겠지. 


작가가 처음으로 쓴 장편소설이라고 한다. 작가의 작품을 꽤 읽었는데 이 책을 놓쳤던 모양이다. 장편의 시작이 이런 상상이었단 말이지? 은경과 나물이 1권에서 여러 가지 시련을 겪고 있는데 2권에서 어떻게 전개되어 마무리될지 궁금해진다. 지극히 위험한 상황에서도 유머를 깔아 놓은 것이 재미있다. 나는 정말 유머를 좋아하나 보다.


영화와 소설 '듄'에서 본 머나먼 행성의 모습이 수시로 겹쳐 보여서 약간 성가시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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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누나 5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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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내용, 비슷한 주제. 단순한 그림, 단순한 구성. 평범한 소재, 평범한 표현. 그럼에도 계속 보게 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보았는데도, 본 것 같은데도, 또 보아도 지겹지 않은, 평범해서 더 새로운. 아무에게나 있는 능력은 분명히 아닐 것이다.  



이번 책의 표지에서 돋보이는 메시지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다. 주어는 당연히 ‘나’다. 책 안에서 동생이 누나에게 묻는다.(25쪽) ‘이렇게 되고 싶다 하는 미래’에 어떤 것이 있냐고. 누나가 한 대답이다. ‘나를 좋아하는 나로 있고 싶어’라고. 지금도 늘 그러고 있다면서. 동생은 이런 누나를 대단하다며 속마음으로 응대하고. 당연히 작가의 마음을 대신한 것이겠지만 부러우면서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자신을 좋아하는 나 자신이라. 마음속으로 그렇게 바라고 있었어도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인데 당당하게,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온전하게 그대로. 



여자인 내가 여자인 나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는 쉽지만 이게 또 마냥 그렇지 않더라는 것을 경험으로 안다. 내가 나를 몰라서 일어나는 일이 종종 있었으니까. 자신의 본성 한 쪽을 쉽게 만나도록 해 주는 만화책이다. 그것도 유쾌한 기분이 들도록 해 주기까지 하면서. 자신과의 느긋한 대화가 그리운 이에게 권한다. (y에서 옮김202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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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의 집 ㅣ 엘러리 퀸 컬렉션 Ellery Queen Collection
엘러리 퀸 지음, 배지은 옮김 / 검은숲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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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은 결말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결말에 이르면 누가 범인인지, 왜 범죄를 저질렀는지, 희생자와 어떤 관계였는지 다 파악할 수 있게 되니까. 나는 글을 읽는 동안 이와 같은 물음들의 답을 애써 찾지 않는다. 찾을 수도 없거니와 작가만 잘 따라 가면 수월하게 답을 해 주니 미천한 노력이 무색할 따름이다. 그저 작가가 숨겨 놓았든 풀어 놓았든 그 의도를 따르며 찾아 헤매다가 결말에 다다르는데 이 과정에서 속는 것마저 재미있으니 어쩔 수 없다. 


이중 생활. 실제로 이렇게 살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고는 하는데, 영화나 소설에서 종종 만나게 되는 배경이다. 두 집에서 각기 다른 역할로 사는 사람. 아내가 둘이라든가 남편이 둘이라든가. 흥미가 생길 만하지만 약간 따분한 설정이다. 이 소설이 시기적으로 오래된 셈이니 요즘 작품이 신선하지 않다고 해야 하나. 갈등은 확실하고 언제든 사건은 일어날 수 있고 범인은 서로의 이해 관계 때문에 쉽게 생길 수 있고.


이 소설의 희생자가 바로 이런 사람이다. 이중 생활을 하는 남자. 죽고 나서 부인이 둘이었다는 게 밝혀진다. 한 사람은 엄청 부자인 나이든 여자, 다른 한 사람은 평범하고 젊은  예쁜 사람. 처음에 용의자로 범인으로 지목되는 과정이 답답하게 전개되지만 범인이 아닐 것을 믿고 읽고 되니 기대하는 마음이 커진다. 어떻게 풀어 나가겠다는 것인가 싶어서.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도 궁금하지만 진짜 범인을 찾아내기까지에 관심이 더 쏠리는 독서.      


이번에도 나는 졌다. 엘러리 퀸의 활약이 재미있다. 아직 안 읽은 책이 많이 남아 있어 세상 사는 즐거움이 나를 많이 기다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다.  (y에서 옮김2023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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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누나 4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미우(대원씨아이)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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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동생이 누나와 이런 류의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이건 사이가 상당히 좋다고 봐야 한다. 나 역시 누나 입장인데 남동생과 이런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이 없다. 내 남동생 역시 내게 만화 속 남자 주인공과 같은 질문을 할 리도 없고. 그렇다면 이 둘 사이가 이상적인 남매 사이인가? 그건 또 꼭 그렇다고도 말을 못하겠는데 아무튼 신기한 사이다. 아무리 만화 속이라고 해도.


남동생은 평범하게 묻는데 누나는 비범하게 답한다. 어떻게 이런 대답을? 내 속의 감춰진 공간에 숨겨져 있을 법한 말들이 가끔 나오는 것을 본다. 작가의 역량이다. 지극히 사소해 보이지만 그래서 또 삶의 진실한 면이 되는 내용들을 표현하기. 무심해서든 둔해서든 미처 확인하지 못한 채 내버리고 사는 감정들을 붙잡아 보여 준다. 소중한 것도 있고 하찮은 것도 있고. 


다섯 권 중에 마지막으로 봤다. 이번에도 낯익었으나 지루하지 않았다. 조금도. (y에서 옮김2023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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