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너머로 달리는 말
김훈 지음 / 파람북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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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馬)에 대해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데, 심지어 놀이삼아 타보는 말등에도 올라본 적이 없는데, 승마도 경마도 아무것도 모르는데,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말을 알고 말을 느끼고 말의 마음을 본다. 신기하고 대단하고 측은하다. 야백과 토하는 달 너머로 달려 갔을까? 제발 그랬기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근원을 생각해 보는 일-처음에는 어땠을지, 사람은 어떻게 생겨났다가 어떻게 모였다가 어떻게 싸웠다가 어떻게 사라져 갔는지 추측해 보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더러 보았다. 소설로도 만화로도 영화로도 이미 본 듯하여(구체적으로는 들지 못하겠지만) 이런 배경만으로는 낯선 느낌이 전혀 없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낯설지 않고도 생생한 새로움을 맛보았다. 도리어 너무 생생해서 좀 많이 무서웠다. 무서웠으나 피하고 싶지 않았다. 끝까지 나를 끌어당기는 힘은 오로지 작가에게 있었다.

 

문장들은 근원만큼 짧고 맵고 단단했다. 얼마나 자주 찔리고 베이고 박혔던지 다 읽을 즈음이 되자 내 정신이 한결 단단해진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는 읽어 낼 수가 없었을 테니까. 나하를 사이에 둔 초와 단, 두 나라의 왕과 군사들과 백성들과 말들의 말(言)이 귀에 맴도는 듯하다. 그토록 짧으면서도 인상적인 말들이 작가가 한 말인지 등장인물들이 한 말인지 이제 나는 구별을 못하겠다. 무슨 상관이랴. 초는 초대로 단은 단대로 애틋하기만 한 목숨들이었던 것을. 하나하나 가볍게 사라져간 듯했으나 결코 사라진 적 없는 낱낱의 생명으로 이어져 온 것을. 나 또한 그들 중의 하나일 것이니.  

 

작가가 뒤에 남긴 말이 나를 붙잡는다. 나도 이제 우리집 마당에서조차 이 땅의 근원을 짐작하는 버릇을 갖게 될 듯하다. 여기에 무엇이 혹은 누가 있었을까.(y에서 옮김20200811)

무는 문을 힘차게 하고 문은 무를 아름답게 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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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식혜 ㅣ 웅진 우리그림책 110
백유연 지음 / 웅진주니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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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란하고 힘든 일이 생겼다. 마음도 몸도 편하지 않아서 여러 모로 어수선하다. 이런 나를 진정시키는 방법 하나, 그림책 들여다보기.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는 않지만, 시간이 흘러가도록, 흘러가는 시간에 나를 잠시 동안 맡기도록 해준다. 이래도 저래도 어쩔 수 없다면, 덜 아픈 시간을 선택해서 견디는 수밖에.


어느 가을날 너구리 할머니를 찾아온 동물 친구들. 저마다 할머니를 생각하면서 먹을 것을 챙겨 온다. 토끼는 먹을 것 대신 들꽃을 챙겨 왔다며 할머니께 죄송하다고 하는데 이 멋진 너구리 할머니는 들꽃까지 식혜의 재료로 쓴다. 들꽃이 뿌려진 식혜라니, 얼마나 상큼할까.


나는 현실을 잠깐 잊고 그림에 동물들의 귀여운 이야기에 빠져 든다. 요리를 잘하는 할머니를 둔 것도 행복한 일일 텐데. 나는 앞으로도 영영 요리를 잘하는 할머니가 될 수는 없을 듯하고, 이 또한 서글퍼지는 생각이다.


이 작가의 그림책은 내 안에 있는 저 멀고 먼 어린이부터 훗날의 노인까지 불러 내어 함께 읽도록 해준다. 지금 내게 퍽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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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많을 땐 고양이
마스다 미리 지음, 히라사와 잇페이 그림, 이소담 옮김 / 이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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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다 미리 작가는 글을 맡고, 그림은 다른 작가가 그려서 함께 만든 책이다. 그림을 그린 작가를 잘 모르는데 아마도 고양이 그림에 맞춰져 있는 작가인 모양이다. 좀 세밀하게 살피지 못하고 마스다 미리 신작이라는 말에 얼른 구입부터 한 뒤에 어랏? 싶었던 아주 작은 낭패감. 뭐, 그럴 수도 있지. 책 제목처럼 생각이 많아지지 않도록 얼른 우리 고양이를 보는 거지. 


편집 기획이 특별하다. 아마 두 작가에게 이런 형식의 내용을 권한 편집자가 있었겠지. 작가가 먼저 제안했더라도 크게 상관없고. 한 쪽에 두 컷의 그림, 고양이가 우리네 사람을 살핀다는 설정 아래 보여 주는 짧은 인상들. 말하는 주체가 고양이라 하더라도 결국 작가는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이므로, 사람인 나는 그런가 보다 싶은 느낌을 자연스럽게 이어 갔다. 어쩌면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기대까지 품으면서.


고양이에 우리네 감정을 이입하는 작품을 더러 본다. 아니, 아예 고양이가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형식을 취한 글도 제법 있었다. 사람과 가까이 사는 동물로 고양이 말고 개도 있는데, 작품으로 등장하는 쪽은 고양이가 더 많은 듯하다. 아니면 내가 개가 주인공인 쪽보다 고양이가 주인공인 쪽의 글을 더 많이 읽어서 그렇게 느낀 탓일지도 모르고.   


개든 고양이든, 주인공을 동물로 삼은 데에는 작가 나름대로의 이유와 전하고자 하는 효과가 있을 테다. 사람이 사람 말을 듣는 것과 듣지 않는 것, 사람 말이 아니라면 대신 고양이의 말이라도 들으라는 것, 글쎄, 이것도 좋을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었으니 작품의 힘에 따른 것이겠지? 누가 무슨 말을 어떻게 하든, 가 닿을 글은 가 닿게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할 글은 중간에 끊어지고 말 것이고.  


귀여운 그림에 담백한 생각을 보았는데, 아무래도 좀 심심했다. 지루했던 것 같기도 하고. (y에서 옮김2021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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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 2021 개정판
김훈 지음 / 푸른숲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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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잘 넘어가는 글이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유쾌하지 않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마치 내가 주인공인 개 '보리'가 되어 마구마구 돌아다닌 기분이다. 내 기분은? 글쎄, 말 그대로 유쾌하지는 않았으나 자유롭고 신선했다는 느낌 정도? 사람으로서는 맛볼 수 없는 기분이기도 했고. 그래서 작가의 표현에 더 감탄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찌 이렇게 쓸 수 있을까 싶었으니.

 

이 작가의 글은 챙겨 읽는다고 했는데 이 책을 놓쳤었다. 블로그 이웃 'goodchung'님의 리뷰를 통해 알게 된 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 되는 셈. 내게 아주 좋았다고 할 글은 아니었고, 그래도 읽으니 좋기는 하구나 하는 만큼이었다. 아마도 개의 생태에 대한 관심이 없는 편이라 아주 좋다는 느낌을 못 받은 것일 테다.

 

나는 개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개를 만지지도 못하고 개가 내게로 오는 것도 싫다. 제일 싫은 것은 묶인 개를 보는 일이다. 답답함을 넘어서 암담할 정도다. 개를 학대한다는 사람들의 기사는 더더욱 끔찍하다. 개를 반려동물로 삼고 위로를 받는다는 사람들의 정다운 이야기보다는 개를 못살게 구는 나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내게 더 큰 영향을 주는 셈이다.

 

개를 보살피는 어려움까지 겹쳐 생각하다 보면 아무나 아무 때나 개를 키워서는 안 된다는 것만 확인하게 된다. 개랑 친하게 지내지는 못했어도 집에서 키운 개가 여럿 있다. 애들이 돌봤는데 끝내 풀어 놓은 채로 키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난 후로는 더 이상 키울 생각이 없다고 한다. 

 

소설 속 '보리'는 사고를 치기도 하고 주인으로부터 혼이 나기도 하지만 개로서는 대체로 좋은 환경에 놓인 편이었다고 생각한다. 시골에서 살았고, 묶여 있기보다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고, 주인들의 사랑을 많이 받은 편이었으니까. 그럼에도 개에게도 개만의 고단한 삶이 있더란 말이지. 주인이 누가 되는가에 따라, 수놈으로서 어떤 경쟁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좋아하는 암놈에게는 어떻게 다가가느냐에 이르기까지. 앞으로 길에서 개를 만나게 되면 저절로 '보리'의 시선을 떠올리게 될 듯하다.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는 만나 보고 생각해 볼 일이고.     

 

개도 사람도 순하게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아무래도 안 될 모양이다. (y에서 옮김2019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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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쓰여 있었다 - 어렸을 적이라는 말은 아직 쓰고 싶지 않아, 일기에는…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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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편하고 부담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글이다. 어쩌면 이 작가의 삶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남보란 듯 크고 대단한 야망을 추구하는 것은 아닌 삶, 일상에 만족하고 일상에 충실한 삶, 먼 누군가를 애써 찾거나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가까운 사람들과의 사소한 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삶. 우리가 쉽게 놓치고 있는 평범한 행복들. 그래서 나는 이 작가의 글이나 그림을 볼 때마다 일기를 쓰고 싶어진다.(실제로 쓰지는 않고 이렇게 리뷰로 그치고 말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 또한 괜찮은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주고 싶어서.

이제 오십을 바라보는 작가는 나이 드신 부모님을 애틋하게 생각한다. 자신이 싱글인 탓에 혼자 남을 자식을 걱정하면서 점점 더 나이들어가는 부모 입장을 헤아려 보는 것이다. 보는 내 마음도 저절로 애틋해진다. 내 가 더 나이 들었을 때의 내 아이들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하고 염려되기도 하고. 뭔가를 대신 해 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살아 있는 동안 뭔가를 더 해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나, 돌아가시기 전까지 조금이라도 더 챙겨 드려야 할 내 어머니를 떠올려 보는 마음이 글을 읽는 내내 맴돌고 있었다. 이러라고 글을 읽기는 했지만.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서 글 중의 어떤 점을 내가 좋아하는 건지 잠깐 생각해 봤는데, 생각났다. 굳이 가르치려고 하지 않는 표현. 그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렇게 살아 보니 좋더라, 그러니 당신도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표현이 없다는 것, 바로 그것. 좀 질렸던 모양이다. 이른바 잘 산다고 하는 사람들의 친절해 보이는, 친절이 지나쳐 보이는 삶들이. 그냥 나, 이렇게 살아요, 이것만 해도 충분한데 말이다.

사는 게 어떨 때는 참 어렵다. (y에서 옮김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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